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0:27:06

성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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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궤
ארון הברית
Ark of the Cov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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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궤의 재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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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ארון הברית
아람어 ܘܩܒܘܬܐ ܕܕܝܬܩܐ
아랍어 تابوت العهد
영어 The Ark of the Covenant, The Ark[1]
한자 聖櫃

1. 개요2. 성궤의 제작3. 이후의 역사4. 성궤의 행방은?5. 대중문화 속의 성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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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로는 증거궤, 계약의 궤, 언약궤 또는 증언궤라고도 하며, 히브리어로는 아론 하브릿(אָרוֹן הָבְרִית)이라고 불리는 ( 유대교 기독교 성서 속에 나오는) 상자. 율법의 근본인 십계명판이 담긴 궤라고 해서 법궤라고도 부르며, 히브리 민족 야훼와 맺은 계약의 상징이다. 시나고그 내에 경전 토라를 보관하는 상자 또한 성궤라고도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성궤라고 하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상자를 일컫는다.

2. 성궤의 제작

성경에 의하면 모세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후, 시나이산에서 야훼가 내린 십계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금송아지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이후 다시 하나님이 시나이산 정상에서 모세를 불러 두 번째로 십계명이 새겨진 판을 내려주었고 그와 더불어 신을 숭배하기 위한 용도로 성막(성스러운 천막)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하나님은 성막을 어떻게 만들지 지시하면서 특별히 성스러운 상자를 만들라고 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성궤이다.[2]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조각목[3] 목재를 금으로 싸서 만들었는데[4]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판과 대사제장 아론의 싹난 지팡이, 히브리 민족이 피난하면서 먹었다고 하는 식량 만나를 담은 황금 항아리를 넣어두게 했다고 한다. 또한 상자를 덮는 뚜껑[5]이 있었는데 뚜껑의 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 같은 형상[6]을 좌우에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이것의 용도는 천사 같은 형상 사이로 신의 영광이 내려오는 목적이었다고. 이 케루빔은 창세기의 생명나무 실과를 지키는 천사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나무 실과를 지키던 불의 칼도 언약궤를 지킨다.

어쨌든 성막이 완공되면서 가장 성스러운 물건인 성궤는 성막의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안치되었다. 성궤가 놓인 곳을 지성소(至聖所)[7]라고 하며 1년에 단 한 번 대속죄일에 대사제장[8]이 죄를 씻어주는 어린 양의 피로 속죄를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약궤를 지키는 불의 칼을 맞아 불타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자신이 죽었을 경우 밖에서 끌어낼 수 있도록 몸에 줄을 묶은 채로 지성소에 들어갔다[9].

3. 이후의 역사

이후 성궤는 사막을 방황하던 히브리 민족의 여정과 함께 방황하는 신세였는데, 특별히 성궤는 하나님의 강림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히브리 민족 행렬의 가장 선두에 위치했다고 한다. 성궤는 오로지 선택된 레위 가문의 사람들이[10] 성궤의 양끝에 달린 금고리에 금막대를 끼운 후 들어서 운반했다고 한다. 단, 성궤를 운반하기 전에 성막의 안쪽 휘장과 전용 덮개들로 덮어야 했으며, 이것을 어기면 선택된 사람들이라도 죽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강림하는 신비로운 물건인 만큼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여호수아서에 의하면 히브리 민족이 여리고로 쳐들어가기 앞서서 요르단강을 건널 때 성궤를 든 사제장들이 요단강으로 들어가자 강이 둘로 갈라졌다고 한다. 여리고 성을 공략할 때는 성궤를 앞세우고 하루에 한 바퀴씩 6일간 돈 뒤 7일째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성을 공략하자 무너졌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성궤를 가진 히브리인들은 어떠한 싸움에서도 승리했다는데... 사실 성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성궤를 들고 나가서 싸웠다고 나오는 대목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여호수아기 예리코의 전투 사무엘기에서 대제사장의 타락한 아들들이 필리스티아(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에서 들고 나간 정도가 전부다.

