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27 02:12:42

계경찬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케이탄 케이산(桂丹景燦)
족보명 계인찬(桂仁燦)
이명 계추림(桂秋林)[1], 계선화(桂善化)
본관 수안 계씨[2]
출생 1912년[3] 2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
(현 평안북도 선천군 장공리)
사망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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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계경찬은 1912년 2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현 선천군 장공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계창림과 어머니 평산 신씨(1896 ~ ?) 신형규(申亨奎)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3년 4월 만주국 봉천성 관전현(寬甸縣) 제3구(第三區) 우모오촌(牛毛塢村)[4]에 거주하면서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으며, 참사(參士)로서 관전현과 환인현(桓仁縣)[5] 두 현을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그 해 8월 27일[6] 밤에는 전에 조선혁명군의 총기를 탈취했다가 근래 항일 반만군(反滿軍)으로 전향한 관전현 이차성구(裡岔城溝)[7]의 중국인 12명을 습격하여 러시아식 장총 9정과 탄환 150발, 아편 등을 빼앗고 이틀간 인질로 잡아 300원을 모금하였다. #

1934년 9월 23일[8]에는 무기 탈취를 위해 만주국 경찰관이 탄 자동차 3대를 습격하였으나 곧 경찰의 지원대가 뒤따르자 도주하여 몸을 숨겼다. 그러나 결국 1936년 5월 체포되었으며, 그 해 6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중국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한 가명이다. [2] 대목파 20세 찬(燦) 항렬. [3] 수안계씨족보 상권 대목파 890쪽에는 1913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 [4]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 니우마오우진(牛毛塢鎭). [5]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번시시 환런만주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 [6] 음력 7월 7일. [7] 현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 리바차구(裡八岔溝). [8] 음력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