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6 09:14:33

증오(영화)


증오 (원제: 볼히니아) (2016)
Wołyń
파일:wolyn2.jpg
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Wojciech Smarzowski)
각본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Wojciech Smarzowski)
원작 증오(Nienawiść)
by 스타니스와프 스로코프스키(Stanisław Srokowski)
제작사 Film itp. z o.o.
주연 미할리나 와바치(Michalina Łabacz), 아르카디우시 야쿠비크(Arkadiusz Jakubik), 바실 바실리크(Василь Василик)
음악 미코와이 트샤스카(Mikołaj Trzaska)
개봉일 파일:폴란드 국기.png 2016년 10월 07일
상영 시간 125분
상영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1. 개요2. 줄거리3. 평가4. 볼히니아 대학살 및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5. 여담

1. 개요

보이치에흐 스마조프스키가 감독한 2016년 폴란드 전쟁 및 공포 영화로, 스타니스와프 스로코프스키[1]의 단편 기록집 증오(Nienawiść)를 원작으로 하여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시절 폴란드 동부 및 우크라이나 서부에 걸친 갈리치아 및 볼히니아 지방에서 있었던 민족 갈등 및 학살인 볼히니아 학살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드라마틱한 구원, 영웅이라던가 하는 건 전혀 없다시피 하며, 실제 일어났던 학살을 기구한 운명의 한 폴란드인 여인의 시선에서 굉장히 무덤덤하게 날 것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 일어났던 그 잔혹한 학살 장면들을 그대로 담아내어 고어물에 가까운 성격이 있는 영화이다.[2] 당시의 혼란스러운 역사의 풍파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밀결사에 들어가기도 하고, 마을에 소련이 들어왔을 때는 공산주의를 한없이 찬양하고 나치가 들어왔을 떈 마을의 유대인들을 싹다 갖다 바치는 등 외부 세력들이 바뀔 때마다 꾸준히 부역하거나, 약속한 금화가 없다는 이유로 1년간 숨겨줬던 유대인을 표정 변화 없이 때려죽이거나 하는 등[3] 당시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한 치 앞도 예상을 못할 수준이었는지, 무엇보다 인간이 생존 및 민족주의 앞에서 얼마나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볼히니아 지역의 민요가 초반부 결혼식 장면에 지역 풍습들과 더불어 상당히 많이 삽입되었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내는 한편으로 얼마전까지 서로 노래부르고 축하해주던 민족이 몇 년 후 서로 찾아내어 도끼로 목을 자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비되어 구슬픈 분위기 또한 난다.

