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5 18:52:33

카푸친 교회

1. 개요2. 상세3. 황실 봉안당

1. 개요

홈페이지
오스트리아 에 위치한 수도원 겸 성당.

2. 상세

가톨릭 카푸친 수도회 산하의 수도원 겸 성당이다. 카푸친 수도회는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함께 프란치스칸 제1회를 이루는 수도회이다. 세 수도회 모두 한국에도 진출했다. 이름에서 커피의 한 종류인 카푸치노를 연상할 수 있는데, 실제로 카푸치노의 어원이 이 카푸친 수도회이다. 자세한 설은 카푸치노 문서 참조.

(훗날 카푸친 수도회의 총장이 된) 브린디시의 성 라우렌시오(Lorenzo da Brindisi 1559-1619)는 1598년 오스트리아 대공국 보헤미아 왕국에 새로운 수도원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고 동료 수사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로 갔다. 1599년, 성 라우렌시오는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마티아스의 아내 안나 폰 외스터라이히티롤(Anna von Österreich-Tirol)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오스트리아 빈에 카푸친 교회(Kapuzinerkirche)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 전쟁 때문에 건축이 늦어져서 완공은 1632년에 되었다. 이후 빈에 있는 카푸친 교회는 합스부르크 황실 봉안당을 교회 지하에 마련하고 관리한다.

3. 황실 봉안당

카푸친 교회의 지하에는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를 배출한 합스부르크 가문 전용의 봉안당이 있다. 합스부르크 황족의 관이 이 봉안당에 안장될 때는 특별한 전통적인 의식을 치른다.

처음에는 황제 또는 황태자 등 공식 작위들을 열거하며 '황족'임을 나타내고 입장하려 하나 거절당한다. 두 번째에는 직업과 각종 학위 및 수여받은 훈장을 통해 '공인'임을 나타내며 입장하려 하나 또다시 거절당한다. 마지막으로 본명을 부르며 "한 죄인이 입장한다"고 알리면 비로소 교회 문이 열리는 의식이다. 아무리 황족이라 해도 죽음과 하느님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일개 죄인일 뿐임을 드러낸다.

일례로 루돌프 황태자의 장례식을 묘사한 영화의 한 장면과 2011년 사망한 오토 폰 합스부르크의 입장 의식 장면이다.

오토 폰 외스터라이히[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이시며, 웅가른,[2] 뵈멘,[3] 달마티엔, 크로아티엔, 슬라보니엔, 갈리치엔-로도메리엔 그리고 일리리엔 왕태자이시며, 토스카나 그리고 크라카우 대공이시며, 로트링겐, 잘츠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크라인, 부코비나 공작이시며, 지벤뷔르겐의 대후작이시며, 메렌 변경백이시며, 오버 운트 니더슐레지엔, 모데나, 파르마, 피아첸차, 구아스탈라, 아우슈비츠[4], 차토어, 테셴, 프리아울, 라구자, 차라의 공작이시며, 합스부르크, 티롤, 키부르크, 괴르츠 그리고 그라디스카의 제국백이시며, 트리엔트, 브릭센의 후작이시며, 오버 운트 니더라우지츠 그리고 이스트리엔의 변경백이시며, 호에넴스, 펠트키르히, 브레겐츠, 조넨베르크 등의 백작이시며, 트리에스트, 카타로, 빈트 변경주의 영주이시며, 보이보디나, 제르비엔[5] 등등 보호령의 보호자이시다.
동영상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부르는 성씨가 다르다. 첫 번째 외스터라이히는 오스트리아 독일어 발음으로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영지로 하는 군주 가문임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두 번째에는 본성인 합스부르크를 쓰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의 군주 가문임을 내세우지 않는 표현이다. 루이 16세가 본성인 카페라는 성씨를 쓴 루이 카페의 이름으로 처형당한 것처럼 군주 가문인 표현을 빼는 경우 본성을 쓴다.[6]

문 안쪽에서 초를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황실 봉안당이 있는 카푸친 교회를 관리하는 카푸친 수사들이다.

빅토리아 여왕 앨버트 공 사이에도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둘이 부부싸움을 하고는 앨버트 공이 너무 화가 나 방에 틀어박혔다. 빅토리아 여왕이 화해할 목적으로 노크를 하자 앨버트 공이 누구냐고 물었고,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여왕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두번째로 노크를 하고 '빅토리아 입니다'라고 대답해도 앨버트 공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세번째로 여왕이 노크를 하고 '당신의 아내예요'라고 대답하자 기쁘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의 무덤도 이곳에 있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명령으로 나폴레옹의 묘지가 있는 앵발리드로 이장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21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21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


[1]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원어다. [2] 헝가리의 독일어 발음이다. [3] 보헤미아의 독일어 발음이다. [4]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그 곳 맞다. [5] 세르비아의 독일어 발음이다. [6] 다만, 엄밀히 말하면 부계로는 로트링겐이라 본성은 로트링겐이며 합스부르크(Habsburg) 역시 군주 가문을 나타내는 성씨이다. 물론 이미 합스부르크 지역은 스위스 연방 영토로 오스트리아에서 벗어난지가 애저녁이고 군주 가문으로 권위가 높은 성씨는 '지금 다스리고 있는 가장 거대한 영지'이다. 부르봉 왕조도 부르봉-라르샹보 시에서 유래된 카페 왕조의 방계 가문명으로, 국왕의 이름 자체는 " 루이 디외도네 '드 프랑스'" 식으로 프랑스 왕국이라는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는 국왕임을 명확히 표시한다. 즉 본성 '합스부르크'도 군주 성씨라 한들, 즉 다스리고 있는 영지 중 가장 작은 것/상실한 영토이자 본성의 유래라 한들, 여전히 외스터라이히보다는 격이 떨어진다.( 나폴레옹의 경우 '드 프랑스' 표기가 없는데, 프랑스인의 황제로 프랑스 국토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에 의해 추대되고 그에 따라 프랑스인을 이끌고 다스리는 ' 시민국가의 황제'임을 표시하기에 영지 소유 표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