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01:02:09

치치멕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몬스터에 대한 내용은 치치멕(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아메리카 각국의 국민정체성 및 민족 집단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미국인 캐나다인 멕시코인 아르헨티나인 브라질인
가이아나인 과테말라인 도미니카인 바하마인 베네수엘라인
벨리즈인 수리남인 아이티인 온두라스인 우루과이인
자메이카인 칠레인 콜롬비아인 쿠바인 페루인
엘살바도르인 니카라과인 에콰도르인 볼리비아인
※ 현존 민족만을 표기
※ 다른 지역·국가의 민족 둘러보기 }}}}}}}}}


Chichimec.

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멕시코 서북부에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민족.

2. 역사

작은 동물 사냥과 야생식물 채집을 바탕으로 소규모 옥수수 농사를 겸업하는 반 수렵채집 유목 생활을 하며 독자적인 추피쿠아로 문화(Chupícuaro culture)를 꽃피웠고, 7세기 경 지금의 라 퀘마다(la quemada)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건조하고 척박한 멕시코 서북부의 환경 탓인지 풍습이 상당히 잔혹하고 군국주의적 기풍이 강했다.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이라면 빠지지 않는 식인 문화가 만연했는데, 치치멕족의 중심지 격이었던 라 퀘마다 유적을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 장식용으로 가공된 두개골, 불에 태우고 살을 발라낸 흔적이 남아있는 유골 등 명백한 식인 행위의 증거가 나온 것으로 알 수 있다. 치치멕족의 전사들은 적 부족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사로잡은 포로를 콩과 옥수수를 넣고 끓여 먹었고, 두개골을 줄에 매달아 힘을 과시하고 신에게 풍작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런 면모 때문에 멕시코 중부 고원에 살던 톨텍, 올멕 등의 기존 문명에서는 야만적이지만 싸움은 잘 하는 오랑캐 전투민족으로 여겼다.

열대 저지대 기후인 남부 베라크루즈주와 타바스코주에서 번성했던 올멕의 문화가 쇠하고, 테오티우아칸 문화가 그 뒤를 이었다. 이쯤에 치치멕족이 멕시코로 이주해 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케찰코아틀의 도시 툴라를 수도로한 톨텍이 번성했고 톨텍족들을 멸망시킨 건 치치멕족의 영향이라고 보여진다. 치치멕의 영향은 적지 않았지만 이전 문화를 소멸시키거나 메소아메리카 전역을 중앙집권화해 통치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들이 중미 개발살내는 동안에도 다른 민족들은 번성했고, 그러한 선주민들과 그 후손들의 문화에서 치치멕인들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북방계 이주민들 중 가장 나중에 등장한 크고 아름다운 강대국이 그 유명한 아즈텍이다.

이 치치멕족이 중미 문명권에 끼친 영향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대규모 인신공양 식인 풍습이다. 9세기 고전기 마야 문명을 끝장낸 소빙하기의 기후 재앙은 서북부 치치멕족에게도 예외없이 닥쳐왔고, 치치멕족은 생존을 위해 대규모로 남하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기존 중미 문명들이 치치멕의 잔혹한 군국주의 문화에 물들기 시작했다.[1] 이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톨텍 문명. 톨텍은 치치멕의 영향을 받아 전사를 중시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중미 전역에 힘을 떨쳤고 유카탄 반도의 마야 권역까지 뻗어나갔다.[2] 이 과정에서 대규모 인신공양 문화가 중미권에 널리 퍼져나가게 된 것. 이러한 기조는 훗날 치치멕의 일파인 멕시카족이 톨텍의 문화를 대거 받아들여 아즈텍 제국을 세우면서 정점을 찍게 된다.

아즈텍인들은 그들을 '개의 후손'이라고 불렀다.

[1] 실제로 9세기 이전의 올멕, 톨텍, 마야 등 기존 문명권에서는 식인이 동반되지 않는 인신제사 및 자해 의식은 벽화와 부조에서 빠지지 않고 묘사되지만 식인 행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시기의 인신공양 유골들도 외상 흔적은 뚜렷하나 살을 바른 흔적, 불에 익힌 흔적, 이빨 자국 등은 하나도 없다고. 하지만 치치멕족이 살던 북서부에서는 위에서 언급되었듯 아주 확실한 식인 행위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2] 이러한 사실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마야 문명의 대표 도시 중 하나인 치첸 이트사. 치첸 이트사 유적 동쪽에는 '전사들의 신전'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줄줄이 배열한 원기둥, 전사의 모습을 새긴 사각 기둥들, 인신공양 의식을 거행하는 차크몰 석상, 돌에 새긴 해골 재단 촘판틀리 등이 남아있는데, 사실 이 것들은 모두 기존 마야에는 없었던 톨텍의 양식이다. 앞서 말한 사각 기둥에 새겨진 전사들도 마야가 아닌 톨텍 전사의 차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치첸 이트사는 고전기 마야 도시들이 몰락하면서 생긴 유민들을 흡수하여 힘을 키운, 후고전기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다. 즉 고전기 이후의 마야 문명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톨텍의 군사적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