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10 08:15:38

헬로 프로젝트 키즈

헬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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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15년 후 큐트 마지막 콘서트에서 모인 하로프로 키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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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에 열린 ' 헬로! 프로젝트 키즈 오디션'에서 당선된 열 다섯 명을 부르는 말.

1. 등장2. 활동3. 유닛 참여4. 정식 데뷔5. 침체기 후 도약 그리고 오랜 여정의 끝6. 명단

1. 등장

2001년에 열린 모닝구 무스메 5기 오디션의 지원 자격이 중학생 이상이었는데도 초등학생 응모자[1]들이 많았던 까닭에, 업프론트에서는 아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을 실시하였다. 최종심사까지 가서 열 다섯 명의 후보자가 남았는데 열 다섯 명이 전부 합격, '헬로! 프로젝트 키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오디션의 상황은 당시 테레비도쿄에서 방영되던 '헬로! 모닝'을 통해 방영되었다. 참고로 마에다 유카, 후쿠다 카논, 사호 아카리, 시노자키 아이, AKB48의 인기 멤버 미네기시 미나미가 이 오디션에 지원했지만 낙선했다.[2]

하로프로가 아직 일본에서 손 꼽히는 아이돌 집단이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오디션에도 상당한 수의 능력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이 몰렸다. 그래서 합격자들의 역량 자체는 대단히 우수했다. 보아의 노래를 부르며 잠재력과 실력을 보여준 스즈키 아이리도 있었고, 스가야 리사코의 경우 초창기에는 포스트 히로스에 료코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외에도 다른 키즈 멤버들도 남다른 개성과 귀여운 외모, 끼를 보여주며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최종 후보 전원이 모두 합격하여 기쁨을 누리게 된다.

2. 활동

모닝구 무스메의 오디션이 합격자를 즉시 모닝구 무스메로서 데뷔시키는 형태인 것에 비해, 키즈 오디션은 오랜 연습기간을 두고 새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형태를 취하였다. 일종의 연습생 제도를 운영한 셈. 이후 하로프로에서는 '하로프로 에그'라는 이름으로 연습생 제도를 정식으로 채택한다.

당시 일본 연예계 전반의 저학력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학업을 우선시하며 활동할 것이라고 홍보했다. 그래서 키즈 오디션 지원 자격은 도쿄 근교 지방에 살면서 통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제한되었다. 콘서트의 출연도 주말이나 봄, 여름, 겨울 방학 기간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업에 제약이 많았다.

3. 유닛 참여

2002년, 하로프로 내부에서는 대규모 인원 교체와 유닛 신설 계획이 발표된다. 이에 따라 2003년 여러 유닛이 신설되었다. 이 중 'ZYX'에는 모닝구 무스메의 야구치 마리를 중심으로 키즈 출신인 우메다, 시미즈, 야지마, 츠구나가, 무라카미가 소속되었고, '아아!'에는 다나카 레이나를 중심으로 나츠야키, 스즈키가 소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닛 개편은 소위 하로마게돈으로 불리며 팬들의 반발을 샀고, 새롭게 편성한 유닛들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한 채 1년만에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래서 하로프로의 대표적인 실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4. 정식 데뷔

하로키즈 중 여덟 명을 선발해서 2004년 베리즈코보가 데뷔한다. 베리즈코보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일곱 명은 하로프로 에그 출신인 아리하라 칸나를 영입하여 2006년 8인조 그룹 큐트로 데뷔하였다. 이로써 키즈 멤버 열 다섯 명은 모두 연예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이 이후 키즈 멤버란 말 대신 '베리큐 멤버'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이들이 데뷔한 시기에는 하로프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줄어든 지 오래였다. 본체인 모닝구 무스메부터가 음반 판매량 10만 장을 못 넘기는 침체기에 들어선 상태였는데 베리즈와 큐트에 대해서는 관심이 생기기 쉽지 않았다. 또한 곡의 스타일, 의상, 미디어 출연 등 하로프로의 문제로 꼽히는 점들은 대중들과의 접접을 찾기가 어렵기도 했다. 멤버들 역시 어린 나이에 데뷔한 터라 체중 관리의 어려움이라든가 정신적 스트레스 등 활동 기간 중 슬럼프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베리즈코보에서는 이시무라 마이하가, 큐트에서는 무라카미 메구미, 아리하라 칸나, 우메다 에리카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졸업하는 등 멤버들의 변동도 있어 향후 그룹 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었다.

5. 침체기 후 도약 그리고 오랜 여정의 끝

베리즈코보와 큐트 모두 초반 상승세에 비해 침체기를 겪은 바 있으며 그래도 꾸준히 싱글 발매, 투어 활동을 하며 버텨낸다. 베리즈코보는 활동 중반 급격한 컨셉 변화로 그룹의 정체성이 모호해졌었으나 멤버들이 성장하면서 여러 컨셉을 소화시키는 능력도 발전하게 된다. 멤버 구성 자체도 약간 언밸런스 타입이라 오히려 이런 점이 호재가 되었고 츠구나가 모모코는 예능에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인지도를 조금씩 늘려갔다. 그러는 동안 활동 기간도 10년차에 접어들면서 무도관 공연도 여는 등 무시할 수 없는 그룹이 되었었다.

무기한 활동 정지 이후에는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대부분의 멤버들의 소식을 종종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 방송, 무대에서 계속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컨트리걸즈로 활동하던 츠구나가 모모코가 하로 졸업 및 연예게 은퇴를 선언하면서 역시 연예계 은퇴를 선택한 큐트의 하기와라 마이와 함께 모모코의 모습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다만 완전히 외부 노출을 차단한 모모코와는 다르게 마이는 공식적으로 복귀를 알리고 SNS 등지에서 다양하게 소통을 다시 시작했다.

큐트는 졸업 멤버들의 공백을 오랫동안 채우지 못하다가 꾸준한 노력 끝에 5인 체제 큐트로 공연에서 입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한다. 멤버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무도관 공연이 실제로 서프라이즈로 발표되고 음반 판매량도 상승하면서 리즈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하로프로의 성향상 미디어 출연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으며 공연장 규모도 무도관에서 정체되게 된다.

그러다가 오카이 치사토가 서서히 예능에서 활약하기 시작하고 드디어 요코하마 아레나 공연도 성사시키는 등 제2의 리즈시절을 맞이하나 싶었으나 데뷔 11주년을 기해 해산을 발표.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을 무려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개최. 2007년[3]] 이후 하로프로에서 10년만에 사이타마 아레나 공연을 성사시키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

큐트와 츠구나가 모모코가 하로프로를 졸업하며 하로프로 키즈의 하로프로에서의 여정은 일단 막을 내렸다.

황금기의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낯선 트레이닝과 무대 경험을 시작으로 많은 일을 겪었던 10여년간의 하로프로 키즈의 하로프로에 대한 기여도는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키즈들이 동경했던 선배들처럼 지금의 하로프로 멤버들에게 키즈의 존재는 거대한 산,동경의 존재가 되어있을 정도로 분명 그녀들은 꼬마 아이들에서 훌륭한 아이돌이 되어 활동을 마감했다는 것. 그녀들의 땀과 눈물, 노력이 없었으면 그런 존재감은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6. 명단



[1] 그 가운데 나이를 속이고 응모했다가 들통난 다나카 레이나도 있었다. [2] 와다 아야카는 합격했지만 본인 선택으로 거절 [3] 모닝구 무스메 4기 멤버 요시자와 히토미의 졸업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