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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6년 9월 10일 |
함경북도
부령군 청암면 인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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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몰년 미상 |
사망지 미상 | |
이명 |
강승경(姜承京) 강승경(姜承卿) 강민선(姜民善) 강일취(姜日趣)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강승경은 1896년 9월 10일 함경북도 부령군 청암면 인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경 중국 북간도에 이주한 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사관연성소에 입교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졸업한 뒤 소대장에 임명되었고,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북로군정서를 따라 북만주로 이동한 그는 이곳에서 대원 모집과 무기 운반 임무를 수행했다. 1921년경에는 서간도의 무송현에 근거지를 마련한 흥업단(興業團)의 독립군연성소에 파견되어 동단 소속의 독립군들을 훈련시켰다. 1922년경에는 서간도의 통합 독립군단인 광정단(光正團)에 입단하여 소대장에 임명되었다.1922년 9월 20일, 강승경은 단원 30명을 이끌고 함경남도 삼수군으로 진입해 유격전을 펼쳤다. 그가 이끄는 부대는 9월 25일 새벽 4시 삼수경찰서 영성주재소를 습격해 일본인 순사 1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부상시켰다. 이후 1924년 초 광정단 군사부장 겸 별동대 사총대장(射銃隊長)이 된 그는 간도와 북한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집행했다. 1924년 3월에는 길림에서 개최된 한족통일회의에 광정단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홍래와 함께 대한독립단모연대를 조직해 군자금 모금에 노력했다.
그러나 1924년 5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송환되었고, 경성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강도상인,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강승경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