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4:56:53

가연재


파일:2000내부.jpg
서울교통공사 2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파일:PG-1985-0021-005.jpg
서울교통공사 3000호대 초퍼제어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파일:sel-hr03.jpg
서울교통공사 5000호대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파일:1603koreaseoul.jpg
서울교통공사 6000호대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파일:7호선 2차분 가연재.jpg
서울 지하철 7호선 7000호대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파일:CIMG3767.jpg
서울교통공사 8000호대 전동차의 불연재 개조 이전 모습

1. 개요2. 내용

1. 개요

可燃材.

불연재의 반대어로, 불에 잘 타는 재료를 의미한다. 도시철도법 상 가연재의 사용 제한은 도시철도차량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 제 2절 화재 안전규칙에 의해 지정되어 있으며 가급적 불연재를 사용하되 피치 못할 이유로 불연재를 사용할 수 없을 경우 ISO, KS에 의거한 준불연재, 극난연재를 사용하도록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난연재 강제 사용 규정은 2003년 대구 중앙로역 참사 이후인 2004년경 법 개정으로 수정된 것이며, 이전까지는 불가피한 경우 가연재 소재의 사용을 허용했었다.

2. 내용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지하철의 거의 모든 전동차는 가연재 소재로 제작되어 운행했었다.[1] 사실 한국의 철도 기술 수준이 불연재를 제작하지 못할 만큼 뒤쳐진 것도 아니었고, 충분히 불연재 제작을 할 수 있었음에도 가연재로만 만든 건 단순한 비용절감 목적 때문이었으며 철도안전법의 기준 역시 '불연재로 제작하는 것이 원칙이나 불가피한 경우 가연재도 허용' 이었기 때문에 철도 회사들은 큰 눈치 보지 않고 불에 잘 타는 가연재 소재로 열차를 제작해서 운행했다. 200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수도권 전철 1호선에서는 1970년대에 제작된 초저항이 여전히 현역으로 다니던 시기였고, 지하철에 대한 문제 역시 이러한 가연재 소재에 대한 논쟁보다는 단순한 소음 문제 같은 것이 더 많이 언급되고 논의되던 때였다.

물론 서울도시철도공사를 비롯한 일부 지하철 객차의 경우 제작 초기부터 불연재 소재를 썼으며, 불연재 개조 자체에 대한 계획은 마련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국외로 수출하는 객차에 대해서는 현지 기준에 맞게 전부 불연재 소재로 객차를 만들어 팔았다.[2] 그 말은 즉슨, 규정이 느슨한 국내에서는 여전히 값이 싼 가연재 제품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기존 객차에 불연재 개조도 단순한 비용 문제를 핑계대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는 뜻이다.
파일:대구 지하철 객차 내부 소재.jpg
수도권 전철 5호선 객차의 가연재 시절
수도권 전철 5호선 객차의 가연재 시절 사진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나고 나서 KBS 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설명하는 가연재 소재의 객차에 사용된 재료들이다. 천장에는 섬유강화 플라스틱, 벽면에는 폴리 에틸렌폼, 바닥에는 염화비닐, 좌석에는 폴리 우레탄폼을 사용했다. 특히 좌석에 사용되는 폴리 우레탄폼의 경우 푹신푹신한 천 재질이어서 겨울에는 히터를 조금만 틀어도 열이 올라가는 재질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가연재 소재로 만들어진 객차는 염화성 물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면 고작 30초~1분도 안 되는 시간에 객차 1량을 다 태워먹을 수 있을만큼 발화점이 낮았고, 또한 유독가스를 심하게 발생시켜 승객들의 탈출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실제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먼저 불이 난 1079호 객차 1량이 전부 불타고, 유독가스로 인해 결국 중앙로역에 설치된 CCTV까지 먹통되는데는 겨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또한 당시만 해도 객차 내 비상설비나 탈출 방법, 수동문 개방 방법 등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철도 동호인이나 역무원, 철도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객차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나 소화기 위치 등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수동문 벨브 자체는 예전부터 존재했고 안내를 하긴 했으나, 정말 작은 글씨로 적어놔서 비상시가 아닌 평상시에도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승객들이 문을 수동으로 여는 방법을 몰라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객차 안에서 최후를 맞았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정부에서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의 좌석 및 객차를 불연재 소재로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이듬 해인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여에 걸쳐 전국적으로 불연재 개조가 이루어졌으며, 2006년부터는 일부 전동차를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의 지하철이 불연재 시트를 달고 운영했다. 원래 초창기인 2004년까지는 불연재 개조 작업이 매우 더딘 속도로 진행되어 전체 객차 중 불연재 개조 완료 비율이 20%에 불과했는데, 2005년 1월 서울 지하철 7호선 방화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이 난 해당 객차가 불연재 개조가 안 되어 큰 인명피해가 날 뻔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빠른 불연재 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2000년대 후반 즈음까지 넉넉하게 불연재 개조 일정을 잡으려던 철도회사들도 급히 계획을 수정, 불연재 개조에 속도를 붙혔고 결국 다음 해인 2006년까지 불연재 개조를 대부분 완료하게 된 것이다. 불연재 소재로 개조가 완료되면서, 기존의 행선기 역시 롤지에서 LED로 대부분 개조되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2006년부터 전국 대부분의 지하철 객차는 전부 불연재로 개조를 완료했지만, 서울 지하철 2호선 3호선의 일부 객차들은 내구연한이 다해 곧 폐차 예정이었음으로 퇴역할 때까지 기존 가연재 시트를 난연재 모켓시트로 교체한후 운행했다.[3] 가연재 소재 객차가 완전 퇴역한 건 2010년의 일이다. 2010년대부터는 가연재 소재로 제작된 지하철 객차는 모두 폐차 처리되었으며, 현재는 철도안전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가연재 소재의 객차를 제작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불연재 개조가 완료된 이후에 발생한 도곡역 열차 방화 사건의 경우 대구 지하철 참사와 유사하게 범인이 시너 몇 통을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질렀으나, 불연재 소재 때문에 유독가스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인명피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안전에 이렇게 신경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이전의 평과 다르게, 다시 사온 소는 놓치지 않는데 성공했다.
[1] 2004년부터 완전 불연재 열차를 제작했다. [2] 그 당시 해외에서는 대부분 선진~개도국 막론하고 거의 다 불연재를 권장했다. [3] 1980~1982년 산 저항제어 열차, 1982~1985년산 쵸퍼제어 열차.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