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2 16:45:12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넘어옴
세계 대전
1914 ~ 1918
제1차 세계 대전
1918 ~ 1939
전간기
1939 ~ 1945
제2차 세계 대전
관련문서: 7년 전쟁 | 냉전 | 테러와의 전쟁 | 제3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World War I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nfobox_collage_for_WWII.png
기간 1939년 9월 1일 [1]~ 1945년 9월 2일[2]
장소 전 세계
원인 제2차 세계 대전/원인
교전국 연합국 추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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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00px-Flag_of_the_United_States_(1912-1959).svg.png 미국
파일:소련 국기.png 소비에트 연방
파일:영국 국기.png 대영제국
파일:프랑스 국기.png 프랑스 제3공화국[3]
파일:자유 프랑스 국기.png 자유 프랑스[4]
파일:프랑스 국기.png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5]
파일:대만 국기.png 중화민국

그외 연합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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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FFF>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나치 독일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일본 제국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이탈리아 왕국[6]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png 살로 공화국[7]

그외 추축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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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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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00px-Flag_of_the_United_States_(1912-1959).svg.png 프랭클린 루스벨트
파일:1600px-Flag_of_the_United_States_(1912-1959).svg.png 해리 S. 트루먼
파일:소련 국기.png 이오시프 스탈린
파일:소련 국기.png 미하일 칼리닌
파일:영국 국기.png 조지 6세
파일:영국 국기.png 네빌 체임벌린
파일:영국 국기.png 윈스턴 처칠
파일:영국 국기.png 클레멘트 애틀리
파일:프랑스 국기.png 샤를 드 골
파일:프랑스 국기.png 폴 레노
파일:대만 국기.png 장제스
파일:대만 국기.png 린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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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FFF>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아돌프 히틀러
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카를 되니츠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히로히토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고노에 후미마로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도조 히데키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고이소 구니아키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스즈키 간타로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베니토 무솔리니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피에트로 바돌리오
}}}}}}
결과 연합국의 승리
영향 식민제국의 몰락
파일:유엔 깃발.png 유엔 창설
미국 소련, 대영제국 초강대국 등극, 냉전의 본격화
피해규모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1px; margin-top:-8px; margin-bottom:-16px"
연합군 사상자 추축군 사상자
오스트레일리아 3만 9,700명
벨기에 1만 2,000명
브라질 1,000명
영국령 버마 2,600명
캐나다 4만 2,000명
중화민국 300만~375만명
네덜란드령 동인도 1만 1,500명
이집트 왕국 1,100명
에티오피아 제국 1만 5,000명
프랑스 21만명
그리스 왕국 3만 5,100명
영국령 인도제국 8만 7,000명
이란 제국 200명
몽골 인민 공화국 300명
네덜란드 6,700명
뉴질랜드 1만 1,700명
노르웨이 2,000명
필리핀 자치령 5만 7,000명
폴란드 24만명
남아프리카 연방 1만 1,900명
터키 200명
영국 38만 3,700명
미국 40만 7,300명
유고슬라비아 30만~44만 6천명
소련 866만~1140만명
총합 1,600만명 이상
나치 독일 444만~531만명
이탈리아 왕국 38만명
일본 제국 230만명
루마니아 왕국 45만명
헝가리 왕국 20만명
핀란드 8만 3,000~9만 5,000명
불가리아 왕국 1만 8,500명
알바니아 왕국 3만명
체코슬로바키아 3만 5,000~4만 6,000명[8]
태국 5,600명
이라크 왕국 500명
스웨덴 100명[9]
총합 800만명 이상
연합국 민간인 사상자 추축국 민간인 사상자
4,500만명 이상 400만명 이상
연합국 총 사상자 추축국 총 사상자
6,100만명 이상 1,200만명 이상 }}}}}}

1. 개요2. 전황 지도3. 발단4. 주요 사건 목록
4.1. 전간기4.2. 1939년4.3. 1940년4.4. 1941년4.5. 1942년4.6. 1943년4.7. 1944년4.8. 1945년
5. 주요 전선6. 참전국
6.1. 연합국
6.1.1. 중일전쟁6.1.2. 추축국의 최초 침공 피해국6.1.3. 본국 혹은 종주국의 전쟁 수행 합류6.1.4. 별도 참전6.1.5.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6.1.6. 일본 제국의 미국 침공6.1.7. 그 외
6.2. 연합국에 편승한 공동체6.3. 추축국6.4. 추축국에 편승한 공동체6.5. 중립국6.6. 중립이었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국가6.7. 중립이었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국가6.8. 한국은 연합국인가?
6.8.1. 아니라는 견해6.8.2. 맞다는 견해
7. 전쟁 범죄
7.1. 목록7.2. 추축군의 전쟁범죄 성격에 대한 논쟁
8. 전후 상황
8.1. 연합국8.2. 추축국
9. 영향10. 기타11. 관련 어록
11.1. 주요 연설문11.2. 기타 어록
12. 관련 인물13. 창작물
13.1. 영화13.2. 게임13.3. 만화·애니메이션13.4. 소설13.5. 기타
14. 관련 문서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추축국이 일으켜 연합국이 이에 맞서면서 1945년까지 이어진 두 번째로 일어난 세계 대전으로 인류사 최악의 전쟁이자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민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 전쟁이다. 세계 패권의 중심이 서유럽에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간 계기이기도 하다. 20세기 중반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은 이 시기부터 하락세에 들어가게 된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과학적 변화도 컸으며, 근대를 무덤으로 보내 버린 대사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수많은 국가의 정치나 정책이 바뀌었고 나라나 정권이 멸망하거나 재탄생하기도 하였다.[10]

유럽 일대로 전쟁 영역이 국한된 제1차 세계 대전과 달리 정말 말 그대로 전 세계가 전장이 되었다. 유럽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 오세아니아(호주)의 국가가 개입하였고 아메리카 대륙도 미국을 제외하고 다른 국가는 해안가나 주요 항로가 추축국 잠수함들의 게릴라전에 시달렸다.

이 세계대전을 끝으로 대영제국완전히 몰락했으며 초강대국 3에서 빠지게 되면서 미국 소련 양극체제가 본격화 되었다.

추축국의 공격적인 팽창주의 및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따른 국가 주도의 집단학살[11]로 인해, 소련을 제외하면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 선악이 비교적 분명하게 나뉘는[12] 전쟁이란 점도 특기할만 하다. 때문에 역사적 현상의 양면을 보려고 노력하는 역사학계에서조차 일체의 수정주의가 금기시되는 몇 안 되는 대상이 바로 추축국이다.[13] 이에 대한 반성으로 전후 UN이 설립되었으며 보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운동이 대두되었고,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오게 되었다.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핵무기가 실전투입된 전쟁이기도 하다.[14]

2. 전황 지도


하루마다의 전황을 정리해놓은 영상.[15][16]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89px-World_War_II_in_Europe%2C_1942_%28Korean%29.svg.png 파일:attachment/Second_world_war_asia_1937-1942_map_00001.png
유럽 전선에서의 추축국 태평양 전쟁에서의 추축국
두 지도 모두 붉은 색은 추축국에 항전하는 나라, 푸른색은 추축국 및 추축국에 점령된 나라들이나 동맹국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45-05-15GerWW2BattlefrontAtlas.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cond_world_war_europe_1943-1945_map_en.png 파일:external/www.westpoint.edu/ww2%20asia%20map%2052.jpg
1945년 5월 9일 나치 독일 항복 당시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 항복 당시

3. 발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2차 세계 대전/발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주요 사건 목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2차 세계 대전/전투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전간기

4.2. 1939년

유럽 동부
유럽 북부
유럽 서부

4.3. 1940년

유럽 북부
유럽 서부
지중해/북아프리카

4.4. 1941년

유럽 서부/대서양
유럽 동부
태평양

4.5. 1942년

유럽 동부
유럽 서부/대서양
지중해/북아프리카
유럽 북부
태평양

4.6. 1943년[24]


유럽 동부
유럽 서부 / 지중해
유럽 북부
북아프리카
태평양

4.7. 1944년

유럽 동부
유럽 서부
유럽 북부
태평양/아시아
기타

4.8. 1945년

유럽 서부
유럽 동부
유럽 기타
태평양

5. 주요 전선

제2차 세계 대전/전선 문서 참조.

6. 참전국

파일:external/www.mapsofworld.com/world-war-ii-axis-vs-allied-powers.jpg
[30]

파일:ww2gif.gif
참전국들의 변화, 미국의 참전이후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는것을 볼수있다. [31]

