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21:48:40

초가삼간


1. 개요2. 잘못된 인식3. 관련문서

1. 개요



가장 최소한의 크기를 가진 가옥을 나타내는 용어. 대략 3평정도 되며 사람이 간신히 발뻗고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매우 가난하고 초라한 집을 의미한다. 실재로도 초가삼간이란 말은 가난함을 대변하는 용도로서 자주 쓰여졌으며 과거에 비해 그 활용도는 떨어지나 요즘에도 간간히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초가삼간의 정 반대를 가리키는 말로는 "99칸 기와집"이라는 것이 있다. 초가삼간이 가난함을 나타낸다면, 99칸은 부유함과 넉넉함을 나타내는 말로서 쓰여졌었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는 "고래등 같은 집"이 있으며 때론 이 두 용어를 합쳐서 쓰기도 한다.

관용어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표현.

2. 잘못된 인식

파일:초가삼간 정답.jpg 파일:초가삼간 오답.png
왼쪽이 올바른 의미의 초가삼간, 오른쪽이 잘못된 의미의 초가삼간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초가삼간이란 용어를 받아들일때 오른쪽과 같은 형태로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방의 갯수를 새는 칸과 길이단위를 나타내는 칸과 헷갈려해서 생기는 오류이다. 초가삼간의 크기가 대충 3평 정도로 매우 작음을 나타내는데 오른쪽과 같이 방이 3개라서 3간이니 저 건물이 3평이다. 라는건 현실적으로도, 수학적으로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결국 방이 3개라는 게 아니라 왼쪽과 같이 3간의 길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부추긴 것은 가장 작은 남부지방의 전형적 가옥 구조조차도 방2+부엌 1(+옥외부뚜막 1)의 3칸 구조인 이유도 크다. 전라남도나 경상남도에서 흔히 보이는 한옥 구조가 이 3칸짜리 집이고 이런 가옥은 심지어 21세기 현대에도 널려 있다. 지붕만 초가에서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 혹은 1980년대 이후 기와지붕이나 더 좋은 재료로 교환했을 뿐이다.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 시골마을의 단독주택이 전세 2천만원/매매 5천만원(2024년 기준) 정도로 올라오는 건 대부분이 이런 전통가옥이다. 여담으로 중부지방의 경우는 기와집의 경우 몇 칸 더 늘어서 ㄱ자형 주택도 많고, 서울 종로나 한반도 북부로 올라가면 시가지의 과밀 구조, 추위 등을 이유로 ㅁ자형으로 지어진 주택들이 많다.
대군(大君)의 저택은 60칸 내에 누각이 10칸이고, 친형제와 친자, 공주는 50칸 내에 누각이 8칸이며, 2품 이상은 40칸 내에 누각이 6칸이고, 3품 이하는 30칸 내에 누각이 5칸이며, 서인은 10칸 내에 누각을 3칸으로 하라. 공주 이상은 정침과 익랑(翼廊)의 보(栿) 길이가 10척, 도리 길이는 11척, 기둥 높이는 13척이고, 나머지 간살은 보 길이 9척, 도리 길이 10척, 기둥 높이 12척이고, 누각 높이는 18척이다. 1품 이하는 정침과 익랑의 보 길이는 9척, 도리 길이는 10척, 기둥 높이는 12척이고, 나머지 간살은 보 길이 8척, 도리 길이 9척, 기둥 높이 7척 5촌, 누각 높이는 13척이어야 한다. 그리고 서인 가옥의 간살은 보 길이 7척, 도리 길이 8척, 기둥 높이 7척, 누각 높이 12척으로 하되, 모두 영조척(營造尺)을 쓰도록 한다.
세종 22년(서기 1440년) 반포된 제2차 가사제한령(家舍制限令)

조선 세종조에 내려진 가사제한령[1]에 따르면, 건물 한 칸의 크기를 정하는 구조체인 보와 도리의 길이를 신분별로 다르게 정했다고 나온다. 칙령대로라면 대군의 저택에서는 한 칸의 크기가 11척*10척이 된다. 척관법의 한 간(間)은 여섯 자(尺) 크기인데, 이는 사람 한 명이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둥간 스팬이라는 뜻으로, 건물의 기둥 사이 공간 수를 세는 단위 ‘칸(간)’과 길이 단위인 ‘간’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것저것 정보가 섞이면서 요상한 오해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가옥은 방이 3개다. = 초가삼간은 방이 3개인 초가집을 말한다. = 초가삼간의 크기는 대략 3평 정도이다. =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가옥은 대략 3평정도이다.) 라는 과정을 통해 초가삼간이 당시 조선가옥의 평균을 가리키는 말이고 따라서 대부분 3평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허나 위에서 말했듯 초가삼간의 의미는 가장 작은 집을 가리키는 용어지 가옥의 평균치를 나타내는 기준점이 아니었다. 실재로 조선의 가옥들은 대부분이 못해도 10평 이상이였고, 이러한 수치들은 재료와 제조방식의 차이에 따라 제각각 달라졌다. 현대에는 산업화외 이촌향도를 거치면서 도시에 인구 대부분이 살게되었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살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구가 골고루 퍼져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에도 부동산이 사회이슈가 되었기는 했지만, 주로 농경지 소유 및 배분, 혹은 소수계층의 독과점 문제에 집중되어있었기 때문에 주택문제는 상대적으로 덜했고, 또한 현대와 달리 좌식생활을 했었고 텔레비전, 컴퓨터, 세탁기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전제제품을 들일일도 없었던지라 그 만큼 필요공간도 줄어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99칸 기와집이란 용어를 가지고서 99칸 이상으로 짓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다만 이건 당대에 돌아다녔던 뜬소문이 현재까지 전혀져내려온것이고, 실제 법제와는 달라서 100칸 200칸 넘어가는 가옥들도 지을수 있었기는 했다

여담으로 간 또는 칸으로 발음되어지는 길이 단위는 1간에 대략 1.8m이다.

3. 관련문서


[1] 주택의 규모, 의장 등을 신분에 따라 제한하는 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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