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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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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주요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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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DBC40C8-DA7B-4B46-9DC8-56B8F9D6697B.png 선정 지난 세기의 인물
Time Person of the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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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소니언의 잡지,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헨리 허드슨 아메리고 베스푸치 존 스미스 조반니 다 베라차노
존 뮤어 메리웨더 루이스
윌리엄 클라크
새커거위아 키트 카슨 존 웨슬리 파월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로버트 E. 리 토마스 페인 존 브라운 프레드릭 더글러스
수전 B. 앤서니 W. E. B. 두 보이스 테쿰세 타탕카 이요탕카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말콤 엑스
대통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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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매디슨 앤드루 잭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힐러리 클린턴 마사 워싱턴 오프라 윈프리
헬렌 켈러 소저너 트루스 제인 애덤스 이디스 워튼 베티 데이비스
사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제시 제임스 존 윌크스 부스 알 카포네 빌리 더 키드
윌리엄 M. 트위드 찰스 맨슨 와일드 빌 히콕 리 하비 오즈월드 러키 루치아노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앤디 워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잭슨 폴록
존 제임스 오듀본 조지아 오키프 토머스 에이킨스 토마스 내스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안셀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주니어 윌리엄 펜 브리검 영 로저 윌리엄스 앤 허치슨
조너선 에드워즈 L. 론 허버드 엘런 화이트 코튼 매더 매리 베이커 에디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돈나 밥 딜런 마이클 잭슨
찰리 채플린 지미 헨드릭스 마릴린 먼로 프랭크 시나트라 루이 암스트롱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존 피어폰트 모건 월트 디즈니
토머스 에디슨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하워드 휴즈 빌 게이츠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무하마드 알리 재키 로빈슨 제임스 네이스미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타이 콥 마이클 조던 헐크 호건 짐 도프 세크리테어리엇
빌리 진 킹
출처 }}}}}}
파일:Thomas_Jefferson_by_Rembrandt_Peale,_1800.jpg
미국의 제3대 대통령
본명 <colcolor=#000000>토머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출생 1743년 4월 13일, 대영제국 버지니아 식민지 구치랜드 카운티
사망 1826년 7월 4일 (향년 83세), 미국 버지니아 주 마운트 샬러츠빌
국적 미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US_flag_48_stars.svg.png
학력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 ( B.A.) (1760-1762년)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 (LL.D.)[1]
직업 법조인, 정치인
배우자 마사 웨일스 스켈턴 제퍼슨 (1772년 결혼, 1782년 사별)[2]
종교 이신론
신체 189cm
정당 [[민주공화당(미국)|
민주공화당
]]
주요
경력
버지니아 주 자치의회 알버마 군 대표의원 (1769년)
제2차 대륙회의 위원 (1775년)
버지니아 주 의회 하원의원 (1776년)
버지니아 주 제 2대 주지사 (1779년 – 1782년)
프랑스 대사 (1784년 – 1789년)
미국 초대 국무장관 (1789년 – 1794년)
미국의 제2대 부통령 (1797년 – 1801년)
미국 제3대 대통령 ( 1801년 3월 4일 1809년 3월 4일)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86px-Thomas_Jefferson_Signature.svg.png
... a wise and frugal government, which shall restrain men from injuring one another, which shall leave them otherwise free to regulate their own pursuits of industry and improvement, and shall not take from the mouth of labor the bread it has earned. This is the sum of good government, ...
... 현명하고 검소한 정부로서,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지는 못하게 하되, 그 외에는 각자에게 맡겨 자유로이 스스로의 근면과 발전을 자율적으로 추구하도록 하며, 노동을 통해 얻은 양식을 빼앗지 않는 것. 좋은 정부라 함은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이고, ..."[3]
... it left to me to decide whether we should have a government without newspapers, or newspapers without a government, I should not hesitate a moment to prefer the latter. But I should mean that every man should receive those papers and be capable of reading them.
...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 하지만 이는 모든 사람들이 신문을 받아 보고 읽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4]


1. 개요2. 일생
2.1. 대통령이 되기 전2.2. 선거에 출마2.3. 대통령이 되다2.4. 가족관계2.5. 업적2.6. 엄친아2.7. 그외2.8. 죽음
3. 건축4. 숫자 3과의 관계5. 종교관6. 기타

1. 개요

미국의 제3대 대통령. 미국 건국 주역 중 한명으로 그중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철학자, 사상가, 건축가, 교육자, 초대 국무부 장관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 일생

