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1 14:51:34

캐싱엄의 윌리엄

성명 캐싱엄의 윌리엄
William of Cassingham
생몰년도 미상 ~ 1257년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캐싱엄(현재 켄샴)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웰드
직위 캐싱엄의 영주, 웰드 관리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군인. 제1차 남작 전쟁 시기에 존 왕 헨리 3세 부자를 위해 루이 왕자에 대적했다.

2. 생애

잉글랜드 왕국 켄트주 캐싱엄 출신의 시골 영주다. 제1차 남작 전쟁이 발발한 뒤 프랑스 왕국 루이 왕자 존 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잉글랜드 귀족들에 의해 잉글랜드 왕으로 추대된 후 잉글랜드 남동부를 휩쓸자, 이에 맞서 켄트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 동시대의 연대기 작가인 웬도버의 로저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윌리엄이라는 이름의 청년은 전사이자 (존 왕에게) 충성심이 강했지만, 충성심이 없는 사람들을 멸시해 숲과 황무지(켄트와 서식스 일대)에 수많은 궁수들을 모았다. 그들은 모두 그 지역 사람들이었고, 항상 적을 공격하고 방해했다. 그들이 저항한 결과 프랑스인 수천 명이 죽었다.

1216년 10월 존 왕이 죽고 9살된 헨리 3세가 즉위한 후, 루이 왕자에 대한 귀족들의 지원이 미진해졌다. 이에 루이 왕자는 런던에서 남쪽 해안으로 진군하여 프랑스로 가서 지원군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윌리엄의 군대가 루이스 시 인근에서 기습 공격해 루이의 군대를 패주시키고 윈첼시까지 추격했다. 루이는 윈첼시에서 프랑스 함대가 도착한 덕분에 원기를 겨우 회복한 뒤 본국으로 귀환했다. 1217년 4월, 루이는 프랑스에서 군대를 이끌고 도버 공방전을 재개하려 했지만, 그 전에 윌리엄과 올리버 피츠레지스가 도버 성 인근 프랑스군 진영을 공격해 파괴한 걸 알게 되자 대신 샌드위치에 상륙하기로 헀다.

전쟁이 끝난 뒤, 윌리엄은 헨리 3세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았고, 1241년 5월 28일 웰드의 관리인이 되었으며, 그의 봉사에 대한 보상으로 교무장 원수에 선임된 뒤 죽을 때까지 이 직책을 맡으며 왕실을 위해 통나무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사소한 임무를 수행했다. 1257년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라파엘 홀린셰드는 연대기에서 윌리엄에 대해 "오! 잉글랜드 혈통의 훌륭한 사람이여!"라고 칭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