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기현 시인의 대표시 중 하나이다.2. 전문
자기 화분(花盆)에 금박 띠 두른 모습으로
이 빌딩 안으로 들어서던 순간
마치 천국(天國)에 드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애초 조직배양체로 생겨난, 내게
예정 된 생(生)이란 한낱 관상용 식물 광대였겠죠
아니, 제철이 아니어도
일경구화(一經九花)를 올려야 했기에
관음용 매춘부였다 할까요
결국 돌아갈 정처도 없이 여기서 난
종신유형수인 거죠
바깥은 무더위와 가뭄이 극심하다죠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시들어가는 몸,
이곳에 든 이래 비란 걸 맞아보지 못했군요
내게 목마름이란, 또 가뭄이란
죽음까지 무한 지속될 여로(旅路)인 거죠
우리 숲속에 누워 단비 맞던 옛날로
다시 돌아가 함께 눈 감아 볼 수 있을까요
그날이 언제 다시 올까, 제발 오게만
해 달라고, 하루하루
기도하던
……. 그러던 시절이 있었죠
그저 겉눈 뜨고서 하는 이 넋두리란
모든 걸 잊어보려는 심사일 뿐이죠, 그걸 알지만
갈수록 마음이 슬퍼지는 까닭은……, 왜일까요
천둥소리를 알아듣게 된 일,
일대 기적(奇蹟)이, 내 생에서도 있었어요
태풍이 연달아 휘몰아치던 어느 밤
느닷없이 울려온 그 소리가
내 절망의 넋두리를 쪼개버렸어요
난 화들짝 깨어나
그 소리의 향방을 헤아려 무릎을 꿇었지요
천 겹 어둠 속 길 끝자락으로
천둥의 뿌리가 뻗어 내리는 게 보였어요
참 오랜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그 날을 지나 바로 내게 꽃대가 다시 돋아올랐던거죠
작은 꽃송이 하나
그 향기에 취하였죠
아, 당신
천둥소리 안에 숨어 있는 이여
당신을 숨쉬며, 이제 이 숨을 놓으려 해요
난 지금도 그 기적 안에 있어요
이 간구(懇求)를 새겨줘요
당신을 사랑해요
웹진 『시인광장』 2019년 9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