국내 IPTV에서는 '끝까지 살아 남아라 :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하도 어처구니 없는 제목이었는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폴란드 영화 특별전할 때는 수입명을 무시하고 볼린이라고 상영했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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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폴란드 동부 끝 지방 볼히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 오랜만에 폴란드인 신부 헬레나와 우크라이나인 신랑 바실류크의 결혼식이 펼쳐지는 마을은 한바탕 노래와 축제로 떠들썩하고 결혼식 자리에서 새로운 사랑들이 싹튼다.[4]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유쾌하지 못한 분위기가 흐르는데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관계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치하 폴란드 정권의 뒤통수 및 주변 민족에 대한 폭정으로 볼히니아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소수 폴란드인들의 탄압이 이어져 상당히 갈등의 골이 깊은 관계였다. 거기에 더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유대인들까지 합해 세 민족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중이었다. 결혼식의 열기가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서로에 대한 뒷담화가 들려오고, 지역의 가톨릭 신부마저도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강제로 우크라이나인들의 동방 정교회 교회들을 닫아버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차별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한다.[5] 평범한 17살 폴란드 시골 소녀 조시아 그워바츠카(미할리나 와바치 분)는 언니 헬레나(마리아 소보친스카 분)의 결혼식 날 밤 같은 마을의 우크라이나인 소년 페트로(바실 바실리크 분)에게 고백을 받고 결혼을 약속하며 달빛 아래에서 사랑을 나눈다. 허나 마을의 폴란드인 촌장이자 부농 마치에이 스키바(아르카디우시 야쿠비크 분[6])는 아내와의 사별 후 새로 젊은 신부를 받아들일 생각이었고, 조시아의 아버지는 마치에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농장 땅을 얻는 대신 조시아를 그와 결혼하도록 보드카 몇 잔에 마음대로 정해버린다. 결국 강제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조시아는 다음날 떠나는 언니에게 펑펑 울면서 도와달라고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에 대해 알 턱이 없던 헬레나는 조시아가 자신을 위해 우는 줄 알고 마을을 떠날 뿐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 결국 조시아는 17살에 훨씬 나이 많은 마치에이와 결혼하여 그의 농장에서 그의 전처의 자식들을 양육하게 된다. 어떻게든 수양자식들에게 좋은 새엄마가 되고자 하지만 수양자식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던 와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 서부를 침공하여 마을에 대규모 징집령이 내려지게 되고, 마치에이 역시 그 나이에[7] 징집되어 서부 전선에 투입된다. 허나 폴란드는 확실히 나치 독일에 비해 약체였고 더군다나 동부 전선 역시 소련군이 침공해왔다는 소식이 들리게 되어 차라리 언어 비슷한 소련에 붙자면서 우크라이나계 병사들이 대거 탈영하게 된다. 부대 꼬라지가 이러니 당연히 이길 수가 없었고 결국 마치에이의 부대는 간단하게 해산식을 갖고 지휘관의 마지막 명령하에 패잔병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패전했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볼 생각에 신난 마치에이와 전우들은 오는 길에 지나가던 개를 잡아먹기도 하면서 고향으로 길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치에이 일행을 누군가 습격한다. 바로 폴란드의 붕괴를 틈타 막 세력을 싹틔우던 반데라의 사상을 따르는 반데라주의자들이었다. 폴란드가 붕괴된 틈을 타 볼히니아 지방의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독립하여 과격 무장투쟁을 통해 따로 자유 우크라이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그동안 자신을 억압해 왔던 폴란드인들에 대해 매우 높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힘없는 패잔병들이었던 마치에이 일행은 재수없게도 그들의 표적이 된 것이었다. 마치에이는 자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무사히 숨어 집에 갈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전우들은 군복을 알아본 폭도들에게 그대로 끔살당하게 된다.[8] 마치에이는 숨어서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게 된다. 그 뒤로 마치에이는 군복도 버리고 우크라이나인 행세를 하며 고향으로 향하는데, 가는 길에 자신을 마차에 태워준 우크라이나인들이 폴란드인 지주의 집을 털고 정교회 신부의 주도하에 폴란드 국장과 국기 등을 땅에 묻으며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기념하는 의식을 치루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 의식이 뭔지 몰랐던 마치에이는 제일 연장자 격인 우크라이나인이 눈치를 채 들킬 뻔하나, 다행히 그는 이성이 있는 사람인지 마치에이를 눈감아준다.

죽을 뻔한 경험을 하며 겨우 마을에 돌아온 마치에이는 본격적으로 어린 신부 조시아에게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으로 굴기 시작한다. 마치에이와 그의 어머니의 갈굼 속에서 하루하루 고달픈 나날을 보내던 조시아의 앞에 어느날 페트로가 다시 돌아온다. 전쟁이 패전으로 끝나면서 그 역시 돌아오게 된 것.[9] 조시아는 가끔씩 비밀스럽게 페트로와 만나 사랑을 나누고 그 결과 마치에이의 아이인지 페트로의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 와중에 겨울이 찾아오고 본격적으로 공산당이 마을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군을 해방자로 여기며 환영했지만, 시간이 지나 지배력이 확고해지자 소련군 NKVD는 본색을 드러내며 공산주의 사상 강요와 종교 탄압을 자행하고 마을회관에 걸려있던 우크라이나 국기를 집어던지고 보드카를 삥뜯고 마을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부역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공산주의의 적인 부농 신분이었던 마치에이는 공산당에 의해 강제로 촌장 자리를 부역자 스테판 추마에게 넘겨주고 토지 또한 뺏기게 된다. 스테판 추마는 공산당 선전에 여념이 없는 한편 우크라이나인들의 폴란드인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선다.[10] 게다가 마치에이는 조시아와 페트로의 관계에 대해서 알게되고 음주 상태에서 조시아를 추궁하다가 결국 주먹을 휘두르게 된다.

