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7 00:30:05

천황제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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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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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3. 천황제 파시즘이란?4. 논쟁
4.1. 일본 제국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천황제 파시즘이다4.2.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
5. 관련 정파, 조직6. 관련 이념7. 관련 인물8. 참고 문헌9. 관련 문서

1. 개요

천황제 파시즘(天皇制ファシズム / Emperor-system fascism)는 쇼와 연간,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 제국의 정치 체제에 관한 이론 및 논쟁이다.

일본의 정치학을 지배했던 "시민사회파"에서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명명하여 일본 특유의 파시즘 현상을 정의한 데에 반하여, 20세기 서구학계에선 일본이 파시즘 국가였다는 것에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다. 양자 모두 일본의 후진성에 의해 일반적인 파시즘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착안에서 시작하였으나, 시민사회파는 일본군부가 당시 후진적이었던 일본의 봉건적 천황제 사회에 전제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파시즘을 정착시키려고 했다고 해석한 반면 서구의 일본학에서는 파시즘에 대한 일련의 척도를 세워두고 여기에 일본의 사례를 맞추어 본 후 파시즘이 아니라고 규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파의 거장이었던 마루야마 마사오가 1996년 사망한 것을 기점으로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일본 학계 내에서 사어로 쇠락하고 그 자리는 "총력전체제론"이라든가 "국민국가론" 등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천황제 파시즘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는 국체론에 대한 연구로 전전에 규명이 시도되었던 국체의 개념이 어떻게 전후로 계승되었는가를 논하고 있으나, 그 방향성은 전전과 전후를 단절된 관계로 보고 전전을 천황제 파시즘으로, 전후를 민주주의로 규정했던 시민사회파적 전제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또한 독일사에 대해 이른바 "특수한 길" 논쟁이 촉발된 것과 같이 서구에서의 일본 파시즘에 대한 부정 또한 비슷한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파시즘의 특수성에 대한 의식이 허물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파시즘이 긍정되기 시작하였는데 일본 파시즘의 경우 기시 노부스케 등 경제관료들의 전체주의적 근대성 추구에서 이른바 테크노파시즘을 발견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긍정되지만 서구에서는 부정된다"던 전전 일본 체제의 파시즘성은 현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부정되고 서구에서는 긍정되는 조류가 발생하고 있다.

2. 명칭

당시 일본 제국 내지인(=일본 본토인) 90프로 이상이 야마토 민족이였고, 대만인과 조선인은 일본국적이기는 하였으나 일본인과 동등한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명백한 구분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조선을 식민지로서 통치하기 위한 학술적 당위성을 확보하고자 이른바 "혼합민족론" 즉 야마토 민족은 순수혈통이 아니라 북방인 (즉 조선인)과 남방인 (즉 대만인)의 혼혈로 탄생한 민족이라는 인종론이 국책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연장선으로서 내선일체가 추구되었다. 이렇게 제국주의적 침략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자 탄생한 혼합민족론에 저항하고자 반대로 야마토 민족이 다른 아시아 민족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그 특수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또 나치적 인종과학이 보급되면서 근대화적, 과학화적 입장에서 야마토 민족의 우수성을 혈통적 순수성으로 입증하려는 시도가 나오기도 한다.

전시기 일본은 총력전체제을 구축하여 식민지에서 물자와 인력을 빨아들이면서 내선일체의 논리를 사용하여 창씨개명 등 강제동화 정책을 수립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 내선일체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한일혼혈 문제에 대응해 야마토 민족의 혼혈성을 보존하려는 대책을 입안하는 등, 혼합민족론과 순혈민족론 사이에서 총력전 수행의 필요에 따라 그 때 그 때 입장과 말이 바뀌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나치적 인종주의라든가 파시즘적 대중동원이 불가능한 후진적 일본 사회에서 일본 전시체제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체 즉 봉건적 천황제였다는 것이 천황제 파시즘론이며 그리하여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통칭되게 되었다.

3. 천황제 파시즘이란?

