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2:02:42

14번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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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geri Ke-14 Malaysia( 말레이어), 14th Malaysian State(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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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유력한 후보

1. 개요

말레이시아와 그 주변국에서 나돌고 있는 주제이다. " 51번째 주"의 말레이시아 버전이라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말레이권의 여러 지역들을 통합하여 생겨난 연방 국가로, 원칙적으로 다른 지역의 편입이 가능한 구조이다. 그리고 실제로 1948년 말라야 연방이 결성된 이래 바다 동쪽의 사바, 사라왁이 추가로 가입하여 확장된 예가 존재한다. 때문에 이후에도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편입이 거론되곤 한다.

2. 역사

사람들이 지도를 보면 보르네오 섬 북부지역까지도 말레이시아령임을 알고 깜짝 놀랄 때가 많은데, 사실 원래의 말레이시아는 말라야라고 하는 말라야 반도의 남부 지역이다. 이곳은 1946년 말라야 연합을 거쳐 1948년 말라야 연방으로 개편되었고 1963년까지 지속되었다.

1957년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나, 인도네시아 태국과 같은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조건이 국가발전과 국제화를 가로막았고, 당시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은, 물론 안 좋은 의도가 깔려있긴 하지만 영역을 확장하여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그리하여 경제발전을 더 촉진시키고자 했다. 말라야가 영국령이었던 관계로, 같은 영국령이었던 싱가포르, 브루나이, 사라왁, 사바(당시 북보르네오)가 그 후보였다. 싱가포르와 브루나이에서는 합병을 원했으며, 이 때문에 둘은 유력한 후보로 빠르게 부상했다. 사라왁 사바의 경우,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싱가포르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다.

브루나이는 중간에 연방 합류 의사를 철회했고, 이후 1963년 9월 16일 사라왁, 사바, 싱가포르가 결국 가입이 성사됐다. 그런데 정작 사라왁, 사바에게 가입을 권유한 싱가포르는 화교가 인구의 다수를 점한다는 특성 때문에 말레이시아 중앙 정계에서 미움을 받아 결국 2년만에 강제로 탈퇴당했다.

이후 14번째 주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타 권역에서의 관심도는 낮지만 동남아에서만큼은 수시로 거론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3. 유력한 후보

대표적인 14번째 주 떡밥으로 거론되는 경우들은 다음과 같다.[1]
일각에서는 아예 같은 말레이권인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까지 합쳐서 마필린도(Maphilindo)를 건설하자고 주장했으나 이렇게까지 확대된 방안은 정부 차원에서 고려된 바가 없다. 위에서 언급한 후보들조차도 같은 영국령 출신임에도 생활권 등에 괴리감이 많아 말이 많았는데, 이들은 그것도 영국령도 아니었으니 현실성이 없다. 특히 필리핀은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인 크리스트교 국가로 종교적으로도 이질적이기에 통합되기가 매우 어렵다.

3.1. 싱가포르

싱가포르의 주 편입은 보통 이러한 논의에서 영토가 넓은 대국이 소국을 압박하는 평범한 흐름과는 달리 소국 싱가포르보다는 대국 말레이시아의 의향이 더 관건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싱가포르는 연방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말레이시아 측에서 추방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3] 오죽하면 싱가포르가 독립했을 때 리콴유 전 총리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싱가포르가 쫓겨났던 이유는 인종적 문제 때문인데,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이 다수지만 싱가포르는 중국인이 다수이다. 말레이시아 내부의 말레이인과 중국인 간의 대립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당시에도 싱가포르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는데[4] 경제적으로 잘 사는 지역은 계속 안고 가고 싶을 법한데도 그렇지 않고 내쫓을 정도로 인종적 문제가 심했다. 더욱이 지금은 말레이시아가 그냥저냥 살만해졌기 때문에 싱가포르를 편입할 요인이 더욱 사라졌다. 싱가포르가 다시 돌아온다면, 인종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역으로 불편할 상황이다. 게다가 싱가포르인들의 생활 수준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쿠알라룸푸르인들보다도 훨씬 높아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지역감정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오늘날엔 말레이시아 말레이인도 꽤 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아직까지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생활 격차는 크다. 말레이시아도 동남아시아에서 드물게 90년대에 경제성장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지만[5] 아직 선진국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든 반면,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단기간에 경제성장에 성공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단적으로 양국의 1인당 명목GDP는 말레이시아가 1만 5천불을 겨우 넘은 방면, 싱가포르는 무려 8만불을 넘는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말레이시아의 싱가포르에 대한 경계가 해소되어야지만 좀 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만약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선진국에 진입한다면 논의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