그 순간 갑자기 집에 NKVD가 쳐들어와 무기를 숨겼다는 억지 죄목하에 일가족을 시베리아행 열차로 보내버린다.[11] 이 소식을 들은 페트로는 NKVD의 보드카를 훔쳐 열차 담당에게 뇌물로 줘가면서 조시아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결국 열차가 떠나기 전 조시아와 마치에이의 아들, 딸 셋은 구출되고, 마치에이와 시어머니는 시베리아로 끌려간다. 허나 조시아의 태기가 모두 끝나 출산이 임박하게 되고, 페트로는 모친의 반대 끝에 조시아를 급하게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페트로의 모친은 아들의 고집에 질려 산파 경력을 살려 조시아의 출산을 돕는다. 그러나 보드카 주인이었던 NKVD 요원이 술에 쩔은 채로 페트로의 집까지 쫓아왔고, 페트로를 쏴 버린다. 조시아는 무사히 아이를 낳았지만, 페트로의 죽음을 짐작하고 조용히 흐느낀다.

세월은 또 흘러 어느덧 나치들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다. 스테판 추마는 언제 열성 공산당원이었냐는 듯이 '반데라 만세'와 하일 히틀러를 외치며 나치에 부역하며 본격적으로 반데라주의자들의 세상을 만들려 한다. 나치들은 숨어있는 소련인과 유대인들을 모두 찾아내 데려올 것을 명했고 주민들은 언제 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으로 나눠 싸웠냐는듯이 소련 선생을 끌어내 죽여버리고 하나같이 열심히 유태인들을 팔아먹는다. 독일군들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에 열심히 성과(?)를 올리는 한편 폴란드인을 없애 레벤스라움을 실현하기 위해 말 잘 듣는 우크라이나인들을 모아 무장시키고 특권을 준다. 계속해서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살해하자 유대인들은 살기 위해 이웃들의 집에 숨어 살기 시작했고 조시아의 집에도 유대인 부부와 수양아들의 친구인 아이 한명이 숨어 지내게 되었다. 조시아는 조시아의 아버지가 유대인들을 살리려다 우리가 먼저 죽는다며 쫓아낼 것을 강요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숨겨주었으나 결국 어느 날 민병대원 한 명이 조시아를 강간하러 들어왔을 때 은인인 조시아의 위기를 모른체 할 수 없어 병을 던진 유대인들 때문에 민병대원이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다.[12] 다행히 유대인들은 잘 도망쳐서 살아남아 산에 숨겼다는 금화를 조건으로 마치에이의 일꾼 하브릴루크의 창고에 숨어살았지만[13]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혹독한 추위에 아내가 먼저 죽고,[14] 남편은 금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하브릴루크가 빡친 김에 때려 죽여버린다. 결국 혼자 남은 아이만 우크라이나인 친구[15]의 도움으로 살아남는 듯 했으나... 이 아이가 결국 도착한 곳은 학살장이었고, 나치와 부역자들 손에 붙잡혀 그대로 살해당한다.

이윽고 1943년, 유태인들이 살해되어 사라진 후 본격적으로 폴란드인에 대한 반데라주의자들의 증오 범죄가 시작될 기미가 보인다. 폴란드인들의 집에 반데라주의자들이 낙서를 하고 결혼식 장면에서 증오발언을 내뱉던 폴란드인 신부가 시체가 되어 강물에 떠내려오게 된다. 그러던 와중 마치에이가 어찌어찌 시베리아에서 돌아오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빡세게 구르면서 느낀 것이라도 있었는지 마치에이는 이전보다 조시아에게 살갑게 대하며 진심으로 가장으로서 가족끼리 행복하게 잘 살아보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술도 더이상 마시지 않았고 밤에 조시아를 강간하는 일도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없었다. 조시아 역시 마치에이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였으나 마치에이는 시장에 가는 길에 하브릴루크에 의해 살해당한다.[16][17]

이제야 뭔가 되나 했는데 결국 또다시 슬픈 일상을 보내게 된 조시아. 그러던 어느 날 조시아는 숲 근처에서 엉덩이에 부상을 당한 채 쓰러져있던 안토니라는 남자를 구해주게 된다. 안토니는 런던 폴란드 망명 정부 계열 현지 조직에 몸담고 있던 청년이었다. 그는 부상을 치료할 동안 조시아의 집에서 지내면서 조시아의 가족들과 모처럼 사람 간의 정을 나누며 마치에이의 빈자리를 채워주게 된다.

