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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영화)

계엄령 (1972)
État de siège (프랑스어)
Stage of Siege (영어)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tate_of_Siege.jpg
장르 정치 스릴러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각본 프랑코 솔리나스(Franco Solinas)[1]
코스타 가브라스
제작 자끄 페렝
출연 이브 몽땅
음악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개봉일 파일:독일 국기.svg 1972년 12월 30일
파일:프랑스 국기.svg 1973년 2월 8일
파일:미국 국기.svg 1973년 4월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월 5월 15일
상영 시간 121분

1. 개요2. 줄거리3. 한국 개봉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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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이브 몽땅 주연의 1972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합작 영화이다. 영화 < Z(1969)>와 <생사의 고백(L'aveu, 1970)>에 이어서 코스타 가브라스와 이브 몽땅이 세 번째로 함께 만든 정치 영화다. 남미의 극좌 단체 활동과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고문 실태 및 그 배후에 개입된 미국 정부의 책임에 대해 다룬다.

1970년 우루과이의 극좌 단체인 투파마로스(Tupamaros)에 의해 미국인 댄 미트리오네(Dan Mitrione)가 납치, 살해된 사건을 소재로 했다. 댄 미트리오네는 미국 정부 산하의 국제개발처(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AID) 직원으로 우루과이에 파견되어 치안 자문역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미트리오네가 우루과이 경찰에게 고문 기술을 가르쳤다는 의혹이 있다. 우루과이를 배경으로 했지만 브라질 군사 정권의 고문 실태 역시 비추어진다.

흥행성적은 프랑스에서 관람객 100만 명을 조금 넘기면서 1973년 흥행순위 35위를 차지했다( 출처). 1972년 루이 들뤼크 상(Prix Louis-Delluc)을 수상했다. 유럽과 영미권에서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초기작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래 언급된대로 한동안 심의 때문에 수입이 막혔다가 문민정부 시절인 1993년에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면서 상당히 유명해졌다.

2. 줄거리

줄거리는 우루과이의 미국인인 마이클 산토레( 이브 몽땅 분)이 총에 피격되어 사망했는데 그걸 거꾸로 되짚어가는 플래시백 형식의 영화다. 극중의 우루과이는 군사 독재 시절로 교통 안전국에 파견된 미국의 일개 공무원인 마이클 산토레의 장례식에 고위급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많이 온다. 산토레는 가면을 쓴 투파마로스라는 극좌 혁명 세력[2]에게 납치되어서 증거를 제시받아서 심문받는데 사실 마이클 산토레는 미국 CIA 소속의 고문기술자로 우루과이 경찰들에게 반체제 인사, 좌익세력을 상대로 한 고문, 암살 기술을 교육중이었다. 즉 당시 중남미 극우군사독재 정권의 더러운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3][4]참고로 이 영화에 훈련 장면 일부도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냥 시위대 한가운데에 폭탄을 설치하여 그냥 폭사시킨다. 또한 전단지를 나눠주며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을 저격수가 사살하는 장면, 그냥 연행해서 총살하고 버리는 장면 등이 나온다.[5] 한국의 어떤 독재정권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6]

납치된 마이클 산토레는 고문 같은 것은 받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상태에서 심문을 당하는데 "소련이나 중국도 고문하는데, 왜 이러느냐", 반면 극좌 혁명세력은 "알 게 뭐람" 이런 식이다.

