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질레트 주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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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 ||||
데이비드 무어스 (1991~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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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2007~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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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브러튼 경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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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2033,#222222><colcolor=white> 이름 |
조지 닐트 질레트 주니어 George Nield Gillett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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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8년 10월 22일 ([age(1938-10-22)]세) | |
위스콘신주 오클레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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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애머스트 칼리지 도미니칸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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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사업가 | |
경력 |
맥킨지&컴퍼니 컨설턴트 마이애미 돌핀스 경영 매니저 질레트 커뮤니케이션 창업자 베일&비버 스키 리조트 대표 부스 크릭 스키 홀딩스 대표 푸드 아메리카 대표 스위프트&컴퍼니 공동대표 카나디앵 드 몽레알 구단주 (2001~2009) 질레트 애버넘 모터스포츠 대표 리버풀 FC 구단주 (2007~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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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조지 질레트 주니어는 NHL 카나디앵 드 몽레알, EPL 리버풀 FC의 前 구단주이다. 그는 미디어와 스포츠 사업, 스키 리조트와 육류 사업을 전개해온 사업가로 현재에는 육류 사업을 주력으로 전개하고 있다.2. 경력
질레트는 1938년 10월 22일 위스콘신에서 태어났다. 그는 레이크 포레스트 아카데미와 애머스트 칼리지, 도미니카 대학을 졸업한 후 크라운 젤러바흐에서 지역 영업 관리자로 일했다.이후 1960년대 그는 맥킨자&컴퍼니에서 마케팅 및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고, 이후 1966년 NFL 마이애미 돌핀스의 사업 매니저로 있으면서 구단의 지분을 100만 달러에 매입하여 주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지분을 구입하기도 했으며 이후 미디어 사업에 뛰어들어 라디오와 텔레비전 분야의 네트워크 계열사들을 인수하여 1979년 질레트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후 1985년에는 스키 리조트 사업에 뛰어들어 베일 리조트와 비버 리조트를 경영했으며, 1999년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를 본인의 스키 리조트에서 유치하기도 했다. 베일 리조트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도 했으며 이후 부스 크릭 스키 홀딩스를 설립, 미국 전역의 스키 리조트를 인수하고 건설했다.
1997년에는 식료품 사업에 관심을 가져, 육류 브랜드인 푸드 아메리카를 설립하였고 이후 쇠고기 사업을 전개하는 스위프트&컴퍼니를 공동 인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톰 힉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스포츠 구단 인수에 뛰어들어 다양한 구단들에 관심을 보였고 2001년 1월 2일, 카나디앵 드 몽레알을 인수하고 그들의 홈경기장 몰슨 센터의 지분 80%를 1억 8,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2007년에는 에버넘 모터스포츠의 지배 지분을 인수하여 질레트 에버넘 모터스포츠로 이름을 바꿔 모터스포츠 업계에 발을 들였으며, 2008년에는 MLS의 CF 몽레알 인수에 관심을 보였으나 재정 문제로 인하여 입찰을 취소했다. 이후에는 EPL의 리버풀 FC에 관심을 가져 톰 힉스와 함께 공동으로 리버풀을 인수했다.
3. 구단주 경력
3.1. 리버풀 FC 시절
2007년 데이비드 무어[1]로부터 리버풀을 인수하면서 톰 힉스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공동 구단주로 취임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재정 안정성과 막장 운영으로 무수한 질타를 받으며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구단주로 등극했다.질레트와 힉스는 2007년 2월, 외부 자본을 원하고 있던 리버풀의 지분 98%를 단번에 매입하면서 리버풀 역사상 최초의 외국계 자본가로써 구단을 경영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들과도 함께 리버풀의 미래를 계획하겠다며 장기적인 운영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등 자신들의 재정적 안정성을 강조하며 구단 인수에 성공했다. 3년 넘게 인수자를 구하고 있던 리버풀의 이사회 또한 이들의 발언을 신뢰하며 구단을 넘겨줬지만 이는 새빨간 사기극에 불과했다.
질레트와 힉스가 리버풀 인수에 근접하자 그들의 실상을 알고 있던 재계 언론 및 기업들이 우려를 표했지만[2], 그들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60일 내에 신구장 건설 공사를 시작하겠다며 자극적인 공약들을 내세웠고, 축구계에서는 초보 경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스포츠에서의 운영 경력을 내걸며 이사화의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나 질레트의 파트너인 힉스는 이미 브라질의 크루제이루 EC와 SC 코린치안스를 소유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채결했다가 법정 문제와 재정 문제를 연발하며 신구장 건설 공약을 이행하지도 못한채 축구계에서 쫒겨난 전적이 있었고, 이 역사는 슬프게도 리버풀에서 또 반복되게 되었다.
