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전 내각관방참의 [ruby(加藤, ruby=かとう)] [ruby(康子, ruby=やすこ)] 가토 야스코[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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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333cc><colcolor=#fff> 출생 | 1959년 |
일본 도쿄도 |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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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내각관방참의 |
2015년 7월 1일 ~ 2019년 7월 31일 | |
학력 |
게이오기주쿠대학 일본문학부 졸업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대학원 전문커뮤니티지역계획석사과정 수료(MCRP) |
가족 | 아버지 카토 무츠키(加藤六月)[2], 매제(여동생의 남편) 가토 가쓰노부 [3] 자녀 1남 1녀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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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부 산업유산정보센터 소장 |
약력 |
국제회의
통역사 CBS 뉴스 조사원 아베 내각 관방 참의 산업유산국민회의 전무 이사 내각부 산업유산정보센터 소장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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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 내각부 소속[4]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소장이다. 현재 군함도의 일반 거주민들을 주로 인터뷰하며, 강제 노동의 증언을 기록한 일본인 하야시 에이다의 저서와 차이가 있을 경우 혹은 강제 징용에 잘못된 사진을 사용한 경우를 지적하며 강제 노동 전체가 거짓말이라 주장하고 있다.[5] 일본제국의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홍보하고 있다.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노동을 역사부정을 하며 역사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군함도 관련 유네스코의 권고를 지키지 않고 위와 같은 홍보물을 내놓는 주역이다. 현재 군함도에서는 산업 유산 정보 센터의 전시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일본의 정치인 도시 산업 연구자로서 「산업유산」 「근대화 유산」의 보존·홍보를 하며 국제 광산 역사 회의를 소라치 탄광의 아카히라에 유치한 것 외, 쓰쿠호 지방 탄광 노동자의 사적 기록인 「야마모토 사쿠베 탄갱 기록화·기록문」을 유엔 교육 과학 문화 기구(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의 등록하였다. (2011년 5월) 큐슈·야마구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8현등 일본의 조선인 강제노동이 포함된 산업 시설을 국제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할 목적으로 2013년에 일반 재단법인 산업 유산 국민 회의를 설립해, 전무이사로 취임.2015년 7월 2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아베 신조 내각(3차부터 4차 1차까지)에서 내각 관방 참여(산업유산의 등록 및 관광 진흥을 담당)를 맡았다.
한반도 출신의 징용공에 대해「들은 적도 없다」라고 부정하는 영상 전시물을 게시하고 있다.
2. 생애
1959년생, 도쿄도 출신.198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국문과 졸업.국제회의 통역, CBS뉴스 조사원을 거쳐 1989년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 석사과정 수료(MCRP 취득). 게이오대학 재학 중 산업유산 개념을 만나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는 기업 성시(城下)를 연구했고, 재학 중 제1법규 출판인 '도시만들기 VIEW'에 '미국의 도시 만들기' 시리즈를 연재했다.졸업 후는 일본에 귀국해, 대학원 시절의 친구와 벤처를 창업. 기업경영을 하는 한편, 학창시절부터 계속하고 있던 「산업 유산」의 조사·연구 활동을 계속.영국, 독일, 북유럽,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를 실제로 방문해 광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 사례를 현지에서 조사.그 성과를 차례차례, 「관광 리조트 개발 전략 데이터 파일」(제일법규 출판), 「이코노미스트」(마이니치 신문사), 「마루코 폴로」(문예춘추), 「미타 평론」(게이오기쥬쿠 대학 출판회), 「학등」(마루젠 출판) 등에 기고했다.
1999년 1월, 지금까지의 조사연구 활동의 집대성으로서 「산업유산~「지역과 시민의 역사」로의 여행」(일본 경제신문사)을 상재 해, 일본내외의 주요한 산업유산을 수록하는 동시에, 영국, 미국, 호주 등의 산업유산 보존 선진국에 있어서의 보존 계획이나 산업유산을 활용한 관광·지역 진흥의 대처를 해설했다.
동 책 간행을 계기로 구미의 산업유산의 전문가나 국내의 산업유산· 동관련 시설의 소유자(개인, 기업, 지방 자치체)등과의 교류를 한층 더 깊게 해, 그들 관계자와의 의견교환이나 조언을 기본으로 「큐슈·야마구치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후에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수정·발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리스트에의 등록을 제창해, 그 실현을 목표로 하는 활동을 스타트시켰다.
야마모토 사쿠베 탄광 기록화를 유엔 교육 과학 문화기구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에 등록시켰다 (2011 년 5 월)
2.1. 아베 내각 시절
큐슈·야마구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8현.이들 유산군의 보존·계승을 민간의 입장에서 지원·추진할 목적으로 2013년에 일반 재단법인 산업 유산 국민 회의를 설립해, 전무이사로 취임.2015년 7월 2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아베 신조 내각(3차부터 4차 1차까지)에서 내각 관방 참여(산업유산의 등록 및 관광 진흥을 담당)를 맡았다.
