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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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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CWC3. WWWF4. 골든 시대 (1980 ~ 1993)5. 뉴 제너레이션 시대 (1993 ~ 1997)6. 애티튜드 시대 (1997 ~ 2002)7.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 (2002 ~ 2008)8. PG 시대 (2008 ~ 2014)9. 리얼리티 시대 (2014 ~ 2016)10. 뉴 시대 (2016 ~ 2022)11. 빈스 맥마흔 이후의 WWE (2022 ~)
11.1. 빈스 맥마흔의 성추문과 은퇴11.2. WWE, 새 주인을 찾다.11.3. 폴 르벡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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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대 WWE 프로그램 인트로[1]

현 세계 최대의 레슬링 단체인 WWE의 대략적인 역사를 설명하는 항목이다. 본 항목은 어디까지나 각 시대별로 있었던 특징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설명했을 뿐임을 알린다.[2]

2. C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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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마흔 가문의 제 1세대 인물은 권투 프로모터였던 로데릭 제스 맥마흔[3]이었다. 그는 원래 프로레슬링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그 당시 조셉 몬트라고 하는 사람이 조금더 대중에게 호응하는 스타일의 프로레슬링 단체를 만들게 된다. 몬트는 동업자가 죽은 뒤 뉴욕으로 활동 지역을 옮기게 되는데 거기서 제스 맥마흔과 만나서 협업을 결심하게 된다. 이들은 1953년 Capitol Wrestling Corporation을 세우게 되고 NWA 체제에 가입하게 된다. 이후 제스가 1년 뒤인 1954년 사망하자 제스 맥마흔의 자리는 그의 아들인 빈스 맥마흔 시니어가 물려 받게 되었고, 두 사람은 좋은 파트너로서 단체를 성장 시켜 나간다.

WWE에서는 이 시대를 제대로 처주지 않는 편이다. 주로 WWWF 시절 이후만을 미디어 등에서 거론하는 편. 다만 2020년대에 들어와서는 WWE 퍼포먼스 센터를 캐피톨 레슬링 센터로 개명하고, 이 시절의 로고를 재활용하는 등, 이 시절을 재조명하고 있다.

3. WW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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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접어들면서 CWC는 NWA와 마찰을 겪게 되는데 당시 NWA 월드 챔피언은 CWC 소속의 버디 로저스였다.[4] 하지만 버디 로저스는 연맹 규약을 어기고, 자신이 속한 지역을 넘어서도 경기를 하곤 했는데 이런 문제로 NWA와 마찰을 겪게 된다. 몬트와 맥마흔은 로저스가 계속 챔피언을 유지하길 바랬지만 로저스는 당시 규칙이었던 NWA 월드 챔피언이 연맹에 내야하는 25000 달러의 벨트의 명예에 대한 의미의 보험금을 내지 않았고, 결국 빼앗기게 된다.

당시 NWA의 여러 프로모터들이 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고, CWC 역시 이런 불만 대열에 참가하면서 연맹을 탈퇴한 다음 단체명을 World Wide Wrestling Federtation으로 개명하고, 버디 로저스에게 첫 챔피언의 자리를 수여했다.[5] 이후 몬트가 고령의 나이로 물러나면서 빈스 시니어는 WWWF의 유일한 소유주가 되었고, 초대 회장(President)에는 윌리 길젠버그가 선임되었다.

4. 골든 시대 (1980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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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인트로

1978년에는 2대 회장직에 전 신일본 영업부장 신마 히사시가 선임되었고, 1979년 이름을 다시 WWF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1982년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빈스 맥마흔 주니어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 받게 되면서 실소유주가 된다. 1984년에는 잭 터니(1935~2004)가 3대 회장이 되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WWF는 기존의 평화로운 지역구 체제를 탈피하고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데 자신들의 전용 흥행 체육관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 아닌 다른 지역의 체육관에서 흥행을 열고, 자신들의 비디오를 역시 외부 지역에 판매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금이 모이기 시작한 WWF는 본격적인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이 전설적인 선수들인 헐크 호건, 랜디 새비지, 로디 파이퍼, 앙드레 더 자이언트, 얼티밋 워리어 같은 사람들이었다.[6]

실제로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자금력에서 부족했던 WWF는 위기에 처하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게 바로 프로레슬링의 슈퍼볼인 레슬매니아였다. 빈스 맥마흔은 NWA의 스타케이드에서 그 아이디어를 따왔는데[7] 그 정도가 아닌 더 크게 판을 키워서 사람들의 관심을 한데 모으기로 결심했고 당시 문화 트렌드를 주도했던 가수 신디 로퍼와 복서 무하마드 알리, 배우 미스터 T를 섭외한 뒤 일명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을 통해 전 미국인의 관심을 WWF로 집중 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1985년에 열린 WWF 레슬매니아 I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면서 WWF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레슬링 단체로 키우는데 성공했고, 전성기를 맞게 된다. 헐크 호건의 애국자 기믹을 통해서 수 많은 미국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 체제가 굳건할 것이라고 여겼다.

매니아에게만 인기가 있던 언더그라운드 프로레슬링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아니 실질적으로 메인스트림 프로레슬링을 이룬 전무후무 유일한 단체.[8] 그 시작은 역시 1980년대 헐크 호건이라는 전설적인 레슬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헐크 호건 앙드레 더 자이언트, 얼티밋 워리어 간의 대립은 전 세계적인 이슈와 관심을 일으켰고 특히 헐크 호건 vs 안드레 더 자이언트를 메인 이벤트로 내세운 레슬매니아 3는 9만명이 넘는 관중이 몰리는 등의 흥행 대박을 이루기도 했다. 이 레슬매니아 3는 공식 기록상 프로레슬링 흥행 중 두번째로 많은 관중이 입장한 경기이기도 하다.[9] 참고로 비공식으로는 북한 평양 릉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축전' 릭 플레어 vs 안토니오 이노키전이 약 15만 명의 관중을 모았지만 북한 내의 실태로 미루어 보면 관중을 강제로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관람이 자유롭지도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흥행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5. 뉴 제너레이션 시대 (1993 ~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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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기세는 1994년 터진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되는데[10] 헐크 호건 WWF에 불리한 증언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헐크 호건이 경쟁 단체이던 WCW로 이적하게 되면서부터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지로서는 최강이었지만 실제 경기로써는 원패턴만을 고수하던 재미없는 챔피언 헐크 호건 이후[11], 걸출한 테크니션으로서 각광받던 브렛 하트가 챔피언을 이어받게 되면서 질적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언더테이커 등이 이 시기 메인이벤터로서 새롭게 떠오른 스타들이었다. 사이코 시드, 오웬 하트, 브리티시 불독, 디젤, 레이저 라몬, 요코주나, 골더스트 등이 이때 WWF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이다. 1995년에는 잭 터니가 사임하고 후임 회장직에 WWWF 시절 스타였던 고릴라 몬순(1937~1999)이 선임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인재의 발굴을 일컬어 뉴 제너레이션 시대라고 부르게 되지만 당시 WWF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주력 선수들 대다수는 WCW로 간 상황이라 그들을 보기 위해 많은 팬층을 빼앗겼고, 약물 파동 이후 사람들이 프로레슬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빈스 맥마흔은 여전히 1980년대에나 하던 유치하기 그지 없던 기믹을[12] 고수해 많은 팬들의 야유를 듣게 되었다. 브렛 하트는 자신의 자켓을 도둑맞았다는 이유로 해적 레슬러와[13] 대립하는 등 이미지가 아주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재정적으로도 엄청난 위기에 빠져서 40%의 사원들을 해고했고 그로 인해 로얄럼블에 나갈 선수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 사이 1994년에 린다 맥마흔이 CEO직에 앉았고, 1997년 8월에는 회장제 대신 커미셔너제를 도입해 골든 시대 시절 스타인 서전 슬로터를 커미셔너직에 앉혔다.

그래도 여러가지 의의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현재까지 계승되는 월간 PPV인 인 유어 하우스 체계를 도입했다는 건데, 골든 시기에는 4대 PPV만 개최했으나 뉴 제너레이션에 와서 인 유어 하우스 체계로 한달에 한번 PPV가 개최되어 스토리 전개가 빨라졌다. 이 인 유어 하우스는 매번 컨셉이 바뀌는데, 이 중 애티튜드에 개최된 인 유어 하우스 몇개는 이후 애티튜드 후기와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기에서 월간 정규 PPV로 승격되기도 했다.[14]

6. 애티튜드 시대 (1997 ~ 2002)

WCW 헐크 호건, 스팅, 릭 플레어, 자이언트, DDP, 스캇 스타이너, 부커 T 등 기존의 선수에 더해 케빈 내시, 스캇 홀을 영입하고, 새로 영입한 2명에 더해 기존에 영입했던 헐크 호건을 끼얹어 nWo라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악역 집단을 만들어내며 시청률에서 WWF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유치한 캐릭터 놀음 대신 현실인지 각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의 생동감 넘치고 자극적인 성인 드라마를 지향하는 한편 WWF의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마저 영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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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기의 대반전을 이끌어 낸 인물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물론 그 전의 19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항목 참조.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통해 CEO 빈스 맥마흔은 악덕 기업주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런 이미지를 오히려 기믹으로 활용하는 영민함을 보여준 빈스 맥마흔과, 악덕 기업주를 겁없이 마구 응징하는 사원 vs 사장 각본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 낸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WWF는 NWO로 대표되는 WCW의 자극적인 각본을 자기들도 활용하기로 결심하는 한편, 보다 더 쉽게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발전시키고, 여기에 새로운 선수들의 발굴, 그리고 WCW에서 영입했음에도 잘 써먹지 못하던 선수들을 영입하고 푸시를 주며 빠진 로스터를 훌륭하게 메꾼다. 믹 폴리가 챔피언이 되는 장면을 기점으로 WCW로부터 상위 시청률을 탈환했으며, 이후로 WCW는 한번도 WWF의 시청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몰락한다.