일본 파시즘을 말할 때, 일본 사회 전반에서 군대의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앤터니 제임스 조스(Anthony James Joes)

최초로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분석한 이들은 1930년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선전원들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1935년 8월 2일 제7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발표한 보고서에 응답하여 세계 각국의 파시즘 운동 및 이념의 전파 상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소련의 일본학자 오스카르 타르하노프[1]와 예브게니 욜크[2]는 일본 파시즘을 "일본의 사회구조가 일본군의 봉건 제국주의와 잘 융화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 파시즘론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이 뿌리내리게 된 중요 요인은 다음과 같다.
  • 1. 1930~1940년대 일본 사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군대의 파급력.
  • 2. 미숙한 일본 민주의회구조의 취약성.
  • 3. 다른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확연한 대조를 보이는 일본 근대화의 속도와 성공.
  • 4. 일본의 이념적 영향력.

마루야마 마사오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은 기타 잇키로부터 비롯되었으며[3] 왕도, 유교사상, 니치렌의 종교철학, 무사도 정신과 서양 파시즘을 결합하여 군국주의, 근대화, 범아시아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파시즘은 1919~1931년에 걸친 시민들 사이의 우익운동이 첫 단계이며 만주사변이 군대가 파시즘의 원동력이 되게 한 두번째 단계, 중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 시기가 일본 파시즘을 단순한 운동에서 국가구조로 전환시킨 절정기로 보았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또한 일본 파시즘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1. 가족 제도: 국가 체계는 천황을 종가로 하는 가족(家, いえ)의 연장선.
  • 2. 토지 균분론: 도시 산업 생산력 확장을 막기 위해 농촌 자치권 실시.
  • 3. 범아시아주의: 유럽 식민지로부터 아시아인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상론.

4. 논쟁

일본 학파와 영미 학파 간의 의견 차이가 있지만 지역 간의 차이라기 보단 성향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양 학계에서도 진보 성향 학자들은 일본 제국을 파시즘 국가로 보는 경우가 많으며, 동양에서도 보수 성향 학자들은 일본을 파시즘 국가가 아닌 단순 제국주의 국가로 보기도 한다.[4]

4.1. 일본 제국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천황제 파시즘이다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라고 보는 쪽은 일본 학계와 더불어 허버트 빅스, 베링턴 무어 같은 서양 학자들이다. 일본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야마구치 야스시는 파시즘 체제를 위로부터의 파시즘과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으로 구분했다. 통상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지만 일본에서는 파시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기존 보수주의 권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동맹이론>의 결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였다는 것이다.

천황제 파시즘 부정론에 대해서 일본 학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의 권력 구조가 군부, 의회, 혁신 관료로 분산되었지만, 거국일치 내각이 1932년에 이미 형성되었으나 천황은 실질적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대중들에게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또한 쇼와연구회의 핵심 멤버인 류 신타로, 미키 기요시, 료야마 마사미치 등은 정책 고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니시다 미쓰기, 다치바나 고자부로 등의 폭력을 옹호하는 민간 우익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학계 역시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2.26 사건을 계기로 소멸[5]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5.15 사건 진주만 공습 등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응 등을 예시로 들어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1935~1936년 국체명징운동으로 일본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일소되었을 때 대중적 운동단체 7곳과 언론이 개입한 것 역시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는 증거로 파악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 파시즘은 파시즘의 본질을 충족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제국의 자기 우월적이고 스스로를 도덕적이라 믿는, 나치의 레벤스라움과 흡사한 '광역권'을 바탕으로 한 팽창적 민족주의는 구조적으론 몰라도 사상적으론 파시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론 재니스 미무라, 존 다우어 등이 있다. 특히 브라이어 마이어스는 존 다우어의 논의를 확장하여 북한 체제를 일본 제국의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원제: The Cleanest Race)를 출판하였다.