다만 싱가포르도 1960년대에는 분리를 꺼렸을지 몰라도 이제 분리되어서 지낸 지 반 세기가 지난 만큼 이제는 통합에 별 미련이 없다. 사실 싱가포르는 오늘날 도시국가로서 자립에 성공한 정도를 넘어서 선진국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어 딱히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말레이시아의 부미푸트라 정책이 폐지되지 않는 한 중국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통합할 일은 없을 것이다.

3.2. 브루나이

브루나이는 사라왁 사이에 끼어있는 소국인데, 한때는 보르네오 북부부터 필리핀 남부까지도 차지하던 대국이었으나, 영국과 스페인의 삥뜯기로 지금처럼 소국으로 전락하였다. 1960년대 사라왁, 사바, 싱가포르와 더불어 주요 후보국이었으며,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3세가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자체적으로 독립했다.

현실적으로 그나마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인종적으로 브루나이는 싱가포르와는 달리 말레이인이 압도적이라, 말레이시아 정부 입장에서 그리 불편할 이유가 없다. 이미 브루나이는 문화적으로는 말레이시아로 종속된 상황이며,[6] 사람들도 설상 본인들이 말레이시아로 편입되더라도 별 불만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브루나이에는 말레이시아 국적자들이 매우 많다. 브루나이는 말레이인이 아니면 국적을 잘 주지 않기 때문에 중국인과 같은 비말레이인들은 말레이시아 국적일 때가 많은 탓이다.

다만 말레이인이라고 해서 말레이시아라는 국가에 통합되는 것에 100% 환영하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간 브루나이는 산유국으로서 매우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어 현 상태에 만족하고 있기에 굳이 자신들보다 생활 수준이 낮은 말레이시아에 가입하려는 의지가 그리 크지 않다. 사실 말레이인이라고는 해도 브루나이가 위치한 곳은 동말레이시아 지역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주도권을 지닌 서말레이시아와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당장 브루나이인들의 말투를 봐도 말레이시아인들의 말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7]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도 이질감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만약 브루나이가 말레이시아에 가입한다면 말레이시아 내 9개 주들과 마찬가지로 국왕을 선출할 권한을 갖게 되는데, 그렇다는 것은 브루나이인이 말레이시아 국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근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인과 상당히 이질적인 민족 구성을 지니고 있어 말레이시아 본토인만큼 정계 진입이 활발하지 못한데 브루나이는 그런 약점이 없으므로 말레이시아의 정계에 보다 크게 관여할 수 있다. 연방의 구성원으로서 브루나이가 연방 정치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8]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주도권을 어느 정도 내어주어야 한다는 데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다만 브루나이는 석유가 바닥나면 경제적으로 박살나는 현실이다.[9] 만약 현재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하고 브루나이 국왕의 권위 역시 지금 같아지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진지하게 거론될지도 모른다. 사실 브루나이 주변의 지역들도 본래 브루나이와 유사한 술탄이 존재했지만 어찌저찌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한 것이기에, 브루나이 술탄만의 특별한 카드였던 오일 머니가 바닥난다면 여타 술탄의 길을 따르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3.3.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