물론 WCW가 제대로 대처했다면 후발 주자라는 특성상 WWF의 시청률 역전이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WCW는 제대로 대응하기는 커녕 스스로 몰락했는데, nWo라는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악역 집단도 그 카리스마를 잃어가고 정치판보다 더 심각한 백스테이지 세력간 다툼[15]으로 인한 막장 경기의 양산, 젊고 능력있는 레슬러들을 키우지 못하고 올드 레슬러들의 잔치로만 부각되는 각본, 영입해놓고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경기력 좋은 레슬러들의 WWF이적으로 단체간의 수준차가 커지기 시작했다.[16] 물론 빌 골드버그의 173연승 신화가 큰 임팩트를 주긴 했지만 재밌는 경기를 만든 것은 아니며[17], 초반의 승리에 취한 WCW의 삽질로 인해 결국 WCW는 WWF에 인수되었고, WCW의 선수들이 WWF에 등장하며 인베이젼 각본이 전개된다. 아울러 ECW도 인수되어 ECW의 선수들이 WWF에 영입되었다.[18][19]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를 시청률상 최전성기로 보는데, 역사상 가장 높은 RAW의 시청률은 1999년 5월 10일 기록한 8.1 레이팅이고 역대 2위는 오웬 하트 추모 특집으로 열린 5월 24일에 기록한 7.2이다. 물론 이는 TV 쇼의 전체 시청률이고 세그먼트 중 가장 높았던 것은 1999년 9월 27일 믹 폴리와 더 락의 The Rock This Is Your Life 세그먼트가 기록한 8.4로, 오늘날 3.0을 기준으로 왔다갔다 하고 4.0 근처만 가도 대박이라 치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물론 지금은 예전에 비해 방송국이나 경쟁 프로그램의 수가 훨씬 많아진 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기록인 건 맞다. 게다가 2010년에 RAW는 2.8이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해 빈스의 주름살을 늘어나게 만들었다.[20][21]

과거 뉴 제네레이션즈에 없었거나 비중이 미미했었으나 애티튜드 시대에 떠오른 인물로는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 믹 폴리, 커트 앵글, 케인, 빅 쇼,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 랍 밴 댐, 에지, 크리스찬, 하디 보이즈, 더들리 보이즈, 에디 게레로 등이 있다.

사실 90년대는 초반과 후반을 제외하곤 WWE가 가장 힘든때이기도 했는데, 그러하다보니 바람처럼 금방 사라진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TL 호퍼, 배틀 캣, 맥스 문, 판타시오, 듀크 드로즈, 배스천 부거, 트루스 커미션, 테크노팀2000, 디시플 오브 아포칼립스 등등... 심지어는 선수 부족으로 인해 로얄럼블 매치에서 머릿수 채우기 위해 타 단체 선수나 지역 선수, 소속 단체없이 인디 단체를 돌아다니는 선수들을 참가 시키기도 했고, 싱글 매치와 태그 매치에서도 자사 소속 선수의 상대로 타 단체 선수나 지역 선수를 붙여주는 일이 유독 자주 있었다.

7.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 (2002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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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의 이름을 'WWF'로 사용하고 있던 WWE는 WWF의 상표에 대해 세계자연기금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고, 2002년 5월 6일 회사명과 로고를 WWE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WWF 애티튜드'라는 이름을 삭제한다. 이후 2002년 6월 24일 RAW에서 빈스 맥마흔이 공식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루스리스 어그레션(Ruthless Aggression)이라 명명한다.[22] 이는 커트 앵글이 자신의 파이트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단어이며 크리스 벤와가 자신의 모토로 사용하기도 했다.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의 종언을 가져온 것이 크리스 벤와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더 락과 오스틴이 은퇴한 이후에도 애티튜드 시절부터 뛰던 선수들과 성장한 유망주들, WCW와 ECW를 통해 유입된 선수들[23]은 WWE를 지탱했다. 브록 레스너 빌 골드버그가 데뷔했고 돌아온 릭플레어는 에볼루션을 만들어 RAW를 지배했지만 RAW의 모든 타이틀을 독점한 탓인지 시청률은 하락했다. 다만 한국에서의 인기는 이 시기가 최전성기였으며[24], 최홍만과 함께 K-1 Pride가 주목을 받기 전까진 해외 스포츠를 통틀어 으뜸 가는 인기를 구가했다. [25]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엔 브록 레스너, 존 시나, 바티스타, 랜디 오턴, CM 펑크, 레이 미스테리오 같이 애티튜드 시대엔 데뷔하지 않았거나 애송이에 불과했던 선수들이 메인으로 도약하게 되었으며, 애티튜드 시대에 활약하던 선수들도 일부 건재해 같이 경기를 이끌어갔다.

한국에서 WWE의 인기가 엄청났던 때가 바로 이때이기도 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WWE가 90년대만큼은 아니더라도 힘든때였고, 시청률 회복을 위해 골드버그를 영입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에 아직 인터넷이 지금만큼 발달하기 전이엇던만큼 한국팬들중 WWE의 속사정을 아는 경우가 소수였던데다, 선수 방출이 유독 잦았던 때였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한국팬들 사이에선 선수들이 방출되는 것에 대해 WWE가 5년안에 망한다느니, 빈스가 노망이 들엇다느니, 쓸만한 선수들을 죄다 방출시켜서 남은 선수들중 쓸만한 선수가 없다느니, 골드버그와 브록 레스너가 나가버린 빈자리를 메꾼답시고 존 시나, 바티스타, 랜디 오턴 등의 선수들한테 너무 빠른 시간안에 1선급 챔피언이 되게 할 정도로 단시간만에 푸쉬를 너무 많이주는 바람에 오히려 WWE한테 독이 되었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곤 했엇는데, 당시 WWE가 처해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크게 성장하여 WWE에 확실하게 득이 될만큼 가망이 있는 선수들을 제외한 선수들중에 방출시킨거라 되려 전화위복이 되어 2010년대에 들어선 이전만큼 방출이 잦지 않아졌고, 타 단체들중 단체가 힘든 상황에서 조차 확실하게 가망있는 선수가 아닌데도 방출하지 못하다가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아예 단체가 망해버린 사례가 많은걸 생각하면 빈스의 경영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알수 있을뿐만 아니라 필요할땐 과감히 버릴줄도 아는 성격임을 알수 있는 부분이다.[26]

8. PG 시대 (2008 ~ 2014)

체어샷으로 인한 선수들의 뇌 손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던 와중에 크리스 벤와 일가족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WWE는 여론의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노선으로는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고 판단한 WWE는 시청 등급을 Rated PG-13에서 Rated PG로 낮추면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면들을 순화, '온 가족의 WWE'라는 목표를 가지고 PG 시대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 애티튜드 시대를 실시간으로 시청한 마니아 중 상당수는 애티튜드 시대를 그리워한다. 반대로 2008년 이후 PG 시대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애티튜드 때의 유혈이 낭자한 WWE가 너무 자극적이라 부담스러워서 보기 힘들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애티튜드 시대의 지나친 폭력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말이 많기도 했고 상업성으로 따지면 오히려 PG 시대의 수익이 더 많기 때문에 PG 시대가 장기화되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27] 거기다 PG 시대에는 다수의 인디 레슬러들이 영입되고 멕시코나 일본 쪽의 레슬링도 들어왔기 때문에 그들 특유의 화려한 경기운영 능력으로 인해 애티튜드보다 경기력 면에서 확장되었다.[28]

다만 애티튜드 팬들 뿐 아니라 다른 팬들 역시 초창기 PG에라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는데 PG에라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절엔 WWE 자체적인 규제가 지나치게 과도했기 때문. PG에라 이전처럼 고의적인 블러드잡은 사라졌지만 경기 중 의도치 않게 출혈이 터지는 경우 그 즉시 경기를 일시 중단하고 지혈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29] 즉, 과격한 경기가 나오지 않는 것보다도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었다.[30]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지만 생방송인 1999년 8월 23일 이후 RAW와는 달리 대부분이 녹화 방송인 스맥다운은 1999년 8월 26일 첫 방송부터 2008년 7월 본격적인 PG등급 시행 이전에도 계속 PG등급이었다.

다만 PG 등급에서도 뒤에 붙는 알파벳에 따라 등급이 달라진다. PG 등급은 13세 등급으로, WWE가 애티튜드 시절 유지한 14세 등급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PG 시대 이전까지 WWE는 14세 등급이나 PG 등급에 상관 없이 등급을 정하는 알파벳인 DLSV가 모두 들어간 등급으로 방영했다. DLSV는 Dialoge(대화), Language(언어), Sex(음란성), Violence(폭력성)을 뜻하는데, 2008년 PG 시대 서막 이후로는 DLS를 빼고 TV PG-V 등급으로 변경한 것이다. 이는 즉 폭력성 외에 욕설이나 성적인 요소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WWE가 PG-V 등급 변경 이후에도 여러 차례 블러드 잡을 터트렸으며 불륜 각본이나 F Word는 아니더라도 욕설을 대사 넣은 적은 있었는데, 그럴때마다 학부모 단체의 큰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2008년 PG 등급으로 바뀐 뒤 아예 TV-14 등급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WWE 익스트림 룰즈 2012와 2020년 스맥다운이 TV-14 등급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릭 플레어, 숀 마이클스, 랍 밴 댐, 커트 앵글, 에지, 제프 하디 등의 스타들이 은퇴하거나 WWE를 나가면서 이름값에서는 애티튜드 시대와 루스리스 어그레션 시대에 비해 확실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문에 WWE는 존 시나의 사례처럼 엄청난 역반응을 각오하면서도 새로운 스타를 띄우는 한편 더 락과 같은 과거의 스타의 복귀를 이끌어 부족한 이름값을 메꾸기도 했다.[31]