2.1. 대통령이 되기 전

건국 초기의 미국 대통령들이 대부분 그렇듯, 제퍼슨도 부유한 농장주 가문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눈을 떠 머리가 깨어있던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변호사가 되어 여러 문제를 다루게 되었고, 나중에는 식민지 의회의 의원까지 지내게 된다. 그러나 미국 식민지 영국 정부는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고, 이때 제퍼슨은 영국 본토가 식민지에서 벌이는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에서 그는 미국을 지지하였고,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해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작성하였다. 이렇듯 제퍼슨은 인권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억압적인 정책에 반대하였다.

그 후 버지니아 주지사와 프랑스 공사를 연연하고 국무장관의 자리에 올라 반연방주의(공화주의)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알렉산더 해밀턴[5] 등의 연방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의 대립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독립전쟁 후 군비 등으로 생긴 채무를 각 주가 균등하게 나눠서 갚느냐, 아니면 각자 알아서 갚는가의 문제. 빚을 덜 진 주의 이익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제퍼슨은 해밀턴의 균등한 분배를 반대하였다. 결국 해밀턴은 수도 워싱턴 D.C.로 이전하자는 합의안을 이끌어 각 주가 빚을 균등하게 갚자고 타협하였다.

2.2. 선거에 출마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불출마 선언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제퍼슨은 연방주의자들의 후보인 존 애덤스와의 대결에서 패배했으나, 당시에는 2등 부통령이 되는 방식이였기 때문에 부통령이 되었고 당연히 제퍼슨은 사사건건 대통령 애덤스의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 되었다.

2.3. 대통령이 되다

그 후 다시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3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가능성이 조금 험난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토머스 제퍼슨과 에런 버가 선거인단에게서 정확히 동수(73표)의 표를 얻어 1801년에 하원 투표로 넘어갔는데, 35번이나 투표를 치르고도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았다가 36번째 투표에서 메릴랜드, 버몬트, 델라웨어,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입장을 바꿈으로써 제퍼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연방주의자들이 그나마 제퍼슨보다 성향이 가까운 버를 밀어주다가, 연방주의자의 거두이자 버와 사이가 엄청나게 나빴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36번째 투표 직전에 입장을 번복하고 정적인 제퍼슨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는 16개 주가 있었는데, 처음 투표 당시에는 8개 주가 제퍼슨을 지지했고, 6개 주가 버를 지지했으며, 2개 주가 기권을 했다. 미국 헌법에 따르면 과반수 주의 지지를 얻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기에 제퍼슨은 딱 한 주가 모자라서 첫 투표에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결과를 볼 때 제퍼슨이 대세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는데, 버는 제퍼슨과 정적이었기 때문에 끝끝내 후보 사퇴를 거부했고, 결국 투표가 반복된 것이다. 버는 당시 헌법에 따라 2등 득표자로서 부통령이 되었지만 애덤스가 그랬던 것처럼 제퍼슨의 정책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다. 웃긴 건 에런 버는 제퍼슨과 같은 민주공화당 소속(...)이었다는 것. 같은 당 소속인데도 버와 제퍼슨은 죽어라고 싸워댔다.

해밀턴과의 협의로 내각에 연방주의자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 연방주의자들의 정책은 높은 과세를 부과해 인기를 잃은 데다 수장들이 정치를 은퇴하는 등 지도부가 사라져 점차 소멸하여 갔다. 또한 사법부는 대부분이 존 애덤스가 임명한 인물들이어서 사사건건 제퍼슨을 견제하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벌어진 큰 사건으로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과의 루이지애나 거래가 있으며, 해적들을 토벌하는 한편, 이때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했으며, 7월 4일 독립기념일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몇 시간 후 그의 정적이자 친구, 전임 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반연방주의 사상과 인권주의는 미국 정부의 지나친 권력 독점의 횡포를 막고 국민들의 권리를 수호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한편, 그의 지나친 중앙 정부 견제[6]로 미국에 강한 정부가 없어 결국 남북전쟁의 홍역을 치러야 했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사생활 문제도 비판받고 있는데, 평생 노예 제도를 반대했으나 정작 그 자신이 노예들을 소유한 대농장주였고,[7] 흑인 노예와 관계해 자식을 가졌다는 의혹이 있다.