4.2.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

많은 서구 학자들은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6] 이들은 파시즘과 같은 20세기형 전체주의 체제의 성립은 단순히 소수의 악당들이 다수를 억압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과정에서 동원되는 민주정치가 어느 정도 발달한 국가에서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구 학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본다. 그 당시 일본 제국의 정치는 지배자층이 계급제도를 민주주의로 이름만 바꿨다고 해야 될 정도로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서구 학계는 세계 대공황 만주사변으로 일본의 민주주의는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기타 잇키를 비롯한 일부 서구식 파시스트들이 등장했으나 쇼와 덴노 자기 자신이 2.26 사건을 진압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소멸되었으며 이후 권력을 잡은 고노에 후미마로 등은 대중 정치가가 아니라 정당 정치를 반대하고 귀족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보수 권위주의자였다고 보고 있다. 설령 고노에가 파시스트라 해도 1년 안 가 사임했으니 무의미하다. 또한 이후 권력을 잡은 도조 히데키 같은 일본의 권력자들은 동방회[7] 지도자 나카노 세이고 등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파시즘 운동을 탄압했으며 이들의 싱크탱크를 맡았던 쇼와연구회에서 내놓은 조언들 중에서 사회 연대주의, 반자본주의 요소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버트 팩스턴은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라 파시즘의 도구를 일부 취사선택한 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제국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타도된 결과로 파시즘 국가가 설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일본 제국은 당시 일본 제국 지도층의 생각과는 별개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볼셰비즘 혁명의 위협에 결정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는 공식 정당이나 자생적 대중운동이 끝내 궤도권에 들어서지 못했으므로,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대중운동이 적당히 가미된 군부 독재 및 단순  제국주의 국가라고 결론 내린다.

4.3. 일본 제국은 천황제 파시즘이 아니고 테크노파시즘이다

제니스 미무라, 아론 무어 등 서양 과학기술사학계에서 제기한 담론.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혁신관료 집단에 주목해서 일본 제국은 과학기술적 합리성을 이념화하고 소련식 계획경제로 군수생산에 최적화된 사회재조직화를 추구한 "테크노파시즘" 사회였으며, 이런 측면이 일본 혁신관료 뿐 아니라 독일의 보수혁명파, 이탈리아 미래파에게서도 나타난다며 과학기술의 이념화가 파시즘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기존 서양 사학계에서 나치로 대표되는 "서양 파시즘"의 양태를 기준으로 삼아 일본 제국은 파시즘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반하여, "일본 파시즘"의 양태야말로 파시즘의 일반적 현상이었다고 파시즘의 정의 근간 자체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연구되는 것이 혁신관료들의 테스트베드 국가였던 만주국.[8]

문제는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기시 노부스케를 선두로 한 혁신관료들이 만주국을 운영하면서 벤치마크했던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야말로 파시즘의 프로토타입이고 파시즘 국가들은 스탈린을 벤치마킹한 것이 되어 버린다. 전통적으로 "일본 파시스트"라고 불린 기타, 오카와, 나카노 같은 사상가들의 위치가 붕 떠버린다는 것도 약점.

5. 관련 정파, 조직

극우 파시즘뿐 아니라 사회대중당 등 넓은 의미의 파시즘 세력들도 포함된다.
전후에 전범들 중 현실 정치에 복귀한 이들 다수는 파시즘을 버렸으나[9] 이후에도 파시즘 운동을 계승한 정치 세력들도 소수 있긴 있었다.

6. 관련 이념

6.1. 주체사상이 받은 천황제 파시즘의 영향

분단 과정의 북한 사정에 관해 좀 더 부연하겠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재인식》에 실린 키무라 미츠히코(大村光彦) 교수의 <파시즘에서 공산주의로ㅡ북한 집산주의 경제정책의 연속성과 발전>과 신형기 교수의 <신인간ㅡ해방 직후 북한 문학이 그려낸 동원의 형상>이 정말 좋은 논문들입니다.

키무라 교수의 논문은 북한의 경제체제가 일제의 전시경제체제를 그대로 계승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하였습니다만, 일제는 전쟁수행을 위해 시장경제를 정지시키고 공출과 배급으로 상징되는 전시경제체제를 구축합니다. 이 통제경제는 해방 후 남한에서는 곧바로 폐지되어 시장경제가 부활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름만 바꾼채 더 강화된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공출(供出)이라는 강제수매제는 성출(誠出)로 이름이 바뀝니다만, 내용을 보면 값도 치르지 않고 거두어 가는 경우가 많고 쌀 이외의 다른 작물에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일제가 시행한 마을단위의 생산책 임제는 증산돌격대로 이름이 바뀌지요. 공업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해방 후 북한의 이 같은 실상을 명확히 하면서 키무라 교수는 과연 북한 민중에게 ‘해방’이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너무 당돌한 질문이라 처음에는 좀 어리벙벙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의 질문이 촌철살인(寸鐵殺人)입니다. 그렇지요. 민중의 일상적 경제생활에 대놓고 물어봅시다. 공출이나 성출이나 그게 그것이지요.

