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49:45

강수구

<colbgcolor=#0047a0> 출생 1908년 11월 30일
함경남도 홍원군 학천면 풍동리[1]
사망 1934년 1월 17일
함경남도 홍원군
이명 최창순(崔昌淳), 강엽구(姜曄求), 한준근(韓俊根), 최호팔(崔浩八), 최갑팔(崔甲八)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수구는 1908년 11월 30일 함경남도 홍원군 학천면 풍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11월 함경남도 홍원군 학천면에서 홍원청년동맹 학천지부(洪原靑年同盟 鶴泉支部) 설치 대회에 참석해 소년부원으로 가입했으며, 1930년 3월 소년의혁단(少年義革團) 학천면 지도자로서 일제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1931년 9월 홍원농민조합 학천면 책임자로서 호세증률(戶稅增率)에 반대하는 시위를 전개하다가 당국의 추적을 회피해 1933년 2월까지 함흥, 홍원, 함주, 서울, 평양 등지를 방랑했다.

1933년 2월, 강수구는 조선공산청년동맹(朝鮮共産靑年同盟) 재건을 위해 활동하던 김필현(金弼鉉)과 연락을 취하다 동대문 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함흥경찰서로 이송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 1933년 12월 16일 병보석 처리되어 자택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1934년 1월 17일에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강수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산양리·풍산리·풍양리·은행리·남풍리와 함께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강치구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