2.4. 가족관계

제퍼슨의 노예인 샐리 헤밍스의 아이들이 제퍼슨의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후손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제퍼슨 가문의 DNA를 물려받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실제로 샐리가 아버지가 불분명한 흑백 혼혈 아이들을 여러명(...) 낳은 건 사실이고, 스캔들이 터진게 제퍼슨의 아내가 이미 죽은 후인지라 샐리가 죽은 제퍼슨의 아내 대신 제퍼슨의 정부 노릇을 했다는건 당시부터 오랫동안 미국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로써 유명한 스캔들이었다. 그래도 토마스 제퍼슨의 아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측은 샐리의 아이들의 아버지는 제퍼슨의 형제라고 한다. DNA 검사가 샐리 후손들이 '제퍼슨 집안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사실만을 밝혔을 뿐, 제퍼슨 본인의 피를 직접 물려받았는지는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 제퍼슨이 가장 유력한 아버지 후보인데, 제퍼슨 형제들은 서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서 살았고, 당시 샐리를 임신시킬 수 있는 제퍼슨은 샐리를 바로 옆에 뒀던 토마스 제퍼슨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건 샐리도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제퍼슨의 처제(...)라는 점, 샐리의 어머니도 백인 혼혈[8]이고 제퍼슨의 장인의 몸종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샐리가 자기 딸 뻘 나이였다는 것이다. 첫 아이의 나이를 역산하면 샐리가 제퍼슨과 첫 성관계를 맺은 나이는 10대 중반이다.(...) 제퍼슨이 결혼할때 처의 몸종으로 왔고 제퍼슨의 부인 사망 후에도 제퍼슨을 모셨던 것도 사실이다. 제퍼슨 본인은 샐리의 아이들에 대한 정적들의 비난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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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슨의 첫째 딸 마사 제퍼슨 랜돌프의 초상화
파일:external/3.bp.blogspot.com/Sally-Hemings.png
샐리 헤밍스의 상상화
파일:external/image.cine21.com/M0010037_poster_01.jpg
샐리와 제퍼슨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1995년작인 《대통령의 연인들》(Jefferson in Paris)[9]이란 작품이다.[10]

2.5. 업적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퍼슨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의 시각으로 봐도 여러모로 진보적인 점이 많다. 인권신장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하고, 개인에 대한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반대했다. 제퍼슨을 비롯한 반연방주의자들의 이러한 비판은 후에 권리장전(수정헌법)이라는 개념으로 도입된다.

당시만 해도, 영국 성공회 국교로 두듯이 미국도 주에 따라 국교를 정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13개 주로 이뤄진 미국 연방을 운영하는 데에 기독교가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과 영국처럼 국교를 따로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 상충했던 것. 실제로, 메릴랜드는 가톨릭, 펜실베이니아는 퀘이커, 버지니아/뉴욕/조지아는 성공회가 공식 종교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퍼슨은 “진리는 위대해서 홀로 내버려둬도 승리한다. 우리는 성공회도, 가톨릭 침례회도 아니다. 모두 크리스천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공화주의자들과 함께 국교제 폐지를 주장했고 정교분리 원칙을 못박았다.

재벌의 탄생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말 "나는 우리가 정부에 자신의 힘을 믿고 도전하며 우리의 법도 어길 수 있는 주식회사의 재벌이 생겨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만약 그가 현대 미국의 부자들을 만난다면... 그전에 본인도 상류층 출신인데? 하지만 제퍼슨은 적어도 재벌은 아니다. 지주라고 하면 모를까

2.6. 엄친아

7개의 언어도 구사하였으며 아일랜드 시인 오시안의 작품들을 아일랜드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하여튼 미국 역사의 손꼽히는 엄친아 중 하나며[11] 워싱턴, 링컨, 두 명의 루스벨트와 함께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명으로 꼽힌다. 러시모어 산의 큰 바위 얼굴에도 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가 만든걸로 유명한 암호장비인 제퍼슨 디스크는 이후 2차 세계대전을 넘어 한국전쟁, 그리고 1960년대까지 쓰이게 된다(...) 본격 18세기 물건도 못푸는 20세기 코드브레이커들

2.7. 그외

언론사를 운영했던 경력이 있으며, 당시에 남겼던 몇몇 말들이 아직까지도 언론 자유와 관련해 유명한 명언으로 회자된다. 대표적인 것이 상단에 인용한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 발언. 또 하나는 "언론이 자유롭고 국민 모두가 글 읽을 줄 아는 나라에서라면 만사가 안전할 것이다." 물론 임기 후반부에는 '신문이라는 오염물질에 실리면 모든 것이 다 왜곡된다'는 식으로 깠다. 언론 사상사에서도 신문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한 인물로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2.8. 죽음

