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얻은 검

"단순하다"는 말은 이 단검을 묘사할 때 딱 맞는 말이다. 손잡이는 가죽으로 평범하게 감겨 있으며 칼날은 청동으로 되어 있다. 단검에는 소인도 없고, 줄세공이나 보석, 혹은 화려한 금속 장식도 없다. 단검은 잘 만들어졌지만,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장인이 본인의 작품에 이토록 자부심을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이 단검을 쥐면 뭔가가 더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이를 얻은 후 얼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칼날은 오랜 사용으로 변색된 것처럼 보인다. 칼날이 벌써 생명력이 다할 때가 되었을 정도로 저렴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긴 힘들긴 하다만,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하다.

이 칼날에는 초반엔 긁힌 자국으로 보였던 룬 문자 하나가 새겨져 있다. 애초부터 거기 있었던 것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손잡이의 가죽은 이미 딱딱해져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칼날의 원래 빛은 흐려졌고, 칼날에 반사되는 빛도 흐릿하고 분간하기 어렵다.

첫 번째 룬 문자 옆에 두 번째 룬 문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칼날은 새로운 장식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인다.

칼날의 날은 본디 예리함을 상당히 잃은 것으로 보인다. 이걸로 뭔가를 자르는 건 고역에 가까울 듯 싶고, 살을 관통하기 쓰이기 보다는 편지의 봉인을 뜯는 데다 어울릴 것 같다. 심지어 손잡이는 심할 정도로 해지기 시작했다.

칼날에는 세 번째 룬 문자가 나타났다. 아마 "무디다"라는 뜻이 아닐까.

칼날은 짙은 안개로 덮인 양, 더 이상 예전처럼 빛나지 않는다. 거기에 깊게 긁힌 자국까지 있으며, 아무리 부드러운 재료라도 이 칼날이 오히려 자국이 새겨질 것 같다. 칼날에는 녹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순식간에 녹이 퍼진 것 같다. 녹은 황폐한 질병처럼 칼날을 먹어치우고 있다. 손잡이의 가죽은 완전히 벗겨지기 시작했고, 매번 사용할 때마다 단단히 잡아야만 제대로 쥘 수 있을 정도다.

칼날에는 4개의 룬 문자가 보인다. 아마도 옛 언어로 된 일종의 사과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칼은 예전 모습에서 완전히 탈피하였다. 이제 단검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이는 마치 단검의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초월적인 깨달음을 보여주는 정도다.

이제 칼날에는 5개의 룬 문자가 있으며, 그것을 보고 있으면 그 의미가 당신의 마음 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다:

"풍화되어, 죽은 후, 오랜 노동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