제2차 세계 대전 참전국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관련 틀: 제1차 세계 대전 참전국
연합국
유럽 파일:축소_프랑스 국기.jpg 프랑스 제3공화국파일:자유 프랑스 국기.png 자유 프랑스파일:축소_프랑스 국기.jpg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 · 파일:축소_영국 국기.jpg 영국 · 파일:축소_소련 국기.jpg 소비에트 연방 ·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네덜란드 · 파일:벨기에 국기.png 벨기에 · 파일:룩셈부르크 국기.png 룩셈부르크 · 파일:축소_오스만 제국 국기.jpg 터키 · 파일:축소_폴란드 국기.jpg 폴란드 제2공화국파일:축소_폴란드 국기.jpg 폴란드 망명 정부 & 파일:축소_폴란드 국기.jpg 친소파 폴란드+ · 파일:축소_노르웨이 국기.jpg 노르웨이 왕국 · 파일:축소_덴마크 국기.jpg 덴마크 왕국 · 파일:체코슬로바키아 국기.png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00px-State_Flag_of_Greece_%281863-1924_and_1935-1970%29.svg.png 그리스 왕국+ · 파일:external/cea7f84262d773700c3c500ca249e90835fbb2cf82da7e9d5ad34fea0f1fa5d4.png 유고슬라비아 왕국파일:유고슬라비아 국기.png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
아시아 파일:대만 국기.png 중화민국 · 파일:인도 제국 국기.png 인도 제국+ · 파일:몽골 인민 공화국 국기.png 몽골 인민 공화국+ · 파일:네팔 국기.png 네팔 왕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Philippines_%28navy_blue%29.svg.png 필리핀 자치령+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50px-State_Flag_of_Iran_%281964-1980%29.svg.png 이란 제국+ · 파일:레바논 국기.png 레바논+ · 파일:900px-Flag_of_Syria_2011,_observed.svg.png 시리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Palestine-Mandate-Ensign-1927-1948.svg.png 영국령 팔레스타인+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png 사우디아라비아
아메리카 파일:1600px-Flag_of_the_United_States_(1912-1959).svg.png 미국 · 파일:영국령 캐나다 국기.png 캐나다 자치령+ · 파일:파나마 국기.png 파나마#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cr_state.gif 코스타리카# ·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png 도미니카 공화국# · 파일:엘살바도르 국기.png 엘살바도르# · 파일:아이티 국기.png 아이티# · 파일:온두라스 국기.png 온두라스# · 파일:니카라과 국기.png 니카라과#, 파일:과테말라 국기.png 과테말라# · 파일:Cuba_firstrepublic.svg.png 쿠바# · 파일:멕시코 국기.png 멕시코# · 파일:볼리비아 국기.png 볼리비아# · 파일:콜롬비아 국기.png 콜롬비아# · 파일:페루 국기.png 페루# · 파일:에콰도르 국기.png 에콰도르# · 파일:파라과이 국기.png 파라과이# · 파일:우루과이 국기.png 우루과이# · 파일:베네수엘라 국기.png 베네수엘라# · 파일:칠레 국기.png 칠레# ·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합중국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파일:1188px-Flag_of_South_Africa_(1928-1994).svg.png 남아프리카 연방+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Flag_of_Ethiopia_%281897-1936%3B_1941-1974%29.svg.png 에티오피아 제국 · 파일:라이베리아 국기.png 라이베리아 · 파일:Flag_of_Egypt_(1922–1958).svg.png 이집트 왕국+
오세아니아 파일:호주 국기.png 오스트레일리아+ · 파일:뉴질랜드 국기.png 뉴질랜드+
연합국에 편승한 공동체
유럽 파일:스페인 제2공화국 국기.png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 · 파일:알바니아 민주정부.png 알바니아 민주정부#
아시아 파일:Flag_of_the_Provisional_Government_of_the_Republic_of_Korea.png 대한민국 임시정부# · 파일:220px-Flag_of_North_Vietnam_(1945-1955).svg.png 베트민#
추축국
유럽 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대독일국 ·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png 이탈리아 왕국*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png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 .png 헝가리 왕국 · 파일:핀란드 국기.png 핀란드* · 파일:2000px-Flag_of_Philippe_Pétain,_Chief_of_State_of_Vichy_France.svg.png 비시 프랑스+ · 파일:루마니아 국기.png 루마니아 왕국* · 파일:불가리아 국기.png 불가리아 왕국* · 파일:그리스국 국기.png 그리스국+ · 파일:크로아티아 독립국 국기.png 크로아티아 독립국+ · 파일:이탈리아령 알바니아 국기.png 이탈리아령 알바니아+ · 파일: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국기.png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 파일:슬로바키아 제1공화국(1939~45년) 국기.png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 파일:1280px-Flag_of_the_Government_of_National_Salvation_(occupied_Yugoslavia).svg.png 세르비아 구국정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40px-Flag_IMARO.svg.png 바르다르 마케도니아+ · 파일:800px-Flag_of_the_Principality_of_Pindus_and_Voivodship_of_Macedonia.svg.png 핀도스 공국+ · 파일:800px-Flag_of_Montenegro_(1905–1918,_1941–1944).svg.png 몬테네그로 왕국+ · 파일:로코트 자치국 국기.png 로코트 자치국+ · 파일:1280px-Flag_of_Nasjonal_Samling.svg.png 노르웨이 크비슬링 정권+ · 파일:1280px-Flag_of_Belarus_(1918).svg.png 벨라루스 중앙 라다+ · 파일:모나코 공국 국기.png 모나코+ · 파일:Flag_of_the_Slovene_Home_Guard.png 류블랴나 주+ · 파일:스페인국 국기(1938~45년).png 스페인국# · 파일:축소_스웨덴 국기.jpg 스웨덴# · 파일:덴마크 국기.png 덴마크 보호령#
아시아 파일:일본 제국 국기.png 일본 제국 · 파일:태국 국기.png 태국 · 파일:만주국 국기.png 만주국+ · 파일:1280px-Flag_of_the_Mengjiang.svg.png 몽강연합자치정부+ · 파일:왕징웨이 정권 국기.png 중화민국 왕징웨이 정권+ · 파일:이라크 왕국 국기.png 이라크 왕국* · 파일:1280px-Flag_of_the_Philippines_(1943-1945).svg.png 필리핀 제2공화국+ · 파일:자유 인도 임시정부 국기.png 자유 인도 임시정부+ · 파일:1280px-Flag_of_Cambodia_under_Japanese_occupation.svg.png 캄보디아 왕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7px-Flag_of_the_Empire_of_Vietnam_%281945%29.svg.png 베트남 제국+ · 파일:1280px-Flag_of_Laos_(1952-1975).svg.png 라오스 왕국+ · 파일:2000px-Flag_of_the_State_of_Burma_(1943–1945).svg.png 버마국+
추축국에 편승한 공동체
유럽 파일:러시아 인민 해방 위원회 기.png 러시아 인민 해방 위원회#
* : 전쟁 도중 추축국에서 연합국으로 전향
+ : 괴뢰 국가 · 정권 / 위성 국가 / 속령
# : 간접적 지원 / 지원 여부 논란 있음
}}}||

6.1. 연합국

6.1.1. 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중국과 일본 제국은 따로 미리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 두 국가의 관계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 연합국과 추축국 간의 관계로 확대되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중화민국[32] 1937년 7월 7일[33] 일본 제국의 침략, 중일전쟁

6.1.2. 추축국의 최초 침공 피해국

독일군의 폴란드 기습 침공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 되었다. 폴란드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어놓은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두 국가는 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독일에 맞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폴란드 제2공화국 폴란드 망명 정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선제침략, 폴란드 침공
프랑스 제3공화국 자유 프랑스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영국 1939년 9월 3일 폴란드와의 상호방위조약 이행

6.1.3. 본국 혹은 종주국의 전쟁 수행 합류

영국이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정하자 영국의 식민지들 그리고 자치령들과 영국을 본국으로 생각하고 있던 영연방 국가들 또한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됐다. 이후 이들은 영연방군[34]이라 불리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남아메리카 전선에서 나치 독일, 이탈리아, 일본 제국 등 추축국에 맞서 전투를 벌이는 주력을 맡게 된다.[35]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오스트레일리아 1939년 9월 3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36]
뉴질랜드 1939년 9월 3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뉴펀들랜드 자치령[37] 1939년 9월 4일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네팔 왕국 1939년 9월 4일 본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38][39]
캐나다 1939년 9월 10일 본국(영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40]
남아프리카 연방[41] 1939년 9월 6일 본국 정부의 전쟁 수행에 합류.
남로디지아[42] 정확한 시기가 모호함[43] 본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함.[44]
영국령 인도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영국령 팔레스타인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45]
영국령 케냐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46]
탄자니아[47]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48]
영국령 나이지리아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49]
영국령 골드 코스트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영국령 자메이카 1939년 9월 3일 종주국(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50]

6.1.4. 별도 참전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바레인 1939년 9월 10일 독일에 선전포고 후 연합군에 합류[51]
노르웨이 1940년 4월 9일 독일의 선제 침략, 노르웨이 침공
네덜란드[52]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벨기에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룩셈부르크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에 따른 독일군 침략
체코슬로바키아 망명 정부 1940년 7월 18일 독일에 강제병합된 본국 독립 노력
이집트 왕국 1940년 9월 16일[53] 이탈리아의 선제 침략[54]
그리스 왕국 1940년 10월 28일 그리스 침공
유고슬라비아 왕국 1941년 4월 6일 유고슬라비아 침공, 전 추축국[55]

6.1.5.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독소전쟁 개전으로 인해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소련 1941년 6월 22일[56] 나치 독일 바르바로사 작전실행으로 인한 독소 불가침조약 파기
몽골 인민 공화국 1941년 8월 9일[57][58] 종주국(소련)의 전쟁 수행에 합류[59]

6.1.6. 일본 제국의 미국 침공

태평양 전쟁 개전으로 인해 미국,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연합국에 가담했다.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파나마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일본 제국의 침략
미국 1941년 12월 8일 일본 제국의 기습 공격[60], 진주만 공습
필리핀 자치령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에 따른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코스타리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도미니카 공화국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엘살바도르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아이티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1]
온두라스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2]
니카라과 1941년 12월 8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과테말라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쿠바 1941년 12월 9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6.1.7. 그 외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멕시코 1942년 5월 2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브라질[63] 1942년 8월 22일 U-Boat의 자국상선 공격에 격분하여 참전
에티오피아 제국 1942년 12월 14일 영국군에 의해 해방 후 합류
볼리비아 1943년 4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4]
콜롬비아 1943년 7월 26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5]
이탈리아 왕국 1943년 9월 8일 항복후 연합국에 합류하였다.
독일이 구금된 무솔리니를 구출해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자,
이에 대항해 이탈리아 내전을 치렀다.
이란 제국 1943년 9월 9일 영국과 소련의 전쟁수행에 합류
유고슬라비아 민주 연방 1943년 11월 27일 추축국에 점령된 본국 탈환 노력[66]
라이베리아 1944년 1월 2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67]
페루 1944년 2월 1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루마니아 왕국 1944년 8월 25일 전 추축국[68]
불가리아 왕국 1944년 9월 8일 전 추축국[69]
헝가리 왕국 1945년 1월 20일 전 추축국
에콰도르 1945년 2월 2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파라과이 1945년 2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70]
우루과이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베네수엘라 1945년 2월 15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71]
터키 1945년 2월 23일 [72]
시리아[73] 1945년 2월 26일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
레바논 1945년 2월 27일
사우디아라비아 1945년 2월 28일 [74]
아르헨티나 1945년 3월 2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75][76] 및 친위대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연합국 가담요구[77]
칠레 1945년 4월 11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78]
핀란드 1945년 4월 15일 전 추축국, 소련의 압박과 영미의 추축국 탈퇴 및 연합국 가담요구

