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6:52

고서동

파일:고서동.jpg
성명 고서동(高瑞東)
생몰 1912년 12월 8일 ~ 1990년 6월 17일
출생지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
사망지 전라남도 고흥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서동은 1912년 12월 8일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신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3년 12월 장흥에서 고율 소작료를 징수하는 지주들의 횡포에 대항할 농민조합을 결성하기로 결의하고 완도의 정후균(鄭後均)과 협의해 야학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회주의를 고취시켰다. 이후 1934년 1월 정종배의 권유를 받고 공산주의 사호를 건설할 목적으로 유재성(劉載星)·문병곤(文秉坤)·김두환(金斗煥)등과 더불어 각 부락에 2명 내지 5명의 인원으로 농민반(農民班)·청년반(靑年班)·소년반(少年班)을 설치하여 하부로부터 상부에 이르는 방법에 의거하는 장흥적색농민조합(長興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고, 면(面) 또는 리(里)단위의 세포반을 결성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7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흥군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90년 6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고서동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