안토니아는 시장에서 반데라주의자들의 만행을 어렴풋이 듣게되고 조시아는 일전의 그 민병대원이 그녀를 강간하려해 우발적으로 살해하기도 하는 등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18] 그러다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통제가 약화되자 반데라주의자들은 본격적으로 '폴란드 흔적 지우기'를 계획하고 집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죽을 것을 결의한다.[19] 그리고 이웃마을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을[20] 받아주면서 학살이 눈앞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게다가 런던에서 사절이 도착하자 안토니는 조시아를 떠나야 했다. 반데라주의자들이 하루하루 세력을 불려가며 폴란드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었지만 런던의 망명 정부는 너무 멀었기 때문에 폴란드인들의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사절단을 보내 협상을 위해 반데라주의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직접 간 2명이 거열형을 당하고 나머지도 안토니를 제외하고 모두 몰살당한다. 그 와중에 홀로 남겨진 조시아의 집에 스테판 추마가 찾아와서 이제 폴란드인을 죽이고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면서 안심하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결국 운명의 1943년 7월 11일, 양측의 교회에서 각자 미사가 시작된다. 폴란드인들의 가톨릭 성당에서는 모든 민족은 형제이며 슬슬 협상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내용의 미사가 이어지고, 탈출한 안토니도 그 미사장소에 찾아와 조시아의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인들의 정교 교회에서는 다들 손에 총, 칼, 공구, 농기구 등 온갖 흉기들을 들고 있는 흉악한 분위기이다. 이윽고 정교회 신부가 미사를 시작하는데 그 내용이란 즉슨 "성경에도 수확 때까지 둘 다 자라게 한 후에 안 좋은 것 솎아내어 태우라 하셨다"면서 학살을 종용하는 내용을 퍼뜨리더니 흉기들에 행복한 수확 되라면서 축복을 내린다.[21] 그리고 축복이 끝나자마자 반데라주의자들은 대궐기하여 마을로 몰려나가 본격적으로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첫 타겟은 가톨릭 성당으로, 반데라주의자들이 문을 박차고 성당 내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안토니도 이 안에 있었는데 습격해온 우크라이나인의 도끼를 뺏어 반격하여 살아남는다. 이후 안토니는 조시아를 찾아다니게 된다. 성당을 불태운 반데라주의자들은 마을 내의 모든 폴란드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등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산채로 뽑아 죽이고 여자는 강간 후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을 뽑아버리는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을 벗어난 온갖 잔혹한 방법이 동원된다. 조시아의 집에도 반데라주의자 폭도들이 들이닥치고 결국 수양아들이 산채로 불타 죽는다.[22] 다른 마을에서 피난을 와 집에 숨겨주고 있던 생존자도 산 채로 눈이 뽑힌다. 광기에 물든 스테판 추마와 마을 사람들의 추적을 겨우 피한 조시아는[23] 결국 친아들과 기나긴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버려진 집에서 집주인들의 시체 옆에 앉아 벌벌 떨고 있던 조시아는 페트로의 모친과 다시 만나는데, 그동안의 냉대와는 별개로 페트로의 모친은 집을 수색하려는 광기어린 민병대원들에게 여기 남아있는 폴란드인은 다 죽어서 없다며 돌려보내고 자신의 스카프를 머리에 씌워주어 우크라이나인처럼 보이게 꾸며준 뒤 떠나라고 한다.[24] 이후 여기저기를 숨어다니며 피아니스트의 슈필만에 버금가는 처절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치게 된다. 헬레나의 집으로 가 숨기로 한 조시아는 지나가던 독일군의 행군 대열을 따라 걷는다.[25] 반데라주의자들이 지키는 검문소에서 어린 아들의 순간적인 기지로[26] 마침내 언니 헬레나의 집에 도착한 조시아. 조시아는 언니와 형부 바실류크의 도움으로 일전에 자신이 숨겨줬던 유대인들처럼 헛간 천장에 숨어 살게 된다. 그러나 숨 돌릴 틈도 없이 밤이 되자 학살로 가족을 잃은 폴란드인들이 복수하겠답시고 쳐들어와 헬레나 가족을 공격했다. 그들은 헬레나와 바실류크의 눈 앞에서 가장 어린 갓난아이를 빼앗아 내동댕이치고 도끼로 끔살한다. 헬레나도 이들에게 목이 잘려 사망한다.[27] 그리고 뒤이어 처음 이들이 쳐들어왔을 때부터 "내 아내는 폴란드인이니 제발 살려줘"라고 처절하게 울부짖던 바실류크를 찔러 죽였다.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이 결혼했으니 결과는 뻔하다면서.[28] 이윽고 폴란드인들이 집에 불을 지르자 불타는 집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온 조시아와 아들은 다시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29] 두 민족의 갈등은 극한에 달하여 가는 길엔 시체만 널려있고 물을 뜨려고 내려다 본 우물 속에도 태아 시체가 가득 쌓여 썩어가고 있었다. 결국 잔혹한 현실에 질려 조시아는 모든 희망과 의욕을 잃고 시체처럼 며칠을 누워 지낸다. 뒤에 시체들을 장식한 반데라주의자들이 지나가던 말던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고 겁에 질린 채 그저 누워 모든 것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국 이대로라면 엄마가 위험하다는 것을 아들은 직감이라도 했는지 지나가던 마차에 구조요청을 한다. 마차 주인은 외지인인지 별 말 없이 조시아와 아들을 태우고 먼 길을 떠난다.[30][31][32]