다음은 신형기 교수의 논문입니다. 사회주의적 동원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일반 민중에게 ‘신인간’이란 이상적인 인간상이 제시되었습니다. 지주, 친일파, 이기주의, 개인주의, 이런 것들은 낡은 ‘구인간’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철저히 일반 민중으로부터 구획되고 배제되었습니다. 그리고선 사회주의혁명이 요구하는 고된 노동을 감당할 만한 정신적 긴장의 새로운 인간상이 제시되었습니다. ‘신인간’의 상징은 항일 무장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끈 영웅, 개선장군 김일성이었습니다. 결국 일제 천황을 대신한 것은 다름 아닌 김일성이었습니다. 이 논문을 읽고 나서 김일성종합대학이 세워지는 것을 확인하니 1946년 7월이군요. 대략 그 즈음부터 대량의 ‘구인간’들이 남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전에 이미 100만의 행렬이었습니다. 북한 주민의 1/10이나 되는 큰 인구였습니다. 그보다 더 분단의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웅변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달리 어디에 있겠습니까.
- 【 대한민국 이야기 】 이영훈 ([11] 분단의 원인과 책임 [11]-5 천황제를 계승한 수령체제) 출처 “북한은 일제 전시경제체제 그대로 계승했다”

과거 일본 제국 한반도를 35년동안 지배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해방이 되자 친일파 숙청과 일제 잔재 청산을 철저히 했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이와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 가계를 항일 투쟁의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 자료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북한의 주체사상(전체주의와 수령제)은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천황제 파시즘과 매우 유사한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전문가들의 증언과 각종 연구 자료들로도 명확히 입증되는 부분이다.

실제로 북한의 권력층은 광복 직후 일본 천황제를 깊이있게 연구했다고 한다. 북한은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건국 전부터 천황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며, 김일성의 개인 신격화 일본 천황제와 유사해 부자 세습이 가능하도록 북한의 국가체제도 만들어 김씨 일가의 세습이 유지된다는 설명이 존재할 정도이다. 북한과 일본의 공통점 알고 보니, 천황제와 수령제 실제로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최고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주민들에게 김부자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의 주체사상은 오직 천황의 권위 아래 모든 국민이 복종해야 했던 일본의 천황숭배와 제국주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처럼 북한과 일제의 유사성으로는 먼저 '천황(天皇)'과 '수령(首領)'이라는 신격화된 인간의 존재라는 매우 큰 공통점이 있다. 이 두 존재는 국가신토(國家神道)와 주체사상이라는 종교적 기반 위에 일사불란한 명령·동원 체제라는 현실정치의 물적 기반이 강고히 결합된 전체주의 체제의 수장이다. 따라서 정교(政敎) 분리가 이루어지던 봉건시대 군주의 지위와 권능을 훨씬 능가하는 절대적 존재다. 국가를 이끌기 위해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인민은 그들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바쳐야 한다. 유사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代)를 이어 충성하는 세습제도 역시 동일하다. 군을 핵심기반으로 한 통치 스타일도 일치한다. 천황은 육·해군의 대원수였다. 김정일은 국방위원장이자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이다. 천황제에 군국주의가 있었다면, 수령제에는 선군(先軍)정치가 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도 일치한다. 공화국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체제 모두 근대시민과 국민이 없다. 수령님께 충성스러운 조선인민은 천황폐하께 충성스러운 황국신민과 차이가 없다. [아침논단] 북한 수령제는 일본 천황제의 모방품이다