6.2. 연합국에 편승한 공동체

임시정부 참전일 참전 계기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 1940년 7월 11일 비시 프랑스가 출범한 뒤에 자유 프랑스 진영과 통합
베트민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전쟁수행에 합류
대한민국 임시정부 1941년 12월 10일 연합국의 전쟁수행에 합류(연합국 여부는 아래 문단 참조.)
알바니아 민주정부 1944년 10월 26일 1944년 연합군이 알바니아 왕국을 점령한 뒤에 참전

6.3. 추축국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일본 제국 1937년 7월 7일 중국에 대한 전면공격
만주국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몽골군 정부[79] 1937년 8월 19일 일본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나치 독일 1939년 9월 1일 폴란드에 대한 전면 기습공격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1939년 9월 1일 독일의 전쟁수행에 대한 동조
핀란드[80]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기습공격, 겨울전쟁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81][82] 1940년 6월 10일 대프랑스/영국 전쟁에서의 전리품 획득
비시 프랑스[83] 1940년 7월 10일 독일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알바니아 왕국[84] 1940년 10월 28일 이탈리아의 전쟁 수행에 대한 동조, 그리스 침공
불가리아 왕국 1941년 3월 1일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헝가리 왕국 1941년 4월 6일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이라크 왕국[85] 1941년 4월 18일 영국의 지나친 내정간섭에 대한 반발
루마니아 왕국 1941년 6월 22일 소련에 빼앗긴 몰도바 지방 회복
유고슬라비아 왕국 1941년 3월 25일 사면초가로 인해 가담 이후 탈퇴, 이후 괴뢰국화
크로아티아 독립국 1941년 4월 10일 독일에 의해 독립 이후 유고슬라비아 침공에 가담.
태국[86] 1942년 1월 25일 일본의 남방작전에 가담, 인도차이나 지방 회복
버마국 1943년 8월 1일 미얀마를 영국으로부터 독립[87]
왕징웨이 정권 1943년 9월 1일 연합국에 선전포고
자유 인도 임시정부 1943년 10월 26일 인도를 영국으로부터 독립[88]
필리핀 제2공화국 1944년 9월 23일 미국,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

6.4. 추축국에 편승한 공동체

국가 참전일 참전 계기
러시아 인민 해방 위원회 1944년 11월 14일 독일의 전쟁수행에 합류

6.5. 중립국

개전부터 종전까지 형식상으로라도 중립을 유지한 국가에 한해 기술한다. 벨기에처럼 중립의사는 있으나 침공당해 강제로라도 참전한 경우 참전국으로 본다.
국가 중립사유
스위스 국토 대부분이 산지라 점령해서 이득보는 것이라곤 이탈리아 북부와의 교통 정도인데 의외로 병력이 많아 알프스 등지에서 버틸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컸다. 항복 직전이 되면 사회 인프라까지 자신의 손으로 다 붕괴시키겠다는데 그냥 두는 편이 돈세탁 등으로 쓸모가 많아서 오스트리아에서 독립한 이후 꾸준히 국토 사수에 성공, 영세 중립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아예 전투가 없던 것은 아니고, 스위스 영공을 침입한 독일 공군과 스위스 공군이 몇차례 소규모 공중전을 벌인 적이 있다. 연합군의 경우 스위스의 중립을 보장해주긴 했지만 독일을 폭격하려던 폭격기가 스위스 도시를 오폭한 사례가 소수 있다. 결국 참다못해 폭발한 스위스는 고의든 실수든 연합국 추축국 두곳 모두에게 공격을 받은 이후 우리 영공에 침입하면 무조건 선빵날리겠다.라는 강경책을 내놨다.
스페인국 당시 프랑코 정권은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덕을 많이 봤지만, 역시 내전의 후유증으로 어느 한쪽 줄에 설 처지가 아니었다, 거기에 독일 공군 원수란 작자가 스페인 내전 중에 벌인 개짓 덕분에 추축국에 가입할 이유를 상실했다. 독일의 압박에 의해 의용군 1개 사단[89]과 청색 비행중대[90] 동부전선에 파병했고 상당한 활약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의용군이었을 뿐이다. 나중에는 은근슬쩍 연합군 편을 들어서 히틀러가 분노하기도 했다. 일본과도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1945년 4월에 단교했다. 이미 전황이 연합군 쪽으로 기울어서 그 쪽 눈치를 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안도라 현재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스페인과 프랑스의 보호령이었기 때문에 스페인이 중립을 지키자 스페인에 묻어가기 식으로 중립국이 되었다.
포르투갈 제2공화국 역시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안토니우 살라자르 독재정권이었으며, 지리적으로 스페인에 둘러싸여서 스페인에 묻어간 셈이다. 연합국과는 해상통로로 연결되고, 추축국과는 스페인을 거쳐서 육로로 연결되므로 전쟁 기간 내내 양측의 스파이 활동이 성행했다. 다만 파시즘 국가는 아니어서 전쟁 중반 이후에는 아소르스 제도 등의 주요 거점을 연합국에게 개방해서 사실상 연합국이 된다. 사실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이 몰락하고 영국이 힘을 가진 뒤부터 전통적인 영국의 동맹국이었다. 대표적으로 나폴레옹 전쟁 틸지트 조약 후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동맹이나 밑에 있을 때 영국편에 서서 프랑스와 싸운 단 하나의 국가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또 호주를 주축으로한 연합군이 식민지 티모르를 점령하고 또 다시 추축국 일본 제국이 포르투갈에게 선전포고를 때리고, 식민지인 티모르를 침략, 점령하였으나, 용케도 중립을 지켰다.
스웨덴 형식적으로는 중립국이지만, 나치 독일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줬다. 당장 독일의 철광석 수요의 상당부분을 스웨덴이 메꿔줄 지경이었다. 이웃국가 중 노르웨이-덴마크[91]는 독일에 점령, 핀란드는 추축동맹에 가담하여 독일에 의해 국토가 포위되어 있었으므로 독일이 단번에 밀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노르웨이는 스웨덴이 길을 비키지 않겠다면 공격하겠다는 독일의 협박에 밀려서 길을 내줘 점령당했는데 이 때문에 안 그래도 깊었던 노르웨이의 반스웨덴 감정이 더 심해졌다.
아일랜드 과거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했던 영국 때문에 독일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옆에 있어서 영국의 견제가 심했으며, 미국과 영국간의 통상항로 중간에 버티고 선 관계로 전략적인 요충지에 있는데다가 독일이 아일랜드를 점거하려는 계획을 만들다가 몇 번 들켜버리자 아예 미군이 아일랜드를 무혈침공해서 사실상 연합국의 점령지로 바꿔버린다. 그 외에 아일랜드인이 개인적으로 영국군 등 연합군 측에 참전한 사례도 있었다.
리히텐슈타인 이쪽은 스위스에 묻어간 식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사실상 스위스의 보호령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이란이 소련과 영국에게 사실상 분할점령되면서 일종의 완충지대로 중립국임을 인정받았다. 물론 유사시 연합국이 진주할 수 있었긴 하지만 이 지역이 원래부터 외국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집단적으로 반항하는 곳이었으므로 긴급사태가 터지지 않는 한 사실상 방치하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티베트 1912년 사실상 독립하긴 했지만, 국제적으로 미승인국 취급을 받았고, 딱히 추축국이나 연합국의 위협을 받지도 않아서 중립 상태를 유지했다. 일본과의 사이에 중국이 있고, 중국의 상황이 어수선한데다 사실상 당시의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건드릴 생각 없이 엄연히 다른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었기에 청나라의 붕괴 이후 중국과는 이웃한 다른 국가로 존재하며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나 종전 뒤 중화인민공화국이 침공해와 점령당하게 된다.
바티칸 시국 건드리면 지옥간다나치 독일이 점령을 시도하며 대치한적 있으나, 교황이 근위대에게 화기가 아닌 미늘창만 들게하며 비폭력적으로 나왔고, 전세계 가톨릭 교도들의 반발을 걱정해 포기하였다.
예멘 왕국 영국령이던 아덴을 비롯한 예멘 남부를 되찾기 위해 1936년, 이탈리아 왕국과 동맹을 맺었으나, 전쟁 기간 동안엔 중립을 지켰다.
산마리노 형식적으로는 중립국이지만, 이탈리아 왕국의 편의를 굉장히 많이 봐줬다. 예나 지금이나 산마리노의 국민경제는 이탈리아에 의존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내의 정세 변동이 산마리노 정계의 풍향을 좌우했다. 무솔리니가 잘 나갈 때는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여당으로서 장기집권했고, 윈스턴 처칠이 잘 나갈 때는 산마리노 공산당이 여당으로서 장기집권했다.

6.6. 중립이었지만 추축국에게 점령된 국가

국가 점령사유
덴마크 1940년 4월까지 중립을 유지했으나 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위한 그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침공했다. 지리적으로 연합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독일의 군사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 군사력 격차도 심했기에 침공 당일 새벽,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국 영토에 독일군 주둔과 군시설 사용을 허가하였고, 독일의 보호령이 된다.[92] 덕분에 덴마크는 독일군 점령지이면서도 어느정도 개입은 받지만 그래도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정부가 존속할 수 있었다.하지만 독일에 전황이 불리해지는 1943년 후반부터 독일은 덴마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직할령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수탈이 강화되었다. 이를 교훈삼아 덴마크는 대전 종식 후 NATO에 가입한다.
모나코 작은 국가이고 사방이 추축국( 비시 프랑스, 이탈리아 왕국)이였기에 비시 프랑스 정부에 지원금을 대주는 등 추축국에 호의적이였으나 1943년 이탈리아군이 침공하여 괴뢰 정권이 설립된다. 동년 9월 이탈리아의 철수 이후에는 독일이 점령한다.

6.7. 중립이었지만 연합국에게 점령된 국가

국가 점령사유
이란 제국 1941년 초까지 정부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정부와 별개로 국민여론은 영국과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친독정서가 상당했다. 한편, 영국은 북아프리카 전선의 전황 악화에 이에 호응하는 이라크의 반영 폭동으로 중동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소련은 독소전쟁 발발 후 영국으로부터의 군수물자 지원루트 확보 필요성을 느꼈다. 이러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페르시아 침공이 개시, 이란은 항복하고 국왕이 퇴위당했으며 대전 기간동안 영-소군의 군정 점령을 받게 된다.
아이슬란드 왕국 1940년, 사실상 종주국인 덴마크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아이슬란드에도 나치 독일의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한 영국이 무혈 침공했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2차 대전 말기 까지 영국/ 미국의 점령하에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연합국이나 추축국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다. 참고로 1944년엔 히틀러가 자신의 뜻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에 분노해 아이슬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시키는것을 승인했다.
포르투갈령 티모르 1941년,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유는 일본 제국의 오스트레일리아 침공을 늦추기 위해서 였다. 포르투갈군은 저항하지 않았다. 이후 1942년 2월 일본 제국이 티모르를 점령하고 1945년 패망 직전 까지 통치하였다.

