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43:57

최공섭


성명 최공섭(崔公涉)
생몰 1902년 4월 6일 ~ ?
출생지 경기도 강화군 서도면 주문리
사망지 미상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최공섭은 1902년 4월 6일 경기도 강화군 서도면 주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6일 오후 9시경, 유봉진이 주문도 주민 120여 명이 모인 교회에서 신약전서에 있는 「의리를 구하라」란 글귀를 설명하고, “조선인민이 독립을 바란다면 침묵해서는 안 되니 크게 ‘독립만세’를 불러서 소요를 일으켜야 한다. 나는 그 운동을 위해 결사대원이 되어 천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금후는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결사대에 찬성하는 자가 있으면 손을 들라 했다. 이 때 최공섭은 손을 들어 찬성을 표했다.

이후 그는 만세시위에 참가하기 위하여 17일 유봉진과 함께 주문도를 출발하여 삼산면 하리에 도착하여 강화읍내로 향했다. 3월 18일 오후 2시, 시위대가 신문리 석교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군청, 객사, 공자묘로 진출하면서 그 숫자가 5,000명에서 6,000명으로 불어났다. 그는 여기에 참가해 시위를 전개했다가 체포되었고,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태형 90도에 처해졌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최공섭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