실제로도 오늘의 북은 1945년 패전을 앞둔 일본의 처지, 정신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다. 일제의 천황제와 군국주의가 북의 수령제와 주체사상을 낳았다는 의견이 보수 신문에서도 공공연히 나올 정도이다. [동아광장/김충식 칼럼]천황敎徒와 수령信徒 황장엽도 북한의 수령제가 일제의 천황제를 상당 부분 참고해서 태어났다라고 예전에 발언했던것을 생각해 보면 북한의 주체사상 같은 시스템들이 일제의 천황제 같은 시스템들을 상당 부분 참고한게 맞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비슷한 숭배 방식과 일화들로도 확인이 가능한데 과거 일제시절 일본에서는 학교 교실마다 천황의 어진(御眞)을 걸어두고 조회시간마다 강제로 묵념을 하게 하였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고이 모셔두는 것이 인민의 의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교실에까지 걸어놓고 묵념을 한다.[11]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천황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을 걸어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게 아니라 그것을 숭배하는 것 까지도 북한의 주체사상은 일제의 천황제를 똑같이 따라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제국 시절 일본에서는 덴노의 어진영(사진)이 덴노 그 자체인 것처럼 숭배시되었다. 심지어는 1940년 히로히토 덴노 시절에는 학교에 불이 나자 교장이 학생들이 아닌 어진영을 구할려고 화염 속으로 그대로 뛰어 들어갔다가 순직(?)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순직한 교장의 행동을 일본정신의 귀감(?)으로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한다. 심지어 당시 사망한 교장에게는 "의로운 행동으로 순직한 사람"이라고 표창하는 등 그 행위를 미화함으로써 천황의 신격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룡천역 폭발사고 당시, 불바다가 된 학교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구하다 죽은 교사가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생을 구하다 죽은 게 아니라 덴노의 어진영을 구하려다 죽은 일제시절 일본인 교장처럼 똑같이 사진을 구하려다 죽은 것이다. 즉, 일제 시절에 있었던 일이 북한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백두산 3대 장군의 초상화와 일본 천황의 어진영 김정일 부자 사격 표적지 논란

사진은 아니지만 구호나무라는, 김일성 찬양문을 새겨놓은 나무를 지킨답시고 조선인민군 해군 병력을 동원했다가 해병 17명이 불타 죽은적도 있었다. 김일성 사진도, 친필도 아닌 나무에 새긴 김일성 찬양문[12] 때문에 사람이 죽은 것이다. 게다가 일본제국에서는 매일 덴노가 있는 곳을 향하여 절을 하는 궁성요배란 것을 강요했는데, 이 역시 북한에서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나 동상에 절을 하는 형태로 똑같이 이어져 오고 있다.

북한 미사일 부대에서 10여년간 복무한 바 있는 탈북자 김춘애 씨는 북한의 군대에는 상명하달의 명령을 듣는 것 이외에는 의사전달 방식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는 완전한 위계질서 하에 천황의 권위를 철처히 떠받들었던 일본 제국주의의 군대와 흡사한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제국의 신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을 키우고 헌병을 곳곳에 배치하는가 하면, 심지어 특별고등경찰, 약칭 특고라는 비밀경찰집단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특고는 ‘불순분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체포하고 고문을 일삼았다.

북한 역시 사회안전부가 인민보안성으로 승격하였고 일종의 경찰에 해당하는 안전원과 더불어 경무원[13]들을 배치하여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경무원들에게는 살인 면허가 주어져 항상 따발총을 들고 다닌다. 이 정도면 악명높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경찰에 맞먹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수준이다. 또 모두 알다시피 국가안전보위부라는 KGB 뺨치는 조직을 만들어 반동분자를 수용소나 교화소에 처넣는다.

1945년 9월까지 일본에서는 황실에 대한 사소한 비판을 하는 자에게 조차 법으로 징역형을 내렸다.[14] 지금까지도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는 자들을 요덕 같은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해오고 있다.