그중 블레셋과 전투는 '어떠한 싸움에서도 승리한다.'는 버프 효과(내지는 일종의 징크스)만 믿고 무작정 성궤를 들고 나갔다가 오히려 블레셋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히브리인들이 성궤를 들고 나와서 의기양양해 있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히브리인 병사들에게 힘을 주는 성궤야말로 약점이다. 성궤만 빼앗으면 히브리인들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을 것'이라며 성궤를 든 대사제장의 타락한 아들들부터 공격하는 역발상을 실행한 덕분이었다. 혹은 '어차피 저 성궤 때문에 이기지 못하고 죽을 거라면 진짜 죽을 각오로 싸우자.'며 오히려 블레셋의 투지가 오른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구약성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대사제의 타락한 두 아들들 때문에 야훼 하느님이 벌을 내리고 신의 영광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영광이 떠난 성궤만 믿고 무대책으로 군 자들의 최후는 비참했다고. 일각에서는 성궤를 쓰고도 패하자 성궤의 신성함이 부정될까 봐 이렇게 둘러대지 않았는가 추측하기도 한다... 당시 팔레스타인 군대는 성궤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대사제장이 거주하던 실로의 성스러운 천막까지 공격해서 파괴했다고 한다.[11] 이때 성스러운 천막은 기브온으로 대피하며, 솔로몬이 거기에서 제사를 드린 사건 이후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이후 성궤는 필리스티아인들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12], 성궤를 자신들의 다곤 신을 섬기는 신전에 들인 다음 날 신전 안에 있던 신상들이 가장 작은 것까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파괴[13]되었고, 다른 성으로 옮겼더니 전염병이 창궐했다고 한다. 필리스티아의 5개 도시 성주들이 기겁해서 무당을 불러서 점을 쳐보니 성궤는 야훼의 신성한 상자이므로 히브리인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해를 입으리란 괘가 나왔다. 그리하여 성궤와 더불어 덩어리로 5개와 종기 형상을 한 조각 5개를 만들어 야훼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린 뒤 히브리인들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함부로 성궤를 만진 자나 성궤의 안을 들여다 보려한 자들은 죽었다고 한다. 성궤를 돌려받은 후에 그 성의 사람들이 신기했는지 성궤를 열어보려고 하자 야훼의 분노가 작렬하여 그 성 주민 (5만)70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14]

또한 후에 사울 왕이 보관해두고 잊어버린 성궤를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면서 규정을 따르지 않고 소가 끄는 수레에 싣고 오다가 수레가 덜컹하면서 성궤가 흔들거려서 무의식중에 잡은 웃사라는 운반 책임자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일도 있었다. 초고대문명설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그레이엄 핸콕 방사능 물질이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 추측하기도 했다. 또는 가공할 만한 살상력과 주로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점을 들어 원시적인 형태의 세균 무기 비슷한 것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인해 성궤운반은 일시 중지되었고, 웃사가 죽은 장소는 '웃사를 벌하셨다.'는 의미로 '베레스웃사'라고 명명되었다. 다윗 왕이 다시 제대로 규례에 따라 준비를 하고 소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메어 나르도록 하자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운반되었다.

신학적으로 성궤를 만진 사람들의 처분이 들쑥날쑥한 것은 이유가 있는데, 취급법을 교육받은 정도에 따라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 더 엄격한 처분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교도여서 취급법 자체를 모르는 필리스티아인은 수레에 싣거나 아무나 만져도 멀쩡했지만 대사제의 타락한 아들들은 물론이고 사제의 성읍인 벧세메스나, 궤를 2대째 관리해 온 웃사 등은 취급법을 어겨 죽은 것이다. 구약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에게 성궤를 강탈당하기 전에는 덮개를 씌우지 않은 성궤를 보기만 해도 죽었다. 덮개가 없어지고는 그런 거 없지만.