9. 리얼리티 시대 (2014 ~ 2016)

WWE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2014년 3월 24일 RAW에서 트리플 H가 '리얼리티 시대(Reality Era)'를 세그먼트에서 발언한 것을 시작으로 본다. 하지만 매니아층의 시각으로는 2011년의 CM 펑크 파이프밤을 시작으로 본다. 그리고 리얼리티 시대의 도래를 팬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YES 무브먼트로 인기를 얻던 대니얼 브라이언이 챔피언이 되고, 언더테이커의 충격적인 패배가 있었던 2014년의 레슬매니아 30이다.[32]
리얼리티 시대에 이르러 WWE는 기존의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믹을 줄이고, 실제 상황을 접목시킨 현실성 위주의 스토리텔링을 짰으며,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에 그치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스포츠로 보이도록 했다. 레슬매니아 30은 그 리얼리티 에라의 정점을 찍은 대회였다. WWE 네트워크를 출범시키는 한편 유튜브 등 적극적인 인터넷 매체의 활용도 리얼리티 시대의 특징인데,[33] 레슬매니아 등 주요 PPV가 있을 때, PPV 전의 선수들이 준비하는 모습, PPV가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 등을 영상으로 만들어 리얼리티성을 높였다. 그리고 기존의 육성 프로그램을 발전시킨 NXT 브랜드 설립을 통해 새로운 선수들의 유입을 꾀했다. 이를 통해 ROH나 타 인디 단체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유입되었다. 이로서 WWE는 PG 등급을 지키면서 선수들의 전반적인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에도 성공했으며 2015년 기준 WWE의 인재 풀이 매우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레슬매니아 31에서 트리플 H 스팅의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NXT 출신들이 참여했고[34] 게다가 메인 이벤트를 2년 연속으로 NXT 출신 선수가 장식하는 등 적극적으로 NXT를 밀어주는 모습.

하지만 경기력의 향상과는 별개로 여전히 스타성의 부족은 WWE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였다. 실제로 2010년부터 시작한 루스리스ㅡPG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의 은퇴 및 풀타임 활동 중단은 CM 펑크의 파이프밤 스토리로 이어졌고 이 스토리 덕에 리얼리티 에라가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 실제로 CM 펑크가 파이프밤을 터뜨렸음에도 로스터 부족 현상이 갑자기 나아질 리는 없었기에 평소라면 메인이벤터급 기회를 받지 못했을 더 미즈, R-트루스, 마크 헨리, 대니얼 브라이언 등이 큰 푸쉬를 받아 메인이벤터급으로 성장했다.[35] 뿐만 아니라 빈스가 평소 절대 기회를 주지 않았던 자칭 인터넷 챔피언, 잭 라이더까지 CM 펑크의 도움을 받아 TV쇼에서 활약했을 정도.

이후 사실상 리얼리티 에라의 사실상 종결 지점이라 볼 수 있는 CM 펑크의 탈단 기점으로 차세대 스타 및 인디씬에서 큰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수급되며 상황이 나아지나 싶었으나 로만 레인즈 존 시나화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희생되었다. CM 펑크의 탈단을 메꾼 대니얼 브라이언은 목부상으로 은퇴하며 이탈했었고, 존 시나에 이은 무적 선역 로만 레인즈는 과거 존 시나보다도 못한 활약 끝에 결국 엄청난 역반응이 터지며 사실상 트라이벌 치프 기믹을 들고 오기 전까지 실패한 선역으로 커리어를 보냈었다.[36] 실드 멤버였던 세스 롤린스 딘 앰브로스의 경우 로만과 함께 탑가이로 활동하긴 하였으나 로만의 푸쉬에 가려진 경우가 더 많았으며 에이드리언 네빌, 케빈 오웬스, 나카무라 신스케, 핀 밸러, 세자로, 루세프, 칼 앤더슨, 루크 갤로우스 등은 각자 이런 저런 이유로 큰 푸시나 인기를 유지하지 못했다. 디 어소리티 에볼루션 강점기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매우 지루한 권력형 스테이블의 전형이었던데다가 이들은 나름 메인 스토리의 중심이었음에도 각본의 질이 좋지 못했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인 해석이며 실질적으로 리얼리티 에라의 정점이자 사실상 종결 지점인 2014년의 경우 실드, 와이어트 패밀리를 비롯한 임팩트 강한 신인들이 많은 활약을 시작한 시점이며 그 외에도 NXT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인 육성 시스템이 드디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다만 결과적으로 결국 여기 저기서 인디 괴물들 끌어모아봤자 아이콘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리얼리티 시대를 지탱한 것은 파이프밤을 통해 리얼리티 에라 그 자체를 열었던 CM 펑크,PG의 아이콘인 존 시나, 팬페이보릿으로 등극해 엄청난 고점을 찍은 대니얼 브라이언,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브록 레스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리얼리티 에라를 시청하던 시청자들은 시청률에 대해선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라는 입장과, 그래도 역대 최악의 시청률을 찍을 정도니 심각하다는 입장으로 나뉘었다.[37] 전자의 경우 WWE네트워크 가입자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고 유튜브 구독자와 조회수가 엄청나다는 점으로 화제성이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경우 WWE네트워크 가입자 수도 늘고 있긴 하지만 점차 증가폭이 감소하고 있고 스페셜 이벤트 판매 단가는 PPV 시절보다 더 떨어져서 수익 개선이 되고 있지 않으며, RAW에서 메인이벤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관객들이 대거 이탈했다는 것은 분명하게 위험한 현상이라는 것을 지적한다.[38]

다만 결과적으로 이 시기에 많은 공을 들였던 WWE 네트워크의 런칭 및 공격적인 홍보,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은 그 어떠한 기업도 따라올 수 없을만큼 엄청난 격차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OTT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도 전, WWE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한 결과 피콕이라는 대형 OTT와 빅딜을 맺으며 수익성이 크게 안정화 되었고[39] 다른 기업들이 유튜브 관리에 소홀했을 때부터 열심히 노하우를 쌓은 결과, 2022년 WWE가 트리플H체제로 넘어감과 동시에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게 되었기 때문. 어쨌든 빈스 맥마흔의 권력 상실이 큰 트리거긴 하였으나 그 당시 시청률 대비 크게 의미가 없었다고 여겨졌던 WWE네트워크 및 소셜 미디어 마케팅 기반이 없었더라면 이정도로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리얼리티 에라에는 맞지 않는, 무려 어린이들을 위한(...) PG-G 등급의 새터데이 모닝 슬램을 런칭하기도 했는데 랜디오턴이나 셰이머스와 같은 당시 메인이벤터들도 등장시키는 등 노력을 하였지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새터데이 모닝 슬램이 망한 이유

10. 뉴 시대 (2016 ~ 2022)

2016년 5월 1일 페이백에서 로만 레인즈 AJ 스타일스를 상대로 챔피언을 방어하는 순간을 시작으로 본다. 그 후 WWE가 2016년 7월 19일 WWE 드래프트 2016 이후부터 '뉴 시대(New Era)'라는 말을 강조하고 브랜드 확장 2기가 시작되면서 뉴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2년 이후 다시 RAW와 스맥다운이 분리되었고 새로운 로스터들과 브랜드들의 새로운 로고, 각 브랜드의 새로운 아나운서, 새로운 인트로 등이 보여졌으므로 뉴 시대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시점이다.

빌 골드버그, 제프 하디 에지, 존 모리슨, 바비 래쉴리, 쉘턴 벤자민 같이 과거 WWE를 거쳐 갔던 베테랑 선수들을 복귀시키는 한편 과거 스팅을 영입했던 것처럼 TNA의 몰락을 통해 AJ 스타일스, 사모아 조같이 비 WWE 단체에서만 활약했던 선수들도 영입했으며, 코피 킹스턴이나 드류 매킨타이어, 돌프 지글러같이 PG시대의 선수들이나 메인 이벤터로 도약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다시 푸시를 주며 새로운 스타를 키우는 중.

어소리티 각본이 끝나고 셰인 맥마흔이 복귀하면서 예전보다 각본이 좋아졌다는 평이 있다. 또한 로스터 분리를 통해서 그동안 푸시를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기회를 받으면서 팬들의 호응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로스터 분할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2017 WWE 슈퍼스타 셰이크업 이후부터 각종 부작용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로만에 대한 역반응은 이제 당연한 수준이고 개연성 없는 각본 문제라던가, 인도시장 공략으로 인한 시청자 감소,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흥행 부진 등등. 특히 스맥다운은 관중들이 워낙 안 들어와서 카메라에 잘 안 잡히는 입장로 기준 우측 관중석은 아예 통째로 가려놓고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밀어주던 로만도 백혈병으로 인해 은퇴하였고, 남아있던 선수들도 에이드리언 네빌, 존 목슬리의 사례와 같이 각본의 문제나 힘든 일정, 적은 푸쉬에 실망해 AEW 등의 단체로 이적하고 있는 등 상황이 그렇게 순탄치는 않았다. 과거 WWE가 짱짱할 때는 TNA에서 선수들을 데려가도 큰 타격이 없었지만 지금 WWE는 그렇게 여유로운 입장은 아니게 되었다. 정작 NXT 시절부터 트리플 H가 공들인 선수들 역시 메인으로 이적했지만 브랜드 분리 이후로 많아진 로스터를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선수들이 절반 정도가 출연을 못하고 있고, 타 단체가 잘되는 걸 볼수 없어 계약으로 묶어두는 무리한 짓을 했다.

이 시절에 여성부 머니 인 더 뱅크, 여성부 엘리미네이션 챔버, 여성부 로얄 럼블 등을 만들었고, WWE가 여성부에 신경을 쓰면서 이 과정에서 론다 로우지를 영입하게 된다.

2018년 미국의 지상파 채널 FOX가 WWE 스맥다운과 5년간의 방송 계약을 공식 발표했고 2019년 10월 4일, 스맥다운이 20주년을 맞이하는 날 FOX에서 시즌 프리미어를 가졌다. 이날 스맥다운에서는 많은 레전드들의 일회성 출현했다.

