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01 03:54:21

조르제 안드라데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파일:Jorge_Andrade_31mar2007.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조르제 안드라데
Jorge Andrade
본명 조르제 마누엘 알메이다 고메즈 데 안드라데
Jorge Manuel Almeida Gomes de Andrade
출생 1978년 4월 9일 ([age(1978-04-09)]세)
포르투갈 리스본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73kg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이스트렐라 아마도라 (1986~1997 / 유스)
이스트렐라 아마도라 (1997~2000)
FC 포르투 (2000~200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2002~2007)
유벤투스 FC (2007~2009)
지도자 아틀레티쿠 CP (2015~2016 / 수석코치)
아틀레티쿠 CP (2016)
클루브 오리엔탈 (2016)
비토리아 세투발 (2019 / 수석코치)
국가대표 파일: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1경기 3골 ( 포르투갈 / 2001~2008)

1. 개요2. 커리어
2.1. 선수2.2.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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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2000년대 초중반에 활약했던 포르투갈산 수비수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프리메라리가를 주릅잡은 센터백이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기량을 만개하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며 아쉬움을 남긴 선수였다.

2. 커리어

2.1. 선수

1997년 고향 팀 CF 이스트렐라 다 아마도라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그는 2000년 FC 포르투로 이적하였고, 포르투에서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살려 팀의 핵심 수비수로 활동하였다.

2002년에는 포르투에서의 활약을 주목한 프리메라리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로 약 1,200만 유로의 이적료에 이적하였고, 그 후에는 다섯 시즌에 걸쳐 데포르티보의 수비진에서 빠른 스피드와 대인 마크 능력을 앞세워 프리메라리가의 정상급 센터백에 올라섰다.

2007-08 시즌에는 여러 팀의 이목을 끌면서 세리에 A 유벤투스 FC로 이적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9월 23일 AS 로마전에서 경기 도중 슬개골이 파열되며 남은 시즌을 통으로 날리고 말았다. 이후에도 부상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2년 동안 단 4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2009년 4월 유벤투스에서 퇴출된 뒤 31살의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국가대표 데뷔는 2001년 4월 25일, 프랑스와의 친선전 경기였다. 이 날 그는 90분을 풀타임으로 나섰으나, 0:4 참패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개국 본선과 UEFA 유로 2004 16개국 본선에 참가하였으며, 네덜란드와의 유로 2004 4강전에서는 2:0으로 앞서다가 자책골을 기록하면서 간담을 서늘게 했지만, 다행히 경기 종료까지 리드를 지켜내며 2:1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6 FIFA 월드컵 독일 32개국 본선에도 참가가 유력했으나, 본선 개막 석 달전에 무릎 부상으로 2번째 월드컵 참가는 좌절됐다. 이후 그는 UEFA 유로 2008 지역예선에 5경기에 출전하며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지만, 상술했던 슬개골 파열 부상으로 16개국 본선에 참가하지 못한 채 대표팀 커리어를 마쳤다.

2.2. 지도자

2015년 4월 9일, 세군다 리가 소속이었던 아틀레티코 클루브 데 포르투갈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다음해에는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여 잔여 시즌까지 팀을 지휘했으나, 시즌 내내 불안정한 위치에 있던 팀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했고, 심지어 5월에는 선수 5명이 뇌물 수수혐의로 조사를 받으면서 분위기마저 어수선해진 탓에 결국 3부리그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2019년 2월, 비토리아 세투발의 감독이었던 산드로 멘데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했으나, 8월에 경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