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6 18:20:09

한상권(작가)

<colbgcolor=#f0efed><colcolor=#252525> 한상권
韓相淃 | Han Sang Kwon
파일:2 - 복사본 (2).jpg
본관 청주 한씨
출생 1979년 9월 22일 ([age(1979-09-22)]세)
홍성군, 서초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배우자 하야노 유리에[1], 자녀 한리아, 한리사
학력 경영학 전공
직업 작가, 논설위원, 공직자
소속사 세이프타임즈
병역 제6군단 병장 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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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작품4. 작가 스타일5. 인지도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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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글을 쓰고 책을 내어 독자들과 소통하는 데 힘쓰고 있다. 현직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공직자 이면서 작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 하고 있다. 겸직을 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담에서 확인 가능하다.

2. 생애

1979년생으로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고 서울특별시 서초구에서 성장했다.

청소년기 사색의 시간이 많아서 그럴까,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데 일각연이 있다. 전문가로부터 배우지 않았지만 감성적인 글쓰기 형태는 그때 사색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매우 감성적이고 관찰력 있는 안목이라고 해야할까.

고등학생때부터 군생활이 끝날때까지 킥복싱 웰터급(-70kg) 선수생활을 했다. 1998년 이렇다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때 상대편 선수의 감독이었던 김선기[2] 관장으로부터 사사했다. 한국챔피언을 지내고 외팔이 파이터로 매우 유명했던 김선기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프로 무대에 서게 된다.

대학교부터는 골프에 매료되어 세미프로를 목표로 골프를 시작하고 해외 전지훈련에도 많은 돈을 썼다고 한다.

한상권의 청소년기와 청년기는 90년대 후반 x세대의 출현과 억눌린 청소년들의 반항이 담긴 영화 비트 속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위태로운 고등학교를 다행히도 졸업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군대에 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다. 군 종교활동에서 만난 수녀님이었다, 그분의 도움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이후, 디자인 경영학을 전공했다. 총학생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장학생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대학을 나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일찍이 정치계에 눈에 띄었다는 게 정론이다. 2003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3]의 눈에 들어 그를 돕게 되었다. 그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면서 2005년부터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중소기업에 입사해서 SK계열사 대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이직하는 등 사회생활 적극적으로 해나갔다. 이때 필리핀, 베트남, 인도, 멕시코 그리고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에서 인사 노무 업무를 총괄하는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3. 작품

2021년 5월 자기계발서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가>를 냈다.
*도서소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0518950

2022년 4월 에세이 <나는 아프지 않은 척했다>를 냈다.
*도서소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2348343

4. 작가 스타일

5. 인지도

2000년대 중반 정치계에 돌풍을 일으킬 젊은 인재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당 활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다' 라고 언론에 밝히며 합리적 중도를 지키고 있다. 여야할 것 없이 정계 인맥이 상당하다. 경제계 인맥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기업 그리고 공직기관에서 직장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다시 정치를 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글쓰기에 능해서 책을 여러 편 내기도 하고, 인터넷 언론사 논설위원으로 채용되어 활동 중이다. 다만 그가 써낸 책은 대부분 크게 성공 하지는 못했다.

6. 여담

2017년 일본 후쿠오카 출신의 하야노 유리에와 결혼 하고, 딸 한리아 하나를 두고 있다. 상당한 애처가에 딸바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사다난 했던 청소년기,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기업에서 근무 당시 해외주재원 생활의 경험은 사람냄새 나는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현직 인사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라 인사업무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후문이다.

한상권이 실제 익힌 킥복싱의 타격 베이스는 무에타이[4]으로서 상당히 과격한 운동이다. 그가 선수생황을 했던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격투기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스포츠라기 보다는 무술로 분류 하기도 했다. 그런 인지도 때문이었을까, 그 는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한상권의 적극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2005년 2월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진행된 임명장 수여식에서 간담회 도중 대통령에게 꾸중 아닌 꾸중을 했다고 한다. 청년의 취업 문제가 실제 통계 지표와는 다르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취지의 발언 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충격적이다”라고 답변하며 한상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다. 당시 함께 참석했던 서울대학교 사학과 한상진(1945)[5]교수의 저서 추천사에서도 그 내용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다른 공직자로부터 ‘대통령을 충격에 빠트린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되는 공직자로서 작가와 언론사 논설위원 등 외부 활동과 겸업을 할 수 있는 지에 관한 논란이 있으나, 공직업무에 저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기관장의 허가를 얻어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 블루인사이트치유하우스의 대표이사 [2] 외팔이 파이터로 매우 유명하다. 대한민국의 킥복싱 선수, 무에타이 선수, 한국 챔피언 [3]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4] 태국 킥복싱, 태국 복싱 [5] 현 서울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