이후에 솔로몬이 기원전 957년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자 성전의 제일 안쪽 지성소(至聖所)[15]에 봉안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시절,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만 욤 키푸림에 민족의 죄를 용서받는 목적으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손에 염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데, 성막이나 대성전 경내에 대제사장 말고는 아무도 없어야 했다. 사람들은 안뜰 담장 밖에서 대제사장의 옷에 달린 방울 소리만 들을 수 있고, 만일 신의 분노를 사면 대제사장이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은 대제사장의 허리에 줄을 묶어 두었다가 만일 죽었다 싶으면 끌어내었다. 대제사장이 성궤의 뚜껑에 그 피를 뿌리고 나와야 이스라엘이 죄를 신에게 용서받았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후대에 유다 왕국의 10대 임금 우찌야[16]가 기원전 751년 또는 기원전 750년에 대사제장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기를 하려다가 신의 벌을 받아[17] 한센병자가[18] 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이후로 성궤는 언급되지 않는다. 대체로는 성전을 파괴했을 때 같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해왔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성궤는 나무로 만들어 금박을 입히고 궤의 뚜껑은 금덩어리로 만들었는데, 바빌로니아의 군병들이 그 금박과 금덩어리를 얻으려고 성궤를 파괴했으리라는 것.

바빌론 유수가 끝나고 기원전 516년 유대인들이 돌아와 다시 제2성전을 재건했다. 그런데 대사제가 대속죄일( 욤 키푸르)에 피를 뿌려야 하는데, 성궤가 없으니 대성전을 지을 때 상징적으로 놓았던 기초석을 대신 성궤 자리에 봉안하고 거기에 피를 뿌렸다. 이는 서기 70년 로마의 (훗날 황제가 된)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제2성전을 통곡의 벽 한 장만 남기고 파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위의 돔이 바로 성궤가 있던 바위 위에 지었다고 전한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봤으나 아무것도 없었기에 두리번거리며 그냥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성궤의 안에는 모세 요셉 미라도 있다는 소리들도 있지만, 아무 근거 없이 지어낸 소리일 뿐이다. 구약성서에 모세가 느보산에서 죽자 천사들이 그를 비밀리에 안장하여 지금도 모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기록이 있고 그 시신을 파냈다는 이야기는 없다.[19] 요셉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숨을 거두면서 자신의 시신을 하느님이 언약하신 땅에 안장해달라 유언했고, 유언에 따라 이집트 탈출 당시에 요셉의 미라도 이장했다는 기록은 있지만[20] 성궤 안에 봉인했다는 기록은 없다.[21] 게다가 유대교 전승에도 그런 야사나 전설조차 없다.

무엇보다도 유대교의 관념에서 시신은 극도로 부정하여 신성한 곳에 들이기는커녕 성소에 방문할 사람이 시신과 접촉해서도 안 된다. 부정을 타기 때문이다.[22]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부정을 타면 안 되는데, 아예 시신을 성궤 안에 넣는다는 것은 유대교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다.[23]

구약성서에 언급된 성궤의 내용물은 언약판과 만나를 넣은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뿐이다.

4. 성궤의 행방은?

히브리어 성경(구약)에서 성궤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부분은 역대기 하권 35장 3절로, 요시야(기원전 641~ 기원전 609) 왕 재위기의 내용이다. 해당 구절[24]로 볼 때, 이교 신앙의 영향으로 야훼 숭배가 크게 쇠퇴했던 요시야 이전 시기에 이떠한 이유로 한동안 혹은 꽤 오랫동안 성전 지성소가 아닌 다른 곳을 옮겨다녔던 듯하다. 이후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면서 대성전을 파괴했는데, 이때 성궤 또한 파괴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상징물인지라 제사장들이 어딘가로 숨기거나 옮겼으리라는 주장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퍼졌다.