6.8. 한국은 연합국인가?

6.8.1. 아니라는 견해

● 나라의 주권: 대한제국은 추축국인 일본 제국이 이미 1910년에 병합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따라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는 날까지 한반도는 별도의 자주적인 국가로 기능하지 못했다. 한반도를 다스리는 일본 제국의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토와 일본군을 위해서 물자와 인력을 대량으로 보냈으며, 대한제국의 황태자는 일본 육군 장성급 장교였으니, 식민지라는 입장을 제외하고 보면, 사실상 연합국보다는 추축국에 훨씬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 참전 여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진주만 공습이 일어난 날부터 3일이 지나간 1941년 12월 10일에 추축국들에 대하여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했지만, 단독으로 무언가를 할 능력이 없어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야 했고, 그렇게 해봤자 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가능했다. 망명 정부라 어쩔 수가 없다고? 1939년 가을에 폴란드 군부와 폴란드 항공사 및 폴란드 경찰과 폴란드 은행을 최대한 챙기고 서유럽으로 탈출한 폴란드 망명 정부는 폴란드 본토의 시골에 시군구급 해방구를 설치하여 대규모의 의용군을 양성한 덕택에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인정받았다. 반면에 폴란드처럼 자립하는 면모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합국 진영에서 참전국들의 말석에 끼워 줄 이유가 없었다.

● UN에 끼친 영향: 대부분 위에서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무엇인가 주도한 행동조차 없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일전쟁에서 1억 명의 피를 흘린 중화민국처럼 상임이사국이 아니었으며, 일부러 뒤늦게 선전포고를 실행하면서 떡고물을 챙긴 터키처럼 UN헌장에 서명한 것도 아니고, 한때 마닐라에서 케손시티로 천도한 필리핀처럼 전국토의 절반이 쑥대밭으로 변한 참전국도 아니고, 남태평양에서 결사항전한 네덜란드처럼 끝까지 항전한 승전국도 아니고, 1940년대에 가입한 이스라엘처럼 UN총회의 원년멤버도 아니다. 이러니 UN총회에서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필리핀보다 훨씬 더 열등한 약소국으로 푸대접받았다.

● 그 외: 민정으로 다스리는 영토를 확보한 보통국가로 행세하면서 소비에트 연방과 공수동맹(攻守同盟)을 맺은 몽골 인민 공화국처럼 사회주의 끝판왕 소련이나 자본주의 끝판왕 미국을 뒷배로 두고 제대로 지원을 두둑하게 받았으면, 초강대국의 특별한 수혜를 명분으로 내세워 연합국의 말석에 국호라도 새겼겠지만, 1940년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에 얹혀 살면서 한반도에 대하여 최소한의 영향력조차 모두 상실한 조직이었다. 그러니 몽골과 달리 저런 편법도 쓸 수가 없었다.

● 특수지위국 부여 : 한국은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 SCAPIN 1757에서 3개 범주(연합국, 중립국, 적성국)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특수 지위의 국가(Special Status Nations)를 설정하였는데 , 조선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태국 등과 함께 '특수 지위의 국가'로 분류되었다.이 특수 지위의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절대 연합군 진영이라고 볼 수가 없었으며 직간접적으로 주축국을 지원하거나 막판에 주축국에서 이탈한 국가들로 편성되어 있다. 미합중국의 연방정부에서 국무부는 보고서를 통하여 한반도의 안에서 일본 제국의 통치에 대하여 조선인들의 저항은 일부 지역에서 단기간에 그쳤으며 대체로 일본 제국의 통치에 순응하고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6.8.2. 맞다는 견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연합국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1919년 3·1 운동을 기점으로 구성된 임시정부는 이후 중일 전쟁 동안 중국 국민당과 연합하여 독립운동을 통한 방식으로 대일항쟁을 시작하는 한편 진주만 공습이 있었던 1941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추축국인 일본 제국과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또한 단순히 국민당의 지원을 받으면서 극히 제한적인 활동만 펼쳤고 타국으로부터 승인을 못받았다는 주장에도 무리가 있는데 임시정부는 1944년에는 버마 전선에서 영국군의 요청으로 임팔 전투(태평양 전선)에 광복군 요원을 투입하여 직접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을 하고 타 국가 정부로부터 1921년 중화민국의 승인을 받고 중화민국 이외에도 1944년에는 소련으로부터, 다음 해 1945년에는 프랑스와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몇 정부로부터, 특히 주요 연합국 5개국 중 3개국인 중화민국, 소련, 프랑스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또한 단순한 게릴라 전술과 파괴 공작의 비정규전만 한 것이 아니고 중국 국민당군과 함께 정규전으로 대규모의 전투 또한 치러냈으며 다수의 광복군 군인들이 파병의 형식으로 중국 국부군에 배속되어 전투기 조종사, 전차 운용병, 항해사관 자격으로 활약하였기 때문에 비록 전승국으로서의 지위는 얻지 못하였지만 연합국 일원으로서는 맞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 여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으로 조선 민족이 일제의 일부임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한민족 정부가 필요하다는 민족적 합의 하에 수립되었으며, 직접적으로 정부에 세금을 내는 미주와 멕시코, 하와이와 쿠바 등지의 주민(국민)이 있었고, 한민족이 직접 임시정부를 통치했으므로 주권도 있었으며, 영토는 비록 일제에 강탈당하였으나 이는 엄연히 불법이며 한반도의 주인이 한민족임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임정은 일시적으로 국토를 상실한 망명정부/임시정부일 뿐 영토가 성립하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사실상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가의 3요소를 모두 충족하고 있어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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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쟁 범죄

7.1. 목록


2차대전의 전체 사상자 7~8천만여 명 가운데 적어도 5000만여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고의적인 인종 청소를 비롯해 기아, 민간인 오폭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개중 대부분의 전쟁범죄는 추축국에 의해 자행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 폴란드에서 약 4~5백만여 명을, 홀로코스트로 6백만여 명의 유대인을, 그리고 소련과 동유럽 등지에서 1천만이 넘는 적국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이는 사회기간망의 파괴나 기아 등으로 죽어간 동수 혹은 그 이상의 희생자들을 제외한 수치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단연 돋보인다. 일본 제국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추산하였을 때 중화민국에서 약 8백만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동남아 전역에서도 4백만여 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전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소련 중화민국의 전시 민간인 사망자 수는 정확한 통계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나 최소 3,500~4,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여겨지며, 이는 전체 참전국 희생자의 80% 가까이를 차지한다. 이외에도 일본 제국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전시 성착취를 자행하였으며, 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강압적인 생활통제와 강제노역은 일상다반사로 발생하였다.

반면 연합국의 전쟁범죄에 의한 의한 추축국의 피해 역시 적잖은 수준이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전쟁 말기 소련이 독일, 헝가리 등 추축국의 본토로 진입하면서 벌인 집단 강간 및 학살극이 있다. 약 2백만여 명의 독일 민간인을 포함하여 수십만의 추축국 민간인들이 소련군의 보복에 의해 사망하였고, 그에 준하는 수의 대민 피해(강간, 약탈 등)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서방 연합군의 경우에도 라코니아 사건처럼 상호불신과 군사적인 논리로 인해 적잖은 불상사가 발생하였으며, 개인 단위의 일탈과 보복심리로 인한 전쟁범죄 역시 완전히 통제하지는 못하였다. 일제의 경우 본토가 미군에 의해 점령되지 않았기에 한결 나은 처지였으나, 만주 작전 당시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 관동군 군인들 및 해당 지역의 거주민들은 굴라그 강제노역을 비롯한 각종 가혹 행위의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후 중국 한국 등지에 분포해 있던 일본인들이 분노한 현지 거주민들에게 보복성 범죄를 당하는 것 역시 감수해야 했고.

세계대전의 참혹함 속에서 군인들 역시 제네바 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살해·학대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나치 독일은 소련이 제네바 협약에 조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국 포로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정당화하였으며[93], 소련 역시 전쟁 후반기에 접어들면 보복심리로 독일군 포로를 잔혹하게 대하여, 양국의 포로 생환비율은 30%를 넘기지 못했다. 일본 제국의 경우 인명을 도외시하는 군국주의 세뇌로 인해 거짓 항복이나 자살돌격, 카미카제 등 전시 윤리에 비추어보아도 상식 밖인 행동들을 많이 저질렀으며, 이는 태평양 전쟁 독소전쟁 못지않은 인외마경이 되는 데 크게 일조하였다. 전쟁의 결과 연합군에서는 약 천만여 명의 소련군과 3백만여 명의 국부군이, 추축국에서는 5백만여 명의 독일 국방군과 2백만여 명의 일본군이 사망하였으며, 정확한 통계는 내기 어려우나 이들 중 상당수는 (군사작전이 아닌) 서로에 대한 증오와 보복의 폭력 속에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군사작전과 전쟁범죄 사이 어딘가로 취급받는 전략 폭격의 경우 추축국과 연합국을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연합국의 핵심 국가인 대영제국 중화민국이 수도인 런던과 충칭을 공습당하는 등 추축국에게 유리한 형세가 이어졌지만, 이후 미국 소련이 참전하여 연합군이 확고한 제공권을 장악하고부터는 도쿄 대공습, 드레스덴 폭격 등 상황이 반전되었다. 결국 세계대전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 역시 전략폭격의 끝판왕이라 볼 수 있는 원폭 투하였고.

7.2. 추축군의 전쟁범죄 성격에 대한 논쟁

나치 독일과 일본·이탈리아의 전쟁범죄 성격이 같냐는 점에서 논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연구와 관련된 학자를 기준으로 추가바람
  • 나치독일과 일본·이탈리아가 달랐다는 측
2차 대전은 단순히 영토와 자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어느 집단이 살아남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어느 집단이 승리자에 의해 '열등'으로 낙인찍혀 영원히 소멸당할지는 놓고 싸운 전쟁이었다.