2.2. 내각부 산업유산정보센터 소장 시절
예를 들어 북한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충성하고 주체사상을 공식적으로 옹호하는 일본 재일교포 단체인 조총련이 반일영화를 군함도에서 찍으며 여주인공이 벽에 낙서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남은 흔적을 두고 군함도에 한국어로 집에가고 싶다는 낙서나 살려달라는 낙서가 있었다고 한국에서 호도하고 여기에 추측으로 살을 덧붙혀서 "살벌한 일본인들의 감시속에서 조국을 향한 애타는 마음으로 몰래 감시를 피해 남긴 흔적일 것이다" 같은 주장을 했던 것이나, 혹은 가혹한 대우를 받은 한국인 노동자라고 설명하며 사진을 들어보인게 알고보니 일본인 노동자였다던지 하는 것을 두고 군함도 징용자 학대사건은 거짓선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근거로 증언 전체를 의심하거나 강제 노동자의 증언과 강제노동을 하지 않은 일반 주민의 증언 차이점을 근거로 강제노동자 증언이 거짓이라 홍보하고 있다. 3개국어로 홍보 하고 있으며 영상에서 증언자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국제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거짓된)위안부 같은 성가신 일이 나오지 않기 위해" 라고 발언하고 있다. 가장 최근 영상인 2021년 2월 기준 아베 총리까지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
3. 기타
아버지는 국토청 장관,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농림수산대신을 역임한 카토 무쓰키.현 내각관방장관으로 자유민주당 총무회장을 역임한 가토 가쓰노부는 매제(여동생 슈코의 남편).1989년 트랜스퍼시픽 에듀케이션 네트워크(주)를 함께 창업한 친구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다.남편과는 그 후 이혼했다.국외에 인맥·네트워크를 가진다.'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계획 작성 과정에는 앞서 나온 스미스, 잉글리시 헤리티지 전 총재 닐 콜린, 캐나다 ICOMOS 회장 디누 붐발, 호주 ICOMOS 전 회장 마이클 피어슨, 호주 ICOMOS 던컨 마셜, 호주 문화심의회 전 회장 헬렌 라드너, 호주 ICOMOS 전 회장 제인 해링턴, 호주 국제산업유산 보존위원회글로벌적 시점에 의한"보증"을 얻는 것에 연결시켰다.
국내 정관재계에도 인맥도 많다.일반 재단법인 산업 유산 국민 회의에는, 회장에 미츠비시상사 이사 상담역 코지마 요시히코, 대표이사에 전 대장 사무차관 야스다 히로시가 취임하고 있는 것 외에 이사, 평의원에는 관계자에 가세해 아버지·카토 6월의 옛 인맥도 이름을 붙여 카토를 지지하고 있다.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이마이 타카시(신일본제철 전 사장, 제9대 경제 단체 연합회 회장)도 그 중 하나로, 「6월 선생님으로부터 딸을 부탁받는다고 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고 있다[3].후지테레비젼 회장의 히에다 히사시, 와타나베 프로덕션 명예 회장 와타나베 미사, JR큐슈 회장의 이시하라 스스무, 미츠비시 토지 회장 키무라 케이지등 외, 항공 업계의 오오니시 켄, 오오하시 요지, 관계의 이와무라 타카시, 사토 사다카즈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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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자 그대로 구글 검색시 가토 쿄고 라고 잘못 나오는데 여러 언론사에서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 오류가 있다.
[2]
전
국토청 장관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농림수산성 장관이다.
[3]
중의원
후생노동대신
현 내각관방장관
[4]
https://www.cas.go.jp/jp/sangyousekaiisan/centre200331.html , https://www.cas.go.jp/jp/sangyousekaiisan/johocenter/pdf/setti.pdf
[5]
하야시 에이다의 기록에는 군함도 뿐만 아니라 여러 장소의 강제 노동자를 인터뷰한 것으로 보이며 강제 노동의 기록은 당시 생존했던 1910~1945년에 활동하던 광부들. 하지만 가토 야스코와 산업 유산정보센터의 인터뷰에는 강제노동을 했던 사람은 없으며 모두 당시 가족과 함께 이주한 학생, 일반 거주민, 학교를 통학한 탄광 오장(관리인)출신 조선인 2세, 전쟁 기간 탄광 밖에서 기계 조립등을 했던 일본인 1명등 증언자들중 단 한명도 1945년 이전 탄광내부에 일했던 경험이 없다. 탄광 경험이 있는 증언자들은 종전 이후 일본제국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일한 탄광 노동자이며 주로 1945년 이후 자신의 탄광 경험을 토대로 일본 제국 당시 20세기 초 탄광 강제 노동자의 증언들 거짓이라 증언한다. 혹은 가족과 이주한 조선인과 학교를 같이 다닌 경험으로 당시 조선인 강제 노동자와 차별이 없었을 것이라 단정짓다. 위안부의 증언에 시간이나 조금의 오류가 있는 경우 그 부분을 지적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내부의 주장이나 한국의 뉴라이트와 역사 갤러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마이너 갤러리를 비롯한 일본 외부의 일본 극우사관 추종 및 설파자들의 주장과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