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4:34:40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99년 튀르키예 이즈미트 지진
발생일시 1999년 8월 17일 03시 01분(UTC+3)
진앙 튀르키예 이즈미트 서부 해역
진원깊이 15km
규모 Mw 7.6
최대진도 Ⅹ(Intense)
쓰나미 해일경보
2.52m: 튀르키예 이즈미트 서부 연안
사상자 최소 17,127명 사망
최소 43,953명 부상
이재민 최소 5,840명
1. 개요2. 발생 및 피해3. 여파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1999 Gölcük depremi(İzmit depremi, Marmara depremi, 17 Ağustos 1999 depremi)


1999년 8월 17일 튀르키예 이즈미트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대지진. 진원의 깊이도 얕은 데다[1] 내진 설계가 적용된 건축물이 거의 없다는 점, 이즈미트, 그리고 이즈미트 인근의 이스탄불이 튀르키예의 주요 경제-산업 중심지라는 점 때문에 튀르키예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2. 발생 및 피해

간단히 말하면 참혹 그 자체였다.

북아나톨리아 단층대가 동부아나톨리아 단층대를 따라 스트라이크 슬립(두 단층이 미끄러짐) 현상이 발생하면서 막대한 파열 에너지가 방출되었고 150km에 달하는 넓은 구간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재수없게도 지진파 속도보다 단층 파열 속도가 더 빠른 초전단 지진이었고 안그래도 지진 발생 시간도 새벽이었는데 지진파가 곧바로 일대를 강타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제대로 대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붕괴되는 건축물에 깔려 죽었다. 마르마라 해에선 높이 2m 이상의 쓰나미가 발생했고 155명이 쓰나미에 의해 사망했다.

특히 이스탄불 서쪽은 연약한 신생대 퇴적암으로 구성되어서 지진에 매우 약했고 그 위에 건설된 수많은 산업 및 공공시설들이 붕괴되거나 파손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여러 개의 정유공장과 자동차 공장들이 파괴되어 튀르키예에 경제적 피해가 속출했는데 연간 1100만 톤의 정유를 생산할 수 있는 튀르키예의 석유 기업인 Tüpraş의 정제소가 파괴되는 바람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나 몇 일 동안 반경 3마일 이내에 출입이 금지되었고 수도 시스템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려 제대로 된 화재 진압도 못 하다가 노력 끝에 겨우 5일 만에 화재 진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프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많은 육교와 터널들도 붕괴되었고 유럽 횡단 고속도로도 무너져내려 교통 시스템도 마비되었다. 튀르키예 해군 본부와 무기고도 붕괴되었으며 12만 가구의 집이 수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어 25만 명의 이재민도 발생했다.

튀르키예 측에선 공식 사망자가 1만 7000여명이라고 집계했지만 실제 사망자는 그보다 훨씬 많은 4만 5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측하는 소식통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튀르키예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이었을 뿐 실제론 튀르키예군 아타튀르크가 만든 세속주의 국가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튀르키예의 모든 것을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가 막대한 피해를 입자 각국에서 구조대를 파견하고 지원금을 주었는데 특히 그 앙숙 그리스도 구조대를 파견했다. 튀르키예의 형제국인 아제르바이잔은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영국, 스페인, 폴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프랑스, 일본,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집트, 스위스, 아이슬란드도 구조대를 파견해 한 마음으로 잔해속에 고립된 튀르키예인들을 구조했고 튀르키예인들은 이들 국가들의 노고에 감동을 느꼈다. 인도도 튀르키예에 막대한 지원금을 제공했으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직접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

이러한 각국의 노력 끝에 지진 피해 지역은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지진 이후 급락하던 경제와 도시 인구도 회복되었다.

3. 여파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침체되었던 튀르키예였는데 이즈미트 대지진으로 인해 제대로 타격을 받아 GDP는 자그마치 3.4%나 역성장했다.

이 지진을 계기로 튀르키예에서 부실공사 문제가 대두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특히 아파트와 같은 거주공간들이 불법 건축, 기준 미달 건축, 부적합한 지반 위 건축, 건축비용 절감을 위한 자재 횡령 등 부실공사 종합세트로 지어죠 사상자가 더 많이 발생해 건설사에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일부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지만 상당수가 법집행이 연기된 데다 2007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덕에 대부분의 책임자들은 책임도 지지 않은 채로 계속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튀르키예인의 입장에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지진 이후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대비, 지진 피해 복구, 보상 명목으로 지진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24년이 지났는데도 정부만 바뀌고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채로 다시 엄청난 재난이 닥쳤다.