(중략)

1939년에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과 일본이 중국에서 1931년과 1937년에 벌인 전쟁, 그리고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에서 1935~36년 사이에 벌인 전쟁과도 다르다. 비록 당사자들에게, 특히 중국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매우 잔혹한 전쟁이었지만 이 전쟁들은 예전 전쟁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두 단계에 걸쳐 벌인 침략은 19세기 끝 무렵부터 벌어진 식민지 확장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일본은 비록 중국을 희생양 삼아 영토와 자원을 늘리려 했으나 중국, 그리고 중국인의 완전한 소멸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과 정복 역시 스페인과 포르투칼,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인들이 벌이던 아프리카 식민지 쟁탈전의 막바지에 이탈리아가 끼어든 결과일 뿐이다. 때문에 이 책은 동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전쟁이 아닌 독일의 침공으로 시작하려 한다. 일련의 다른 전쟁들은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된 전쟁에 녹아들었지만 그 발단은 전혀 달랐으며 만약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계속 독립된 전쟁으로 남았을 것이다.

게르하르트 L. 와인버그, 2차 세계대전사 1, 길찾기, 일러두기 부분,
  • 나치독일과 일본·이탈리아가 다르지않다다는 측
2차 세계대전 관련 학자를 근거로 추가바람

물론 이 논쟁은 성격이 다르다는 거지 선악의 수준이 다르다는 논쟁이 아님을 명심하자.

8. 전후 상황

8.1. 연합국

연합국은 매우 많지만 일단 전쟁 중 파시스트들과 가장 적극적으로 박터지게 싸웠던 소련(현 러시아),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미국, 중화민국, 중국 공산당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소련 미국과 함께 본격적인 강대국의 대열에 오르긴 했으나, 전쟁 간 가장 많은 독일군을 상대하고, 서방 연합국의 직접적 병력 투입이 없는 상태에서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 타 참전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의 인명적, 물질적 손실을 입었다. 이 수치는 관점에 따라 세계대전이라고 칭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무려 약 2천 700만명[95]이란 희생자를 낳았다. 실제로, 냉전 이후 전개[96]로 인해 축소된 면이 적지 않으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종식에 소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97][98]

영국은 승전 이후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썼다. 타 유럽 국가보다 영국 본토와 영국민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 이은 또다른 괴멸적 전쟁으로 영국 경제는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영국은 베버리지 보고서의 원칙에 따라 복지국가론에 따라 국가를 재건하였으며, 사상 처음으로 복지국가 개념이 실현됐다. 또한 이 시기 영국은 더 이상 식민 제국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식민지들을 차례로 독립시켜 대영제국을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이를 영연방이라는 국제 기구로 재편하게 된다. 이 영연방을 통해 영국은 영연방 왕국 구성국들은 물론,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과거 피식민 국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영국의 전후 복구는 이 영연방 각국의 지원과 협력, 영연방 경제 연합[99]을 통해 이뤄졌으며, 이 시기 영연방 각국 사람들이 영국으로 건너가 부족한 일손을 채웠다. 이런 영연방이라는 기구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배려, 그리고 영국 문화의 소프트 파워 덕에 영국이 초강대국에서 물러난 오늘날까지 어느 정도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100].

프랑스는 전장이 된 자신들의 국토를 수습하고[101], 전후 복구 사업을 진행하였다. 과거의 정치적인 영향력 덕분에 영국과 함께 유엔 상임이사국 자리는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 위신과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겠다는 일념 하에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했고, 식민지 정책에서 무리수를 둔 측면이 크다. 영국, 이스라엘과 함께 수에즈 전쟁에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고, 식민제국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알제리 베트남을 침공해 식민지 전쟁을 벌였지만 이 전쟁의 실패들로 인해 프랑스는 연쇄적인 식민지에서의 독립 요구에 직면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드골주의와 사민주의의 극렬한 좌우대립과 허무주의를 겪었다. 하지만 이런 대립 속에서도 프랑스 특유의 보편적 복지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전후 경제 복구와 유럽의 평화 체제 정착,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유럽 각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느꼈다. 이 때문에 훗날 유럽 연합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최초의 유럽 공동체[102]를 형성하여, 오늘날 독일과 함께 유럽 공동체를 이끄는 두 주축이 된다.

폴란드는 이후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폴란드 공산당에게 넘어가 소련의 괴뢰국화 된다. 소련과 폴란드 공산당은 이 과정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웠던 망명정부 및 폴란드 국내군 소속 장교들을 서방의 간첩으로 몰아 처형시키는 희대의 병크를 일으키고 만다. 이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를 위시한 소련의 간섭을 겪다가 이에 반발한 고무우카가 집권하고 또 이에 반발한 세력으로 인해 쫓겨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레흐 바웬사의 자유노조 운동으로 마침내 1989년 공산당 독재가 종식된다. 폴란드는 냉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NATO 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등 서방 세계로 화려하게 다시 돌아온다.

체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뮌헨 협정으로 독일에게 빼앗긴 국권을 나치가 패망함으로써 되찾았으나 뒤이어 들어온 소련군과 소련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체코 공산당에 의해 공산당의 지배하에 들어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스탈린 사후 공산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서 알렉산데르 둡체크 등 개혁파 세력들이 집권하여 이후 체코 내부에서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이 체코에 대한 군사개입을 일으켜 반정부 세력들을 진압하였고 둡체크의 개혁정책에 반발하던 체코 공산당내 보수파 세력들이 소련의 군사 개입을 등에 업고 둡체크를 몰아내면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반정부 운동 진압 이후에도 바츨라프 하벨 등이 이끄는 반 공산 세력들의 반정부 투쟁이 이후에도 지속해서 이어졌고 1989년 동유럽 자유화 바람을 틈타 벨벳 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마침내 야케스 공산당 서기장이 퇴진하고 이후 실시된 민주 다당제 대선에서 반공 운동 지도자였던 하벨이 당선되면서 마침내 공산당 독재 체제가 종식되었다.

네덜란드는 추축국에서 해방된 이후 연합국 자격을 얻었지만,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려고 하자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물간 식민주의 대신 새로운 신예인 인도네시아를 자국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길 원했던 미국 영국, 소련등 전승국들의 압박으로 금방 데꿀멍하고 독립시켜줘야 했다. 이후엔 수리남과 같은 해외 식민지가 모조리 잘려나가고 아루바 등 소수만 남긴 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함께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현재는 조용히 살고있는 중이다[103].

미국 진주만 공습사건 이후 전쟁 중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참전하여 승전 이후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전쟁의 혜택을 단단하게 누렸다. 해리 트루먼 행정부 체제를 통해서 전세계적인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에 힘쓰며 서방 세계의 정치적 지도자로 떠올랐으며, 군사는 물론 경제와 문화적으로도 헤게모니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와 정치적 대립을 시작였고, 이를 냉전이라고 부른다. 이 극심한 대립은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종식되었다. 물론 소련 붕괴 이후 부활한 러시아는 부흥한 중국과 함께 미국을 견제하는 중. 그리고 사실 미국은 독일계 백인들이 주류 세력 중 하나인 사회였으나 이들은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름과 성을 바꾸고 독일인임을 숨기는 식으로 행동했고, 미국 내의 독일계 세력은 수면 밑으로 사라지게 되었다[104][105].

중화민국 일본 제국 대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뻔 했으나 겨우내 봉합했던 국공내전이 금세 또 재발발하여 공산혁명으로 기존의 국민정부 타이완 섬으로 국부천대하면서 철수한 뒤[106] 빈 자리를 채운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고 바로 미국 소련 양쪽에 밉보여 1970년대까지 고립된다. 그 동안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제사해 운동같은 충격과 공포 OME급 사건을 겪다가 중화민국이 UN에서 쫓겨난 자리를 또 다시 채운 후 야심차게 등장한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으로 중국은 사실상 허울뿐인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이후 천안문 사태와 같은 우여곡절 끝에 경제성장, 우주개발에 성공하고 홍콩과 마카오를 반환받아 구 제국주의 시절의 치욕을 씻는 등 겨우 20세기를 좋게 맞이하고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107].

승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5개국[108]은 UN 상임이사국으로써 현재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8.2. 추축국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현대는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독일,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UN의 규칙 중에 옛 추축국이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 등의 불온한 움직임이 보일경우 '연합국이나 기타 국가가 선전포고 없이 바로 기습적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남아있을 정도다. (해당 조항은 유엔헌장 53조와 107조로 이곳을 참조) 현재는 사문화된 상태이다.

1943년 조기에 항복한 추축국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붕괴한 후에 신정부가 들어서서 연합군에 가담하였다. 행정은 연합군이 세운 군정부에 위탁하였다. 무솔리니가 북쪽으로 도망가서 세운 정부와 독일군을 상대로 1945년 5월까지 전투를 벌였다. 1946년에 들어서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이후 유지했던 왕정을 폐지하고 입헌 공화정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전환하고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1936년에 탈퇴했던 국제연맹의 후신 UN에도 1955년에 공식 가입하였다. 추축국 3대 국가 중 피해는 제일 적은 편이다.

독일은 1945년 5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후, 칼 되니츠가 후임자가 된 다음 연합국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연합군이 베를린을 정복하며 전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되니츠 정부가 해산 당하면서 국가가 일시적으로 소멸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연합통치를 받으며, 동부 독일쪽 영토[109]를 많이 잃어서 독일 민족 국가 중 역사상 가장 작은 국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국토는 동서로 분단되어 이른바 서쪽에는 서독이, 동쪽에는 동독 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으며 이후에 베를린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 10월 드디어 재통일을 이루었다. 이후에는 전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 옛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범들을 잇따라 체포하는 등 전범시절 청산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전쟁 때 침략했던 국가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했다.[110] 그리고 독일이 동유럽에 독일인을 이주시키고 전쟁범죄를 일으킨 것의 반동으로 전후 독일인의 추방과 도주가 일어났고,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폼메른 등 폴란드와 소련에 합병된 구 독일령의 독일계 주민들이 대량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쫓겨나 실향민들이 되었다.