여담으로 이런 잔혹한 학살극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 마치에이를 그냥 보내주는 우크라이나인부터 마을에서의 학살을 피해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조시아와 아기를 보고도 해치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우크라이나인이 있다. 그리고 학살 첫날 조시아와 헤어진 수양딸이 갈대밭 속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그 근처를 수색하던 험상궃게 생긴 민병대원과 눈이 마주치고 마는데 그 민병대원이 무기를 들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못본체하며 일부러 그녀가 있는 자리를 확인한 것처럼 밟고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이 민병대원은 밤이 되자 마차를 끌고 와 그녀를 데리고 어딘가로 떠난다.[33] 이는 모두가 미쳐버린듯한 광란 속에서도 유대인을 숨겨준 조시아, 조시아를 도망치게한 페트로의 모친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은 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3. 평가

IMDb
평점 7.7/10
왓챠
사용자 평균 별점 3.5/5.0

평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편으로 폴란드 영화상 최우수상 부문에서 수상하였고 그디니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조시아 역의 미할리나 와바치 역시 이 영화로 폴란드 영화상 최고의 데뷔상을 수상하였다.

허나 지금도 스테판 반데라를 칭송하는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폴란드가 과장을 한다며 안 좋게 보는 모양이다.

4. 볼히니아 대학살 및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

영화에서 다루는 볼히니아 대학살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볼히니아와 동갈리치아 지방에서 계속 자행되었고 그 결과 볼히니아에서 최소 4만에서 최대 6만, 동갈리치아에서 최소 3만에서 최대 4만의 폴란드인 및 유태인이 반데라주의자들에게 학살당했다.

본래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측은 같은 반소 성향이라는 이유로 폴란드에 협조적인 모습이었으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전후 영토를 할양받자마자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에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스테판 반데라 역시 이에 항의하다가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결국 두 민족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와중에 물밑에서는 독소불가침조약이 체결되었고 그 결과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나누어 먹게 된다. 폴란드라는 구심점이 없어지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다시 한번 독립된 우크라이나를 꿈꿨고 소련 침공 준비를 하던 독일군 정보부 아프베어(Abwehr)는 유고슬라비아 침공에서의 우스타샤와 같이 쓸만한 내부 저항세력을 얻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접촉하게 된다.

든든한 우군이 생긴 반데라는 과격 무장투쟁 노선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폴란드인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증오를 부추겼다. 독일군 역시 이에 편승하여 눈엣가시인 폴란드인들과 유태인들을 솎아내도록 말 잘 듣는 우크라이나인들 몇을 뽑아 우크라이나 SS라 칭하여 무장시켰다. 결국 이 갈등이 폭발하여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한 자발적인 폴란드인 학살이 볼히니아와 동갈리치아 지역 전체를 덮치게 된다.

루치크 등지에서 큰 규모의 학살이 벌어졌으며 실제로도 시골 특성상 화기보다도 냉병기가 더 많이 사용되어 더욱 잔혹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폴란드인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였고 성향이 비슷했던 우스타샤처럼 태아를 꺼내 죽이기도 하였다. 또한 애꿎은 유태인들과 폴란드 지역에 거주하던 소수 아르메니아인들까지 덩달아 학살당하였다. 폴란드 망명 정부는 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당시 자유군을 운영하기에도 벅찼던 망명 정부 입장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정작 모든 걸 방관하던 독일은 적당히 말 잘 듣고 설설 기던 우스타샤 크비슬링 정권, 루마니아 왕국과 달리 반데라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무언가 위기감을 느끼고는 반데라와 간부들 몇명을 즉각 체포하여 악명 높은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내버렸고 우크라이나 국민정부 우크라이나 국가판무관부에 합병해버렸다.

