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2 16:14:14

쿠다라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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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쿠다랑.jpg

1. 개요
1.1. 교토에서 비롯되었다는 설1.2. 백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1.3.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졌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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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くだらない

'가치가 없는, 굉장하지 않은, 시시한, 별 것 없는'의 의미를 지닌 일본어.

한자로 下らない라고도 표기하기도 한다. ない가 으로 바뀌어 '쿠다랑(くだらん)'으로 변형되는 경우도 있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일본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가장 지지받는 학설들은 다음과 같다.

1.1. 교토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교토는 천황이 거처하는 곳으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일본의 에도시대에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는 에도였으며, 이 때문에 일본내의 물자 이동은 교토에서 양질의 물건들이 만들어져 에도로 옮겨진 후 그곳에서 소비되는 형태였다. 이렇게 교토에서 생산되어 에도로 옮겨지는 것을 '내려오다'라는 뜻의 '下(くだ)る' 라고 표현하였는데, 개중에 품질이 떨어져 에도로 내려보내지 않는 저급한 물건들을 내려보낼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下らぬもの라고 불렀다. 이 부정형의 ぬ가 현대 일본어의 부정형인 ない로 바뀌어 くだらない라는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1.2. 백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과거 야마토 왕권 시대에 백제를 쿠다라[1]라고 읽었는데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다. 고대 야마토 왕조 시절 백제의 선진문명을 수입한 배경 때문에 '백제의 것이 아니면 시시한 것'이라는 풍조가 생겨 '백제(くだら)의 것이 아닌(ない) 것', '百済無い'라는 어원에서 유래하였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유명 역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쿠다라의 어원이 한국어 큰 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근거하여 한때 일본에서도 2번 항목의 기원설을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1.3.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졌다는 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조선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위한 표현으로 만들어졌다는 의견으로 혐한파 미즈노 슌페이 교수를 비롯한 우익계열 학자들에 의해 등장한 주장이다. 이들은 쿠다라나이라는 표현이 일본 고어에 없다는 점을 들어 근래에 생긴 표현으로 보았고 그 중에서도 일제강점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즈노 슌페이의 주장에 따르면 쿠다라나이는 '백제는 없다, 백제는 하찮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우에다 마사아키를 비롯한 친한파 역사학자들과 한국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다시 왜곡되어 한일 양측에 퍼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 어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한국어 '큰나라'의 음독 또는 '구드래 나루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중 구드래는 '근(큰)과 어라가 변형된 것으로 보는데, 직역하면 대왕의 나루터라는 뜻이 된다. 백제어 문서 참고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