10.1. 코로나19 썬더돔

2020년 2월, 중국 우한발 코로나가 미국에까지 퍼져 수많은 감염자들이 발생하자, WWE는 캐피톨 레슬링 센터에서 무관중으로 쇼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레슬매니아가 끝난 2020년 4월에는 빈스 맥마흔이 쇼에서 활용하지 않는 다수의 선수를 방출시키는 해고러쉬가 발생했다. 코로나가 끝나도 이들이 다시 WWE에 영입될지는 미지수일 뿐만 아니라 빈스 맥마흔이 자버 취급하거나 출연시키지도 않고 활용하기 싫은 선수들 대다수가 불만을 드러내며 임팩트 레슬링 & 올 엘리트 레슬링로 가버리면서 올 가능성은 거의 낮을 뿐만 아니라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한다. [40] 코로나로 인해 메인뿐만 아니라 NXT에도 비상이 생겼고, 미국 봉쇄 조치로 인해 영국을 오갈 수 없게 되어 NXT UK 녹화 및 NXT UK 소속 선수들이 미국으로 올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 [41][42]

레슬매니아 36에서 언더테이커 vs AJ 스타일스의 경기와 브레이 와이어트 vs 존 시나의 경기를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제작해 많은 팬들의 호평을 얻었고, 매 PPV마다 특별한 스타일의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경기를 보고 팬들은 덥플릭스, 시네마틱 에라등 다양한 별칭을 지어주었으며, 머니 인 더 뱅크 2020의 머니 인 더 뱅크 매치는 WWE 구 사옥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진행해 덥닝맨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43]

코로나 19로 관중 수입이 없는 것도 치명적이지만, 무관중 탓에 관중들의 호응이 사라진 것도 문제다. 다른 스포츠도 관중이 빠지니 호응이 없어져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말이 많은데, WWE는 선수들의 연기와 세그먼트에 있어서 관중의 호응와 야유를 유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것이 사라져버렸다. 쇼를 보는 사람들도 재미가 없어져서 싫어하고, 쇼를 진행하는 선수들도 사람들의 반응을 알 수가 없어 벽 보고 연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답답할 따름. 드라마나 영화 등의 타 매체와 달리 WWE에선 편집된 영상은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결국 쇼를 이끌어가는건 선수들이 마이크 들고 서로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는 건데 관객들의 반응이 사라지니 쇼를 이끌어나가기 힘들어졌다. WWE 썬더돔 시스템으로 선수들과 시청자들이 캠을 통해 제한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그렇게 꾸역꾸역 무관중임에도 위클리쇼와 PPV를 진행해 왔지만 결국 올 것이 왔다. 6월 9일에 WWE RAW 녹화를 위해 퍼포먼스 센터 현장에 있었던 수련생 1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 이날은 완전 무관중이 아닌 관중석에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의 녹화였기 때문에 누구를 통해 감염되었는지 확인조차 되고 있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건, 브라이언 알바레즈의 트윗에 따르면 이날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이것이 WWE의 요구사항이었다고 한다. WWE의 실세로 불리는 고위임원 케빈 던은 마스크 쓰고 관중석에 있을거면 아예 오지 말라고 관중에게 말했다고 한다. #.[44][45] 결국 6월 말부터는 관중석 인원들 전원 다 마스크를 착용시켰다.[46]

계속 WWE 캐피톨 레슬링 센터 에서 진행하는 것에 만족을 못하는 빈스 맥마흔으로 인해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가 8월 21일부터 플로리다 주 올랜도 암웨이 센터 썬더돔에서 진행해 관중석마다 LED 모니터를 통한 가상 팬들로 체워 진행하게 된다.[47] 코로나로 인해 봉쇄조치로 미국에 올 수 없는 선수들이 다시 미국에 들어 올 수 있게 되었고 12월 11일부터는 썬더돔이 트로피카나 필드로 옮겨서 진행된다.

2021년이 된 현재까지도 선수들 활용은 극히 일부만 잘 활용하고 나머지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빈스 맥마흔으로 인해 출연 빈도가 낮거나 아예 자버로 전락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트로피카나 필드를 결국 떠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레슬매니아 37도 36때처럼 2일에 걸쳐 진행하고,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관중들을 입장시키지 못하다가 야외 경기장에 해당되는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레슬매니아 37에 오랜만에 관중들이 입장하게 한다. 레슬매니아 37 이후로 다시 무관중으로 하면서 썬더돔을 탬파 잉링 센터에서 진행하게 된다. 빈스 맥마흔으로 인해 2020년처럼 2021년에도 해고러쉬가 연이어지면서 인원 비용절감을 위해 선수들[48]은 물론 임직원들 절반이상을 방출시켰다.

10.2. 포스트 코로나 (2021 ~ 2022)

2021년 7월 12일에 방영된 RAW를 끝으로 썬더돔으로 진행한 무관중 진행이 끝나면서 7월 16일 스맥다운을 시작으로 다시 관중을 수용하게 된다.

끝을 모르는 해고러쉬에도 말이 많은 2021년에 관중을 수용한 이후로도 메인로스터쪽에는 빈스 맥마흔식 경기결과만 나오고 있고, 빈스 맥마흔과 그의 측근들인 존 라우리나이티스(쟈니 에이스) & 닉 칸 & 브루스 프린차드(브라더 러브)가 NXT에 있는 선수들을 하나하나씩 다크매치와 메인이벤트에 콜업대상으로 물색하기 시작하면서 NXT의 퀄리티가 낮아졌다.[49] 그 결과 NXT를 이용해 AEW를 견제하는데 실패하자 NXT에서 활동중인 유명 인디레슬러들을 방출했다.[50]

WWE 섬머슬램(2021)에서 존 시나, 빌 골드버그 등을 출연시키면서 당일 베키 린치, 브록 레스너까지 복귀시킨다. 브록 레스너의 복귀는 WWE에 환멸을 느끼고 AEW와 계약한 CM 펑크에 대한 대비책으로 내세운 비장의 수단이었지만, 큰 화제가 된 CM 펑크의 이적효과를 억누르기엔 부족했다. 덤으로 AEW는 WWE와의 계약만료로 떠난 브라이언 다니엘슨, 애덤 콜을 계약함으로 화제를 집중시키고 있지만 WWE는 빈스 맥마흔이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운영하면서 유관중 체제로 전환된 이후로도 변화하는 모습 없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9월 14일을 시작으로 새로운 로고로 시작하는 NXT에 빈스 맥마흔과 그의 측근들이 개입하기 시작한다는 말이 나오며 선수들과 팬들사이에선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빈스 맥마흔 측근인 케빈 던이 트리플 H가 없는 사이에[51] 임시 총괄을 맡게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WWE는 바비 스티브슨의 동생인 게이블 스티브슨[52]와 협상을 맺으며 9월 9일에 WWE와 계약을 맺었다.

결국 WWE 로얄럼블(2022)에서 끊임없는 방출러시로 인해 얇아진 로스터가 그대로 드러나며 엄청난 혹평을 듣게 된다. 반면 같은시기 공개한 2021년 총 매출액은 10억 9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같은해 사우디에서 열린 엘리미네이션 챔버 역시 좋은 반응은 얻지 못했다. 골드버그와 로만의 억지스러운 매치, 그리고 다시 챔피언이 된 브록까지. PLE에서마저 스쿼시가 펼쳐졌던 경기의 질을 떠나 덥덥이가 몇년째 이어지는 로만의 대관식에 타 선수들의 위상과 스토리를 갈아넣는 것에 대한 비판이 크다. 이번 경기 결과로 레매에서 브록과 로만은 통합챔피언을 놓고 붙게 되었는데, 이는 둘의 레매 대진이 확정된 로얄럼블 이전부터 뻔히 예상된 전개로 덥덥이의 모든 로스터를 집어삼킨 로만과 대항할만한 위상의 선수가 이젠 브록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2년 4월에 열린 레슬매니아 38은 로럼와 일챔의 망해버린 평가와는 다르게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코디 로즈 스톤콜드의 등장, 우려를 샀던 게스트들의 활약이 재밌는 경기들을 만들었지만 정작 메인이벤트인 로만 vs 브록의 경기의 내용도 반응도 매우 썰렁했고, 끝내 빈스의 계획대로 브록마저 로만을 띄우기위한 희생양으로 써먹어버리면서 로만 레인즈가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었고, 이에 따라 벨트를 둘러싸고 스토리를 만들만한 몇몇 선수들의 미래가 더더욱 암울해져 버렸다.[53]

레매 이후로도 빈스의 독단이 계속되어 많은 선수들을 푸대접하고, 급조된 와일드 카드 룰 같은 형식으로 타 브랜드 소속 선수가 나타나는 일이 생기고, 로만의 친척들인 우소즈마저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면서 선수들이 커리어를 만들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 와중에 통합챔피언인 로만은 TV쇼나 PLE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고[54], 그나마 코디 로즈가 캐리하는 모양새였지만 부상을 당해버렸다.[55]

로스터의 균형을 못 맞춘다는 부분과 반대로 선수 절반이상의 활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부분이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는 남성부 뿐 아니라 여성부에서도, 특히 스맥다운쪽 여성로스터가 계획에도 없이 성급하게 NXT에서 콜업하여 그들을 먹이로 써먹고는 위상이 떨어지면 해고러쉬 & RAW로 보내버리는 일이 잦아지며 스맥다운 로스터만 줄어들고 있다. 이처럼 NXT에 있는 선수들이 빈스와 측근들로 인해 차별받아 콜업조차 못하고 방출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선수들이 방출 이후 AEW같은 타 단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일도 많아졌다. 그 영향인지 저작권을 등록하여 방출된 선수들이 타 단체에서 WWE에서 활동하던 링네임을 사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해 인디출신 탑스타들이 인디시절부터 쓰던 링네임[56], 기믹을 못쓰게 바꿔버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빈스의 괴상한 센스가 발휘되는 건 덤.