일본 제국은 위의 두 국가가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결의하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1945년 8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으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손실이 예상되자 덴노의 명의로 항복을 선언하였다. 일본은 최소한 중일전쟁 이전에 넓힌 영토만큼은 보전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여 실질적으로 반쯤 본토 취급하던 조선과 대만, 본토 일부였던 사할린 남부까지 전부 날아갔다. 1945년 미 군정은 천황제 지속을 승인했고 1950년 한국 전쟁으로 경제적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50년이 넘게 자민당이 득세를 하면서 일본에서는 전범세력들의 후손들이 민주적으로 정치권력의 주류가 되었고, 과거사 청산 및 단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체 우익화 되었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하고 호소카와, 무라야마 등 역대 일본 총리들의 담화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도 했으나 이러한 노력에도 무색하게도 정치인들의 과거 전쟁 범죄에 반성하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독도, 쿠릴 열도, 센카쿠 등 영토분쟁으로 러시아,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 대립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일전쟁을 치룬 중국과의 갈등이 가장 심한데 과거에는 냉전 때문이었지만 현재는 보통 국가화를 지향하는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9. 영향

모호하게 전쟁이 종결되어 불안불안했던 질서가 유지되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간기와는 달리 제2차 세계 대전은 누가 봐도 대립구도가 명확했고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와 세계질서를 완전히 결정짓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미친 영향이 워낙 커서 영향을 안 받은 곳이 없다. 그나마 아메리카 대륙은 별 일 없었지만 다른 온갖 대륙은 전장이 되었다. 독일은 유럽에, 일본은 아시아(+오세아니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 전장을 만들었고, 대서양이나 태평양 역시 전쟁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가지 일들이 전후 세계를 많이 바꿔놓았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때문에 국가 자체가 잠깐 멸망해버린 경험을 한 국가도 많고, 아예 새로운 나라,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거나 혹은 세계 각국의 정치, 사회 부분에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다.[111]

"인류 역사상 선악이 분명하게 구별된 전쟁"이란 주장이 많지만, 반론도 있다. 개인 단위의 전쟁범죄를 배제하고 보더라도, 특히 소련은 전쟁 초기 독일과 함께 동유럽 전역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벌였으며, 인민재판이라는 명목 하에 정부 차원에서 점령국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강간을 주도·방조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전범들을 기소했던 네 가지 죄가 반평화적 범죄를 위한 공모죄, 침략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죄, 전쟁법 위반, 반인륜적 범죄임을 감안하면, 소련도 승전국이라 전범재판을 피해갈 수 있었을 뿐 사실상의 전범국가이다. 애초에 독소 불가침조약의 이면합의만 보더라도 소련은 독일의 공범자였고. 영국 역시 인도 등지의 식민지야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고, 추축국이나 소련처럼 국가 주도의 학살을 실행하지는 않았다 치더라도, 전쟁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소련과 함께 페르시아를 멋대로 침공하여 국왕을 갈아치우는 등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용인받기 어려운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 냉정하게 말해 제2차 세계대전 중 개개인 단위의 전쟁범죄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전무하며, 국가 전략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열강들은 마지막까지 중립의무를 지키다 명백히 공격받아 참전한 미국 정도를 제외하면 구린 구석이 하나씩은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이 나치와 추축국의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긍정적인 영향도 없지는 않다. 총력전을 겪고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쟁이 군인들만이 아닌 전 국민이 겪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전쟁이란 게 인류 전쟁사의 온갖 기록을 다 갈아치울만한 거대한 전쟁이었기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인식은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인한 대립구도가 전면전으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세계를 전쟁으로 이끈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는 과거에 비해 터부시당하게 되었고 전쟁 발발의 과정이 된 뮌헨 협정이 재조명되어 국제관계에서 독재 국가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거절하고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2차대전의 결과가 '자유와 평화'라는 주장도 서유럽과 북미 등 열강에 한정된 이야기란 비판이 있다. 당장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멎은 지 5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고, 이후에도 동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남동유럽에서 수많은 전쟁과 내전이 터졌다. 그 동안 유럽은 EU의 형태로 단결에 성공했지만 동북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지역은 여전히 극한의 대립이 이어지는 중이며, 냉전 논리에 따라 열강들이 자신들만의 평화를 누리고자 세계 각지에서 일으킨 대리전들은 오늘날 제3세계에 막대한 난민들을 만들어냄으로써 다시금 서방세계를 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소통의 장으로서 유엔이 갖는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으나, 독재와 국가주의, 전쟁의 그림자는 여전히 시시각각 인류의 존망을 위협해오고 있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대결주의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책 속의 비극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들에게 닥쳐올 수 있는 현재진행형인 문제임을 기억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0. 기타

11. 관련 어록

11.1. 주요 연설문

참전국의 최고 지도자 내지는 한 전역의 총사령관이 선전포고·승전·패전을 기념하여 했던 유명 연설문들. 가능하면 시간 순서대로 나열 바람.
萬一真到了無可避免的最後關頭,我們當然只有犧牲,只有抗戰!
(만일 정말로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의 갈림길에 이른다면, 우리에게는 당연히 희생과 항전만이 있을 뿐이다!)
- 장제스, 1937년 7월 17일, 루산성명에서의 항일 독려 연설 연설 전문(중국어 번체)
독일 제국의사당의 대표자 여러분!
최근 수 개월 동안, 우리 모두는 베르사유 조약 내지는 베르사유의 늑약에서 출발해서 날이 갈수록 점점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해 오던 한 가지 문제를 겪었습니다. 단치히 독일의 영토였으며, 독일의 영토입니다. 그 회랑은 독일의 것이었고, 독일의 것입니다. 이들 지역에서의 모든 문화적인 발전은 전적으로 독일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인이 없었다면 동방의 이 모든 지역에는 엄청난 야만성만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
나는 국가사회주의자이자 독일 군인으로서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이 전쟁에 뛰어듭니다. 일생 동안 나는 오직 나의 민족[112]들과 그들의 부활, 그리고 독일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 투쟁에서 나는 언제나 오직 우리 민족을 위한다는 일념만으로 버텨 왔음을 진실되게 고백합니다.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항복'[113]입니다.
(...)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1918년 11월[114]은 독일 역사에서 결코 되풀이되지 않을 것임을 전 세계에 엄숙히 선언합니다. 내가 나의 생명을 언제라도 민족과 독일을 위해 바칠[115]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와 같은 각오를 다지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이 국가적인 사명[116]에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거부하려 드는 사람들은 사라질 것입니다.[117] 반역자들에게는 오직 죽음만이 기다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개개인의 삶은 전혀 중요치 않으며, 단지 우리 민족이 맥동하고, 독일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독일의 옛 원칙[118]들을 신봉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제3제국의 메신저로서 여러분이 위치한 모든 장소에서 여러분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기를 기대합니다.
(...)
이제 나는 제국의 권력을 향해 투쟁하던 시절의 고백과 함께 끝맺음하려 합니다. 그 때 나는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강요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우리의 의지와 독일 철강이 그 곤경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119]
독일이여, 승리하라!
- 아돌프 히틀러, 1939년 9월 1일 오전 10시, 라이히스탁에서의 개전 연설 연설 전문(독일어)
오늘 아침 베를린 영국 대사는 " 독일이 오전 11시 정각까지 폴란드 침공 태세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대영제국과 전쟁 상태에 돌입할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독일 정부에게 보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최후통첩과 관련하여 어떠한 답신도 받지 못하였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독일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였음을 선포합니다.
(...)
여러분은 아마도 평화를 쟁취하기 위한 제 오랜 노력 실패한 것이 제게 얼마나 쓰디쓴 충격이었을지를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어떤 추가적인 노력이나 다른 접근도 제가 과거에 했던 일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했으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
최후의 순간까지도 독일 폴란드 사이에 평화적이고 명예로운 합의점에 도달하는 것이 꽤나 가능해 보였지만, 히틀러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의 행적으로부터, 이 남자가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의지를 쟁취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음이 명확해졌습니다. 오직 무력으로만 그를 멈춰세울 수 있습니다.
(...)
그러니 부디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신께서 정의를 수호하기를. 우리가 맞서 싸울 은 곧 폭력이자, 불신이자, 불의이자, 억압이자, 박해이며, 이에 맞서 저는 정의가 승리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 네빌 체임벌린, 1939년 9월 3일 오전 11시 15분, 대(對)독일 선전포고 연설 연설 전문(영어)
이 어려운 시기에, 어쩌면 우리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기에 저는 국내외를 망라한 우리 국민들의 모든 가정에 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치 제가 여려분의 집 안으로 들어가 여려분께 직접 말할 수 있다는 듯이 여려분 하나하나를 향해 충심으로 이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금 평생 두 번째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이제는 우리 적이 된 상대방과의 견해 차이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이고 거듭해서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전쟁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연합국들과 함께 어떤 주의의 도전에 대응하도록 요청받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주의가 승리한다면 문명화된 세계질서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저올 것입니다.

그것은 한 나라에게,이기적인 힘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이 맺은 조약과 신성한 약속을 무시하는 것을 혀용하지 않는 주의입니다. 다른 나라의 주권이나 독립에 맞서 무력을 사용하거나 무력으로 협박하는 것을 승인하는 주의입니다. 그와 같은 주의는 모든 위장을 벗겨버리고나면 결국 완력이 정당하다는 원시적 신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 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용납된다면 우리나라와 전 영연방 제국의 자유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전 영속적 평화와 정의의 보장과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궁극적 문제입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든 것 과 세계 질서와 평화를 위하여 이와 같은 도전에 대응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지금 우리 전체의 목표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 국뇌외에 게실 우리 국민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고귀한 목표를 향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여려분에게 이 시련의 시기에 침착하고 확고한 태도로 일치단결해 주실것을 당부 드립니다. 그 일은 어렵고 힘들 것 입니다, 우리 앞에 어두운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이제 전쟁은 더 이상 전쟁터에 국한될 수 없을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은 일을 행할 수 있으며, 경건하게 우리의 목표를 하느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단호하게 그것을 믿는다면, 또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어떤 현신과 희생도 다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하느님의 가호 아래 우리는 승리할 것 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시고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 조지 6세, 1939년 9월 3일,오후 6시, 대국민 라디오 방송 한국어 자막본.[120]
부통령, 의장, 상원과 하원의 의원 여러분,
어제, 1941년 12월 7일 - 치욕의 날로 기억될 이 날 하루 동안, 아메리카 합중국 일본 제국의 해군과 항공대로부터 기습적이고 고의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합중국은 그 나라[122]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청원에 따라 태평양에서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그들의 정부와 덴노를 상대로 대화를 지속하던 중이었습니다. 확실히, 일본 비행 편대들이 미국 오아후 섬에 폭격을 개시한 지 한 시간 후, 주미 일본대사 일행은 미 정부의 최근 서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우리 국무장관에게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이 답변서에는 현재의 외교적인 협상을 지속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인다고 적시하고는 있었지만, 전쟁 혹은 무력을 동반한 공격에 관한 어떠한 위협이나 암시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123] 하와이에서 일본까지의 거리로 미루어 보아 이번 공격은 수 일 혹은 심지어 수 주 전부터 고의적으로 계획되었음이 명백합니다. 그 사이의 기간 동안, 일본 정부는 지속적인 평화를 희망한다는 거짓된 진술과 표현을 통해 미합중국을 기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와이 제도에 대한 어제의 공격은 미국 해군과 군사력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여러분들께 수많은 미국민의 인명이 희생당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덧붙여,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사이의 공해에서는 미국 함선들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또한, 어제 일본 정부 말라야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지난 밤 일본군 홍콩을 공격하였습니다. 지난 밤 일본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지난 밤 일본군 필리핀 군도를 공격하였습니다. 지난 밤 일본군 웨이크 섬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본인들은 미드웨이 군도(群島)를 공격하였습니다.[124]