같은 말레이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만 문제는 오히려 같은 말레이권이지만 따로 지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같은 말레이권임에도 불구하고, 말레이권의 지휘권 쟁탈전 및 내부적인 인종갈등 등으로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상황이 심각하다. 즉, 애당초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인도네시아 전체가 말레이시아와 국가연합을 이루지[10] 인도네시아 일부만이 편입될 가능성은 없다.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 중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에 반감을 품은 지역이 말레이시아에 편입되는 시나리오는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좌시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11] 주도권 측면에서도 경제력은 말레이시아가 더 우세하지만 인구와 경제 규모는 인도네시아가 더 우세하다는 미묘한 경합 상태에 있어 누구 서로가 양보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유럽 식민 시대에 영국령이었다가 네덜란드로 넘어간 곳들 중 일부를 말레이시아로 편입하자는 논의도 있다.[12] 다만 이 역시 100년도 더 전에 그랬던 것을 근거로 삼기가 어렵다. 위에서 말했듯 식민 시대의 역사를 거론하면서 영유권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양국관계가 진전된다면 일부 영토 정도가 아니라 양국의 통합도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영유권이 조정된 사례로는 사바 주 근처의 시파단과 리기탄 등이 2002년에 말레이시아 사바 주에 편입된 정도뿐이다. 만약에 나투나 제도가 편입된다면 문화적인 이유로 일부는 트렝가누에, 일부는 사라왁에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리아우 제도(싱가포르 남부)가 편입된다면 조호르에[13]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현재의 사례는 매우 군소 제도에 그쳐 14번째 주에까지 이르진 못하고 있다.

3.4. 태국 남부(일명 빠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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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빠타니 다루살람"이라고 불리는, 분리주의자들이 빠타니를 태국에서 독립시켜 별도의 국가를 만들거나 말레이시아로 편입하자는 것이다.

빠타니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빠타니, 얄라, 빠타니, 나라티왓의 3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14] 이 지역은 말레이인 다수 지역이며,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태국인들은 많지 않다. 원래 이 지역은 말레이계 이슬람 국가인 파타니 술탄국이 있던 곳으로 18세기 후반 짜크리 왕조가 파타니 술탄국을 정복한 후 효과적인 통제를 위해 파타니 술탄국을 7개의 속국으로 쪼갰는데, 1909년 태국이 영국과 국경을 획정하는 과정에서 7개의 속국들 중 크다, 클란탄, 퍼를리스, 트릉가누는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어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주가 된 반면, 태국령으로 남은 빠타니, 얄라, 나라티왓은 술탄제가 폐지되고 정식으로 태국의 일개 주로 재편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원치 않게 태국으로 편입되면서, 이 곳에서는 무장투쟁까지도 감수하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고, 이는 점차 말레이시아로의 가입 떡밥으로 이어졌다. 정 가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예 3개 주를 하나로 합쳐 그냥 '빠타니 다루살람'이라는 1개의 주로 하자는 것이 주류다. 그러나 이미 3개 주로 분리된 지 오래라, 무리하게 통합할 경우 내부적인 분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그러면 이 3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15][16] 그리고 빠타니 내부에서도 심각한 차이가 있으니 태국 행정구역상 빠타니와 나라티왓은 말레이인이 압도적으로 다수이지만, 얄라는 말레이인과 태국인, 그 어느 쪽도 압도적으로 다수이지 않은 반반으로 설상 빠타니가 말레이시아로 가입하더라도 얄라는 입장이 애매모호하니 주민투표를 부치거나 해야 하며 그러면 반쪽짜리 편입만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위 선택지와는 달리 가능성이 매우 낮다. 왜냐하면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는 달리 말레이권이 아닌 별개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근연 관계가 희박한 국가에게 영토 할양을 선뜻 반길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다.[17] 격오지라면 또 모를까[18] 심지어 송클라에 속한 핫야이 도시권은 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권이기 때문에 더욱 가능성이 낮다.