구약 제2경전 마카베오기 하권에 따르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성궤를 어느 산 속 동굴에 숨겨두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다만 이 기록은 현존하지는 않고 마카베오기에 인용된 부분만 남았다. 여기서 그 산을 '모세가 올라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곳이라고 설명하는데, 모세가 죽기 직전 올라가 요르단강 너머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던 느보(Nebo)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같은 문헌에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신탁을 받고 나서 사람들에게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올라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그 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가서 예레미야는 동굴 집을 발견하고 천막과 계약 궤와 분향 제단을 그곳에 안치하고 나서 입구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를 따라간 몇 사람이 길을 표시해 두려고 다가갔지만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것을 알고 그들을 꾸짖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장소는 하느님께서 백성을 다시 한데 모으시어 자비를 보이실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때에 가서야 주님께서는 저 물건들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고 모세 위에 나타났듯이, 솔로몬이 그 장소가 특별히 성화되도록 청하였을 때에 나타났듯이, 주님의 영광과 구름도 나타날 것이다."

(2마카 2, 4-8)

모험가들에게는 불멸의 떡밥으로 성궤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였다. 상술한 마카베오기 하권에 인용된 이야기를 믿고 느보산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혹자들은 옛 솔로몬 사원 밑의 비밀 지하통로에 성궤가 숨겨졌다고 믿고 옛날에 성궤를 안치했던 그 바위, 즉 바위의 돔 아브라함의 바위 밑을 파헤치다가 무슬림들에게 들켜서 줄행랑을 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25]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타 언덕 밑에 묻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바빌론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 언약궤를 급히 예레미야 동굴에 묻고 봉안했고 이 예레미야 동굴이 골고다 언덕과 관련된 장소라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십자가에서 떨어진 피가 지진이 나며 갈라진 땅 밑으로 들어갔는데, 이 피가 땅 밑에 묻혀있는 언약궤로 흘렀다는 설이다. 그리스도교인 입장에서 보면 이는 욤 키푸림에 염소 피가 뿌려져 유대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처럼 예수의 피가 성궤에 뿌려지면서 인류의 원죄를 용서받는 신비스럽고 감동적인 설이다.[26]

에티오피아의 유대-기독교 전승에서는 그들이 성궤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에티오피아 왕가 전설에서는 솔로몬의 아들이자 에티오피아 초대 황제 메넬리크 1세가 성궤를 악숨으로 가져왔다고 전한다. 그레이엄 핸콕은 이 전승을 믿고 성궤가 에티오피아로 옮겨졌고[27] 현재는 에티오피아의 오래된 도시 악숨의 성당에 비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악숨에 성궤가 있다고 굳게 믿고 매년 성궤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궤를 안치했다는 성당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예루살렘 성전의 그 성궤가 맞다고 객관적으로 추정하거나 입증할 만한 어떤 자료나 조사결과도 없고, 단지 에티오피아인들이 그렇게 믿을 따름이다. 더군다나 이 성궤를 지키기 위해 모조품을 만들어 여러 곳에 흩어놓았다는 소문도 있어 더욱 불확실하다. 다만 이 궤는 2020년 발발한 티그라이 전쟁 때문에 소재가 불분명해졌다.

런던 대학교의 아시아-아프리카학 교수 튜더 파핏(Tudor Parfitt)은 2006년에 출판한 <잃어버린 성궤(The Lost Ark of the Covenant)>에서 짐바브웨 렘바족의 성물 '노마 룽군두(Ngoma Lungundu)'가 성궤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렘바족은 예멘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의 후예로 추정되고, 이들의 DNA가 솔로몬 성전에서 봉사했던 유대인 성직자들의 후손과 같은 특질이 있다고 말한다. 노마 룽군두는 현재 짐바브웨 국립박물관에서 보존 중인데, 탄소연대측정 결과 14세기에 제작되었다고 밝혀졌다. 파핏 교수는 예루살렘이 외적의 침공을 받았을 때 성궤를 담당한 유대인들이 성궤를 모시고 예멘을 거쳐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그 이래 언약궤가 파손될 때마다 복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노마 룽군두는 상자가 아니라 인데, 커다란 그릇 형태에 가죽을 씌운 것이라 무얼 담는 용도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지금은 파손되어 떨어졌지만 성궤처럼 봉을 끼울 수 있는 고리도 있다.

