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17:18:36

철원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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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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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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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20 구 조흥은행 대전지점
21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
22 철원 노동당사
23 구 철원 제일교회
24 철원 얼음창고
25 철원 농산물검사소
26 철원 승일교
27 화천 인민군사령부 막사
28 진안성당 어은공소
29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30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

파일:철원군 CI_White.svg 철원군의 관광
도피안사 백마고지역 월정리역 철원 노동당사 철원역 한탄강

파일:external/www.cha.go.kr/1668268.jpg
출처 : 문화재청
파일:철원 노동당사.jpg
1. 개요2. 내용3. 찾아가는 법4. 기타

1. 개요

鐵原勞動黨舍.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북한 조선로동당이 세웠던 조선로동당 철원군당(郡黨) 건물. 문화재청 소유로 철원군수가 관리한다. 문화재청 공인지정 등록문화재 제22호.

2. 내용

파일:철원노동당사.jpg
1946년 철원군 전역이 소련군정 치하에 들어갔을 당시 강원도 도청 소재지[1]였던 철원에 세워진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이다. 건물 자체는 철근 없이, 벽돌 콘크리트로만 건축하였다.

건축양식은 옛 소련의 영향을 받아 소련식이며 철원군 및 인근 지역인 김화군, 평강군, 포천군을 관할하는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건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건물 일부가 소실, 파괴되었다.[2] 전쟁 이후 철원군 일부 지역( 철원읍, 갈말읍 등)이 수복되면서, 본 건물 뒤편의 방공호를 조사한 결과 조선로동당 당국에게 고문사를 당했던 사람들의 유골과 두골(頭骨), 고문 도구와 시설 등이 대한민국 육군 병력에 의해 발견되었다. 인근에 있는 철원 수도국터 급수탑지 설명에 따르면, 본 노동당사와 내무서(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반공인사들 약 300여명을 데려와 총살하거나 함께 설치되어있는 저수고에 생매장했다고 한다.[3]

전쟁 당시 교전이 심했던 지역이자 북한군이 사수를 목적으로 항전을 하면서 국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4]이라, 건물 곳곳마다 전쟁 당시 생겼던 총탄과 포탄 자국이 남아있다. 앞의 계단에는 전차(戰車) 궤도자국까지 있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만들어졌는데, 3층은 조선로동당 철원군당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2층은 고문실이나 조사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사진 하나 남아있는 게 없으며, 그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서 알 수 없다. 전성기에는 김일성 초상화와 이오시프 스탈린 초상화도 내걸렸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공기 조선로동당기(旗)가 게양되었던 깃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다. 각 층 내벽은 상부는 흰색, 하부는 붉은색으로 도색되어 있다. 건물 뒤에는 방공호가 있다.

파일:철원 노동당사 뒷편.jpg

지은 지 오래되고 교전으로 내구성이 떨어져 부식이 심하며 건물 뒷편에는 무너진 곳이 너무 많아 위 사진처럼 보강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붕괴 위험이 높아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외관을 통한 관람만 허용하고 있다. 2층은 바닥이 내려앉아서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3층 역시 옥상 부분과 바닥이 일부 소실되어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지만 외관 형태는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어서 옛 소련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2002년 문화재청 공인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2022년 5월 24일 야간 조명공사가 완료되었다.

문화재 지정 전 민통선 내부에 위치했을 때(1984년 기준)는 건물 정면 상부에 팻말을 걸어놓고 “북괴노동당 철원군당이 국민을 수탈하던 건물” 이라는 내용을 적어놓고 민통선 출입자들에게 ‘경고’하던 광고판 역할도 하였다. 문화재 지정 전에는 출입이 널널했던 편이라 건물 내벽은 한국어, 한문, 영어[5] 등 온갖 낙서로 뒤덮여 있다. 미합중국 육군은 철원 수복 당시 이 건물 내부에 통나무 의자를 임시로 여럿 설치해서 교회당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사진[6]

6.25 전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인근에는 얼음창고[7], 농산물검사소,[8] 구 철원 제일교회[9] 등의 시설도 남아있는데, 이 건물들은 로동당사와는 달리 일제강점기부터 존재하던 건물이다. 철원경찰서 구 본관도 여기에 있었고 전쟁 이후에도 폐허로나마 남아 있었으나 자연 붕괴되어 사라졌다.

