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06 20:12:01

강문영(독립운동가)

파일:강문영.jpg
<colbgcolor=#0047a0> 출생 1915년 1월 22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
사망 1947년 3월 5일 (향년 33세)
전라남도 해남군
이명 강일영(姜日永), 요시카네 후미요(吉金文雄)
본관 진주 강씨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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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항일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문영은 1915년 1월 22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흥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3월 해남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6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하다가 동경중앙대학(東京中央大學)을 중퇴하고 광주로 귀향한 뒤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한 장재성(張載性)의 권유를 받고 광주고보 독서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연구, 동지 규합,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목적으로 약 3개월간 토론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1929년 11월 광주고보의 한국인 학생들과 광주중학교 출신의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역 앞에서 충돌한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그는 여기에 참가하여 시위를 주도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서울로 상경해 1932년 4월 보성고보(普成高普) 제3학년에 입학한 강문영은 1933년 2월 서승석(徐升錫)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서적을 연구, 토론하면서 동지를 규합하고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등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또다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36년 5월 2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947년 3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문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