11. 빈스 맥마흔 이후의 WWE (2022 ~)

11.1. 빈스 맥마흔의 성추문과 은퇴

그러다 2022년 6월 빈스가 성추문과 횡령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성추문 사건을 덮기 위해 피해 여성들과의 합의 및 합의금을 지불하였는데 이 합의금을 횡령으로 마련했다는 기사가 떴다. 이때 합의금으로 피해자들에게 지불한 돈이 무려 약 1200만 달러라고 한다. 참고로 WWE가 WCW를 인수할 때 들어간 인수비용이 약 400만 달러다. 회사를 인수하고도 남는 돈을 본인 성추문을 덮기 위해 그것도 횡령으로 마련한 것이다. 결국 빈스가 WWE의 회장직을 사건 조사가 끝날 때까지 임시적으로 내려놓고 스테파니 맥마흔이 임시 회장직을 맡게 되었지만 간접적으로는 계속 선수들 각본 통제를 하고 있다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계속 커지게 되자 결국 7월 22일에 공식적인 경영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WWE의 빈스 맥마흔 체제는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대외적으로 너무 큰 사건인지라 계속 조사는 진행중이였고 이후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조사는 마무리 되었지만 조사 결과를 밝힐지는 추후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빈스 맥마흔의 갑작스런 은퇴 후 임시 회장직을 맡고 있던 스테파니 맥마흔이 공식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CEO였던 닉 칸은 스테파니 맥마흔과 함께 공동 CEO 직을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동시에 트리플 H는 심장 수술로 인해 물러났던 경영 일선에 다시 복귀하며 빈스 맥마흔가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크리에이티브 총괄 업무(CCO)와 인사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57]

이외 또다른 빈스의 측근인 브루스 프리처드는 원래 메인 쇼와 NXT의 크리에이티브 팀 수장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케빈 던은 메인 쇼의 총괄 프로듀서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빈스 맥마흔이 은퇴하면서 케빈 던도 퇴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사실 유력한 언론들에게서 계속해서 케빈 던이 퇴사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브루스 프리처드도 권한이 축소될 거라는 말이 무성하다. 다만 비교적 최근에 입사한 닉 칸은 일단 그대로 자리를 보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브루스 프리처드 대신 트리플 H가 크리에이티브 팀 수장이 되면서 각본에 대한 최종 권한도 그에게 넘어갔다.[58][59]

팬들은 원래 WWE 팬들로부터 지지받던 트리플 H가 권력을 잡으면서 쇼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나이를 들면서 감이 떨어진 빈스 맥마흔이 독선적인 결정을 하면서 각본도 변덕에 따라 자주 변경하고 신인을 키우는 일을 등한시하는 데 비해[60] 트리플 H는 팬들의 입맛에 맞는 쇼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섬머슬램만 봐도 메인 로스터 감이 아니라고 방출했던 다코타 카이의 재영입 및 빈스 맥마흔이 반대했던 베일리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여성 스테이블 탄생 등 트리플 H와 스테파니 맥마흔 체제에서의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61]

트리플 H가 권력을 잡으면서 캐리언 크로스, 덱스터 루미스, 쟈니 가르가노 등 방출되었던 NXT의 스타들이 속속히 복귀하는 중이며 회사 내 분위기 역시 최고조라고 한다.[62] 또한 그간 고질적으로 지적 받던 선수들 혹사 문제도 2023년부터 개선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63]

2023년 1월 5일, 빈스 맥마흔이 WWE의 매각 협상 주도와 현 운영진에 대한 간섭을 피하는 것을 전제로 이사회에 복귀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WWE의 매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3년 1월 10일부로 스테파니 맥마흔이 회장 및 CEO 직에서 사임했으며 당분간은 닉 칸 단독 CEO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임에 대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으나 이후 스테파니 맥마흔은 고질병이었던 발목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건강 문제도 어느 정도 있었고, 발목 수술 후에도 엔데버와 합병할 때까지 복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스테파니 본인도 WWE 경영에 뜻이 없었던 듯하다.

빈스 맥마흔은 향후 WWE 매각에만 신경쓸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후에도 매각 관련 업무 외 다른 업무는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시절 밤새 업무에 매진했던 것과는 달리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 후에는 정시 퇴근을 한다는 듯. 다만 이와 별개로 빈스 맥마흔이 운영에도 간섭하려 든다는 루머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말이다.

닉 칸은 단독으로 계속해서 CEO직을 맡으며 계속해서 WWE에서 업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앞으로도 CEO로서 외부적인 일은 닉 칸이, COO로서 내부적인 일은 트리플 H가 맡는 것으로 보인다.

11.2. WWE, 새 주인을 찾다.

2023년 4월 3일 UFC를 운영하는 엔데버 그룹에 매각되어 UFC 운영사 Zuffa LLC와의 합병이 결정되었다.

합병 후 새로운 모기업 회사인 TKO 그룹 홀딩스를 설립 하기로 하였으며 엔데버 그룹이 51% 기존 WWE 주주가 49%[64]를 소유하는 형식으로 운영되며 엔데버 그룹의 최고경영자인 아리 임마누엘이 최고경영자가 되고 빈스 맥마흔이 이사회 의장을 엔데버 그룹의 마크 사피로가 사장 겸 최고 운영 책임자를 맡게 된다. 이사회 구성은 엔데버 6명 WWE 5명으로 구성되고 UFC 부문 회장은 데이나 화이트, WWE 부문 회장은 닉칸이 맡게 된다고 발표되었다.

이로써 WWE는 독자적인 기업이 아니게 되었고 향후 UFC와의 활발한 인적 교류와 미디어 교류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39의 마지막 각본과 에프터 로우의 각본에 트리플 H가 아닌 빈스 맥마흔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당초 CCO(컨텐츠 크리에이트 총 책임자)가 트리플 H로 유지될 거라는 WWE의 발표와는 달리 빈스 맥마흔이 WWE의 매각하며 본인이 다시 각본을 잡도록 요구했다는 것이 알려졌고[65] 실제로 레슬매니아 39 둘째날 시작 전 매각 발표와 함께 빈스 맥마흔이 직접 개입해 레슬매니아 39의 통합 챔피언십에서 로만이 타이틀을 방어하고 에프터 로우에서 뜬금없이 브록 레스너의 공격을 받은 코디의 상황[66]에서 팬들이 폭발해 WWE SNS와 쇼셜미디어에서 Fire Vince 라는 해시태그와 채팅이 올라올 정도라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몇몇 레슬러들의 테마곡에 제목 변경이 이루어졌다.[67] 그 외에 트리플 H가 각본 책임자의 위치에 있지만 빈스 맥마흔은 백스테이지 현장에 없어도 여전히 간접적으로 회장직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각본 검토를 해서 일부 수정시키는 짓을 해서 몇몇 선수들이 과거에 비해 출연빈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절반이 빈스 시절같은 원점으로 가서 일부선수들이 자신들의 위치에 불만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상황으로 인해 트리플 H를 포함한 메인 수뇌부 대다수가 빈스 맥마흔의 시시하고 낡아빠진 자기중심적인 전개와 경기결과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기 시작하고, 팬들과 선수들은 빈스 맥마흔의 개입이 없던 당시같이 원하는 새로운 방식의 다양한 운영을 바라는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 아직까지도 빈스 맥마흔은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막 우기는 식으로 끝까지 악을 쓰며 로만 레인즈 관련 진행을 포함해 WWE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 빈스 맥마흔의 복귀는 계속해서 WWE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의 미래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68]으로 이어지고 있고, 빈스 개입이 시작된 후부터 시청률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시청률 하락까지 서서히 오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빈스의 고집으로 인해 빈스 맥마흔 자체가 WWE의 미래 발전을 위한 부분에선 방해물에 지나지 않아 트리플 H가 더 호의적이게 나와서 트리플 H를 통해 WWE를 신용하고 있다.

2023년 9월 12일자로 대주주였던 빈스 맥마흔은 TKO 그룹 홀딩스에 본인의 WWE 지분 매각을 마무리 하고 TKO 그룹 홀딩스 이사회 의장으로서 참여하게 된다. 이로써 맥마흔 가문의 WWE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예 TKO측에서 빈스 맥마흔에게 크리에이티브에 조금도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레슬매니아 39 이후 매주 재방송쇼라는 소리를 듣던 RAW 위클리쇼 퀄리티가 대폭 상승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19~2024년 TV계약딜 자체도 직전 계약 대비 무려 3.6배의 수치였는데 이를 또 큰 폭으로 갱신할 것으로 보이며 NXT는 무려 지상파 방송국인 The CW와 계약에 성공하였다. 스맥다운의 경우 지상파 FOX에서 현 RAW방송국인 USA네트워크로 옮겨갈 예정인데 직전 FOX와의 스맥다운 딜보다도 더 높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FOX의 경우 WWE말고도 따내야할 TV 중계권이 많아 결국 입찰 경쟁에서 빠졌다고 한다.

2024년 1월 23일 RAW의 라이브 중계권 계약이 2025년부터 넷플릭스와 10년 50억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체결되었다.[69] 무엇보다도 그동안 TV 세대의 최전방 중 하나였던 WWE가 TV가 아닌 OTT 플랫폼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상당한 계약이 되겠다. 참고로 이번 계약은 넷플릭스가 처음 체결한 스포츠 라이브 중계 계약이 된다.

