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3 04:28:25

혈서지원

1. 개요2. 가사3. 번안곡: 혈청지원가

1. 개요



血書志願

일제강점기 말기 1943년에 오케 레코드[1]를 통해 발매된 노래로, 작사는 조명암, 작곡은 박시춘, 노래는 남인수[2], 박향림[3], 백년설[4] 이 불렀다. 대표적인 전시 친일가요로 손꼽힌다. 다만 이들이 이 노래를 자발적으로 불렀는지 강압에 의한 부른 것인지는 여러 시각으로 갈린다.

2. 가사

白은 백년설 주창, 朴은 박향림 주창, 南은 남인수 주창, 合은 3명이서 합창.
절수 원본 가사 현대 한국어 번역
1절
白)
무명지 깨물어서 붉근 피를 흘려서
日章旗 그려 놓고 聖壽萬歲 부르고
한 글ㅅ자 쓰는 事然 두 글ㅅ자 쓰는 事然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무명지(약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한 글자 쓰는 사연 두 글자 쓰는 사연
나랏님의 병정 되길 소원합니다
2절
朴)
海軍의 志願兵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달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感激을 못니기어 손끗츨 깨무러서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志願합니다
해군의 지원병을 뽑는다는 이 소식
손꼽아 기다리던 이 소식은 꿈인가
감격을 못 이겨 손 끝을 깨물어서
나랏님의 병정 되길 지원합니다
3절
合)
나라님 허락하신 그 恩惠를 잊으리
半島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나랏님이 허락하신 그 은혜를 잊으랴
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여 울면서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나랏님의 병정 되길 소원합니다
4절
南)
半島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피ㅅ줄
한나라 지붕아래 恩惠닙고 자란몸
이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반도의 핏줄거리 빛나거라 한 핏줄
한 나라 지붕 아래 은혜 입고 자란 몸
이 때를 놓칠쏜가 목숨을 아낄쏜가
나랏님의 병정 되길 소원합니다
5절
合)
大東亞共榮圈을 건설하는 새 아츰
구름을 혜치고서 솟아오는 저 해ㅅ발
기쁘고 반가워라 두손을 合掌하고
나라ㅅ님의 兵丁 되기 所願입니다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새 아침
구름을 헤치고서 솟아오른 저 햇발
기쁘고 반가워서 두 손을 합장하고
나랏님의 병정 되길 소원합니다

3. 번안곡: 혈청지원가


대한민국 군가로도 번안되어 1953년 '혈청지원가' 라는 노래로 불려졌다.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피를 흘려서
태극기 그려놓고 천세만세 부르자
한글자 쓰는 사연 두글자 쓰는 사연
대한민국 국군되기 소원합니다

번안하면서 가사가 조금 바뀌었는데 예를 들어 1절 가사에 일장기 그려 놓고 성수만세 부르고' 부분을 대신 '태극기 그려놓고 천세만세 부르고'로 교체하였다. ' 나랏님의 兵丁(병정) 되기 所願(소원)입니다' 부분을 '대한민국 국군 되기 소원입니다.'는 등으로 가사를 교체하였다. 태평양 전쟁 쇼와 덴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노래를 한국전쟁 때 가사만 바꾸고 군가로 쓰인 셈.

사실 적대 세력의 노래를 가사만 바꿔서 부른 경우가 세계적으로 많다. 예를 들어 김좌진 장군이 작사하였고 청산리 전투에서 참가했던 독립군들이 널리 불렀던 승리 행진곡은 일본의 군함행진곡을 번안한 노래이다.

이는 적에 대한 디스 목적이거나, 작곡가가 없었고 선무해야 하는 민중들이나 대원들이 가장 잘 아는 곡조를 찾다보니 이 노래를 번안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실제로 북한에서 김일성 부대가 불렀다는 혁명가중 상당수도 일본 군가의 곡조를 따와서 가사만 바꾼 게 많다. 보병의 본령, 용감한 수병 등의 군가도 그렇게 유용되었다. 심지어 김정일 라바울 속요를 즐겨 부르기도 했다.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일본 좌익 계열 노래에도 보병의 본령에서 개사한 들어라 만국의 노동자라는 노래도 있다.


2006년 국가보훈처에서 당대 인기가수들을 초청하여 리메이크 군가음반인 Remember-U을 제작하였다. 이 음반에서 혈청지원가가 리메이크되었는데, 가수는 V.O.S


[1] 일본 내지 회사였던 제국축음기상회 경성지사의 서브레이블로, 사장이 이철이라는 조선인인데, 덕분에 일제강점기 연간 조선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였다. 상세는 한국 음악의 역사 단락 참조. [2]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다면 기분 탓이 아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하는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다. [3] 1921~1946. 오빠는 풍각쟁이로 유명한 일제강점기의 여가수. 광복 이후 산후열로 25세 나이로 요절했다. [4] 역시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으로 유명한 원로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