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Hankyu 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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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일 사진 | |
출생 | 1935년 2월 14일 |
경기도 수원시 | |
사망 | 2025년 1월 14일 (향년 89세)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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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수원농림고등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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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구촌 자연농업 선구자.2. 생애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났다. 14살때부터 고향 수원에서 농사를 지었고 그것에 부족함을 느껴 6.25전쟁으로 인해 미루어진 공부를[1] 26세 수원농입고교에 들어가며 다시 시작했다[2]. 1964년, 수원농림고등학교를 늦은 나이에 졸업하였다. 대학진학은 그가 깨우친 자연에서 배운 농사법과 달라 포기하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배움을 같이 하고자 했다[2]. 1961년부터 그는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에서 이건우가 주도하는 김병규와 농촌 개발운동을 시작하였고, 산안(야마기시즘)식으로 농장을 개척했다.[3] 이 세사람은 협업의 지속성을 위해 각자의 여동생과 부부가 되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3][4]. 그는 수차례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농촌 현장과 소비자들의 부엌까지 살펴보았고[2], 1965년, 그는 일본 가스야마에서 연수 후 1966년 첫 연찬회를 개최하였고, 1967년에는 생력다수확농법연구회를 설립하였다 [5][3].이를 통해 그는 적은 노동력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높은 수확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3] 이 연구를 통해 조한규는 "자연농업"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었다[3]. 자연농업은 식물과 동물의 기본권을 존중하며, 자연의 힘을 활용하여 화학 물질 없이도 환경을 회복시킬 수 있는 농업 방식이다.[3] 1994년에는 충북 괴산 청안면에 자연농업 생활학교를 설립하였고, 2002년까지 3만여 명의 농업인이 교육을 받았다[6]. 또한, 조한규는 농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자연농업'이라는 환경농업 전문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2]. 조한규는 해외에서도 자연농업을 전파하기 위해 16개국을 돌아다녔으며[7], 그의 방식은 영어권에서는 Korean Natural Farming (KNF)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자연농업 협회가 설립되었고, 1998년에는 조한규가 '아시아의 인물'로 선정되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다[6]. 그는 세계 각국에 자연농업 전파를 위해 힘을 썼다[8].
3. 약력
1935년 경기 수원 출생1964년 수원농림고등학교 졸업
1965년 일본에서 자연농업 연구
1967년 생력다수확농법연구회 발족
1982년 늘푸른영농회
1989년 한국자연농업중앙회 회장
1993년 한일 자연농업교류협회 설립
1994년 한국자연농업협회 회장,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 자연농업 생활학교 설립.
1997년 자연농업연구소 설립
1998년 일본 아시아 5월의 인물 선정
2002년 아시아생산성본부 (APO) 환경전문위원
영어, 중국어, 일본어, 힌디어 등으로 번역 출간.
