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14:06:45

첼시(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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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터 런던 소속의 보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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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싱턴-첼시 왕립구
Royal Borough of Kensington-Chelsea
파일:external/oi60.tinypic.com/i5y6hd.jpg
켄싱턴-첼시 왕립구(밝은 적색과 노란색 구획 부분)
국가 영국
행정 구역 켄싱턴-첼시 왕립구
면적 12.13㎢
인구 156,129명[1]
인구 밀도 33,000명/㎢
시간대 UTC+0( 서머타임 준수)
홈페이지 홈페이지
1. 개요2. 예술가들의 자치구3. 역사
3.1. 유래3.2. 역사적 소재 시설
3.2.1. 로열 종합병원3.2.2. 첼시 가마터3.2.3. 첼시 피직 가든3.2.4. 래닐러 가든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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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런던 켄싱턴-첼시 왕립구[2]에 속해있는 템스강북 서남부. 첼시 브릿지에서 첼시 둑방길을 따라 구 롯츠 화력발전소부터 첼시 항구까지를 말한다. 동쪽에 웨스트본 강이 있고 슬로언 스퀘어 역[3]이 중심가다. 켄싱턴을 제외한 면적은 약 6㎢, 인구는 약 40,440명이다.

킹즈로드 쇼핑센터와 피터 존스 백화점, 카도건 홀, 로열 코트 극장[4] 등 문화 시설이 많아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한다. 주로 킹즈로드[5][6] 주변에 거주했던 1960년대 예술가들이 '스윙잉 런던[7]'이란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다.

현재 런던의 주요 부촌 중 하나로 옆동네 풀럼과 함께 비싼 집세를 자랑한다.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한 건 1970년 초부터로 당시에도 사회적 이슈였다. 이 때 첼시에 급격히 늘기 시작한 영앤리치는 'Sloane Rangers'로 불렸다. 비싼 집값이 문제되지 않는 외국인 부자들도 많이 거주하고 특히 미국인이 많다. 인구 약 6.5%가 본적이 미국이라고.
파일:external/oi58.tinypic.com/v7rwiw.jpg 파일:external/oi60.tinypic.com/2enuycw.jpg
첼시를 포함한 런던 도심부 행정 구역 지도 런던의 양극화를 풍자한 그림(적색 부분이 첼시)

2. 예술가들의 자치구

첼시가 처음 유명해진 건 런던의 전위예술 중심지로서였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첼시 예술대학 졸업생을 중심으로 셰인 워크, 셰인 로우, 소위 라파엘 전파[8]로 알려진 19세기 중반의 전위적 예술 그룹들로 시작해 각종 극단주의자들과 새로운 사조를 모색하는 화가, 문인이 모여들었고 이들의 개혁 성향은 매너리즘에 빠진 영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미국 등지에서도 새로운 예술을 찾아 방황하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첼시 공립 도서관에 모여 예술을 논했다.

조지 메리디스, 알저넌 찰스 스윈번, 레이 헌트, 조너선 스위프트, 토머스 카일라일이 처치 스트릿 근처에 모여살며 첼시를 빛냈고 리처드 스틸, 토비아스 스몰렛, 버지니아 울프도 첼시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1907년 아서 랜섬이 지은 보헤미아 인 런던은 전위예술가들의 성지 첼시에 대한 동경과 찬사로 가득하다.

1960년대 첼시는 다시 한 번 문화적으로 퀀텀 점프를 하는데 이들이 바로 스윙잉 첼시[9]로 불리던 집단으로 1970년대 초까지 번성했다. 이들은 킹즈로드를 중심으로 전위적인 예술 활동은 물론 자유로운 숍과 펍 등을 열어 트렌드를 주도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이 섹스 피스톨즈를 매니징하고 제작한 종합 공연 제작자 말콤 매클라런과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로, 이들은 'Sex'란 이름의 편집숍을 열고 당대 유명 연예인들과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열었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해 특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 왕실로부터 2등 기사 훈위까지 받는 거물로 큰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브라이언 존스, 믹 재거, 키스 리처즈 등의 연예인은 물론 리버풀에서 결성된 비틀즈도 킹즈로드에 살았고, 킹즈로드는 까르띠에, 티퍼니 앤 코, 돌체 앤 가바나 등 명품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 영국 신문의 연예, 사회면은 첼시에서 다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1974년 IRA 테러리스트가 벌인 폭탄 테러에 20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현재 부자만 살 수 있는 곳이 된 첼시는 영국의 하이 컬쳐를 대변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3. 역사

