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19 06:40:35

하세가와 요헤이

[ruby(長谷川, ruby=はせがわ)][ruby(陽平, ruby=ようへい)]
(장곡천 양평)
파일:external/cmsimg.mnet.com/2267.jpg
1971년 11월 4일 ~
1. 소개2. 음악활동3. 방송활동4. 기타5. 바깥 고리

1. 소개

대한민국에 활동하는 재한일본인 음악가이자 前 장기하와 얼굴들의 멤버.

일명 양평이 형.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기타 및 프로듀싱을 맡았었다. 참고로 부유한독신남. 일본인 유명인 중에 료헤이라는 이름이 많아서 료헤이라 잘못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요헤이가 맞다.[1]

한국 생활 초기에는 하양평으로 호칭했었는데 김창완이 "내 형제같은 사람이니 김씨 아니겠냐"고 한 이후로 김양평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후 자유로 가요제 무한도전 쓸·친·소 페스티벌을 통하여 양평이형이라는 호칭이 더해지게 되었다.

일본인임에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상당한 편이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다소 어눌하지만, 일본어로 유창하게 말할 때는 멋있다고 한다.

곱창전골[2]을 이끌고 있는 사토 유키에[3]라든가, 장사하자로 유명한 '하찌와 TJ'의 하찌[4] 등 한국에 넘어와 활동하는 일본 뮤지션들은 은근히 많은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이다. 사실 일본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고.

단적으로 일본어 위키백과에만 봐도 하세가와 요헤이의 양친들은 문서가 작성되어 있지만 [5] 하세가와 요헤이 본인의 문서는 없는 반면에 한국어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에는 버젓이 하세가와 요헤이의 문서가 존재한다. 공식 커리어에서 곱창전골로 제일 첫줄로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일본에 있을 당시엔 저니맨 생활이 꽤나 길었던 걸로 추정된다. 한국행이 여러모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셈.

부모님 모두 일본에서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유명 배우 류 라이타(竜雷太)이며[6][7]이며, 어머니는 배우 나츠 케이코(夏圭子)인데, 양친은 이혼했다. 하세가와는 트위터로 자신의 프로필에 아버지 프로필이 연결된 것에 매우 신기해했다.

트위터를 자주 하기 때문에 트위터를 통해서도 좋은 음악을 추천받을 수 있다.

2. 음악활동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비틀즈의 음악에 빠졌다는 그의 말대로 음악에 대해 상당히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LP 모으는 것이 취미. 장기하에게 이 취미를 전파하여 덕질의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했다.

원래 10대 시절엔 그 또래가 으레 그렇듯이 펑크에 빠져서 섹스 피스톨즈를 커버하는 밴드도 했었고, 20대에 접어들면서는 그저 브릿팝이 좋다는 이유로 영국까지 다녀올 정도로 브릿팝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알바를 하던 레코드점 단골 손님이 어느 날 한국 여행을 갔다가 죽이는 노래를 들었다며 밴드 둘을 추천해 주었는데 이게 양평이형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참고로 그 손님이 추천해 준 밴드가 바로 신중현과 엽전들 그리고 산울림이었고 이렇게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에 빠진 하세가와는 판을 사야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8] 한국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집은 LP로 가득 차서 LP가 주인이고 사람이 얹혀 사는 수준이라고 할 정도.

장기하와 얼굴들 이전엔 곱창전골, 델리스파이스, 황신혜밴드, 뜨거운 감자, 김창완밴드 등에서 연주했다. 처음에는 웬 이상한 일본인이 홍대에서 공연보고 뛰놀고 하더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차차 실력으로 네임드가 된 케이스. 그 중에서도 김창완과는 한때 일개 팬이었던 입장에서 같이 작업하는 동료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 프로듀서로도 활동 중이여서 미미 시스터즈나 룩앤리슨 등을 프로듀싱해주기도 했다.

2010년부터 장기하와 얼굴들의 객원멤버 및 프로듀서로 참여. 2013년 장기하와 얼굴들 객원멤버에서 정규멤버로 등업(…)했음이 알려졌다. 위트로 무장한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을 넘어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게 된 2집의 많은 요소들을 가이드했다.

연주/프로듀싱 스타일은 사이키델릭과 펑크 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1960년대 개러지 록/사이키델릭이라던지 크램스 같은 사이코빌리 장르에 영향을 많이 받은듯 하다. 특히 프로듀싱 해준 룩앤리슨 1집은 크램스나 온리 원스 같은 독특한 펑크 록을 했던 밴드들의 영향이 강한 편. 퍼즈 이펙터를 쓸 땐 '하세가와 요괴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격하게 쓴다고 한다. 물론 음악광답게 다른 장르의 음악들에도 빠삭한 면모를 드러낸다.

3. 방송활동

2012년부터 SBS POWER FM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에서 매주 수요일 '양평 LP바' 코너를 진행 중.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없는 LP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니아 청취자들을 모으고 있으며, 프로그램의 간판 코너. 이런 비슷한 코너를 2005년에도 김C 라디오에서 했었다.

2013년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에 장기하와 얼굴들이 하하와 함께하면서 가장 많이 인지도를 쌓은 멤버. '식판 든 사나이', '집이 부자',[9] '양평이형' 등의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소녀시대 써니의 팬이다. 무한도전 쓸·친·소 페스티벌에서 만나 SNS를 텄으며, 공연 초대를 해서 인증샷이 올라오기도 했다. 쓸.친.소에서 써니의 애장품이 경매에 나오자 혓바닥 RPM을 최대치로 가속해서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득템! 65만원이 적정가라고 할정도면 말 다했다?