그의 묘비명은 이렇다.
파일:4585543.jpg
"HERE WAS BURIED
THOMAS JEFFERSON
AUTHOR OF THE
DECLARATION
OF
AMERICAN INDEPENDENCE
OF THE
STATUTE OF VIRGINIA
FOR
RELIGIOUS FREEDOM
AND FATHER OF THE
UNIVERSITY OF VIRGINIA."

BORN APRIL 2 1743 O.S.
DIED JULY 4 1826
"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제안자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여기 잠들다"

율리우스력 1743년 4월 2일 나서
1826년 7월 4일 졸하다

미국의 제 3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었음에도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별 볼일 없는 것이었다면서(...) 묘비에 적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묘비에도 그 유언대로 위와 같이 적혀 있다.

3. 건축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inverse.png 미국 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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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Thomas_Jefferson%27s_Monticello_Estate.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efferson_Memorial_Factbook.jpg
몬티첼로(Monticello Estate)
또한 뛰어난 건축 덕후이자 미국 대통령이었기에, 임기중에 많은 미국 행정기관의 건축을 주도했다. 로마시대 건축인 메종 카레를 본 딴 버지니아 주의회 의사당을 시작으로 계속 만들어진 복고풍의 미국 관공서 건물들을 연방양식(Federal style)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많은 관공서들과 기념관들이 마치 그리스- 로마 신전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가 제퍼슨의 취향에 있었다. 또한 몬티첼로라는 자신의 주택을 설계하여 지었으며, 이는 미국 주택 양식의 하나로 이어진다. 대표작으로는 버지니아 대학교가 있다.

그리고 이후에 미국에선 아예 판테온처럼 생긴 건물을 제퍼슨의 기념관으로 지어줬다.(...) 판테온처럼 생긴집에서 살면서 판테온처럼 생긴 대학 건물을 만들었고 죽어서는 판테온처럼 생긴 건물에서 기념되는 인물.

4. 숫자 3과의 관계

기이하게도 유난히 3이라는 숫자와 연관이 많다.
  • 자기 가문에서 세 번째로 ' 토머스'라는 이름을 가졌다.
  • 셋째 아들.
  • 세 군데의 학교를 다닌 끝에 윌리엄앤드메리대학 졸업
  • 33세에 독립선언서 기초
  • 독립선언 기초위원 3번 역임
  • 제3대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로 3년 근무
  • 워싱턴 내각에서 세 번째로 각료에 임명(국무장관)
  • 미국 철학협회 제3대 총재
  • 존 애덤스에게 3표 차이로 패배하여 2대 부통령 역임
  • 미합중국 제3대 대통령
  • 묘비에 쓴 것도 세 가지
  •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세 번째의 장신. 1위는 에이브러햄 링컨(193cm), 공동 2위는 린든 B. 존슨, 도널드 트럼프(192cm), 제퍼슨은 189cm이다.
  • 어쌔신 크리드 3에 출연...그것도 DLC 왕의 폭정 에피소드 3에서[12]
  • 바이오쇼크 3에 해당하는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에 출연

5. 종교관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나는 나만의 종파에 속해 있다.
-1819년 토마스 제퍼슨
성령으로 잉태한 동정녀로부터 예수가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아테나 제우스로부터 태어났다는 우화와 같은 수준으로 여겨질 날이 언젠가 오게될 것이다.(중략) 하지만 이성의 빛과 생각의 자유가 미국에서 이런 인위적 발판을 제거할 것으로 생각한다.
-1823년 토마스 제퍼슨

많은 역사학자들은 토마스 제퍼슨의 행적에 비추어, 그가 이신론자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퍼슨 성경은 토마스 제퍼슨이 이신론자였음의 강력한 근거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복음서의 내용을 편집해 자기만의 성경을 만들었는데, 이 요약본에는 예수가 행한 기적들, 죽은지 3일만에 부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모두 지워져 있다. 제퍼슨 성경 스캔본 제퍼슨 외에도 ' 건국의 아버지들' 인사의 상당수가 당시 계몽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신론, 무신론에 빠졌다는 해석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제퍼슨은 이 부분이 특히 드러나는 편이다.