구단의 지분을 대규모로 매입하며 우수한 자본을 과시했던 그들의 실상은 비참했다. 처음에는 일이 잘돌아가는 듯 했다. 그들은 2007년 첫 여름 이적시장에서 라파엘 베니테즈가 선수 보강을 요청하자, 20m 파운드의 클럽 레코드로 페르난도 토레스를 사왔으며, 라이언 바벨,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안드레이 보로닌 등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선수 보강에 들어간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본금은 모두 대출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립은행과 와코비아에서 350m 파운드를 대출받았고, 이 모든 부채는 리버풀 구단 장부에 기록되는 구조였다. 심지어 당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리버풀은 엄청난 이자를 부담하게 되었고, 그들의 만행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게되었다.
당시 베니테즈 감독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았고, 결국 질레트와 힉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자 질레트와 힉스는 2008년 1월 베니테즈를 해임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그들은 베니테즈를 경질하고 위르겐 클린스만을 데려오려고 시도했는데, 이 시도가 들통나자 "우리는 베니테즈가 레알 마드리드나 언론에서 링크가 난 다른 클럽으로 떠날 것을 대비하여 보험 차 클린스만과 접촉한 것이다."라며 졸렬한 변명을 내세웠다. 그 이후 이적자금을 주지 않아 베니테즈는 스쿼드를 정리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으며, 그로인해 주전과, 서브의 갭이 매우 심해졌고 이는 리버풀이 빅4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으면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2007-08시즌 사비 알론소가 부진하자 베니테즈는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려 했지만 질레트와 힉스의 자금은 실체를 드러냈고, 결국 미드필더가 두텁지 않았음에도 어쩔수없이 알론소를 매물로 내놓아야했다. 이후 대체자 배리 영입도 실패로 돌아갔고 알론소도 잃으며 리버풀의 스쿼드에도 균열이 일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그들이 애초에 약속한 신구장 스탠리 파크는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후 '스피릿 오브 샹클리(SOS)'라고 불리는 리버풀 현지의 서포터즈 대표 단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힉스와 질레트의 퇴출을 요구하는 행진 시위를 계획,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짓말쟁이 미국놈들은 떠나라!(yank liar$ out!)'이라는 표어 아래 약 4,000명이 모여 서포터 주둔지로부터 경기장까지 시위를 진행했다. 질레트는 행진 시위가 있기 직전 실제로 SOS의 대표자를 만나 짧게 회담을 나누었으나, 그 자리에서도 그는 클럽의 재정 기반이 안전하며 은행의 신용위기로 신구장 건설이 지연될 뿐이라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결국 클럽 내외부에서 엄청난 반발과 비판 여론이 일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5월, 엄청난 비판 여론 앞에 질레트와 힉스는 심지어 서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막장 운영의 끝에 서로 다툼까지 벌이는 촌극에 의해 신구장 공사비 300m 파운드는 모금 될리가 만무했고, 약속했던 기간은 커녕 1년 넘게 계획은 방치되었다. 심지어 공사조차 하지 못한 부지, 디자인, 법률 및 관리 비용으로 35m 파운드가 낭비되었다. 실제 2008년 3월, 질레트는 리버풀 지분의 98%를 DIC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갈등에 의해 힉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구단이 재정적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가자 팬들은 점점 더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서포터즈 단체들은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위기라며 거세게 구단주들에게 반발했으며, 베니테즈가 잘못된 운영과 망가진 재정 속에서도 힘들게 일하고 있다며[3] 상황의 위태함을 알렸다. 팬들은 이러한 항의를 질레트의 가족들에게도 퍼부었으며 질레트는 그와 그의 가족이 분노한 리버풀팬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분노한 팬들은 힉스의 아들, 토머스 힉스 주니어에게 직접 편지로 항의를 전달하기도 했는데, 보드진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힉스의 아들은 "Idiot, b**** me, f*** face, go to hell, i'm sick of you"라는 답장을 보내 사태에 기름을 들이 부었고 전 세계 리버풀 팬들의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국 이 여파로 힉스의 아들은 해고 당했고 상황은 최악의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2010년 4월 16일, 전 세계 리버풀 팬들의 불타는 비난과 분노에 못이긴 질레트와 힉스는 구단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인수했던 금액의 3배 가격으로 구단을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가능하면 4배 가격으로 받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리버풀을 인수할 당시 들였던 돈은 2억 1890만 파운드였으니 매각 가격을 6억 파운드에서 8억 파운드로 매긴 셈이다. 리버풀이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빚을 안고 있던 리버풀을 이 엄청난 가격을 들여가며 인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더 이상 재정 위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리버풀의 보드진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부당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영국 법원에 두 사람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힉스와 질레트는 그들을 "회사 자산을 약탈하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며 리버풀이 탐욕자들에 의해 진이 빠지고 있다고 적반하장으로 구단 보드진을 비난하는 충격적인 추태를 부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 브리티시 에어웨이즈의 회장 마틴 브러튼 경이 리버풀의 임시 구단 회장으로 지명되어 사태를 중재했으며, 2010년 10월, 리버풀 보드진은 인수 의사를 밝힌 존 헨리의 펜웨이 스포츠 그룹[4]에게 구단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질레트와 힉스는 보드진이 자신의 의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수자를 멋대로 정했다며 그들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또 다른 인수 희망자로 싱가포르 사업가 피터 림이 있었는데 피터 림이 더 많은 인수금을 제시하여 질레트와 힉스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 그러자 리버풀 보드진은 FSG가 인수자로 훨씬 합리적이고 즉각 해고는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당시 리버풀은 톰 힉스, 조지 질레트의 엉성한 팀 운영으로 인해 빚이 천정부지로 쌓인 상황에다가 인수 국면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제때에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파산까지 이어질 위기에 몰려있었다. 