3.1. 유래

첼시의 어원은 Chelchehithe.[10]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787년 칠왕국 시기 머시아 왕이 설치한 장원으로서다. 머시아 왕은 첼시에 지방 법원을 설치하고 리치필드 교구를 둬 매년 365냥의 금화를 교황에게 보내도록 했다. 그것이 당시 영국이 교황에 내는 세금이었다고. 웨스트민스터 주교 공관도 첼시에 있었다.

노르만 왕조 이후 솔즈베리 백작 겸 켄싱턴 백작 오브리 드 베어(Aubrey de Vere)가 봉토를 받은 1086년에 다시 첼시가 등장한다.

헨리 8세는 1536년 산디스 경에게서 첼시를 뺏어 직할로 두고 별궁을 지어 아내들을 차례로 살게 했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가 첼시 별궁에서 태어났고 토마스 모어도 첼시를 거쳐갔으며[11] 제임스 1세는 첼시에 신학대학[12]을 지었다.

1694년부터도 런던의 부촌이었고 많은 별궁들이 세워져 호화로움을 뽐냈다. 그러나 아직 런던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시절이라 텃밭, 과수원이 있기도 한 인구 3천 정도의 교외였다. 본격적으로 인구 붐이 일어나고 번화가가 되기 시작한 건 현재 리틀 첼시로 불리는 지역에 신시가지가 들어서고 풀럼까지 가도가 연결돼 항구가 생긴 1700년대부터였다.

찰스 2세는 현재 킹즈로드라 불리는 거리를 닦았고 풀럼까지 왕도[13]를 놓았다. 첼시 구청도 번듯하게 들어섰고 공립 도서관도 설치돼 문화적으로도 융성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를 기록한 브리태니커 사전엔 '(첼시의) 동쪽에 더 좋은 거주 조건이 구비돼 있으며 서쪽의 슬로언 거리부터 템스강을 따라 풀럼 가도까지 연결되는 곳 주변은 상대적으로 가난하다'고 기록됐다.

3.2. 역사적 소재 시설

3.2.1. 로열 종합병원

첼시하면 떠오르는 주민층은 로열 종합병원 근처의 레드코트 출신 은퇴 군인들이다. 로열 종합병원은 1682년 프랑스의 군인 복지 시설 '오뗄 드장빌리드 드 파리[14]'를 모델로 찰스 2세에 의해 설립,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의 설계로 1689년부터 가동을 시작해 476명의 은퇴 군인을 받았다. 2차 대전 때 피해를 입지만 빌딩 본관은 그대로 남아 찰스 2세의 동상과 함께 현존한다. 현재도 입원 경쟁이 치열해 영국 은퇴 군인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고.

3.2.2. 첼시 가마터

첼시 도자기 공작소[15]는 1745년 건립됐다. 니콜라스 스프리몬트(Nicholas Sprimont)가 운영했던 가마 공장은 영국 도자기 산업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전에도 가내 수공업 형태로 요지(窯址)가 이미 있던 첼시는 런던의 도자기 수요를 모두 감당함은 물론 수출에도 크게 기여했다. 원래 로렌스 스트리트[16]에 있던 가마터는 1784년 더비로 이전돼 현재까지 내려온다.

3.2.3. 첼시 피직 가든

현재도 많은 약용 성분이 연구되고 있는 연구용 식물원 단지 피직 가든은 1676년 제약 회사 애포스캐리 컴퍼니[17]가 쉐인 경(Sir Cheyne)의 땅을 빌려 지었고, 1722년 아예 한스 슬로언 경(Sir Hans Sloane)이 애포스캐리 컴퍼니에 기증했다. 여기서 채취된 목화씨가 1732년 신대륙으로 보내져 현 미국 조지아 주의 목화 산업을 일으켰다.