지도부를 잃어버린 것 때문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 역시 적으로 분류했고 동지 하나 없이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한편 그 성향이 더 난폭해져 학살을 심화하게 된다. 폴란드와 독일 뿐만 아니라 모두 잘살게 한다면서 이웃들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만들었으며 반동적 민족이라고 시베리아에 보내버린 소련 역시 마구잡이로 공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장성인 니콜라이 바투틴이 독일군도 아니고 이들의 손에 암살당하기도 했다.

결국 주변 모두에게 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눈엣가시였으며 레벤스라움을 이루려는 나치 독일에게도, 반나치 투쟁을 벌이던 폴란드에게도 방해거리나 다름없었다. 나중에는 쿠르스크 전투 이후 승기를 제대로 잡은 소련군에게 이들 민족주의자들은 차츰 소탕당하였고, 전후 폴란드와 소련이 영토를 모두 수복하자 이들은 그동안 당한 것을 폴란드인들과 소련군에게 똑같이 당하게 된다. 1945년부터 1947년까지 보복 학살에 의해 죽은 우크라이나인은 약 3만명으로 추측되며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복귀한 이후에도 암암리에 무시당하다가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시대에 겨우 복권되게 된다.[34]

스테판 반데라는 독일 패망 이후에도 쭉 서독에 거주하여 계속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나치에 빌붙어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장성을 암살할 정도로 대전 내내 반소련 스탠스를 보였던 반데라주의자들을 절대 잊지 않았고, 결국 반데라는 1955년 뮌헨에서 KGB 요원 보그단 스타신스키(Богда́н Никола́евич Сташи́нский)에게 추적당해 살해당한다. 한평생 우크라이나를 위해 살았던 반데라에게는 야속하게도 스타신스키는 리비우 출신 우크라이나인이었다.[35] 이후 스타신스키는 KGB에서 계속 근무하다 1961년 서독으로 망명하여 죽을 때까지 거주한다.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시몬 비젠탈 센터의 추적중인 나치 및 부역자 목록에 등재되어 쫓기고 있다.

독립이라는 의도는 정말 좋았다만 그 방법의 과격성 및 실제로 학살이 자행된 관계로 반데라의 평가는 정말 극과 극을 달린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강한 서부 우크라이나와 소련 측에 당한게 많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등지에서는 그야말로 구국의 위인 취급이지만 폴란드, 이스라엘, 독일, 그리고 집시 같은 소수민족 사이에선 전범 취급이다. 실제로 2011년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가 스테판 반데라에 우크라이나 영웅 훈장을 추서했다가 주위 모두의 어그로를 끌어버린 적이 있었다. 반데라에게 당한 전력이 있던 바로 옆나라 폴란드와 종전 후 건너간 동유럽 유대인 비율이 높은 이스라엘이 항의하였으며, 동병상련으로 역시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체코와 프랑스가 이들을 동조하는 한편 독일과 그 외 벨기에,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등 나치에 당한 게 많은 서방 국가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결국 이후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부랴부랴 이를 취소했다.

현재도 반데라의 뜻을 이어간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바로 현재 돈바스 전쟁의 큰 축인 스보보다와 프라비 섹토르이다. 이들은 아직도 나치식 경례를 하는 등 나치를 추종하는 모양새를 보여서 서방의 본격적인 개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5. 여담