일본에서는 성궤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쿠시마현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이상한 옷차림을 한 외래인이 도쿠시마 해안에 내렸는데, 이들이 궤짝 하나를 메고 츠루기산(剣山)으로 올라가 어느 동굴에 이를 숨겼고, 그 후 그들은 현지인에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아마존 등을 뒤지면 <四国剣山に封印されたソロモンの秘宝>(2013) 등 책이 나온다. 물론 저자들은 관련 분야의 제도권 학자는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묵시록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11장 19절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나면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라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보편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로 해석하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에 대한 예언이 12장에 바로 이어서 계속된다. 이에 가톨릭 신학에서는 성궤를 성모 마리아의 은유로 본다. 상술하듯 구약시대에 성궤는 하느님의 영광이 지상에 강림함을 뜻하는데, 안에는 십계명판과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 만나가 들어있다(히브리서 9장 4절). 이는 신약 시대에는 그것들의 상위 호환에 해당하는 하느님의 말씀, 영원한 사제직, 생명의 빵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므로, 예수를 수태한 성모 마리아가 바로 계약 궤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성궤를 골고다 언덕 아래에서 직접 발견했고 그 위로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다만 이스라엘로부터 성궤 행방 확인이 되자 않아 진실 여부는 저 너머에. 현실적으로 따지면 수천 년 전에 나무로 만든 상자이니 누군가 관리하지 않는 이상, 진작에 썩어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5. 대중문화 속의 성궤

  • 블루 아카이브에서는 '싯딤의 상자'라는 이름의 타블렛 PC로 등장한다. 키보토스 학원도시를 전부 컨트롤할 수 있는 OS가 내장되어 있으며 프롤로그에서는 이것이 파괴되어 재앙이 터진듯한 암시가 등장한다.
  • 로스트아크의 스토리를 관통하는 핵심 아티팩트인 ' 아크'가 성궤를 모티브로 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5.1.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III/IV》에 등장하는 시스템

맵 구석구석에 오벨리스크(III)이나 오라클(IV)이 있는데, 이걸 모두 찾아 비밀 지도를 밝히면 x자로 성궤의 위치가 밝혀진다. 영웅을 이동시켜 그 x자에 해당하는 곳의 땅을 파면 성궤가 나타나고(하지만 꼭 다 찾을 필요는 없고 운이 좋으면 한두 번만에 대충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다) 이 성궤를 성에 가지고 가면 성궤건물을 지을 수 있다.[31]

성궤건물은 유닛 증가량을 증가시켜 주고, 성의 수입을 대폭 늘려주는 등 매우 효과가 좋다. 그 외에도 종족마다 특수한 효과를 부여해주는데 이건 종족별로 격차가 좀 갈린다. 예를 들어서 인퍼노 같은 경우는 쓰레기 유닛 임프의 생산량을 2배로 늘려주는 똥덩어리 같은 효과가 있지만[32] 타워 같은 경우는 온 맵을 밝혀주는 개사기 효과가 있다. 이러나 저러나 인퍼노는 최약체 진영.

사실 영문명이 Grail이기 때문에 성궤라기보단 성배라 번역하는 쪽이 적절할 수도 있다. HOMM3에서는 상자 아이콘이라 성궤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HOMM4에서는 대놓고 황금잔으로 되어 있다.

5.2. 미디블2: 토탈 워

Ark of the Covenant이름의 아이템으로 등장.(들어가기는 Retinue 쪽에 들어간다.) 가톨릭 팩션과 이슬람 팩션 모두 얻을 수 있는 성물로 아무 성물도 없는 신앙도 4 이상의 장수가 카이로(!?)를 점령할 시 십자군이나 지하드면 30% 일반의 경우 1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다. 능력은 +2 Dread, +1 Command다. 미디블2: 토탈워 - 킹덤즈의 Crusades 모드의 경우 +5 Dread, +3 Command의 능력치를 준다. Dread가 붙은 이유는 만지면 죽는다는 설정 때문인듯.