4. 둘러보기

문서가 존재하는 20세기 지진
[[틀:지진/19세기|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order: 1px solid #fff; background: currentcolor"
]]
20세기
[[틀:지진/2000년대|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4px; border: 1px solid #fff; background: currentcolor"
]]
{{{#!wiki style="margin:0 -10px -5px; word-break: keep-all"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50%;"
{{{#!folding [ ~ 1950년대 ]
{{{#!wiki style="margin:-5px 0 -15px"
<colcolor=#fff><rowcolor=#fff> 발생일 규모 지진명
<colbgcolor=#868e96>
1906. 4. 6.
M 6.1 1906년 인천 해역 지진
1906. 4. 18.
M 8.3 샌프란시스코 지진
1909. 6. 11.
M 6.2 1909년 프로방스 지진
1920. 12. 16.
M 8.7 1920년 간쑤성 대지진
1921. 3. 20.
M 4.2 1921년 경주 지진
1923. 9. 1.
M 8.3 1923년 관동대지진
1925. 12. 9.
M 4.4 1925년 홍성 지진
1926. 10. 5.
M 5.0 1926년 경상북도 서부 지진
1928. 1. 12.
M 4.3 1928년 지리산 지진
1935. 12. 7.
M 5.0 1935년 의성 지진
1936. 7. 4.
M 6.0 지리산 쌍계사 지진
1936. 10. 19.
M 5.4 1936년 삼척 해역 지진
1938. 8. 22.
M 4.8 1938년 지리산 지진
1939. 1. 10.
M 5.0 1939년 대전 지진
1939. 1. 24.
M 8.3 1939년 치얀 지진
1939. 8. 31.
M 5.3 1939년 청주 지진
1939. 12. 26.
M 7.8 에르진잔 대지진
1944. 12. 7.
M 7.9 1944년 도난카이 대지진
1944. 12. 19.
M 6.8 조선-중국 국경 지진
1946. 4. 1.
M 8.6 1946년 알류샨 열도 지진
1946. 12. 21.
M 8.0 1946년 난카이 대지진
1948. 6. 28.
M 7.1 1948년 후쿠이 지진
1950. 8. 15.
M 8.7 1950년 아삼 지진
1952. 3. 19.
M 6.4 1952년 강서 지진
1952. 4. 24.
M 5.6 1952년 은천 지진
1952. 11. 5.
M 9.0 세베로쿠릴스크 지진
1956. 2. 13.
- 1956년 대한민국 지진
1959. 5. 4.
M 8.3 1959년 캄차카 지진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50%; min-height:2em"
{{{#!folding [ 1960년대 ~ ]
{{{#!wiki style="margin:-5px 0 -10px"
<colcolor=#fff><rowcolor=#fff> 발생일 규모 지진명
<colbgcolor=#868e96>
1960. 2. 29.
M 5.8 1960년 아가디르 지진
1960. 5. 2.
M 9.5 칠레 대지진
1960. 10. 8.
M 6.8 1960년 길주 해역 지진
1963. 9. 6.
M 6.3 1963년 영덕-포항 해역 지진
1963. 9. 7.
M 6.6
1964. 3. 27.
M 9.2 알래스카 지진
1964. 6. 16.
M 7.5 1964년 니가타 지진
1965. 8. 3.
~1970. 6. 5.
M 6.4 마츠시로 군발지진
1973. 9. 29.
M 7.8 1973년 나진 해역 지진
1975. 2. 4.
M 7.0 1975년 하이청 지진
1975. 6. 29.
M 7.3 1975년 속초 해역 지진
1976. 7. 27.
M 7.8 1976년 탕산 대지진
1976. 7. 28.
M 7.4
1976. 8. 16.
M 8.0 1976년 필리핀 모로 만 지진
1976. 10. 6.
M 5.4 1976년 홍도 해역 지진
1976. 11. 24.
M 7.3 1976년 살디란 지진
1978. 9. 16.
M 5.2 1978년 속리산 지진
1978. 10. 7.
M 5.0 1978년 홍성 지진
1980. 1. 8.
M 5.3 1980년 의주 지진
1981. 4. 15.
M 5.2 1981년 포항 해역 지진
1982. 2. 14.
M 5.6 1982년 사리원 지진
1982. 3. 1.
M 5.0 1982년 울진 해역 지진
1983. 5. 26.
M 8.1 1983년 아키타 지진
1985. 9. 19.
M 8.0 멕시코시티 대지진
1988. 12. 7.
M 6.8 아르메니아 대지진
1989. 10. 17.
M 7.2 샌프란시스코 지진
1990. 6. 21.
M 7.4 1990년 이란 지진
1990. 7. 16.
M 7.8 1990년 필리핀 루손 지진
1992. 4. 13.
M 5.8 1992년 루르몬트 지진
1993. 7. 12.
M 7.8 1993년 홋카이도 해역 지진
1994. 4. 22.
M 5.3 1994년 울산 해역 지진
1994. 7. 26.
M 5.9 1994년 홍도 해역 지진
1994. 10. 4.
M 8.2 1994년 홋카이도 동방 해역 지진
1995. 1. 17.
M 7.3 효고현 남부 지진
1995. 7. 24.
M 5.3 1995년 백령도 해역 지진
1996. 12. 13.
M 5.6 1996년 영월 지진
1997. 3. 27.
M 6.6 1997년 가고시마현 사쓰마 지방 지진
1997. 5. 13.
M 6.4
1997. 6. 26.
M 5.0 1997년 경주 지진
1999. 1. 25.
M 6.2 1999년 콜롬비아 지진
1999. 8. 17.
M 7.6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1999. 9. 21.
M 7.3 921 대지진
2000. 6. 17.
~21.
M 6.5 아이슬란드 지진
2000. 6. 6.
~9. 28.
~ M 6.5 이즈 제도 군발지진(2000년 7월)A
2000. 10. 6.
M 7.3 2000년 돗토리 지진
A : 해당 군발지진의 시작일은 위의 아이슬란드 지진보다 먼저이지만, 가장 큰 지진인 이 문서에 집중적으로 서술된 규모 6.5의 지진은 2000년 7월 1일에 발생함을 고려하여 2000년 7월 1일 지진을 본진으로 분류하여 위의 문서인 아이슬란드 지진 뒤에 기록했다.
}}}}}}}}}}}} ||



[1] 고작 15km로 대만의 921 대지진보다 더 얕다.(진원 깊이 3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