같은 시대, 같은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펼쳐진 일을 보고 싶다면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 바르샤바 1944를 같이 보는 것도 좋다.
[1] 1936년생. 실제 이 작품의 사건들이 일어난 동네에서 태어나 살다가, 운좋게 학살을 면해 평생 이것에 대한 이야기만 썼던 폴란드 작가. [2] 반데라주의자들이 폴란드군 패잔병들을 습격하여 뜨거운 물에 팔뚝을 넣은 후 피부가죽을 벗겨버리고, 양동이 안에 잘려 썩어있는 눈, 코에 파리가 들끓는 장면, 여기 저기 사지가 잘려있는 시체들은 기본이요 협상하자고 찾아온 폴란드 망명 정부 사절을 조선시대마냥 거열형에 처해져 내장이 쏟아지는 장면에 산 채로 우스타샤마냥 내장을 꺼내버리는 장면이 일절 검열 없이 그대로 나온다. 또한 할리우드식 아이들 살리기 보정을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산 채로 아이들을 웃으면서 태워 죽이는 장면도 버젓이 나온다. [3] 원래 유대인의 아내도 함께 있었지만, 열약한 환경 때문에 병사했다. 사망하기 전 남편은 아내가 아프니 제발 고기 기름 좀 사달라며 애원하지만 얻어맞기만 한다. [4]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한 동유럽의 결혼식 풍습들을 볼 수 있다. '사세요' 비슷하게 신랑의 친구들이 신부집에서 신부 친구들과 함께 밀당을 한다거나, 말타기 경주를 한다던가, 신부가 문지방에 머리를 대고 신랑이 신부의 땋은 머리카락 끝부분을 도끼로 내리찍어 그 머리카락을 신부집에 남겨두고 떠나는 의식 등. [5] 마을의 모든 성당을 단지 못 쓴다는 이유로 닫아버렸다. 이에 분노한 추마가 달려들자 경찰이 대놓고 무언의 협박을 한다. [6] 폴란드 현지에서 가수도 겸하고 있으시다. [7] 국가가 침공당한 위기상황에는 민방위 갈 나이라도 총 쥐어주고 전방으로 보낸다. 2차례의 세계대전기에는 이런 경우가 흔했으며 우리나라 또한 한국전쟁 때 한 집안의 남정네들이 죄다 징병당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8] 뜨거운 물에 팔을 담그고 팔뚝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버린다. [9] 이때 우크라이나인인 페트로와 폴란드인인 마치에이가 전쟁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10] 그러다가 한 처자가 당신 엄마도 폴란드인이었잖냐고 일침을 놓자 잠시 얼어버린다. [11] 이는 우크라이나 부역자들이 공산주의적 명분 아래 아직 부를 갖고 있던 폴란드 지주들부터 마을에서 제거하려는 음모였다. [12] 예전부터 조시아에게 흑심을 품었던 이 민병대원이 그 후에 조시아가 유대인들을 숨겨줬다는 사실을 빌미로 성폭행하는 장면이 암시된다. [13] 조시아의 집에서 탈출해 언덕을 오르며 도망치고 있었는데, 그만 하브릴루크에게 들켜버린다. 유대인 남편은 하브릴루크에게 들킨 이상 셋 다 죽는다는 사실을 암시라도 했는지 품안의 지도까지 꺼내주며 금화가 있다는 말을 거의 울면서 애원가까운 식으로 하는 장면은 착잡한 기분이 들게한다. [14] 남편이 집주인에게 제발 아내 먹일 고기 기름 좀 사달라며 애원하지만 하브릴루크에게 얻어맞기만 한다. [15] 영화 초반에 같이 뛰어놀던 아이로 반데라주의자들의 소년병 노릇을 하고 있었다. [16]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이곳 사람들은 나를 잘 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시장으로 떠났으나, 며칠 뒤 문 앞에 마치에이의 일꾼 하브릴루크 부부가 정신이 나가있듯이 서있고 웬 양동이 하나가 대신 집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마치에이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었다. 사실 마치에이가 며칠전 닭도둑을 잡는다고 닭장에서 닭도둑의 한쪽 손을 도끼로 자른 적이 있었는데 하브릴루크의 손이 한쪽 없다. 아마 하브릴루크가 보복으로 마치에이를 죽인 듯 하다. [17] 영화 초반 마치에이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일면식도 없어 자신이 폴란드인인 것을 모르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반에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던 하브릴루크에게 살해당한다. [18] 초반에 나온 헬레나와 바실류크도 잠시 등장한다. [19] 같이 놀던 동네친구를 폴란드인이라는 이유로 도끼로 목을 잘라 살해하라고 지시하고 모닥불을 배경으로 누가 봐도 급진적인 독립운동 구호들을 외친다. 이러한 일은 비단 볼히니아뿐만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등 당시 혼란스러웠던 동유럽의 다민족 지역에서 상당히 많이 일어났다. 거기에다가 훗날 역사가 반복되고야 말았다. [20] 안토니가 사건 전 시장에 갔다 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주민 왈 우린 서로 믿고 사이가 좋으니까 아무런 일도 없을 거라고... [21] 인종청소에 종교인들이 적극 개입한 사례는 그리 드문 사실이 아니다. 당장 동시대 밑 동네 크로아티아에서도 스테피나츠 주교를 비롯한 가톨릭 신부라는 작자들이 추축국과 우스타샤에 붙어먹으며 세르비아인들과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고 부추기고 다녔다. [22] 아이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영화의 법칙을 제대로 박살내고 정말 사실 그대로만을 전달한다. 