[1] 구글 검색 결과를 인용. [2] 가령 현행 대한민국의 도는 9개(강원특별자치도, 경기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충청남도, 충청북도)이나 경기도 경기북도/ 경기남도로 나눠진다면 10개가 된다. [3] 영토 국가로서 도시국가보다 대국일 수밖에 없는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를 쫓아냈다는 게 선뜻 납득이 되지 않기에 마치 싱가포르가 독립운동이라도 해서 독립을 쟁취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4] 1950년대 당시 싱가포르는 1인 소득이 약 400불, 말레이시아는 200불 가량이었다. [5] 실제로 숱한 국가들이 빠진 중진국 함정의 정체 속에서 그나마 말레이시아는 벗어날 가능성이라도 예견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물론 대다수 국가가 이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2020년대 초 기준으로도 아직 예견의 단계에 있다. 특히나 이웃 태국이 30~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만년 중진국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과연 다를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아직 남아있다. 그래도 태국과는 달리 최근 들어 선진국 문 앞까지는 쫓아온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기는 하다. [6] 상당수의 브루나이인들은 말레이시아의 매체들을 즐기며, 자체적인 매체는 상당히 부실하다. 그나마 자국 가수로서 유명한 사람은 머리아 에어스(일명 마리아)가 있지만, 말레이시아의 그 어느 가수들과는 급 자체가 비교가 안 된다. [7] 그나마 브루나이인들은 수도권 말투를 80% 이상 알아듣지만, 수도권 사람들은 브루나이 말투를 약 30% 정도밖에 못 알아듣는다. 애초에 브루나이 사투리가 남들은 알아듣기 힘든, 굉장히 난해한 사투리다. [8] 애당초 그런 영향력조차도 행사할 수 없다면 브루나이인의 정치적 의견이 국가 전체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니 브루나이로서도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할 이유가 전혀 없다. [9] 종종 두바이와 같다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상은 크게 다르다. 애초에 두바이에는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오일 머니로 득을 보고 있는 것은 아부다비 정도이며 2000년대 두바이의 발전은 아부다비에게 돈을 빌려 돈놀이를 한 것으로 그 결과 2008년 대침체 이후 두바이는 부르즈 할리파가 넘어가는 등 아부다비에게 온갖 빚에 시달리고 있다. 두바이가 중동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국제석유거래소의 유치와 이슬람교의 교리적 이유로 일반적인 채권의 거래가 불가능한 중동자본을 위해 수쿠크라는 이슬람채권을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서방과 거대 중동석유펀드들이 만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맡은 덕이다. 한편 브루나이는 두바이와 달리 그런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도 않으므로 석유가 없으면 그 미래가 매우 불분명하다. [10] 이를 '대말레이'(Greater Malay) 논의라고 한다. 사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는 유럽 식민 시대의 영향으로 나누어진 것이므로 합의만 가능하다면 통합될 여지는 충분하다. 오늘날에도 언어적으로는 매우 유사하여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를 합쳐 마인어로 부르며, 두 언어 사이의 차이는 방언 정도에 불과하다. 종교적으로도 동남아시아에서 대륙부와 차별화된 이슬람교권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민족 및 문화적 사연과는 별도로 외부 세력, 역사적 연원에 의해 분리됐다는 점에서 독일 통일 같은 사건이 다시금 나타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11] 인도네시아는 말루쿠나 아체, 파푸아의 독립운동도 매우 잔악하게 대하는 나라이며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려던 동티모르도 강제 합병한 이후 잔혹하게 탄압하다 국제적인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독립시키기까지 했다. [12] 대표적인 지역이 사바 이남의 칼리만탄이라던가, 수마트라 동부라던가 등이다. 특히 수마트라 섬의 븡쿨루는 한때 영국령이었다가 네덜란드로 넘어갔는데, 만약에 영국이 쭉 갖고 있었더라면 말레이시아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말레이시아 동서 사이에 끼어있는 나투나 제도도 그러하다. [13] 만약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 가입한다면 싱가포르에 편입될 것이다. [14] 송클라와 사툰, 2개 주도 역사적인 의미에서의 빠타니 지역에 포함되지만 태국 당국의 적극적인 태국인 이주와 동화정책으로 이미 태국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보통 빠타니를 독립국가로 만들자는 독립운동에서 저 2개 주는 '독립국 빠타니'의 강역에서 제외된다. [15] 사라왁과 사바의 경우는 세부 행정구역들을 '구역'으로 처리했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긴 하다. [16] 그러나 중심도청을 어디에 두냐도 문제. 지금의 빠타니에 둘 수도 있지만, 타 지역의 상황 등을 고려하자면 옮겨야 할 수도 있다. 이러면 분쟁이 빚어질 수도 있다. [17]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문화적으로는 중앙아시아 이슬람교 문화권으로 동튀르키스탄이라고 불릴 정도이지만 중국 측에서 통제를 강화할 뿐 영유권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다. 만약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만이 단독으로 독립 국가였다면 충분히 국가연합이건 통일이건 통합적인 논의가 좀 더 오갔을 것이다. [18] 그래도 대개는 자원이 있어서 영유권을 포기하진 않는다. 비르 타윌 같은 특이한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이 역시도 비르 타윌을 포기하면서 좀 더 유용한 할라이브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비르 타윌의 영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