3.2.4. 래닐러 가든

Ranelagh Gardens는 1689년 앵글로 아이리시[18]출신 귀족 래닐러 백작(The 1st Earl of Ranelagh)의 소유지에 세워진 예술 정원으로, 실제 건립자 겸 설계자는 이탈리아 출신 유대계 상인 솔로몬 리에티(Solomon Rieti). 그의 누이가 훗날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의 할머니 레베카 리에티다. 원래 로코코 양식의 귀족적 풍취의 정원으로 사유지였으나 1742년 일반에 공개된다. 당시 입장료는 2실링 6펜스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고. 강건너 케닝턴의 복스홀 가든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우아한 정원이었다. 정원 중앙의 로코코 로툰다 홀이 유명하다.

4. 기타

  • 첼시 FC의 연고지는 이곳이 아닌 풀럼이다. 물론 풀럼도 런던 최부촌[19]이고 첼시 FC의 홈구장 스탬퍼드 브리지가 풀럼과 첼시의 접경지에 위치해있어 첼시 FC의 이름에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 FC란 팀이 강남역 사거리의 서쪽 블럭[20]에 홈구장이 있는 셈.
  • 이 지역의 젊은 중상류층 주민이 출연한 리얼리티 쇼 '메이드 인 첼시'가 채널 4에서 방영해 현재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 셰인 거리에 살던 작가 존 새뮤얼 펜(John S. Phene)은 자택과 정원 곳곳에 오브제를 설치하고 '생강빵의 성'이라 불렀다. 1912년 타계한 후에도 오브제는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다 1924년 철거됐다.
  • 켄싱턴-첼시 왕립구는 본래 켄싱턴으로 불릴 예정이었으나[21] 첼시 지역구 국회의원 존 리치필드(John Litchfield)가 런던 행정구역 개편 담당자 키스 조세프(Keith Sinjohn Joseph)에게 첼시 명칭을 유지하라 압박해 '켄싱턴-첼시 왕립구'란 명칭이 됐다.
  • 수도 내의 부촌이라서 종종 첼시를 '런던의 강남'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첼시는 서울로 치자면 한남동이나 동부이촌동에 더 가까운 곳이다.

[1] 2019년 기준 [2] Royal Borough of Kensington-Chelsea [3] Sloane Square tube station, 1868년 건설 [4] Royal Court Theatre [5] 섹스 피스톨즈가 결성된 곳으로 유명한 'Sex' 숍이 이 거리 430번지에 있었다. 현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컨셉숍이다. [6] 현재는 이런 모습이다.파일:external/www1.imperial.ac.uk/chlesea2.jpg [7]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가 대표적인 이미지. [8] Pre-Raphaelite Brotherhood [9] Swinging Chelsea [10] 고대 영어로 석회암이 들어오는 항구란 뜻. [11] 1520년 Beaufort House란 과수원이 딸린 대저택을 짓고 업무에 지칠 때마다 와서 쉬었다고. 보퍼트 하우스는 그가 처형된 후 몰수되고 여럿 주인이 바뀌다 1740년에 헐려 1766년 보퍼트 스트리트란 거리 이름이 돼 현재에 전한다. 호주 퍼스에도 동명의 거리가 있다. 여담으로 1528년 토마스 모어가 보퍼트 하우스 근처에 지은 작은 가톨릭 예배당은 그의 무덤을 겸하다 1940년 나치 공습에 사라진다. [12] King James' College at Chelsea. 1682년 찰스 2세가 헐고 왕립 첼시 병원을 지었다. [13] 훗날 조지 4세 때까지도 왕만 다닐 수 있는 도로였다. [14] the Hotel des Invalides de Paris [15] Chelsea Porcelain Works [16] Lawrence Street [17] the Apothecaries Company. 영국 약제원 [18] 영국에 항복하고 귀화한 아일랜드인. 구한말 친일파들이 일본 황실로부터 화족 작위를 받았듯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의 항복한 귀족들은 귀족 작위를 받았다. 래닐러의 영국식 이름은 리처드 존스. [19] 첼시의 지역팬들은 프리미어리그 팬층 중 가장 수입이 크다. [20] 강남역은 서초와 강남 경계에 있어 서쪽 블럭은 서초구에 속해있다. [21] 행정구역 개편 당시 이중명칭이 금지돼 '켄싱턴-첼시'같은 이름은 허용되면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