도망치는 아이를 건초더미로 둘둘 싸매어 불을 붙인 후 낄낄대면서 뜨거워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축구하듯이 발로 찬다. 영화 도입부의 결혼식에서 마을 청년들이 짚단을 태워서 서로에게 패스하는 축하 의식이 있었는데, 그 모습과 대조되어 상당히 소름끼치고 잔인한 장면. [23] 도중에 들킬 뻔 했으나, 그 우크라이나인은 아직 이성이 남아있었는지 못본 척 살려보내준다. [24] 이때 조시아의 아기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는데 이 아기가 페트로 모친의 친손주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떨지 참 착잡하다. [25] 일부러 행군대열 중간에 끼어가는데 독일군들도 조시아가 측은했는지 내쫒지 않고 지휘관도 학살 현장을 보더니 왜그러는지 대충 짐작했다는 표정으로 묵인해준다. 나중에는 지도를 보여주며 길까지 알려준다. 지나가는 길에 종종 마주치는 반데라주의자들도 조시아를 보며 죽여버리겠다며 목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어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차마 건들지는 못하는데, 감히 독일군에 대들었다가 잘못 찍히면 그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는 그들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 [26] 폴란드인인 것을 숨기기 위해 우크라이나어로 대답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녀를 시험해볼 속셈으로 기도문을 읊어보라는(가톨릭과 정교회의 기도문은 완전 다르다) 말에 더듬더듬 읽는 탓에 들킬 뻔 하였지만 그 순간 아들이 배고프다고 우크라이나어로 칭얼대는 덕분에 순식간에 의심이 풀리고 그들의 본거지에서 먹을것도 얻고 신발도 얻는다. 다만 아이가 있는데 옆에서 민병대원들이 자기가 학살을 벌인 경험담을 자랑스럽다는듯이 막 늘어놔서 문제지... [27] 이때 폴란드인들은 그녀를 문지방에 목을 대게 하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도끼를 휘두르기 좋게 자세를 잡게 한 뒤 죽인다. 영화 초반 헬레나의 머리를 문지방에다 대고 그의 신랑이 도끼로 머리카락을 자른 뒤 신랑의 집으로 떠나던 결혼식 장면과 완벽하게 대조된다. [28] 바실류크와 헬레나 가족은 그 당시 흔했던 폴란드-우크라이나 가정이 어떤 참혹한 고통을 당했는지 보여준다. 바실류크는 복수심에 불타는 폴란드인들에게 죽음을 맞은 바로 그날 아침 꼴통 반데라주의자인 형이 "아내를 니 손으로 죽여라, 아니면 내가 한다."며 집에 쳐들어왔을 때 친형을 자기 손으로 때려 죽였을 정도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 형은 첫 결혼식 장면에서 같이 말을 타면서 사이가 좋았던 사람이었다. 처자식을 살리기 위해 형을 죽이고는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듯한 바실류크의 얼굴, 아침엔 반데라주의자들에게, 밤에는 폴란드인들에게 표적이 되어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한 이 가족의 모습은 그 당시의 비극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29] 창문으로 뛰어내렸는데 이때 한 폴란드인에게 발각되었고, 그 폴란드인은 조시아를 보자마자 그녀를 살해하려 했으나 조시아가 폴란드인임을 확인하고 보내준다. [30] 공교롭게도 마차 주인의 얼굴이 페트로를 닮았다. [31] 하지만 이 부분이 굉장히 미묘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조시아가 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두 가지로 보여지는데 한 장면은 페트로를 닮은 마차주인에게 실려서 다리를 건너는 것인데 실제로 마차주인에게 발견되어 평화롭게 실려갔을 수도 있지만 그 동안의 충격과 피로로 자신이 그리워하던 첫사랑 페트로와 함께 간다는 환각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장면은 피폐한 표정으로 다리를 걸어가는데 그 동안의 충격이 누적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폐인이 되어버린다. 육체는 살아남았지만, 정신은 살아남았다고 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32] 참고로 영화는 1943년에서 끝나고 아직 진짜 재난은 일어나지도 않은 시점이다. 조시아가 일단은 살아났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33] 강제로 끌고 가는게 아니라 손을 잡아주어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공주님 안기로 데려간다. [34] 이는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태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고향에 뭐라도 도움을 주고자 했던 흐루쇼프의 노력에 힘입어 우크라이나의 영토 경계선도 조정이 되는데 이는 훗날 우크라이나에 또다른 비극의 씨앗이 된다. [35] 부모가 반데라주의자였다고. 이후 정보원이 되는 것을 조건으로 둘 다 사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