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센고쿠 시대 지쿠고 국(지금의
후쿠오카현 남부)의 무장. 야나가와 성주. 가마치 아키히사(蒲池鑑久)의 아들.
센고쿠 시대 지쿠고의 열다섯 유력 가문인 지쿠고 15성 중 하나이자 가장 강력한 가문인 하 가마치 가문의 총수로서, 분고·지쿠고 슈고 오토모 가문을 섬겼다. 이름인 아키모리도 아버지 아키히사와 마찬가지로 오토모 요시아키(大友義鑑)에게서 아키(鑑)를 받아서 지은 이름이다. 할아버지 가마치 하루히사(蒲池治久) 시절에 새로 지어서 옮긴 거성 야나가와 성을 본격적으로 개축해 현재
야나가와시의 기반을 마련했다.
의리가 깊은 무장으로 유명해, 1545년 히젠에서
쇼니씨 내부의 권력싸움에 밀려 달아나 온 류조지 이에카네(龍造寺家兼)와 그 증손
류조지 타카노부를 보호하고 1546년 다시 히젠으로 돌아갈 수 있게 호송해주었다. 1551년, 류조지 타카노부가 당숙이자 처남 류조지 아키카네(龍造寺鑑兼)를 옹립한 가신들에게 쫓겨나자 다시 보호해 주고 1553년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줬다. 이후 류조지 다카노부가
모리 모토나리와 손잡고 오토모 가문에 반기를 들자,
오토모 소린의 동생 오토모 지카사다를 대장으로 하는 류조지 가문의 거성 사가 성 포위에 참전했다.
1578년, 시마즈 가문이 휴가를 정복하고 휴가의 다이묘 이토 요시스케가 오토모 소린에게 구원을 청하자 소린이 이에 응해 휴가로 출병했는데, 아키모리도 3천 명을 거느리고 이 원정군에 참여했다. 그러나 적자
가마치 시게나미가 칭탈하고 2천 명을 빼돌려 본성으로 돌아갔고, 아키모리는 남은 1천 명을 거느리고 미미가와 전투에 참여해 셋째아들 가마치 무네야스(蒲池統安)[1]와 함께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