전세계 30개국 기술지도
4. 저서
1992: 조한규의 자연농업1993: 토착미생물을 살린다 (일본판)
1994: 흙이 살아야 밥상이 산다
1997: Korean Natural Farming: Indigenous Microorganisms and Vital Power of Crop/Livestock by Han kyu Cho & Atsushi Koyama (영문판)[9]
1998: 천혜녹즙의 모든것 (일본판)
2000: 자연농업 자재만들기
5. 이미지 설명
2004년 11월 11일, 한국자연농업협회 명예회장 조한규는 훈장증을 받았다출처 | 자연을 닮은 사람들. |
날짜 | 2004-11-01. |
저작자 | 자연을 닮은 사람들. |
저작권 | 자연을 닮은 사람들. |
6. 수상기록
석탑산업훈장 수상[10]조선일보사와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공동 제정한 한·일 국제환경상(The Asian Environmental Awards) 수상[11][12]
중국 정주 우의상 수상[13]
중국 길림성 우의상 수상[8]
중국 연변자치주 우수외국전문가상 수상[14]
도산교육상 수상[15]
7. 자연농업의 발전과 보급
1965년 일본에서 자연농업 연구를 시작하여 1967년 생력다수확농법연구회를 발족했다.[3][5]1994년 충북 괴산에 자연농업생활학교를 설립하여 자연농법 이론과 실천을 교육했다.[6]
2002년까지 약 3만 명의 농업인이 자연농업학교를 거쳤으며, 그 중 1만 5천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6]
농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자연농업'이라는 환경농업 전문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2]
전세계 기술지도
8. 국제적 영향력
전 세계 19개국에 자연농업을 보급했다.[16]일본에서는 900농가가 자연농업회원으로 협회를 구성했다.[6]
아시아생산성본부(APO)는 2000년 저개발국형 친환경 농업으로 조한규의 자연농업을 선정해 지원하기 시작했다.[17]
1998년 일본 NHK방송에서 '이달의 아시아인'으로 선정되어 특집 다큐멘터리로 소개되었다.[16]
2008년 중국 정부가 문화와 교육,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외국인 경영자와 전문가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하였다.[13]
하와이 열방대학의 정규 선교 수업으로 채택되었다[18]
9. 자연농업의 특징
식물과 동물의 기본권 존중하면서 자연의 힘 활용[3]화학비료나 농약 대신 토착미생물을 이용해 만든 비료로 농사를 짓다.[2]
소규모 농가에 적합한 농법으로, 10~20 농가씩 그룹을 이뤄 자가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농가형 농업'을 제안하다.
생산비를 절감하고 품질을 높여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2]
조한규의 자연농업은 초기에는 저생산성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 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K-농업의 한 형태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미래 식량 안보를 위한 중요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16]
10. 참조
1. “자연에서 배우는 삶! : 네이버 블로그”.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
2. 입력: 2000.11.19 17:10 (2000년 11월 19일). ““한국적 자연농업이 더 경쟁력 있다””. 2025년 1월 13일에 확인함.
3. 최동근. "한국 친환경농업의 전개과정에 관한 비판적 고찰." 국내박사학위논문 건국대학교 대학원, 2020. 충청북도
4. “40년동안 무소유? 전쟁같고 천국같은 기적의 공동체”.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
5. 황민영. 2012. "아름다운 고집". 서울: 한국농어민신문
6. 홍용덕, 홍용덕 (2002년 8월 11일). “농민 마음 살아야 흙도 살고 농업도 살지”. 《한겨레신문》.
7. 조영상. "JADAM Organic Farming: 초저비용으로 전진하는 자닮 유기농업." JADAM, 2018.
8. “조한규 소장, 中 정부 훈장 받았다”. 2008년 10월 21일.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
9. Cho, Han Kyu; Koyama, Atsushi (1997). 《Korean Natural Farming: Indigenous Microorganisms and Vital Power of Crop/livestock》 (영어). Korean Natural Farming.
10. “조한규 명예회장 석탑산업훈장 수훈!!”. 2025년 1월 10일에 확인함.
11. “10회 韓·日 국제환경상(조 한규명예회장) 시상”. 2025년 1월 10일에 확인함.
12. 조선일보 (2020년 8월 12일). “"동북아는 환경공동체 국가간 협력 강화해야"”.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
13. “식량증산 등 공헌 조한규소장”. 2008년 10월 20일. 2025년 1월 10일에 확인함.
14. “자연농업연구소 조한규 소장 ‘우의상’ 수상”. 2008년 9월 29일.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
15. “자연농업연구소 조한규 소장, 도산 교육상 수상”. 2008년 11월 1일. 2025년 1월 10일에 확인함.
16. “한국의 농부, 시대적 편견에 맞서다”. 《Radio Free Asia》 (영어). 2025년 1월 13일에 확인함.
17. 조선일보 (2020년 8월 12일). “자연농법 전도사, 조한규 한국자연농업협회 명예회장”. 2025년 1월 13일에 확인함.
18. “유기농보다 한 차원높은 자연농업, 전세계로!”. 2008년 4월 29일. 2025년 1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