한편 우루과이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계엄령을 펼쳐서 극좌 혁명세력을 사살하고 수사를 하며 미국은 이번 사건에서 마이클 산토레가 처형될 경우 그것을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몰락의 위기를 겪는 극우 군사정권에 정당성을 준다는 점에서(그러니까 좌익세력은 테러범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알림으로서[7]) 좋은 일이고, 처형 안 되고 풀려날 경우 조직의 나약함을 증명하는 꼴[8]이니 사실상 방조를 한다. 결국 마이클 산토레는 극좌 혁명 세력의 간부들의 투표에 의해 사살당한 채 버려진다. 영화 마지막은 마이클 산토레의 후임자인 미국인(역시 실제로는 CIA)이 가족들과 함께 오고 극좌혁명 세력은 그걸 지켜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3. 한국 개봉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 시기인 1989년에 수입사인 팀포커스가 국내 최초로 수입하려 했다. 같은 해에 코스타 가브라스의 또다른 금지영화였던 < Z(1969)>는 개봉이 허가되었지만, 본작은 극좌 게릴라가 인질을 잡고 정부와 대치하는 내용, 그리고 경찰의 고문 장면들이 "국내에서 공개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수입심의에서 막혔다( 한겨레 기사). 암만 노태우 정부가 5공과 차별화를 시도했다고는 하지만, 집권당은 민정당 그대로라 5공때 핵심인사 상당수가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 공윤에서도 눈치를 본것이다. 이 시기는 1988 서울 올림픽의 분위기를 타고 그동안 금지되었던 외국영화들이 앞다투어 수입되던 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수입이 불허되면서 오히려 영화가 더 유명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불과 4년 뒤인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수입이 허가되어 개봉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보여주려던 문민정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있다.

1993년에 한국에서 상영된 버전은 상당 분량이 삭제되었다. 이것은 이후 나온 비디오판에서도 동일하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인 극장식 강의실에서 알몸으로 묶인 사람을 상대로 전기고문 시연을 하는 장면에서, 성기에 전극을 가져다대는 컷이 삭제되었다. 그 외에 투파마로스가 납치를 위해 시민들의 차량을 훔치거나 빼앗는 장면들, 그리고 필립 마이클 산토레가 납치된 후, 납치 과정에서 입은 총상을 치료하기 위해 검문을 피해 몰래 병원에서 엑스선을 찍는 대목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 장면이 삭제되었다.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 해에 소설 <계엄령>(코스타 가브라스 지음, 이만재 옮김, 영웅, 1993)>도 출간되었다. 여기서는 대강당에서 남녀를 모두 벗겨서 실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세원 긴급조치 19호가 이 영화를 저급하게 베낀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전혀 내용이 다르다.

4. 기타

이 영화는 상당부분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본문에 나오는 투파마로스도 1970년대 초반 우루과이에 있었던 혁명조직이고 영화의 배경이 된 납치사건도 실제 1970년 7월 31일에 있었던 사건에 근거를 두었다. 이름만 가명으로 처리하여 바꿨을 뿐, 처음 납치된 3명, 추가로 납치된 1명, 그들의 소속, 이후 신병 모두 똑같다. 또한 극중에 언급되는 1964년 브라질 쿠데타 #나 1965년 미국 해병대의 도미니카 공화국 침공 ##도 사실이다. 단 영화에서는 도미니카 공화국 대신 수도인 산토도밍고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영화 촬영은 대부분 칠레에서 했다. 영화에서 등장한 우루과이, 브라질 등은 1972년 당시 영화 내용처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 독재정권이 집권중이니 이런 영화를 촬영할 수 없었다. 반면에 칠레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좌파 연립정부 시절이라 촬영이 가능했다.[9]

군사정권과 미국의 밀착 관계를 꽤 극명하고 건조하게 보여주는데 1~2분 정도 나오는 고문 강습소 장면이 대단히 충격적하다. 브라질 경찰청[10] 대강당에서 말 그대로 성기 노출까지 하면서 알몸의 정치범들을 상대로 전기 고문 실습을 수십명의 교육생 앞에서 시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기 노출을 정황상으로만 알 수 있을 뿐 실제로 볼 수는 없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나온다.[11] 성기 주위에 전기고문을 하는 장면까지 꽤 클로즈업 되어서 나온다. 이 장면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이 시절 남미에서 이러한 고문실습 도중 대상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웬만한 매체에서의 전기고문은 고증에 안 맞고 여기처럼 옷을 완전히 벗기고 전기 고문 시연을 하는 게 정확하다.

