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6 10:46:23

왕타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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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王墮
(? ~ 356)

전진의 인물. 자는 안생(安生). 옹주(雍州) 경조군(京兆郡) 패성현(霸城縣) 출신.

2. 생애

박학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천문에 밝아 점성술로 미래를 종종 예측하고는 하였다. 후조에 복속된 저족 수령 포홍이 양독(梁犢)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러 갈 때, 포홍의 사마(司馬)에 임명된 왕타는 그를 만나서 말하길,
"참언에 따르면 부씨(苻氏)가 왕이 될 것이라 하였는데, 공(公)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라 하였다. 남몰래 야망을 품고 있던 포홍 역시 매우 그러하다 여겨 왕타를 신임하였고 훗날 재상으로 삼았다. 왕타는 부홍을 섬기면서 나라를 위해 힘쓰는 것으로 명성을 떨쳤다.

황시 원년(351년) 정월, 독살당한 부홍의 유지를 이어받은 부건이 천왕(天王), 대선우에 즉위하면서 전진 정권이 세워졌다. 천왕 부건은 왕타를 상서우복야에 임명하고 항상
"뭇 관리들이 왕 영군(令君: 상서령에 대한 경칭)과 같다면 천하의 음양이 어찌 조화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 칭찬하며 중용하였다.

황시 5년(355년) 4월, 사공(司空)으로 승진하였다.

수광 원년(355년) 6월, 경명제 부건이 왕타 등 여러 대신들을 불러 태자 부생을 잘 보좌할 것을 부탁하고 붕어하였다. 하지만 경명제의 뒤를 이은 황제 부생은 간신배인 동영, 조소(趙韶), 강국(強國) 등을 중용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그들의 말에 휘둘려 조정의 대신들을 마구잡이로 잡아죽였다. 본래 사람됨이 강직하고 준엄한 왕타는 동영 등의 간신배 무리를 원수 보듯이 미워하여 조회 때마다 그들과 더불어 일을 논하지 않았다. 이에 어떤 이가 왕타에게 경고하며 말했다.
"동 상서는 고귀함으로 이 시대에 견줄만한 이가 없으니, 공께서는 의당 조금이나마 뜻을 굽히십시오.
왕타가 답했다.
"동룡(董龍: 동영의 아명)은 닭이나 개와 같은 자이거늘, 어찌 나라의 사대부되는 이로서 그와 말을 섞을 수 있단 말인가!"
이후 왕타의 말을 전해들은 동영은 이를 수치스럽고 한스럽게 여겼다.

수광 2년(356년) 정월, 마침 하늘에 변괴가 일어나 나라 안팎으로 흉흉해지니, 동영과 강국이 황제 부생을 알현해 진언하였다.
"오늘날 하늘이 꾸짖은 것은 심히 중대한 사항이므로 마땅히 귀한 신하를 죽임으로써 달래야만 합니다."
이에 부생이 답했다.
"귀한 신하라면 오직 대사마와 사공 뿐이오."
동영과 강국이 다시 말했다.
"대사마께서는 국가의 고귀한 외척이니 형을 내리는 것은 불가합니다."
결국 황제 부생은 왕타를 주살하기 위해 체포하였다. 왕타가 처형되기 직전, 동영은 직접 감옥을 찾아가 왕타를 조롱하며 말했다.
"지금 그대가 감히 이 동룡을 다시 닭이나 개에 비교할 수 있겠느냐?"
이에 왕타 또한 눈을 부릅 뜨고 동영을 향해 욕설을 퍼붓다가 이내 사형장으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이때 왕타의 외조카인 낙주(洛州)자사 두울(杜鬱)도 조소의 미움을 사 동진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황제 부생에게 주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