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1:48:44

춘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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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명이 춘양역이었던 경전선의 폐역에 대한 내용은 석정리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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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양역
동대구· 부전 방면
봉 화
←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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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Chunyang
한자 春陽
간체자 春阳
가나 [ruby(春陽, ruby=チュニャン)]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운곡길 22-2
(의양리 152)
관리역 등급
관리역
(2급 / 한국철도공사 경북본부)
운영 기관
영동선 한국철도공사
개업일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영동선 1955년 7월 1일
무궁화호 1986년 3월 21일
파일:누리로 BI.svg 2021년 1월 5일
V-train 2013년 4월 12일 }}}}}}}}}
철도거리표
영동선
춘 양
현 역사(1997년 준공, 2013년 개축)
파일:IE000865104_STD.jpg
구 역사(1955년 준공, 1998년 철거)

1. 개요2. 역 정보3. 연계 교통
3.1. 농어촌버스
4. 승강장5. 일평균 이용객6. 억지춘향? 억지춘양?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영동선 철도역.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운곡길 22-2 (의양리 152) 소재.

현 역사는 1997년 12월에 준공되어 이듬해인 1998년 1월에 이전하여 사용 중인 건물로 25년을 넘긴 노후 역사다.

승강장은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으로 단출한 편이다. 중부내륙순환열차 개통 후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가 생겼다.
금처럼 귀한 나무가 반기는 역
춘양역은 1941년 영동선 보통역으로 영업개시, 1945년 8월 연합군에 의해 역사가 파괴되었다가 1955년 다시 세워졌다. 1998년 영주-철암 간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현재의 역사로 신축 이전하였다. 춘양이란 역명은 만석봉(萬石峯) 아래 들판이 넓으면서도 양지바르고 항상 봄볕처럼 따뜻하다는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춘양지역은 1923년부터 채굴되었던 금광, 금정광산이 있는 곳으로 각종 광물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춘양목으로 통용되는 목재의 명산지이다. 때문에 지역 명품인 춘양목을 역 구내에 비치, 춘양목의 우수한 품질과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확인해볼 수 있다.
국가철도공단 공식 소개 문구

2. 역 정보

파일:dthumb2-phinf.pstatic.jpg
구 역사 전경

원래 '춘양역'이란 이름은 저 멀리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에 있는 역이 가지고 있었지만 이 역이 개업하면서 이름을 강탈해왔다. 화순의 역은 석정리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8년에 폐역으로 전환되었다.

팔각지붕 옛날 모양과 건물과 비슷한 창원역, 해운대역, 소요산역, 문산역 4곳이다

3. 연계 교통

3.1. 농어촌버스

의양리-춘양KBS(371000598·371000599)
농어촌

4. 승강장

임기
1 2
봉화
1 영동선 [[무궁화호|
무궁화호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
분천· 철암· 동해 방면
2 [[무궁화호|
무궁화호
]]
영주· 동대구· 부전 방면

5. 일평균 이용객

||<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55839><bgcolor=#f55839> 연도 ||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 || [[무궁화호|
무궁화호
]]
파일:누리로 BI.svg
||<bgcolor=#f55839> 총합 ||<bgcolor=#f55839> 비고 ||
2003년 66명
2004년 97명
2005년 112명
2006년 103명
2007년 94명
2008년 86명
2009년 93명
2010년 89명
2011년 94명
2012년 98명
2013년 4명 106명 110명
2014년 3명 98명 101명
2015년 2명 71명 73명
2016년 2명 82명 84명
2017년 3명 73명 76명
2018년 4명 70명 74명
2019년 3명 64명 67명
2020년 0명 32명 32명
2021년 0명 38명 38명
출처
철도통계연보


관리역이긴 하지만, 다른 시골의 간이역처럼 해가 갈수록 이용객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2019년도까지는 괜찮았지만,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그나마 운행하던 관광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현재는 30명 대의 이용객이 이용한 조그마한 역이 되었다.

6. 억지춘향? 억지춘양?

파일:attachment/춘양역/Chunyang.jpg

억지춘양 혹은 억지춘향의 발원지가 이 동네라는 설이 있다. 원래 영암선(영동선의 전신)이 부설될 때 춘양면을 통과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춘양면 서벽리 출신으로 당시  제3대 국회의원이자  자유당 원내총무였던  정문흠(鄭文欽,1892 ~ 1976)이 반대하여 억지로 선로를 꺾어가면서 이 동네를 거치게 했다는 설인 것. 어찌보면 철도 핌피의 시초로도 볼 수 있다.

지도로 보면 실제로 직선으로 뚫고 갈 법도 한 곳을 S자도 아니고 아예 깊은 요철형 또는 Ω[2]으로 지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춘양에서 질 좋은 목재가 많이 생산되어[3][4] 그나마 화물 수요는 꾸준히 있었기에 아주 억지로 지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억지춘향이란 말은 이 역이 개업한 1955년보다 훨씬 전에 이미 쓰이고 있었으며 확실히 억지春香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格에맛지안는 地方部社會部, 經濟部椅子에 턱턱걸어안저서 억지春香의 붓대勞働을 머리골치가띙하게 終日하고잇다." - 1927년, 동아일보 #
"이러케 억지春香을 꾸며노타싶이한 K君이 機械的으로움즉여야할 拘束된 店員生活에 調和되지안흘것은 定한 理致다." - 1938년, 동아일보 #
"머리채를느러트리든옛시절로 거슬러올나가도못쓰겟지만 노란머리아닌털을 억지춘향으로구비치게한들 어쩔거시여" - 1949년, 동아일보 #"

그 시절 발간된 국어사전에도 "억지춘향이" 라는 표현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무렵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억지춘향이란 표현을 쓰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해당 글에 의하면 영동선이 구배 문제로 인해 춘양역을 지나야 했다고 하고, 해당 칼럼에 의하면 영동선 춘양역과 과거 춘양역으로 불렸던 경전선 석정리역 사이의 역명 분쟁이 노선 분쟁으로 와전되었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으로 성급히 단정짓기는 어려울 듯하다. #

자세한 내용은 억지춘향 항목 참조.

7. 둘러보기

영동선 역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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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소선:폐역
강릉역은 2018년 6월 28일 영동선 거리표에서 삭제되었으나 영동선 열차가 정차한다.
}}}}}}}}}



[1] 편도 1회만 영주발 열차만 정차 [2] 선형의 불량함으로만 놓고 보면 이곳이 훨씬 심하다. [3]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목재가 바로 그것이다. 해송과 육송의 자연교잡종으로 태백산 일대에 자라는 우량 소나무가 벌목되면 춘양에 보내져서 전국각지로 배송된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4] 지금도 춘양이 유명한 목재의 산지라는 걸 알려주는 듯, 춘양에 가면 한국산림과학고등학교라는 비범한 이름의 고등학교가 있다. 물론 본질은 춘양 상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