[1] 'The Ark'라고 하면 보통 이 성궤, 다시 말해 모세의 십계명판을 담은 언약궤를 가리키는 것이다. [2] 출애굽기 25, 10-16. "그들은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어야 한다. 길이는 이 척 반, 나비는 일 척 반, 높이도 일 척 반으로 하여라. 순금판을 궤 안팎에 대고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 금고리 네 개를 만들어 네 귀퉁이 밑에 붙이는데, 한쪽에 고리 두 개, 다른 한쪽에도 고리 두 개를 붙여라. 또 아카시아 나무로 채를 만들어 금을 입혀라. 이 채를 궤 양쪽에 붙은 고리에 끼워 궤를 들게 하고 채는 고리에 꿰어놓은 채 그대로 두어라.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어라." [3] 원어로는 싯딤 나무라고도 한다. 아카시아 나무랑 품종이 유사하다. 공동번역에서는 그냥 아카시아 나무로 번역. [4] 참고로 성경에서는 성궤를 비롯하여 성전과 성전의 부속물들은 모두 유다 가문의 사람인 브살렐이 만들었다고 기록되었다. { 출애굽기 3장 1-5절} [5] 속죄소(贖罪所)라고 한다. 그 이유는 본문의 주석 참조
출애굽기 25, 17-21
너는 순금으로 속죄판을 만들어라. 길이는 이 척 반, 나비는 일 척 반으로 하여라. 속죄판은 마치로 두드려 늘여서 거룹 둘이 양쪽에 자리잡게 만드는데 거룹 하나는 이쪽에, 또 한 거룹은 맞은쪽에 자리잡게 만들어라. 그 두 거룹은 속죄판 양쪽을 늘여서 만든다. 거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속죄판을 덮고 속죄판 쪽으로 얼굴을 맞대게 하여라. 그 속죄판은 궤 위에 얹고, 궤 속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넣어라.
[6] 케룹, 혹은 케루브(cherub)라고 한다. 흔히 케루빔(cherubim)이라 부르는 천사는 이 케룹의 복수형. 개신교에서는 그룹, 공동번역에서는 거룹이라고 표기했다. [7] '지성소'는 궁전, 신전 등 건축물 내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장소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일반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성립 이전의 고대 건축물들에 사용된다. 기독교 성립 이후의 건축물들의 경우에는 '성스러운 건축물'은 이미 교회, 성당 등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그 안의 가장 중요한 장소들을 일컫는 용어들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 [8] 이 대제사장 직분은 모세의 형이었던 아론과 그의 직계후손들만이 담당하게 했다. 대제사장의 직분은 굉장히 성스러운 직분이었는지라 부모가 상을 당하면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제사장들과는 달리, 상중에도 장례나 식에 참가할 수 없었다. [9]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에는 옷자락에 조그만 방울을 달도록 했는데 움직일때 방울도 같이 움직여 소리가 나게해 대제사장이 죽음을 면하게 했다. [10] 레위 가문의 세 분파 중 고핫 자손이 메는데, 고핫 자손에는 아론, 그러니까 제사장들도 속한다. 물론 제사장 가문이 성궤를 메지는 않는다. [11] 사무엘상에선 전혀 언급이 없으나 예레미야 예언자가 "실로의 성소가 파괴된 줄 모르느냐?" 하고 언급한 데서 유추된다. 사무엘상에선 성소가 파괴된 치욕스런 사건이라 언급을 회피한 듯 보이지만, 예레미야 예언자는 야훼와 다윗 왕이 계약했으니 우린 천하무적!이라는 유다 왕국 사람들의 생각이 터무니없음을 말하기 위해 언급하길 회피하던 이 치욕스러운 사실을 꺼내든 듯하다. [12] 장소는 아스곳. [13] 신전에 들인 이튿날 와서 봤더니 자신들의 신인 다곤의 신상이 성궤 앞에 엎어져 있어 다시 일으켜 세웠는데, 그 다음날 또 와서 보니 이번엔 엎어져 있는 것도 모자라 신상의 목과 손목이 절단된 채로 문지방 옆에 나뒹구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다곤을 섬기는 신전의 사제들과 신자들은 신전의 문지방을 밟지 않고 넘어가게 됐다고 한다. [14] 5만에 괄호가 쳐진 이유는 성서의 사본에 따라 기술이 다르기 때문. 대체로 그 성이 그리 큰 성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5만은 과장이라는 추정이 있다. [15] '지성소'란 '지극히 거룩한 곳'이라는 뜻으로 만든 한자어이다. 