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08

겐쇼인

파일:225px-Kensyoin.jpg
1. 개요2.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법명: 겐쇼인(見性院), 본명: 치요(千代)
1557~1617

야마우치 카즈토요 아내로, 내조를 잘 해서 24만석의 다이묘까지 오르게 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등의 무장으로 나오는 야마우치 카즈토요는 능력치가 뭐하나 높은게 없는 그저 그런 무장이었던 듯 한데, 엄청나게 승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내에서 내조의 공이 크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2ch 등지에서의 별명은 '치요의 남편의 처'다. 보통 전근대 여성이 누군가의 딸, 아내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치요의 경우 남편보다 유명해서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별명이 '치요의 남편'이 된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그녀의 내조에 대한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있는데, 아즈치 성 완공 후에 오다 노부나가가 열병식을 열었는데, 명마가 있음에도 너무 비싸서 다들 아쉬워하는 가운데 양부모가 남겨준 금을 쓰지 않고 두었다가 이 때 말을 사서 카즈토요가 돋보이게 해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화에는 이설이 있다. 아즈치 성 완공 후의 기마열병식은 1581년에 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 카즈토요는 이미 1577년 시점에서 2,000석의 봉록을 받고 있었고 그 봉록이면 충분히 말을 사는데 문제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실은 이보다 이전에 다른 기마열병식이 있었고 당시에는 남편 봉록으로는 과한 금액의 말을 사준것이 유명한 후대의 열병식과 뒤섞여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 아니면 아예 기마열병식이 아니라 그저 들러본 마시장에서 명마가 나왔는데 마침 돈이 없던 카즈토요가 민망해 하지 않도록 치요가 대신 돈을 내 주었다는 것이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는 그 돈을 낸 것이 치요가 아닌 치요의 모친이라는 설까지[1] 있는 등 학계 내에선 논쟁의 대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축성작업에서 감독관을 맡은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머리카락을 잘라 돈을 마련했다는 설화나 치요가미[2]의 발명자가 치요라는 설화(치요설 외에도 몇가지 이설이 더 있다) 등 내조에 이바지한 이미지는 그 외에도 많기 때문에 내조의 여왕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일본판 평강공주라 봐도 될 듯?

2. 대중매체에서

파일:山内千代.jpg 파일:山内千代1.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external/www.nobuwiki.org/2754.jpg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전국입지전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전국입지전에 등장한다.

치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본 NHK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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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금으로 말을 산 일화가 다른 서적에서는 발견이 되는데 정작 치요를 다룬 문서나 야마우치가 가문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2] 화려한 문양이 보기좋게 짜깁기 되어 있는 포장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