그러므로 일본은 태평양 전역에 걸쳐 기습적인 공세를 감행한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 벌어진 일들이 곧 그러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미합중국 국민들은 이미 여론을 형성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생명과 안전에 초래된 결과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육군과 해군의 통수권자로서 저는 우리의 방위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이행하도록 지시하였으며, 이를 통해 우리 국가 전체가 우리를 겨냥한 맹습의 성격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획적인 침략을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든, 미국 국민들은 정의로운 의기로 완전한 승리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할 뿐 아니라 이러한 형태의 배신이 다시는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고 단언하며, 이것이 곧 의회와 국민의 의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입니다.

적의(敵意)는 존재합니다. 우리 국민, 우리 영토, 그리고 우리 이익이 중대한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군대에 대한 신뢰와 우리 국민의 결연한 의지로 우리는 기필코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신의 가호를 빕니다. 본인은 의회에 일본의 부당하고 악랄한 공격이 개시된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이후로 미합중국 일본 제국이 전시 상태에 돌입하였다고 선포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125]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 직후의 의회 연설 #
아이젠하워 장군이 독일군이 미국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이제 서부전선에서 승리를 거뒀으니 동부전선( 태평양)에서도 승리를 거둘 차레입니다.
- 해리 S. 트루먼, 1945년 5월 8일, 나치 독일 항복 직후의 라디오 연설 #
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고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126][127]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대저[128], 제국 신민의 강녕을 도모하고 만방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함은 황조황종(皇祖皇宗, 열성조)의 유범으로서 짐은 이를 삼가 제쳐두지 않았다. 일찍이 미영 2개국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데서 나온 것이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략하는 행위는 본디 짐의 뜻이 아니다.[129]

그런데 교전한 지 이미 4년이 지나 짐의 육해군 장병의 용전(勇戰, 분투), 짐의 백관유사(百官有司)의 여정(勵精, 노력), 짐의 일억 중서(衆庶, 국민)의 봉공(奉公, 국가를 받듦) 등 각각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국(戰局)이 호전된 것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대세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 을 사용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거듭 살상하였으며 그 참해(慘害, 참상)가 미치는 바는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교전을 계속한다면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명도 파각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짐은 무엇으로 억조의 어린 백성[130]을 보전하고 황조황종의 신령에게 사죄할 수 있겠는가. 짐이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진(戰陣)에서 죽고 직역(職域, 직무)에 순직했으며 비명(非命)에 스러진 자 및 그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진다. 또한 전상(戰傷)을 입고 재화(災禍)를 입어 가업을 잃은 자들의 후생(厚生, 생계)에 이르러서는 짐의 우려하는 바 크다.

생각건대 금후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물론 심상치 않고, 너희 신민의 충정도 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짐은 시운이 흘러가는 바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이로써 만세(萬世)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

이로써 짐은 국체(國體)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 신민의 적성(赤誠, 정성과 노력)을 믿고 의지하며 항상 너희 신민과 함께 할 것이다. 만약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함부로 사달을 일으키거나 혹은 동포들끼리 서로 배척하여 시국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대도(大道)를 그르치고 세계에서 신의를 잃는다면 이는 짐이 가장 경계하는 일이다.

아무쪼록 거국일가(擧國一家) 자손이 서로 전하여 굳건히 신주(神州, 일본)의 불멸을 믿고,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는 것을 생각하여 장래의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도의(道義)를 두텁게 하고 지조를 굳게 하여 맹세코 국체의 정화(精華)를 발양하고 세계의 진운(進運)에 뒤지지 않도록 하라.

너희 신민은 이러한 짐의 뜻을 명심하여 지키도록 하라.
- 히로히토, 1945년 8월 15일, 옥음방송, 무조건 항복 선언 연설 동영상(일본어)
평화의 회복을 위한 중대한 협정을.
오늘은 적대적인 양대 세력의 대표로 마무리 짓기 위해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엄숙한 자리에서 피로물든 과거와 대량학살을 딛고 더 나은 세계로 탈바꿈하기를 바라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닌 전 인류의 바람일 것입니다.[131]
- 더글러스 맥아더, 1945년 9월 2일, USS 미주리 호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 연설 연설 전문(영어)

