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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원

최진원
崔珍源
파일:최진원.png
<colbgcolor=#eaeaea,#191919> 출생 1926년 5월 25일[1]
경상남도 영일군[2]
사망 2005년 7월 25일 (향년 79세)
부모 아버지 최태봉(崔泰鳳), 어머니 권계순(權季筍)
가족 부인 이정규(李貞圭), 슬하 2남 1녀
본관 경주 최씨
경력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장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
도남학회 상임이사
직업 학자, 국문학자
대표저서 국문학과 자연

1. 개요2. 생애3. 활동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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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방 이후 『국문학과 자연』, 『한국고전시가의 형상성』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국문학자.

2. 생애

경상남도 영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생활의 어려움으로 초등학교 시절 집안이 모두 만주로 갔다가 해방 직후 당시 독립운동을 하던 사촌 큰형님의 주선으로 집안 전체가 만주 지린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으며, 1946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50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대학원에 입학하였고, 경기고등학교 교사[3]를 거쳐 1955년 4월부터 퇴임하던 1991년 8월까지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부인 이정규(李貞圭)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2005년 5월 25일 사망하였다. 현재 경기도 양평의 무궁화공원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3. 활동

평소 친구, 제자들과 낚시를 자주 다녔는데 이 경험은 그의 문학 연구, 특히 강호가도(江湖歌道)[4]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데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선비적 풍모를 지녔고 끝까지 학문 탐구의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

『국문학과 자연』에서 강호가도를 중심으로 자연관과 그 사유 및 미의식을 연구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설화, 속요, 판소리를 다루었다. 책에 포함된 「강호가도 연구」는 도남 조윤제의 학문─그 내용과 연구방법을 계승한 것으로 도남의 '자연미의 발견'과 '국문학과 자연'을 심화,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전제로 삼은 강호가도에 나타난 자연의 양상은 일반미이고, 그것은 조화, 영원, 절로절로를 내용으로 한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증명하였다.

시조의 개별 작품의 미감을 중시하지만, 초기 연구에서는 시조 장르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시조의 표상 방식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서정의 경화(硬化)와 갱신(更新)이라는 두 축을 설정하고 시조 작품들이 규범성의 표징이 심화되어 시성 없는 해제에 불과한 작품들이 만들어진다거나, 단세포적 증식을 하거나 유미로 흘러 추상화가 심화되어 서정이 경화되면 그럴 때마다 서정의 갱신이 일어나게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은 문학 작품을 하나의 생명체로 본 조윤제의 문학사관을 시조 장르에 변용하여 적용시킨 것이다. 조윤제는 문학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면서 한문학 국문학의 두 축을 설정하여 한문학의 위세의 변화에 따라 국문학이 태동하여 형성되고 위축되어 잠동하며 소생하여 육성, 발전하는 과정을 문학사에서 기술하고 있듯이, 최진원은 서정의 흐름 속에서 그 서정이 경화되어 감에 따라 그 극에 미치어 경신되는 반복적인 과정을 그의 「강호가도 연구」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최진원의 시조 연구에 있어서의 주안점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실증'과 '불가지'의 통일을 추구한 것, 둘째는 시조의 미학적 특질을 밝히면서 시조 문학 속에 나타나는 서정의 흐름 속에서 서정의 경화와 서정의 갱신을 '유기체적 전체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 셋째는 시조 작품에 있어서 심의(心意) 속에 의구(擬構)된 자연보다는 '실존'의 자연 속에서 정감된 서정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1976년 동학들과 함께 도남 조윤제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도남학회를 창립하였고, 운명하기 전까지 학회의 상임이사로 활동하였다.

4. 여담

최진원의 연구 업적에 대한 연구사적 의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정리한 『임하 국문학 연구의 연구사적 의의와 발전적 계승』이 후학들에 의하여 발간되었다.

[1] 1926년 4월 14일(양력) [2] 1914년부터 1994년까지 존재했던 경상도의 군이다. 1995년 1월 1일 폐지되어 포항시와 통폐합되었다. [3] 1953년 5월∼1955년 4월 [4]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주로 창작한 자연예찬의 풍조. 자연에 귀의하여 생활하는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강호가도로 유명한 인물로는 이현보, 이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