6. 기타

다재다능하고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지만 의외로 말빨언변에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본인 역시 대단히 수줍음을 많이 타서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싫어했다. 대통령 재임시절에 연설한 것이 단 두 번이었을 정도. 그것도 둘다 대통령 취임 연설이었다.(...) 드라마 《존 애덤스》에서도 제퍼슨이 애덤스에게 "저는 당신처럼 능변의 재능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지이자 라이벌인 애덤스가 날리던 변호사였던만큼 상당히 변설에 뛰어났던 것과 달리 제퍼슨은 학자 출신이자 독립선언서의 대부분을 기초했던 만큼 말빨보다는 글빨이 더 좋았던 인물이었던 듯.

와인을 싸게 살 수 있는 나라치고 국민이 취해 있는 법이 없고 증류주가 와인을 대신하는 나라치고 국민이 깨어 있는 법이 없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마찬가지로 술을 매우 즐겼다. 특히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에 대해 남긴 발언이 여럿 남아 있다. 직접 포도를 재배해서 와인을 제조하려 했으나 제조 기술이 부족해 실패한 적도 있다.만일 그가 저승에서 파리의 심판을 봤다면 눈물을 흘렸을수도..몬티첼로에 있는 저택에는 와인 수천 병을 저장한 와인셀러까지 있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사실 클린턴의 중간이름이 제퍼슨이다. 공교롭게도 르윈스키 스캔들 당시 유전자 검증은 제퍼슨 자손들의 유전자 검증과 같은 기술로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드라마 《 슬리피 할로우》에서 현대에 부활한 독립전쟁 시대의 군인인 이카볼드 크레인이 제퍼슨의 불륜설을 듣고 멘붕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가장 정석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자라는 점에서 리버테리안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 3에서 등장하지만, DLC인 워싱턴 왕의 폭정의 3편 에피소드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독립전쟁 후에 폭정을 일삼는 워싱턴을 막기 위해 잔존한 영국군들을 이끌고 뉴욕의 그의 왕궁인 피라미드를 공격하나 도리어 포위당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당하려던 찰나에 주인공 라둔하게둔에게 도움을 받아 탈출하고 이후, 함께 워싱턴을 몰락하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이 DLC는 선악과가 보여주는 환상인지라 진짜 역사는 아니다. 여담으로 아직 대통령 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게임에서는 위에 나온 초상화보다 꽤 젊게 나온다.

[1] Legum Doctor. [2] 마사 제퍼슨 여사의 이복여동생인 샐리 헤밍스와 정부관계이기도했다. 다만 마사 여사 사후인 1800년대 이후에 맺은 관계라 불륜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 [3]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4] 대통령 취임 14년 전, 신문사 사장 시절의 발언. 언론 자유와 관련해 아마 전세계 언론인, 혹은 언론 전공 학생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장일 듯 하다. 그런데 (보통은 잘 인용되지 않는)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으면 '정부의 권위 < 언론의 자유' 보다도, '정부의 권위<언론의 자유 << 평등한 교육 기회의 중요성'으로 읽힌다 [5] 워싱턴 행정부때 재무장관을 맡았으며 서술한 바와 같이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함을 제창한 연방주의자였다. 미국의 1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실렸으며 후에 부통령이었던 아론 버(Aaron Burr)와 총격 결투를 가진다. [6] 일례로 미국 행정부는 대통령 경호 같은 걸 전담하는 부서가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부른다는 이유로 만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미국 대통령들은 암살 위협 등에 시달렸다. 자세한건 SS 항목 참고. [7] 뮤지컬 해밀턴에서는 이 점을 들어 알렉산더 해밀턴에게 신나게 까인다. [8] 샐리의 조부모 4명 중 3명이 백인이었다. [9] 제퍼슨이 프랑스 대사로 파리에 머물 때 얘기. [10] 실제 샐리처럼 혼혈인 탠디 뉴턴이 샐리 역을 맡았다. 뱅상 카셀이 나오기도 하고 귀네스 팰트로도 나온다. [11] 지성이라는 측면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제퍼슨의 지성에 견줄 만한 사람은 정치학자이자 행정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우드로 윌슨 정도뿐이다. 하지만 당대에는 대통령은 아니었어도 벤저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과 같은 쟁쟁한 굇수들이 즐비했다. [12] 반은 농담이지만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시리즈이다보니 나름대로 '3'과의 인연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