대배우 이브 몽땅은 진보주의자라서 이런 영화에도 기꺼이 개런티없이 출연했다. 사실 이브 몽땅이 극좌파들에게서 배신자라고 욕 먹은 것은 소련의 체코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서였다[12]. 물론 1968년 프라하의 봄때나 1979년 아프간 전쟁때에는 신좌파는 소련을 공공연하게 욕하기는 했으니 그냥 프랑스 . 이브 몽땅 본인은 회고록에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좌파라고 공언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일본에서도 <계엄령> 이라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감독은 요시다 기주. 일본영화 계엄령은 1936년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 미수 사건인 2.26 사건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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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제리 전투(1966)의 각본을 맡았다. [2] 실제로 1970년대에 우루과이에 있었던 혁명조직이다. 참고. 영화속 심문하는 장면에서 투파마로스 깃발이 노출되는데 실제 당시 투파마로스의 깃발이다. [3] 비슷한 예로 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 팔레비 왕조 때 고생한 시아마크와 모흐센은 자기들을 고문한 사바크(이란비밀경찰) 요원들이 CIA에서 훈련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CIA가 냉전시대에 전세계의 친미독재정권에 납치, 고문, 암살, 부정선거, 여론조작 등의 더러운 기술을 전수한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4] 이근안이나 정형근은 산토레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이다. 적어도 그 자들은 개인을 고문하여 괴롭혔지 단순히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폭탄으로 그냥 죽여버리지는 않았으니까. [5] 칠레 피노체트 정권도 비슷한 짓을 했고 이란 호메이니가 집권한 후에도 호메이니의 지지자들이 세속주의자들의 시위 한복판에 뛰어들어 칼로 닥치는대로 베어넘겼다. [6] 사실 한국의 경우 체제경쟁과 미국의 눈치로 인해 야당이 일단 존재는 해서 어느정도 득표율이 나오기는 했고, 암만 군사정권이라고 해봐야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던지라 최소한의 눈치는 봐야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잔인한 독재를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부산·마산 민주 항쟁, 5.18 민주화운동같이 시민들을 학살할 작정으로 진압하려 한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 부마항쟁의 경우 위수령 상태에서 10.26 사건이 일어나서 학살을 피했지만,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 실제로 학살이 벌어졌다.) 반면 남미나 아프리카의 독재자들 중 이 정도로 "개막장"인 독재자들은 그다지 드물지 않다. 개중에서 통치는 막장으로 했음에도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경우도 흔했는데, 진영논리의 어두운점이라 할수있다. [7] 영화상에서 산토레는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묘사되며 아이들도 영화속에 등장한다. 즉 아이를 여럿 가진 아버지를 사살한다는 메시지를 담는 것. [8] 이는 영화속에서 납치세력 지휘관이 직접 언급한다. [9] 그러나 영화가 만들어진 후 칠레 또한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부 쿠데타 비슷한 독재정권이 들어섰다. 바로 이때의 칠레를 고발한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가 1982년작 Missing(실종). 이 영화는 100% 실화로(영화 초엽에 true story라고 나온다), 대부분 멕시코에서 촬영되었다. 문서가 없어 여기서 간단히 설명하면 피노체트의 쿠데타 모의를 우연히 목격한 (좌익 성향의) 미국인 호먼이 군부세력에 납치되어 비밀리에 처형당하는데 죽은 지 모르는 호먼의 아내와 아버지가 미국 대사관과 칠레 경찰 등 여러 곳을 뒤지면서 호먼의 처형사실을 밝혀내는 영화다. ## [10] 고문을 자행하는 장면 바로 옆에 브라질 국기가 클로즈업 되어 나온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는 가상의 국가로 대체하는데 진짜 감독이 대단한 사람이다. [11] 이 장면 중 성기노출 장면은 국내 상영판이나 비디오 출시판에서는 삭제되었다. 그러니 못 볼수밖에. [12] 제대로 된 진보주의자라면 비판해야 정상인 사건들이었다. 그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식의 진영논리에 매몰되어있던 냉전 시대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