후지타 사유리와 만났을 때 서로 일본말로 인사하지 않고 한국말로 인사했다고 한다. 근데 이게 무한도전 쓸친소 특집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사유리와 전화 통화를 시켜줬는데[10] 두 사람이 한국말로 대화한 것.[11] 박명수가 그걸 보고 두 사람 일본인 아니시냐고 물어봤다(…). 써니와 사유리 중에 누가 더 좋냐는 질문을 받자 "아~ 그건 안돼에~!" 하며 절규. 그리고 라디오스타에서 또 재현되었다(...).

4. 기타

  •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임진모 평론가가 모평이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임진"모" "평"론가의 준말인데 끝에 "형"을 붙인 건 "양평이형"에서 따온 듯하다. 둘 다 음악 지식이 해박하고 방송에서 고독감을 자주 토로하는 스타일이라 캐릭터도 비슷.
  • 원래 일본에서 경력을 시작했기에 서니 데이 서비스 등 동년배 다른 일본 뮤지션들과 친하다고 한다.
  • 일본에서도 라디오 패널로 자주 출연하며,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기도 한다.
  • 일본의 한 라이브하우스에서 진행한 사이케델릭 이벤트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를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사이케델릭의 저력을 보여주고 오겠습니다.라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 재미있게도 부모님이 너무 유명해서 본인은 반대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꿈꿨던 삶이 돌멩이 같은 삶이라고. 또 어머니가 한국의 점술가에게 물어봤더니 한국에서 기타로 성공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12]
  • 본디 실력있는 뮤지션 쪽으로 유명했고 버라이어티나 그런 쪽에는 나오지 않다가 무도로 인지도가 올라가자 기존 팬층에서 이미지가 굳어버리는 것에 걱정했으나, 본인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음악이 있으니깐 괜찮다고. 인터뷰 링크
  • 2014년 6월 10일, 평소 팬이던 소녀시대 써니가 진행하는 FM 데이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쓸친소에서 낙찰 받은 써니의 애장품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 출연 때 배철수의 특이한 발음으로 '핳-쎄가와 요헤이'란 별명이 새로 생겼다. 장기하는 콘서트 때마다 이름드립을 우려먹는다
  • 최근 1년여 정도 김밥레코즈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신이 큐레이션한 일본 시티팝 중고 LP를 비정기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콜렉터 출신의 큐레이션답게 레코드들 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은 편.

5. 바깥 고리



[1] 참고로 키무라 료헤이는 한자로 '良平'이다. 그런데 이것도 양평이라 읽을 수 있다. [2] コプチャンチョンゴル. 하세가와 요헤이도 과거에 속해있었던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한국음악 커버 밴드였다. 주로 신중현, 산울림의 곡을 중심으로 커버했었다. 지금은 자작곡을 쓴다. 요헤이는 현재 탈퇴. [3] 한운희의 남편이다. [4] 본명은 카스가 히로후미로 일본 록 음악사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카르멘 마키&OZ 멤버로 유명하다. 강산에와 콜라보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5] 류 라이타는 일본 내에서는 대하사극에 출연할 정도로 조역 배우로는 성공한 편이다. [6] 케이조쿠 거리 ~운명의 교차점~에 출연. 2014년 군사 간베에에 출연. 2015년에는 고독한 미식가 시즌 5에서 출연했다. [7] 일드 좀 봤다면 바로 알 수 있는 배우다. 2018년 히트작인 컨피던스 JP 7화에서도 나왔다. 보통 일드는 12회 내외로 제작되는데 각 한국과 달리 각 회차 별로 진행되는 에피소드 형식이다. [8] 진짜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었으니 한국 음악을 들으려면 한국에 직접 가서 사는 수밖에 없었던 것. [9] 카루이자와에 있는 별장은 욕실이 큰 방만하고, 욕조에 장기하와 얼굴들 멤버가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본인 말하는 걸 들어 봐도 자기가 대학입시에 낙방하자 부친이 한 번 살고싶은 대로 살아 보라며 대학 등록금만큼을 매달 용돈으로 줬다는 등(...) 보통 집안이 아니긴 한 듯. [10] 이 방식이 좀 특이하다. 일명 전화 소개팅이라 불렸는데 사유리와 양평에게 모두 전화를 건 뒤 스피커를 켠 뒤 서로에게 전화를 건 휴대폰을 맞대서 서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했다. [11] 물론 방송이라 그랬을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사유리는 확실히 까먹은 걸지도 모른다. 일본 특집으로 일본 가서 매점에서 주문을 해야 되는데 일본어를 까먹어서 주문을 못 하고 돌아섰다(...)... 라고는 하지만.. 사유리는 엄연히 일본에서 대학도 졸업한 고학력 출신이라 당연히 일본어를 까먹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냥 예능적인 모습인듯 하다. 다만 실제 까먹진 않아도 오랫동안 모국어를 안 쓰면 바로 안 떠오를때도 있다. 사유리나 하일같은 경우는 그렇다고 쳐도 진지한 인터뷰라 컨셉일리가 없는 메이저 시절 박찬호도 한국어로 인터뷰할때 단어를 잘 못 떠올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워낙 영어만 쓰는 환경이다보니 거의 쓰지 않는 한국어가 바로 안 떠오른 것. 이때 유행어 비슷하게 된게 미국식으로 주저하는 "엄..."이었다. 이때문에 박찬호가 눌변이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오해가 생기기도...물론 한국 돌아와서는 투머치 토커 본능을 일깨워 맹활약중이다. 박찬호같이 말잘하는 사람도 오래 안 쓰면 녹이 스는게 언어인 것. [12] 출처: 크르르르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