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7 11:02:57

조 머서

조 머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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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대
클럽
파일:셰필드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5대
파일:아스톤 빌라 FC 엠블럼.svg

31대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19대
}}} ||
잉글랜드의 前 축구인
파일:Gentleman Joe Mercer.jpg
이름 조 머서
Joe Mercer, OBE[1]
본명 조셉 머서
Joseph Mercer
출생 1914년 8월 9일
잉글랜드 체셔주 엘즈미어포트
사망 1990년 8월 9일 (향년 76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 수비수[2]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축구 행정가 은퇴
소속 선수 에버튼 FC (1932~1946)
아스날 FC (1946~1955)
감독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1955~1958)
아스톤 빌라 FC (1958~1964)
맨체스터 시티 FC (1965~1971)
코번트리 시티 FC (1972~1974)
잉글랜드 대표팀 (1974 / 감독 대행)
행정 코번트리 시티 FC (1975~1981 / 디렉터)
국가대표 5경기 ( 잉글랜드 / 1938~1939)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2. 감독
4.2.1. 대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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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축구 선수 출신 감독.

1960년대 맨체스터 시티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감독이다.

감독 시절 맨시티에서 두 번째 리그 우승, FA컵, 리그컵, FA 커뮤니티 실드 및 구단 최초의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인 UEFA 컵위너스컵을 들어올리며 맨체스터 시티의 첫 전성기를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2살의 나이에 축구선수였던 아버지를 여의었고, 18살의 나이에 에버튼 FC에 입단하게 된다. 에버튼 소속으로 리그 우승도 달성하고 국가대표에도 승선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선수 커리어 역시도 중단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1946년에 에버튼을 떠나 아스날 FC에 합류하게 된다. 아스날에서는 주장직까지 역임하면서 2번의 리그 우승을 함께 했고, 1954년에 리버풀 FC전에서 큰 다리 부상을 입고 1955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3. 감독 경력

3.1. 맨체스터 시티 FC 이전

선수 생활을 끝낸 이후 저널리스트나 식료품 가게 일을 하다가 1955년 8월에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축구계에 복귀한다.

그러나 첫 시즌에 셰필드는 2부 리그로 강등됐고, 이후 2부 리그에서 감독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1958년에 셰필드 감독 직을 사임하고 당시 1부 리그 하위권이었던 아스톤 빌라 FC 감독직을 맡는다. 첫 시즌에 강등당하긴 했지만, 이후 곧바로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로 복귀하였고, 1961년에는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아스톤 빌라에서 승승장구하던 도중, 1964년에 뇌졸중 진단을 받게 되고 회복을 위해 아스톤 빌라의 감독직을 내려놓게 된다.

3.2. 맨체스터 시티 FC

뇌졸중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후 향한 곳은 당시 2부 리그로 떨어진 맨체스터 시티 FC. 감독직을 수행할 만큼 회복되긴 했으나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젊은 지도자였던 말콤 앨리슨을 수석 코치로 두게 된다.

맨시티에 부임한 첫 시즌에 스윈던 타운 FC의 공격수 마이크 서머비, 베리 FC에서 뛰던 유망한 미드필더 콜린 벨을 영입한다. 이 영입은 그대로 적중했고, 새로 영입한 선수들과 닐 영과 같은 기존 자원들을 잘 활용하여 한 시즌만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팀을 1부 리그로 되돌려놓는다.

승격 첫 시즌을 22개 팀 중 15위로 마친 후, 팀의 마지막 퍼즐로 당시 2부 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던 볼턴 원더러스 FC의 공격수 프랜시스 리를 영입한다. 그리고 1967-68 시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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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68 시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드는 머서

-- 서머비로 이어지는 리그 최강의 2선이자 강력한 공격 라인을 바탕으로 머서의 맨시티는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이며 리그 우승 경쟁을 이어나갔고, 결국 리그 최종전에서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4-3 승리를 거두며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승점 2점차로 제치며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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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컵 위너스컵을 차지한 머서

이후에도 머서의 맨시티는 계속해서 승승장구를 이어나간다. 리그 우승 다음 시즌인 1968-69 시즌에는 채리티 실드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로써 머서는 주장과 감독으로서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모두 해낸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FA컵 우승팀 자격으로 UEFA 컵위너스컵에 나간 1969-70 시즌에는 리그컵 트로피와 동시에 클럽 역사상 최초로 UEFA 주관 대회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다. 국내 대회와 유럽 대회를 동시에 제패한 것은 잉글랜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듯 맨시티에게 첫 황금기를 안겨주었던 머서-앨리슨 체제였지만, 이 둘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맨시티의 첫 황금기는 저물게 된다. 기존 구단주였던 알버트 알렉산더와 새롭게 축구계에 뛰어들었던 피터 스웨일스 사이에서 머서는 알렉산더를 지지했던 반면, 앨리슨은 스웨일스를 지지했다, 둘 사이의 갈등에서 승리한 쪽은 스웨일스였고, 스웨일스를 지지했던 앨리슨이 맨시티의 새로운 감독이 되면서 머서는 맨시티를 떠나게 된다.

3.3. 맨체스터 시티 FC 이후

맨시티에서 떠난 이후 코번트리 시티 FC에서 2년간 감독 생활을 했다. 1974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맡기도 했었는데, 임시 감독직을 수행하며 1974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3]에서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머서는 감독직에서 은퇴하며 코번트리 시티의 디렉터 역할을 맡는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2. 감독

4.2.1. 대회 기록



[1] Officer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4등급 OBE 왕실 훈장 수여자) [2] 하프백 [3] 영연방 4개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이 참가하는 대회 [4] 스코틀랜드와 공동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