11.3. 폴 르벡의 시대

2024년 1월 26일, 넷플릭스와의 계약이 발표되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서 빈스 맥마흔의 성범죄 추가 폭로가 터졌고, 다음날 빈스 맥마흔이 공식적으로 TKO 홀딩스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회사 창립 71주년만에 맥마흔가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이제까지 좋은 평판을 받고 있던 트리플 H와 닉 칸 등은 여전히 회사에 남게 되었다. 회사 지분도 빈스가 TKO측에 전부 매각해 1주도 남아있지 않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빈스 맥마흔이 모든 TKO 주식을 판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후로는 TKO의 요구로 조금씩 모든 주식을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TKO측에서 일부러 빈스 맥마흔의 성추문 사건을 숨기고 넷플릭스와 계약을 마무리지은 다음 터뜨렸다는 말도 있다. 워낙 큰 건수인 데다가 밝혀진 사실이 하도 더럽다보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2024년 2월 3일 스맥다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전 RAW에서 로만 레인즈에게 재도전할 것으로 보였던 WWE 탑 선역이자 로얄럼블 우승자 코디 로즈가[70] 세스 롤린스의 설득으로 인해[71] 잠시 선택을 보류하긴 했지만 팬들은 그래도 작년의 패배를 설욕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72] 이 스맥다운에서 갑자기 레전드인 더 락이 등장하였고 마치 코디가 더 락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는 듯한 퍼포먼스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사실 더 락은 2월 3일 스맥다운 쇼가 열리기 직전에 TKO 그룹 홀딩스의 이사가 되었고 바로 직후에 갑자기 로만 레인즈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73] 사실 조짐이 없지는 않았다. 원래 더 락 vs 로만 레인즈 경기에 대한 루머는 이전에도 꽤 있었고 실제로 이 경기를 바라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레슬매니아 40에서 이 경기가 열리기를 바라는 팬들은 사실상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현재 로만 레인즈가 거의 3년 이상이나(약 3년 6개월) 유니버셜 챔피언 벨트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만 레인즈가 아주 형편없는 선수는 아니긴 하지만 빈스의 총애만으로 3년이나 벨트를 쥐고 있었던 데다가 또한 로만은 노잼 경기로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를 망친 일도 많이 있었고, 또 쇼에 제대로 나오는 일도 드물었기 때문이었다.[74][75] 그렇기 때문에 WWE의 팬들은 현재 가장 잘 나가는 탑 선역인 코디 로즈가 로만을 꺾고 유니버셜 챔피언 벨트를, 아니 WWE의 대권을 차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람은 레슬매니아 39에서 한 번 꺾였던 적이 있었다.[76][77][78][79] 그래서 상황이 바뀐 이번만큼은[80] 코디 로즈가 로얄럼블에서 우승한 이상 코디 사가를 해피 엔딩으로 끝내기를 바랐다. 그런데 뜬금없이 더 락이 등장해서 후배이자 차기 WWE 대권후보로 여겨지던 코디의 자리를 가로채는 것처럼 보였던 것.

이로 인해 레슬링 팬들은 뒤집어졌고 #WeWantCody같은 태그가 난무하는 등 WWE의 결정을 비난했다.[81] 특히 이런 결정은 트리플 H를 비롯한 WWE의 임원진이 아니라 모기업인 TKO 그룹 홀딩스의 압력과 TKO의 이사가 된 더 락의 농간(?)이 있었다고 팬들이 봤기 때문에 더더욱 비난이 속출했던 것.[82] 이에 대해 더 락의 개인적인 팬들(이라기보다는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의 팬들)이 맞태그를 붙이며 맞불을 놓기도 하였다.[83]

결국 WWE(라기보다는 TKO와 더 락)가 물러서면서 구도가 레슬매니아 30과 비슷해졌다.[84] 로드 투 레슬매니아 기자회견에서 코디 로즈가 로만 레인즈에게 도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 결국 레슬매니아 Day2 메인 이벤트는[85] 코디 로즈 vs 로만 레인즈로 결정되었다. 또한 이 여파로 이제껏 큰 인기를 누리던 더 락이 악역으로 전환하는 일이 벌어졌다.[86][87] 현재 레슬매니아 40 DAY1 메인 이벤트로 세스 롤린스 & 코디 로즈 vs 로만 레인즈 & 더 락의 경기가 확정되었고 이와 별개로 엘리미네이션 챔버 경기를 통해 세스 롤린스가 보유하고 있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의 도전자는 드류 맥킨타이어로 결정되었다.[88]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이런 소동을 통해 작년보다 더 로드 투 레슬매니아에서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지는 이점을 얻기도 했다. 작년에는 파트 타이머인 로만 레인즈가 잘 등장하지 않는 바람에 코디 혼자서 쇼를 이끌어야 했지만 이번에는 더 락과 세스 롤린스까지 스토리에 참여하게 되면서 더 큰 홍보 효과가 나게 되었기 때문.[89][90]