파일:nodongdangsa_maintenance.jpg

지금까지 수 차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어디까지나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하였을 뿐 근본적인 보수가 이뤄지지 않아 붕괴 위험이 제기되었고, 결국 2023년 3월에 전면 보수공사를 시작하였다. 관련 뉴스 보수공사는 2024년 11월까지 이뤄질 예정.

3. 찾아가는 법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서 자동차로 갈 경우 '노동당사'라는 이름만 검색하면 대부분의 내비게이션에서 쉽게 검색된다. 서울에서는 의정부 → 동두천 → 연천 → 신탄리 → 백마고지역을 거치는 3번 국도를 타는 방법과, 포천 → 영중 → 영북 → 동송을 거치는 43- 87번 국도 경로가 있다. 주차는 노동당사 옆 공영주차장 또는 바로 건너편의 철원역사문화공원에 할 수 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바깥쪽에 있어 별도의 검문은 하지 않아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다.

대신 민통선 경계부에 있는 만큼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꽤나 불편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 3000-1 또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서울경부-동송을 타고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내린 뒤 철원 버스 13을 타고 노동당사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대부분의 구간을 국도로 운행하는 만큼 시외버스 요금도 비싼데다, 시외버스 및 농어촌버스 모두 운행 횟수가 매우 적은 것은 아니지만 간격이 좁은 것 역시 아니라서 버스 대기 및 환승에 잡아 먹는 시간이 적지 않다.

4. 기타


1994년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타이틀곡 '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의 대형 태극기 백미다.

영화 강철비에서 남한 측 안보실장과 북한 측 대표가 만나는 장소로 나온다.

구철원 지역의 도로원표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며, 도로표지판에서 철원 xxkm의 기준이 되는 곳이 이곳이다.

서울권에서 접근하기 나쁘지 않은지라 국도를 쭉 타고 올라오는 자전거 라이더나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종종 있다.


[1] 소련군정 시기 북한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는 원래 철원이었다. 그러다가 1946년 12월 함경남도 원산 일대를 강원도로 편입하면서 도청 소재지를 원산으로 옮겼다. 원산은 지금도 북한에선 강원도 소속이다. 참고로 강원도(江原道)의 '원'은 원산(元山)이 아닌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따 온 것이다. [2] 1951년 6월 신문 보도에서부터 철원군 내의 '벽만 남은 고층건물'에 대한 신문 기사가 언급되는데, 이미 그때부터 이처럼 파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실제로 저수고의 경우 펜스로 막혀있긴 하지만 안의 공간을 그대로 볼 수 있는데, 벌건 대낮에 봐도 굉장히 스산하다. [4] 1951년 일시적으로 수복되었을 당시 기록에 따르면, 방공호에 숨어서 끈질기게 버텼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북한의 점령 하에 있던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집집마다 방공호가 다수 설치되어 있었다. [5] 수복 당시 미군이 남기고 간 Chicago, Alabama 등의 낙서도 있다. [6] 미 육군 제45보병사단 소속 참전용사 Glenn Edward White가 찍은 사진이다. 해당 부대는 미 육군 제8군 1군단 예하부대로 참전해 영천-철원 지역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 [7] 건물 외벽에 북한 측이 적어둔 "우리 인민들의 자유스럽고 행복스러운 생활을 요구..."라는 붉은 글씨가 남아 있다. [8] 이 건물은 비교적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북한 치하에서는 잠시 관공서로 사용되었다. [9] 예배당이었으나 북한군에 의해 징발되어 막사로 쓰였기 때문에 공습으로 파괴되어 일부 벽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