다행히 10월 15일 법정이 리버풀 보드진의 손을 들어줬고 리버풀은 3억 파운드에 매각되어 끔찍했던 질힉을 벗어나 FSG 체제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질레트는 리버풀 시절 본인 이름에 달린 빚에 허덕이기 시작했으며 밀 파이낸셜이 1억 1,700만 달러를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에 직면하게 되었다. 밀 파이낸셜은 2007년 질레트가 리버풀의 지분을 사들이는 데 사용한 대출금을 재융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까지도 질레트는 리버풀 시절의 실패로 인해 연 150만 파운드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리버풀은 질레트와 힉스 체제를 벗어나 FSG 아래에서 다시금 구단의 전성기를 이룩하게 되었고, 질레트와 힉스는 리버풀 역대 최악의 구단주를 넘어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졸렬한 자본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현재까지 질레트는 탐욕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악한 인성, 본인의 안위만을 챙기는 멍청하고 졸속한 운영, 부끄러움을 모르고 끝까지 경악스러운 행보로 일관한 후안무치의 집합체로 평가받는다.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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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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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국적 | 이름 | 기간 | 우승 기록 | 비고 |
초대 | 존 하울딩 | 1892~1896 | ☆☆ | 구단 창립자 | ||
2대 | 윌리엄 하울딩 | 1896~1904 | ★ | |||
3대 | 에드윈 베리 | 1904~1909 | ★☆ | 새 이사회 구성 | ||
4대 | 존 맥케나 | 1909~1913 |
최초의 감독 출신 회장 최초의 외국인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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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 존 애스버리 | 1913~1917 | ||||
6대 | 존 맥케나 | 1917~1919 | 최초의 중임 회장 | |||
7대 | 윌리엄 윌리엄스 | 1919~1924 | ★★ | |||
8대 | 리차드 마틴데일 | 1924~1926 | 재임 중 타계 | |||
9대 | 토마스 크롬튼 | 1926~1932 | ||||
10대 | 왈터 카트라이트 | 1932~1935 | ||||
11대 | 윌리엄 해롭 | 1935~1941 | ||||
12대 | 리차드 마틴데일 주니어 | 1941~1944 | ||||
13대 | W. H. 맥코넬 | 1944~1947 | ★ | 재임 중 타계 | ||
14대 | 스텐리 윌리엄스 | 1947~1950 | ||||
15대 | 조지 리차즈 | 1950~1953 | ||||
16대 | 윌리엄 해롭 | 1953~1956 | 재임 중 타계 | |||
17대 | T. V. 윌리엄스 | 1956~1964 | ★☆ | |||
18대 | 시드니 리크스 | 1964~1967 | ★★ | 새 이사회 구성 | ||
19대 | 해롤드 카트라이트 | 1967~1969 | ||||
20대 | 허버트 로버트 | 1969~1973 | ★★ | 재임 중 타계 | ||
21대 | 존 스미스 | 1973~1990 |
★★★★★★★★★★ ★★★★★★★★★★★★★ |
최장 기간 재임 회장 역대 최다 우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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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 노엘 화이트 | 1990~1991 | ||||
23대 | 데이비드 무어스 | 1991~2007 | ★★★★★★★★★★ | |||
24대 |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 2007~2010 |
최초의 공동 구단주 최초의 미국인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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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 마틴 브러튼 경 | 2010 | 구단 매각을 위한 임시 구단주 | |||
26대 |
존 헨리 ( 펜웨이 스포츠 그룹) |
2010~ | ★★★★★★★★ | |||
★
프리미어 리그 / ★
FA컵 / ★
EFL컵 / ☆
EFL 챔피언십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유로파 리그 / ★ UEFA 슈퍼컵 / ★ FIFA 클럽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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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 리버풀 FC의 회장은 구단 이사회가 선출하는 최고직이었으나 데이비드 무어스부터 구단 지분 과반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 외국 자본이 구단을 소유하며 구단주로 명명. |
[1]
1991년 이후 리버풀의 최대 주주였다.
[2]
특히 두바이 인터네셔널 캐피탈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매입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일찍이 판단하기도 했다.
[3]
실제로 구단이 재정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어가는 와중에도 베니테즈는 2008-09 시즌 리그 타이틀 경쟁을 해냈으며,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하며 격파하는 호성적을 보여줬다.
[4]
당시 이름은 New England Sports Ventures(NESV)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