[1]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WWE를 상징하는 인물들과 장면들을 넣은 인트로가 있다. [2] 특히 시대 구분의 경우 시작 지점은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는 편이나 한 시대의 끝은 모호한 경우가 많다. [3] 빈스의 할아버지, 셰인, 스테파니 남매의 증조 할아버지. [4] 원조 네이쳐 보이로 릭 플레어가 그를 동경해 별명을 따랐다고 한다. [5] 이런 탈퇴가 있었지만 NWA와는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6] 하지만 이런 무리한 확장을 우려한 빈스 맥마흔 시니어는 "그러다가 강물만 흐려놓는다."면서 주의를 줬다고 한다. [7] 스타케이드는 당시 NWA에서 가장 큰 프로레슬링 쇼였다. [8] 당시 프로레슬링은 NWA체제였기 때문에 지역 단체는 그 지역에서만 흥행할 수 있었다. 당연히 전국에 TV방송을 내보내는 단체는 WWF외에는 없었다. [9] 지금은 레슬매니아 32에서 기록이 경신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호왈 9만이지만 실제로는 약 7~8만 정도였다고. [10] 이때 빈스 맥마흔은 가족들을 모아두고 자신이 감옥에 갈지도 모르며, "감옥에서 청부 살해 당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WWF의 확장 과정에서 전국의 프로모터들에게 원한을 많이 샀기 때문이라고(WWE 50에서) [11] 사실 헐크 호건도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하다 왔기 때문에 테크닉에 부족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WWF의 당시 시대상 원 패턴 프로레슬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게 그 시절 유행이었기 때문. 오히려 헐크 호건의 전성기 시절에는 WWF내에서 테크니션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12] 귀족, 치과 의사(이 기믹으로 유명했던 것이 글렌 제이콥스, 바로 케인이었다), 쓰레기 청소부 같은 기믹도 있었다. 심지어는 소도 있었다. [13] 현 ROH의 PCO라는 선수로 실제로는 캐나다 출신 선수다. 나이가 지긋하지만 현재도 현역으로 뛰고 있고 제자들도 많이 길러내서 나름 존중받는 선수다. [14] 풀리 로우디드, 저지먼트 데이, 언포기븐, 백래쉬, 노 웨이 아웃 등이 인 유어 하우스 출신이었다. [15] WCW는 오너인 테드 터너 프로레슬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보니 유명 레슬러( 헐크 호건, 케빈 내시 등)나 프로모터( 에릭 비숍)들이 백스테이지를 좌지우지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에 WWE는 예나 지금이나 프로레슬링에 잔뼈가 굵은 빈스 맥마흔이 권력을 꽉 잡고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는 거의 없었고 심지어 WWE에서 활개치고 다녔던 내부 사조직인 클릭이나 사위인 HHH조차도 전성기 시절의 빈스 맥마흔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16] 이때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같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WCW를 떠나 WWF로 이적했고 WWF에서는 이들을 메인으로 내세워서 다수의 명경기들을 뽑아냈다. [17] 사실 골드버그의 경기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골드버그의 경기는 난입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WCW의 크루저웨이트급 경기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이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18] 여담으로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희생되어 WWE를 나온 브렛 하트는 WCW가 망하기 전에 뇌진탕과 교통사고로 선수생명을 마감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 WWE에 재등장하게 된다. [19] 이후 2014년에 이 WCW와 WWE의 시청률 경쟁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제목은 'WWE 먼데이 나잇 워 WWE VS WCW'. 한국에서는 IB SPORTS를 통해 자막 방영되었으며, 내레이션은 정찬우 아나운서가 맡았다. [20] 현재는 WWE 자체 방송국인 WWE 네트워크가 생겼고 회원수가 150만을 넘을 정도라서 이젠 시청률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전에도 워낙 이래저래 방송국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던 시기라 시청률에 대해서는 원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당시 이게 이슈가 되었던 것은 그 시절에는 인터넷보다 아직은 TV 시청률이 더 중요하던 시기라서 그런 것일 뿐. [21] 다만 방영권료에 대한 금액과 신규 팬들 유입에 절대적인 TV를 무시할수 없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청률은 유지돼야 한다. 한때 WWE에 위협적(?) 이었던 TNA 단체가 SPIKE TV와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몰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2] 2005년 10월부터 바뀐 WWE 공용 인트로에서 인트로 끝 부분에 The Power is Back이라는 문구가 나와 파워 이즈 백 에라라고도 불렸으나 현재는 사실상 사장된 명칭이다. 실제로 2005년 10월 The Power is Back 문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로 대체되었다가 에디 게레로가 사망한 2005년 11월 이후 다시 The Power is Back으로 돌아왔다가 또 다시 그냥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돌아가는 등 중구난방이었다. 파워 이즈 백이 사용된 인트로 [23] 사실 이들은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안 그래도 로스터가 넘쳐나는데 이들에게 줄 푸시도 없었고, WWF의 팬들도 WCW의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커 T DDP같은 WCW 출신 선수들은 개그 캐릭터화되었고, 이적 후 nWo 창설로 WWF의 숨통을 끊을 뻔했던 케빈 내시 스캇 홀은 각각 부상과 사고로 WWE를 나가게 되었다. 또한 ECW도 사부 샌드맨, 타미 드리머 등 대부분의 선수가 큰 푸시를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24] 사실 이 시기부터 정식으로 WWE 방송이 수입되었기 때문이었다. [25] RAW의 테마곡으로 Across the Nation을 떠올렸다면 시기에 케이블을 통해 WWE를 본 세대일 것이다. [26] 같은 방출이라도 2020년 즈음의 대량 방출과는 결이 다르다. 이 때는 빈스가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감추기 위해 돈을 빼돌리느라 쓸만한 선수들을 대량으로 해고헸고 또, 이렇게 해고된 선수들이 신생 메이저 단체인 AEW에 흡수되었기 때문. [27] 다만 2022년 여름, RAW가 TV-14으로 다시 돌리는걸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떴었고 실제로 위클리쇼 세그먼트에서 TV-14을 언급까지 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여러가지 이유로 보류가 된 것으로 보인다. [2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애티튜드 시절의 경기력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애티튜드 시절은 그동안 단순한 기술 조합에 의존한 덩치 큰 레슬러에 가려졌던 크리스 벤와, 커트 앵글 에디 게레로, 랍 밴 댐, 크리스 제리코 등의 테크니션들이 전면에 설 수 있던 시대였다. DX 더 락, 스티브 오스틴, 믹 폴리가 미칠듯한 엔터테이먼트의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그동안 숀 마이클스등의 예외가 아니고서야 전면에 서지 못했던 작은 체구의 선수들에게 푸시를 주면서 레슬링을 보는 재미도 만족시킨 것이 WCW와의 차이점이었다. WCW는 nWo 빌 골드버그의 연승행진으로 엔터테이먼트로서의 재미를 충족하긴 했지만, 정작 경기 자체는 재미없고 경기를 재밌게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는 선수들을 푸대접해서 WWE로 보낸 것이 WCW의 패배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PG 시대는 애티튜드 시대가 이끌어낸 경기력 발전이 지속된 시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9] CM 펑크가 위클리쇼도 아닌 PPV에서 의도치 않게 머리에 출혈이 터졌는데 WWE 메디컬팀이 우르르 몰려나와 즉시 지혈을 시작하였다. 경기는 수분간 아무것도 없이 일시 중지 되었고 피가 어느정도 멎은 다음에서야 경기를 다시 치루었다. [30] 이후 과도기를 거친 이후로는 경기 중 의도치 않게 출혈이 발생하더라도 경기를 중단하고 지혈하는 등의 사태는 사라지면서 선수들의 건강은 건강대로, 퀄리티는 퀄리티대로 챙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31] 그 절정이 2010년 개최되었던 레슬매니아 27이었는데 이 당시 온갖 간판 스타들이 부상 또는 은퇴로 공백이 생겨 대진표가 상당히 부실했었다. [32] 실제로 레슬매니아30은 리얼리티 에라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가깝고 30을 기점으로 리얼리티한 면모는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아무래도 CM 펑크와 WWE의 사이게 크게 틀어졌던 시기와 겹치다보니 CM 펑크에 대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렇게 설정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매니아들은 CM 펑크가 리얼리티 에라를 연 주인공이자 2014년 탈단과 함께 리얼리티 에라를 거의 끝냈다고 생각하는 편. [33] 실제로 CM 펑크가 파이프밤 직후 각본상 무기한 정직 처분을 받은 뒤 다시 복귀했을 때 본인 스스로를 '유튜브 센세이션'이라고 지칭했으며 WWE와 관련된 키워드가 트위터 트렌딩에 등극할때마다 생방송 도중 좌측 하단 자막으로 현재 관련 키워드가 몇 위에 랭크되어있는지 띄워주기도 하였다. [34] 경기에 참여한건 아니지만 NXT소속 멤버중 일부가 트리플 H의 등장신에서 터미네이터로 분한 트리플 H와 함께 등장한 저항군들로 등장했다. WWE 레슬매니아 22의 존 시나 등장신때 수행원으로 당시 산하단체 소속이던 CM 펑크가 등장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 이것까지 치면 진짜로 모든 경기에 NXT 출신들이 등장한게 된다. [35] 이 중 알트루스의 경우 웰니스 프로그램 적발로 인해 푸쉬를 날려먹어 어썸 트루스 이전 하이 미드카더 정도의 위상으로 돌아갔다. [36] 무적 선역 기믹의 필요성은 단체를 먹여살릴 정도로 중요하였지만 결국 존 시나의 대체재를 만들지 못했다. [37] 다만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으로 레거시 미디어를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의 TV시청률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였다. 2010년 WWE가 위기라고 불리던 시절 시청자수가 무려 500~600만명이었다. 2024년 기준 200만명만 넘어도 지상파&케이블 통합 1위를 하는 수치인 것을 감안하면 미디어 시장 자체가 10년 새 크게 격변한 것. [38] 셰인 맥마흔이 돌아오면서 WWE의 떨어진 시청률이나 주가를 언급하며 빈스를 디스하는 세그먼트를 한 것을 보면 WWE도 어느 정도 문제 인식은 하는 것 같다. [39] WWE네트워크 유료 가입자수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OTT시장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비대해져 이후 다가올 OTT 계약 시즌이 오면 역대 최고 딜을 갱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로 2023~2024년 WWE의 TV딜은 직전 계약 대비 수십%나 올랐을 정도로 매우 가치가 높아졌으며 아예 NXT는 무려 지상파 방송국인 The CW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40] 예외적으로 드레이크 매버릭의 경우는 SNS을 통해 방출된 심경을 들어내며 잠정 크루저웨이트 토너먼트에 참가해 방출된 상태에서 재계약해 트리플 H 덕분에 NXT에서 활동하고 있다. [41] WWE와 계약을 맺고 수련생 신분으로 미국에 거주중인 선수들 & 메인로스터 일부를 제외한 거주지가 미국이 아닌 선수들 & 수련생들 역시 미국으로 올 수 없는 상황이다. [42] 이러한 해고러쉬는 WWE에서 활동중인 선수들 외에도 프로듀서들이나 임직원들도 포함되면서 2020년부터 wwe.com에 있는 로스터 페이지에도 등록이 안된 선수들이 많이있다. [43] 그리고 1990년 골든 시절부터 WWE와 함께했던 언더테이커가 2020년 은퇴하며 시대의 끝을 알렸다. [44] 이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현재 빈스 맥마흔은 7월말부터 본격적으로 관중들을 수용하려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팬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덤. [45]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속에서도 무리하게 관중들을 받아야할정도로 WWE의 자금 사정이 안좋은 걸 수도 있다. 빈스 맥마흔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현재의 비판여론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을테니. [46] 현재는 퍼포먼스 센터에서 다른 경기장으로 바꾸었지만 결국 현 사태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관중을 받는대신 경기장주변에 1000개의 썬더돔을 설치해 시청자들이 집에서도 경기를 볼 수 있게 하였다. [47] 일부 LED 모니터에 나오는 팬중에 장난삼아 본인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팬들도 있어 방송사고도 터졌고 WWE에선 곧바로 해당 팬들을 차단한다. [48] 사모아 조, 알레이스터 블랙, 브론 스트로우먼, 브레이 와이어트같은 선수들도 포함되었다. 얼마안가 빈스를 제외한 트리플H 및 WWE 수뇌부들은 다른곳에도 영향력이 큰 사모아 조가 타단체로 이적할것을 우려해 다시 재영입해서 NXT로 보냈다. 