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10:48:58

호소노 후지히코

1. 개요

1. 개요

細野不二彦
일본 만화가. 1958년 12월 2일, 도쿄도 오타구 출신.

1980년대부터 시대를 앞서간 그림을 그렸으며 손이 빨라서 다작을 했다. 스토리도 잘 짜서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 품질을 보증한다. 그림체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같은 작가가 그렸다고 믿기 힘든 작품도 많다. 존경하는 작가는 타카하시 루미코라고 한다. 라무 아그네스 럼이 이상형이라고 [1] 그래서 자신이 그린 미소녀는 눈꼬리가 올라간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서클 활동하던 동창 친구들이 후덜덜한데 카와모리 쇼지 미키모토 하루히코다. 미키모토는 다른 부원들이 연필 선으로만 만화를 그릴 때 펜선, 먹칠, 스크린톤 처리까지 다 해서 프로같은 만화를 그릴 정도의 천재였고, 카와모리 쇼지는 디자인이 술술 나오는 천재[2]라서 "우리 학교엔 왜 저런 천재들만 있는거냐?" 라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정작 프로 데뷔는 어찌어찌해서 호소노가 미키모토보다 먼저했다고 한다.[3][4]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에 장기도 다 상해서 폐인이었고, 어머니가 일을 해서 대학에 보내주었다고 한다. 진짜 뭐라도 안 되면 끝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했고 그래서 데뷔가 빨랐던 것 같다고 한다. 데뷔 직후부터 귀여운 미소녀 그림체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데뷔했을 때는 소년 선데이를 중심으로 과연 사루토비, 우당탕탕 닥터지, GU-GU- 간모 등 나가이 고처럼 어린이들이 보라고 그렸지만 살짝 야한 코미디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꽤나 히트해서 일본에선 호소노 후지히코의 대표작을 말하면 대부분 이때의 작품이 나온다. 그러나 이때 작품들은 선정성을 이유로 대부분 한국에 수입이 안 되어서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1990년대부터는 청년지로 무대를 옮겨 작품색을 바꾸고 타로, 갤러리 페이크, 바이오 헌터, 더블 페이스, 전파의 성, 사랑해요 배트맨 등 인간 드라마를 강조한 작품을 냈는데 이 작품들은 한국에도 정식 발매가 대부분 이루어져 한국에선 주로 이쪽으로 알려져 있다.[5]

아즈마 히데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일본의 로리콘을 양산시킨 주범으로도 불린다. 나가이 고 타카하시 루미코도 캐릭터 벗기기로는 유명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등신대를 크게하고 몸매 좋은 캐릭터를 벗겼다. 그런데 호소노 후지히코는 등신대 낮은 어린 여자애를 벗겨버렸다. 이 분야의 시조이다. 특히 과연 사루토비가 엄청난 히트를 쳐서 비슷한 만화가 쏟아지게 된다.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당시 출판사에서는 신인 작가들에게 "당신 호소노 후지히코처럼 귀여운 여자애를 그릴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고 못 그린다 그러면 내쫓을 정도였다고 한다. #

시마모토 카즈히코 아오이 호노오에서 자신이 생각한 비장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호소노 후지히코가 이미 했다고 해서 절망한 에피소드를 밝힌 바 있다. [6] 시마모토 말로는 진지하고 잘 그리는 그림으로 개그를 하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개그 스타일도 이 사람의 영향이라고 한다. 즉 현재 은혼같은 분위기를 가진 모든 만화들의 시조격인 작가인것.

SF 작가 타카치호 하루카와 인맥이 있어 크러셔 죠의 만화판을 연재했고 더티 페어의 의상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타카치호는 호소노가 우당탕탕 닥터지의 주인공 이름을 니시키코지 하루카로 한 건 자신에게서 따온 것 같다고 한다.


[1] 참고로 라무의 모델이 된 인물이 아그네스 럼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고. [2] 다만 좀 이상한 놈이었다고 한다. 생각하는 게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3] 카와모리는 중학생 때 응모한 디자인이 뽑혀서 애니메이션에 나온 적이 있다. [4] 미키모토는 스토리를 짜는 걸 어려워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미키모토의 만화는 전부 그걸로 욕 먹었고 작화만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호소노가 작화는 미키모토보다 못 했지만 더 종합적인 재능이 있었던 것이다. 만화가는 호소노 같은 타입이 더 살아남기 유리하다. [5] 헌터x헌터 일부 캐릭터들의 넨 기술 명이 '갤러리 페이크'나 '더블 페이스'다. 이것 때문에 안 독자도 꽤 있는듯. [6] 이때 본 만화가 과연 사루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