북한군의 군가에도 일본군의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발견된다. 일본 군가 ‘천황을 위하여’를 ‘장군님을 위하여’로 가사만 조금 바꾼 북한 군대가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 대동아 공영을 외치면서 아시아인들의 주권을 짓밟았던 일본군의 군가를 인민을 위한다는 북한군이 그대로 가사만 바꿔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전속 일본인 요리사였던 ' 후지모토 겐지'의 저서인 ‘김정일의 요리사'에서도 김정일이 주도한 술자리에서 김정일과 그 측근들이 일본 군가를 자주 불러 놀라기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선율에 다른 가사를 붙이는 작법은 '콘트라팍툼'이라 해서 서양음악의 오랜 전통이고, 서양음악을 수입한 근대 한국에서도 콘트라팍툼을 자주 활용했기에 일본 군가 선율에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은 단순히 제국주의 일본의 흉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심지어 한국 독립을 위해 창설된 독립군들도 일본 군가 선율을 가져다 쓰는 일이 많았다. 이 당시에는 문화도 약탈할 수 있는 물건처럼 여겨져서 일본 군가 활용에 더 거리낌이 없었기도 한데, 문화 소프트파워로 끼치는 영향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일본군 군가를 쓴다는 것은 곧 일본 문화에 굴복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당시에는 없던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이에대해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의 김일평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무리는 모두 숙청하고 주민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북한 사회의 모습은 결국 북한이 청산했다고 주장하는 일제의 잔재가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의 근원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정보원 해외·북한 담당 1차장과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라종일 전 한양대 국제학부 석좌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김정일 본인 스스로도 죽기전에 가장 믿을 만한 측근 열 명에게 “국가 운영은 오늘 여기에 온 당신들이 맡아라.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나라를 운영할 방안을 생각해 보라”며 그 “함께 생각해 보라”며 말한 권력 방식이 일본의 천황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김 위원장이 마치 일본의 천황제와 유사한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라 교수에게 “그게 될 말인가, 그런 일이 되겠나”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증언마저 존재할 정도이다. [단독] “김정일, 처음엔 3대 세습 생각 안해 … 천황제 방식 고려”

7. 관련 인물

8. 참고 문헌

  •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 기타 잇키 평전, 마쓰모토 켄이치, 교양인.
  • 파시즘, 케빈 패스모어, 교유서가.
  • 파시즘, 장문석, 책세상.
  • 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도서출판 선인.
  •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B.R 마이어스, 시그마북스.
  • 비교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파시즘과 권위주의, 채오병, 경제와사회 111집, 비판사회학회.
  •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4집 3호,

9. 관련 문서



[1] Оскар Сергеевич Тарханов(1901-1938). 본명은 세르게이 페트로비치 라주모프(Сергей Петрович Разумов). 대숙청 당시 처형됨. [2] Евгений Сигизмундович Иолк(1900-1937). 타르하노프와 마찬가지로 대숙청 당시 처형됨. [3] 마츠모토 켄이치와 같이 기타 사상의 인민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나, 이런 견해는 일본 학계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소수설에 머물렀다. [4]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 자체를 본다면, 일본 제국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W.G. 비즐리 등이 지적한 사실이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유럽 제국주의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 것이 명백하다. [5] 그러나 4년 뒤 고노에 후미마로가 주도하는 신체제운동의 주도로 대정익찬회가 설립되면서 일본이 잠시 파시즘 국가였던 적은 있었지만 이마저도 1년만에 고노에가 사임하고 통제파 도조 히데키가 집권하면서 일본 파시즘은 실질적으로 끝장났다. [6] 다만 위에서 언급하듯, 서구 학자들 중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 국가였다고 보는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7] 일본에 있었던 나치즘 단체이다. [8] 또한 1930년대 만주국과 2차대전 패전 이후 경제재건을 주도한 혁신관료들의 경제개발 노선을 그대로 베껴왔던 196~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도 파시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 [9] 기시 노부스케 등이 대표적이다. [10] 사실상 한민족 버전의 천황제 파시즘에 가깝다. [11] 관공서에 국가원수의 사진을 게시하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대한민국도 1998년 조례 제정 이전까지는 관공서에 대통령 사진을 게시했었다. 그러나 교실에까지 걸어놓고 심지어 묵념하는 일은 없었다. [12] 구호나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나마도 조작된 것이 절대다수.(다만 1961년 백두산 청봉지역에서 발견된 구호나무 19그루는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13] 군사경찰(옛 이름은 헌병)에 해당한다. [14] 지금도 일본 극우파의 테러 위협 등 천황에 대한 비판을 하면 곤란해지긴 하지만, 법으로 처벌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