그러나 WWE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NXT 선수들의 해고는 트리플H와 상관없이 빈스 맥마흔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끝나지 않고 있다. [49] 이 시기 NXT에서 선수들을 키웠던 트리플 H는 심장 관련 질환으로 인해(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질환이라고 한다.) 잠시 요양차 WWE를 떠나 있었다. 그 사이 존 라우리나이티스와 케빈 던이 NXT에서 깽판을 쳤던 것. [50] 임팩트 레슬링 & AEW는 WWE에서 활동하다 비용절감으로 방출된 실력있는 선수들 및 퇴사한 선수들에 주목하며 그들을 영입하려고 하였고, 특히 부자 토니 칸이 창설해서 자금력이 받쳐주는 AEW에서는 이런 NXT 및 WWE 출신 선수들을 다수 받아들여 크게 발전하게 된다. [51] 상술한 대로 심장 질환 치료차 빠진 상태. [52]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WWE 섬머슬램(2021)에도 특별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53] 오죽했으면 하도 썰렁한 분위기에 브록이 크게 화를 냈다는 후문이 있었다고 한다. [54] 이 또한 로만의 탓을 하기도 어려운 게 원래 로만은 한번 백혈병으로 은퇴한 것을 실적이 떨어지니까 억지로 다시 데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로만의 몸상태는 백혈병이 완치되었긴 했지만 원래는 가급적 레슬링을 하면 안 되는 게 맞다. 이는 즉, 전 백혈병 환자인 레슬러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로스터의 질과 양에서 형편없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55] 애시당초 PLE에서 3연속으로 세스 롤린스와 명경기를 만들어낸 것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썰렁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세스와 함께 몸을 던져 명경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탓에 부상에 신음하게 된 것. [56] 특히 본명이 들어간 링네임 [57] 인사 부문 수석 부사장은 빈스 맥마흔의 성추문 사건으로 해고된 존 로리나이티스의 뒤를 이어 다시 한번 맡게 되었고 CCO는 빈스 맥마흔이 비공식적으로 맡고 있었지만 트리플 H에게 넘어오며 WWE의 기업 정보란에 공식적인 직함으로 추가되었다. [58] 케빈 던과 브루스 프리처드는 빈스 맥마흔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트리플 H가 수장이 되면 이들도 쫒겨날 거라는 말도 있었지만 권한만 깎였을 뿐 여전히 WWE에 재직 중이다. 존 라우리나이티스와 달리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트리플 H와 반목하기는 했어도 워낙 공이 많은 임원들이라 잘리지는 않은 듯. [59] 다만 케빈 던은 결국 2024년이 되면서 사임하였다. [60] 어렸을 때부터 WWE 팬이었던(몇 번이나 WWE PPV에서 관중석에 있던 장면이 잡힌 적이 있다.) 맥컬리 컬킨조차도 대체 언제까지 브록 레스너 vs 로만 레인즈돠 우소즈 vs 뉴 데이 경기를 봐야 하냐며 손사레를 치고 AEW로 넘어갔을 정도였다. [61] 실제로 트리플 H가 Executive Vice President에서 Cheif Content Officer, 즉 최고 콘텐츠 책임자로 승진한 뒤로는 시청률 역시 수 년 만에 갱신하는 등 순항을 하고 있다. [62] 브록 레스너 같은 선수는 불만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브록 레스너는 빈스 맥마흔 체제에서 로만과 함께 가장 혜택을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로만은 그나마 백혈병 때문이라는 핑계라도 있지 브록은 평소에는 쇼에 참전하지도 않고 놀고 먹다가 중요한 시점에 좋은 위치를 골라먹는 위치였기 때문. 물론 이는 WWE가 위기였는데 비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뒤집을 만한 이름값을 가진 선수가 없었던 탓도 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브록이 그렇게 대단히 필요한 선수였는지는 또 의문이긴 하지만. 이 시기의 브록의 경기 시간은 10분을 넘는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했을 정도로 과실만 따 먹는 형국이었다. [63] 선수들 혹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하우스쇼 축소를 팬들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하우스쇼는 최근 들어 흑자를 내기 어려워지기도 하였고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과거처럼 발품을 뛰며 하우스쇼를 개최할 이유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64] 기존 WWE 주주 15%, 빈스 맥마흔 개인 소유 34% [65] 애시당초 합병 파트너로 엔데버를 고른 이유가 다른 쪽에서는 프로레슬링 크리에이티브 팀 수장으로 트리플 H를 지목하고 빈스의 간섭을 불허했지만 엔데버에서만큼은 빈스의 간섭을 용인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66] 단 이 각본은 빈스-코디의 상호 협의 하에 했다는 이야기와 트리플 H가 이전부터 준비 하고있었던 각본이다 라는 여러 추측도 있다. [67] 예시로 브론슨 리드의 테마곡 제목은 War Ready였으나 현재는 Battle Tested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68] 추가로 이런저런 핑계로 몇몇 선수들의 출연까지 배제하며 막고 있다. [69] 정확히는 2025년 1월부터 RAW의 중계권 외에도 스맥다운, NXT, PLE의 중계권도 다른 방송사와의 계약이 종료되면 넷플릭스로 옮겨지게 되며 기타 WWE 네트워크에서 방송되던 프로그램들도 전부 넷플릭스에서 앞으로 방송된다. [70] WWE에서는 단체 최고의 쇼인 레슬매니아에서 챔피언에게 도전할 선수를 로얄럼블 우승자로 정하고 있다. 즉, 우승자인 코디 로즈는 세스 롤린스가 보유하고 있는 RAW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과 로만 레인즈가 보유하고 있는 스맥다운의 WWE 유니버셜 챔피언십 중 하나에 도전할 권리를 갖고 있던 것. [71] 원래 세스 롤린스는 레슬매니아 40 Day 1 메인 이벤트로 세스 롤린스 vs CM 펑크의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유력했다. 그러나 정작 상대 선수인 CM 펑크가 로얄럼블에서 헥헥대는 모습을 보인 데다가 로얄럼블에서 삼두근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그 다음날 RAW에서 밝혀지면서 레슬매니아 참전이 어렵게 되었다. 사실 후술할 더 락의 참전도 따지고보면 CM 펑크의 부상이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 [72] 사실 원래 코디가 차지했어야 할 벨트를 당시 회사 사정과 빈스 맥마흔의 강짜로 한 해 양보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73] 당연히 팬들은 더 락이 TKO의 이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냥 축하했을 뿐, 이게 스토리와 연결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74] 다만 이건 어쩔 수 없는 게 로만은 원래 백혈병 환자였다가 완치되었던 터라 자주 나올 수는 없는 몸이었다. 즉, 로만은 복귀하면서 처음부터 파트 타이머로 계약했던 것. 물론 애시당초 오너의 총애만으로 이런 환자가 벨트를 차지하고 3년이나 버틴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이긴 하다. [75] 그나마 트리플 H가 기획한 블러드라인 각본이 대박을 터뜨려서 평이 좋아지긴 했지만 원래는 진작에 바뀌었어야 했을 벨트 주인이 아직도 바뀌지 않은 것은 사실상 빈스 맥마흔이 2020년대 들어 트리플 H가 공들여 키워왔던 대다수의 선수들을 방출해버려서(빈스가 자신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돈 때문에 그랬다는 썰이 있다.) 벨트에 도전할 만한 선수들의 씨를 말려버린 결과다. 거기다 무려 3년이나 벨트를 유지하면서 일반 PLE에서 챔피언 교체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무려 3년이나 정상의 자리에서 군림하던 챔피언을, 설령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PLE에서 챔피언 교체극을 연출한다면 이는 챔피언 벨트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 한마디로 로만이 너무 길게 벨트를 유지하면서 챔피언 벨트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된 것이다. [76] 사실 이 때는 코디에게도 문제가 없지만은 않았고(세스 롤린스와의 3연전 이후 부상으로 거의 6개월을 빠졌다) WWE의 사정(엔데버와의 합병)도 있었다. 하지만 팬들의 바람이 무참히 무산된 것 또한 사실이었다. [77] 또한 이 때도 더 락 vs 로만 레인즈 루머가 있었긴 했지만 이 때는 락이 영화 <블랙 아담> 촬영을 이유로 참가를 거절했다. 물론 락의 개인적인 스케쥴 문제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락은 WWE가 가장 힘들었을 때 돕기를 거절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78] 또한 이 때는 팬들로서도 더 락 vs 로만 레인즈 경기가 코디 로즈 vs 로만 레인즈 경기보다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로 긍정적이었다. 더 락이 은퇴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상 더 락 vs 로만 레인즈의 재경기가 더 급하다고 본 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또, 상술한 대로 코디가 부상으로 인해 그리 자주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어필이 어려웠다는 사정도 있었다. [79] 그렇다고는 해도 코디가 레슬매니아 39에서 로만을 꺾지 못한 것은 빈스가 짓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80] 2022년에는 부상으로 후반기에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으나 2023년 들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WWE에서 가장 선역 탑의 위치에서 밀도있게 활동하면서 회사에 충성한 게 코디였다. 당장 2023년에 코디는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을 정도다. [81] 이에 분노한 몇몇 WWE 팬들은 더 락의 장녀로 NXT의 GM이 된 에이바 레인의 SNS에 그녀를 살해하겠다고 협박까지 할 정도였다. [82] 모기업의 압력이라 트리플 H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코디의 멘탈 케어를 하는 등 트리플 H도 나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83] 물론 그렇다고 해도 레슬링 팬들의 화력이 훨씬 셌다. 그래도 드웨인 존슨 역시 유명 배우이기도 했던 만큼 이쪽 화력도 상당했다고. [84] WWE는 과거 레슬매니아 30에서 이미 레슬러는 은퇴하고 영화배우가 된 바티스타를 복귀시켜 트리플 H와의 경기를 레슬매니아 30의 메인 이벤트로 내세우려 했고 로얄럼블 우승 트로피까지 쥐어줬지만 하필 바티스타가 전혀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바티스타의 근육 자체가 크게 줄어들고 뱃살만 남았다.) 팬들의 비난이 쇄도하였고 결국 WWE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대니얼 브라이언을 밀어줌으로써 비난을 피했고, 다행히 대니얼 브라이언이 주인공이 되었던 레슬매니아 30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85] 보통 Day2 메인 이벤트가 레슬매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로 꼽힌다. [86] 사실 이 일로 락이 욕을 좀 먹긴 했지만 빠른 태세전환으로 인해 악영향을 최소화했다. 아예 팬들의 의견에는 귀를 막고 제 좋을 대로만 했던 빈스와는 그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또한 더 락은 이참에 블러드라인에도 가입하였다. [87]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더 락과 WWE는 완전히 전화위복이자 Win-Win이 되었는데, 우선 더 락은 자신의 프로레슬링 영향력과 인기, 실력 등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했으며 또한 레슬매니아에서 승리함으로써 향후 WWE 챔피언십에 도전할 여지도 남겨놓았다. WWE도 코디 로즈와 로만 레인즈, 세스 롤린스, 더 락, 드류 맥킨타이어, CM 펑크까지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아서 레슬매니아 40에서 역대급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88] 단지 레슬매니아 Day 1의 메인 이벤트를 세스 롤린스 vs 드류 맥킨타이어의 경기로 할 지, 아니면 세스 롤린스 & 코디 로즈 vs 로만 레인즈 & 더 락으로 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것. 사실 선수들의 이름값만 보면 레슬매니아 Day 1의 메인 이벤트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세스 롤린스가 부상때문에 두 경기나 뛸 수 있을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 이었는데 다행히 세스가 의사로부터 출전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Day 1 메인 이벤트는 코디 로즈 & 세스 롤린스 vs 더 락 & 로만 레인즈로 정해졌다. [89] 다만 이로 인해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스토리라인이 꼬였고 또, 그 도전자인 드류 맥킨타이어에게 가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일부 빼앗기게 되었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더 락이 도전자가 되었다면 그 정도는 우스워보일 정도로 스토리라인이 꼬였겠지만. [90] 그래도 드류 역시 꾸준히 등장하면서 나름 스포트라이트를 확보했다. 여기에 부상으로 전선에서 이탈한 CM 펑크까지 동원하면서 어찌어찌 빌드업을 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게 1년내내 세스가 몸을 갈아넣어가며 위상을 높이려고 애썼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이 WWE 유니버셜 챔피언십보다 중요도가 떨어져 보인다는 사실은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는 문제까지는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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