원래 성궤를 안치한 장소를 유대인들이 '지극히 거룩한 곳'이란 뜻으로 Qṓḏeš HaQŏḏāšîm이라고 불렀고, 이를 번역하여 라틴어로 Sanctum sanctorum, 영어로는 Holy of holies라고 한다. [16] 로마자 표기는 Uzziah. '웃시야'는 개신교 음역, '우찌야'는 가톨릭 음역이다. [17] 우찌야 왕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분향하려는 것을 당시 대제사장이 용기있는 제사장 몇명을 데리고 지성소로 들어가 웃시야 왕이 월권 행위를 하고 있으므로 당장 중지하고 나가기를 청하자 이에 우찌야 왕이 분노하여 이들을 해하려하니 그 즉시 {문둥병}이 발생했다는 기록이다. [18] 이것이 진짜 한센병인지 아니면 의식적으로만 부정한 다른 피부병인지 확실하진 않다. 성서는 질병보다는 징벌에 초점을 맞춰서 그렇다. [19] 이것이 근거가 되어 성경의 신약 유다서에는 이 일로 인해 사탄 미카엘이 서로 다투었다고 기록하였다. [20] 요셉을 어디에다 이장했는지는 알려져지 않았다. 구약에 나오는 유명인물들의 묘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려진 곳이 없다. [21] 일단 초기 이집트 탈출 당시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 둘, 만나가 담긴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이 돋아난 지팡이가 들어있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어 지성소로 성궤가 옮겨질 당시에는 두 돌판뿐이었다고만 적혔다. [22] 유대교의 관습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시체와 접촉하면 그 부정을 씻고자 정화예식을 2번 해야 한다. (혹은 정화예식을 하고도 일정기간을 더 기다려야 진짜 정화된다는 설도 있다.) [23] 게다가 성궤는 성소 내에서도 지성소 내에 있는데, 무엇보다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는데다 기본적으로 대제사장은 시신과 절대로 접촉할 수 없고, 따라서 친부모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24]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25] 바위의 돔 밑은 전혀 고고학적 조사가 없었던 탓에 지금까지도 떡밥이 흥하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바위 밑을 단 한 번 과학조사를 해보았더니 내부에 공간이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다. [26] 최초의 인간이자 원죄를 지어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의 유해가 묻혀 있었다는 전승도 있는데, 정교회 십자고상들은 이 전승을 표현하여 십자가 발치에 해골을 그린다. 가톨릭에도 십자가 발치에 사람 두개골을 조각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27] 나일강 하류의 엘레판틴이라는 섬에 유대인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가 유대교랑 그리스도교를 고대에 이미 받아들인 것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고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핸콕은 이를 근거로 예루살렘에서 엘레판틴섬으로 성궤가 옮겨졌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살았던 것과 성궤의 존재 여부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 [28] 어떤 노인이 혼자서 성궤를 나무 상자에 봉인한 후 다른 나무 상자들이 가득한 창고 어딘가에 보관한다. 그 노인이 사망한 후에는 상자를 다 열어보지 않는 한, 성궤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된다. [29] 1편에서 사용했던 성궤 소품이 잘 보관되어서 4편에서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30] 그러나 알고보니 낚시였다... [31] 컴퓨터는 보통 난이도까지는 아예 땅을 안파고, 어려움부터는 어느 정도 지도를 벗겨내면 성궤가 묻힌 곳 근처에서 땅파기 노가다를 해서 성궤를 파낸다. 최고 난이도인 임파서블에서는 오벨리스크로 지도도 안까고 바로 파내는 사기를 친다. [32] 정확히는 매주를 임프의 주간으로 선포해서 늘 임프만 두 배로 나오게 해주는 효과를 지닌다. 장점을 찾는다면 전염병의 주가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