11.2. 기타 어록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정부 관료들에게 말하였듯이, 의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전시 수상 취임 연설[132]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식민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독점하는 국제동맹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비좁은, 그래서 생활의 필수적 자원들 조차 너무 부족한 우리의 제국,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개간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획없이 이것을 해낼수 없습니다. 도이칠란트, 지크 하일!"
- 아돌프 히틀러
"수적으로 우세한 대부대를 강인한 의지로 이기는 것이 역사상 최초의 일은 아닐 걸세. 자네 병사들에 대해 말하자면, 자네는 그들에게 승리 아니면 죽음으로 가는 길밖에 보여 줄 수 없네."
- 아돌프 히틀러. 1941년 11월 4일 엘 알라메인 전투 이후 롬멜의 후퇴 요청에.
"그 운명적인 아침 11시에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폴란드 문제를 놓고 독일과 집중적인 협상을 벌였던, 불안했던 열흘이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였다. 무솔리니도 평화를 위해 애쓴 까닭에 간혹 일이 잘 풀릴 것처럼 보이기도 했건만........."
- 조지 6세. 1939년 9월 1일.
"오늘 우리는 위대한 해방에 대해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대영제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 무자비한 전쟁의 손톱에 할퀴면서도 단 한 순간도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던 우리의 수도 런던에서 저는 여려분께 하느님께 대한 감사에 다 같이 동참하자고 당부드립니다. 온 유럽을 전쟁속으로 몰고 갔던 적, 독일이 마침내 무릎을 꿀었습니다. 하지만 극동에서는 아직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잔혹한 적, 일본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단단힌 각오로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서운 전쟁의 그림자가 우리 국민들의 단란한 가정으로부터 물러난 이 시간. 우리는 마침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느님께 감사를 올려도 될것입니다. 그런다음 우리의 관심을 유럽의 평화와 함께 온 전 세계적인 임무로 돌려야 합니다."
- 조지 6세. 1945년 5월 8일 오후 8시 35분.
"4년 전 우리 국민과 대영제국은 압도적인 적을 맞이하며 벽 앞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전례없는 시험이였지만 우리는 그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결연하고 헌신적인 우리 국민들의 정신이 환한 불꽃처럼 타 올랐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꺼트릴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불에서 피어오른 불꽃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최대의 시험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도전은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최종적인 승리을 얻을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 이상의 것이요, 인내 이상의 것입니다."
- 조지 6세. 1944년 6월 6일.
"작년 대영제국 국경일에는 제가 케나다의 심장부인 위니펙에서 대영제국 국민 여려분께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평화로웠습니다. 그 국경일에 저는 여려분께 우리 영연방 제국 수립의 기반이 되는 자유, 정의, 그리고 평화의 이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저는 그 이상이 끔찍한 전쟁의 고통 없이도 좀 더 풍성하고 충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굳게 간직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성실히게, 그토록 끊임없이 막아보려고 애를 썼던 악이 우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 조지 6세. 1940년 5월 21일.
"모든걸 다 잃어버린, 간혹 가족도 잃어버린 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 조지 6세, 런던 대공습 직후
"우리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의 일기장
"그 모든 긴장감 뒤에 온 불가사의한 안도감이며. 전 세계가 바라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칠장이를 죽이는 것이다.."
- 라이오넬 로그, 그의 일기장에서.
"여기서 16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 라이오넬 로그
"세계의 역사에서 아돌프 히틀러 총통께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위대한 아리아인이라 기록되신다면 그의 선택된, 충성스러운 기사단인 우리들은 영웅의 신화가 될 것이다."
- 하인리히 힘러, 1943년 베벨스부르크 성에서 친위대 대원들에게 한 연설
"군인이란 모름지기 독일이라는 나라가 어떤 체제 하에 있든 조국을 등지려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체제와 다르다고 해서 조국을 등지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독일-프로이센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 카를 되니츠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이오시프 스탈린, 1941년 7월 3일의 라디오 연설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의 일격은 베르사유의 추악한 산물에 종지부를 찍었다."
-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폴란드 멸망 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쟁 개전이후 소련군 통신문. 참고로 "암호문"이 아닌 "평문"으로 전달되었다.
"중화민족뿐만이 아닌 인류의 번영을 위해, 설령 실패할 위험이 있더라도 우리는 소중한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하는 때에 왔습니다."
- 1943년 미 의회, 쑹메이링 출처
" 황국이 총력을 기울여 승리를 결정지을 계기는 바로 오늘날에 있으니, 공들은 기꺼이 백성들보다 앞장을 서서 분노를 새로이 하여 단결을 굳건이 하고 떨쳐 일어나 적국의 야욕을 분쇄함으로써 황운을 무궁히 도울지어다."
- 쇼와 덴노
"1억의 일본인들은 이제 조국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희생해야 한다. 세계의 평화라는 제국의 목적을 위해 이러한 우국충절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미국도 영국도 두렵지 않다."
- 도조 히데키, 진주만 공습 후 미국, 영국에게 선전포고 중
"우리는 3,000만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영국⋅미국⋅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및 기타 제국(諸國)의 대일(對日) 선전 포고를 삼가 축하한다. 이것은 일본을 쳐부수고 동아시아를 재창조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 선전포고 서문.
"거 독일이 이긴다고 하는데 최후까지 보시오. 최후의 승리는 소련에 있소. 일본이 삼국동맹에 따라 독일에 붙었으니 곧 조선인들 또한 징병되어 전선에 끌려갈 것이오. 그러나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게 되면 태평양 방면은 손이 딸리게 되고 또한 미국은 군수공업이 발달하여 매월 수천대의 비행기를 제작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일본이 철벽같은 방어를 펴도 수만 대의 적비행기가 일거에 내습하면 패배할수 밖에 없소. 소련과 일본간의 전쟁도 머지 않았소. 일본 제국이 뭐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일본제국이 약해지는 그때야말로 우리 조선동포가 봉기해야할 호기요.."
- 태평양 전쟁 당시 신원 미상의 조선 농부. #
"비록 유럽의 광대한 지역과 유서 깊은 훌륭한 나라들이 이미 게슈타포와 가증스러운 나치 조직의 손아귀에 떨어지거나 또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운을 잃거나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윈스턴 처칠, 1940년 6월 4일
"우리가 잠시 동안 기쁨의 순간을 누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아직 일본의 배반과 탐욕이 진압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일본 앞에 흘린 땀과 노력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 윈스턴 처칠, 1945년 5월 8일 오후 3시
"무섭지 않나? 이런곳에서 독일의 참모 두 명이 우리의 최고사령관 각하를 죽일려고 하는게?."
- 헤닝 폰 트레슈코프
"히틀러는 춤추는 이슬람 탁발승이다, 그를 제거해야 한다."
- 헤닝 폰 트레슈코프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여. 나는 미국을 공정하게 평한다. 5만명의 병사들이 전쟁터로 향한다. 미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위해서 말이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유럽으로 파견되는 미군 수송선에서 쓴 편지에서[133]
"There are no innocent civilians. It is their government and you are fighting a people, you are not trying to fight an armed force anymore. So it doesn't bother me so much to be killing the so-called innocent bystanders."(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 커티스 르메이, 일본 본토 공습을 기획하면서
"In Japan they would be set up like this: they’d have a factory; and then the families, in their homes throughout the area, would manufacture small parts. You might call it a home-folks assembly line deal. The Suzuki clan would manufacture bolt 64; the Harunobo family next door might be making nut 64, 65, or 63, or all the gaskets in between. These would be manufactured right in the same neighborhood. Then Mr. Kitagawa from the factory would scoot around with his cart and pick up the parts in proper order."(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 커티스 르메이가 도쿄 대공습 직전 도쿄 상공에서 민간인에 대한 공습이란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던 부하들을 향해서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로루시,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전장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지들, 우리가 해냈소!"
- 베를린 전투에서 인용된 한 소련군 참전용사의 어록
" 天皇陛下万歳!"
"천황 폐하 만세!"
- 히로타 고키를 제외한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들이 사형되기 전 한 말
"지금은 새벽이다. 밤 3시다. 오전 3시다. 아아! 죽고 싶지 않다. 외롭다. 왜 이리 외로운 걸까."
- 하야시 타다오,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 카미카제 징집
"내 진정한 바람이자 모든 인류의 소망은 이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과거의 피와 대학살을 벗어나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 더글러스 맥아더, 일본의 항복 조인식 후 미주리호 갑판에서의 연설
"나는 이 전쟁이 전세계의 인류와 전 중국의 동포, 그리고 세계문명국가가 참가한 최후의 전쟁이 되기를 믿는 바입니다."
- 장제스. 1945년 8월 15일 승전기념 연설
We shall go on to the end. We shall fight in France, we shall fight on the seas and oceans, we shall fight with growing confidence and growing strength in the air, we shall defend our island, whatever the cost may be.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we shall fight on the landing grounds, we shall fight in the fields and in the streets, we shall fight in the hills; we shall never surrender!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것이며, 우리의 바다와 해양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자신감과 함께 자라나는 공군의 힘으로 하늘에서 싸울것입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땅을 지킬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해안에서 싸울것이며,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대지와 도시의 거리에서 싸우고, 우리의 언덕에서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윈스턴 처칠. 1939년 전시총리로 임명받고 국민 사기를 고취시키고자 한 연설에서
"파리는 상처입었습니다. 파리는 파괴되었습니다. 파리는 고문받았습니다. 하지만 파리는 해방되었습니다."
- 샤를 드 골 자유 프랑스 장군. 1944년 파리 해방 직후 연설
"유럽의 국제 관계는 로마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선을 "추축(axis)"으로 하여 변화할 것이다."
- 베니토 무솔리니, 1936년
"폐하는 도조에게 속으셨다. 만주사변 중 폐하는 군부에 반대 의향을 표명하셨다. 전쟁은 덴노도 모르는 사이에 또 덴노의 허가도 없이 시작되었다."
- 루스 베네딕트(1887 ~ 1948), 저서 국화와 칼 제2장 전쟁 중의 일본인 中에서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지 않으면 진정한 우스타샤가 아니다."
- 안테 파벨리치, 우스타샤에서


12. 관련 인물

13. 창작물

13.1. 영화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쟁 영화/제2차 세계 대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2. 게임

13.3. 만화·애니메이션

13.4. 소설

13.5. 기타

14. 관련 문서



[1]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월 7일이나, 미국의 참전으로 추축국 대 연합국의 구도가 완전해진 1941년 12월 8일을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는 일부 학설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시점을 시작점으로 본다. [2]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이 아닌, 전함 미주리(전함)에서 항복 조약에 서명한 날인 9월 2일을 종전일로 본다. [3] ~ 1940 [4] ~ 1944 [5] ~ 1946 [6] ~ 1943 [7] ~1945 [8]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을 합친 수치. [9] 중립국이였지만 겨울전쟁 계속전쟁 당시 자원병들이 참전했다고 한다. # [10]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나라가 연합국한테 점령당한 뒤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으며,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동유럽 등지의 국가들도 엄청난 국가의 변화, 정권 변화를 겪었으며 중국도 중일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운 마오쩌둥에게 주도권이 넘어간다. 남북한의 독립도 2차 세계대전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했다. [11] 학살, 강간 등의 대민범죄는 인류사상 거의 모든 전쟁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특정 종족을 절멸시켜야 한다고 공언하며 이를 국가 주도하에 실행한 사례는, 적어도 근대 이후에는 나치 독일이 유일하다. 서방연합국의 전쟁범죄는 어디까지나 개개인 차원에 한정되었으며, 소련조차도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살을 저지르기는 했어도 백프로 타고난 인종만으로 학살을 벌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의 대표적인 전쟁범죄인 카틴 학살 당시에도 친소적인 폴란드인들은 살려주었던 반면, 나치 독일은 프리츠 하버처럼 독일을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대계 독일인들조차 인종적인 이유로 탄압했으며, 지난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들조차도 강제수용 대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자국의 입장에 반한다고 점령지에서 학살을 벌이는 것 역시 심각한 전쟁범죄이긴 하지만, 이념은 바꿀 수 있어도 인종은 바꿀 수 없기에 선천적인 것으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 명백히 더 잔인한 일이다. [12]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13] 다만 추축국을 강경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연합국의 악행에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련의 경우 냉전을 거치며 대전기에 저질렀던 악행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으며, 핀란드나 발트3국, 자유인도 등 연합국에게 피해를 보아 어쩔 수 없이 추축국에 가담한 사례들은 당대에도 정상참작되곤 하였다. 어디까지나 메이저 추축국의 이념에 동조하거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행위를 강력히 비판한다는 이야기일 뿐. 또한 전범을 논할 때도 단순한 침략전쟁의 실행자와 학살의 주도자는 엄격히 구분짓는 편이며, 전자는 기존의 유럽 외교가에서 "평화를 깨트린" 집단에 가해지던 정도의 처벌만을 받았던 데 반해 후자는 사형이나 그에 준하는 훨씬 엄격한 처벌을 받았다. 뭐 여기에도 구제불능의 예외는 있지만. [14] 2차대전 이후 냉전기의 '불안한 평화'도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열강들의 핵전력 증강으로 인한 상호확증파괴의 영향이 더 컸다. [15] 유럽 전선이나 아시아 전선에 한정된 영상도 있으며 이영상은 2차대전당시 전세계의 전황을 보여준다 또한 같은 유튜버가 1차 대전에 대한 영상도 올려 두었다. [16] 사용된 음악과 육성에 대한 정보는 영상의 끝에 나온다. [17] 몇몇 학자들은 이시점을 제2차세계 대전의 시발점으로 본다. [18] 몇몇 학자들은 이시점을 시발점으로 본다. [19] 중국이 연합국에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뒤인 1941년 12월 9일이다. [20] 일반적으로는 독일의 폴란드 침략을 전쟁의 시작으로 보지만, 일부 시각에서는 중일전쟁부터 이미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21] 1939년 9월 3일에 연합국을 구성하는 영국(영연방 포함)과 프랑스가 추축국인 독일에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본다. [22]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투. [23] 교전 지역은 남아프리카 인도양이지만, 교전 당사국이 서방 연합군과 독일이므로 유럽 서부전역과 함께 분류한다. [24] 이 시기의 회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연합국이 이미 승리를 확정지은 시기다. [25] 서부전선 말기, 그것도 히틀러 사후에 벌어졌기 때문에 전투 자체의 규모는 작았으나[141]이 전투가 상기한 다른 전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독일 국방군 부대(와 몇몇 항복파 무장친위대 대원)가 적군인 미군과 연합하여 동족 군대인 무장친위대 부대와 싸웠다는 것이다. [26] 엘베 강에서 서방 국가 군대와 소련 군대가 조우한 날이다. [27] 되니츠의 플렌스부르크 정부는 서방연합국에 먼저 항복하고 다음날 소련군한테 항복한다. [28] 만주국과 관동군에 내린 사형명령장의 집행. [29] 영국과 영연방은 전자, 미국(시차상 9월 2일)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후자를 기념한다. [30] 위 지도에서는 추축국에 태국과 연합국에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포함되있지 않다. 터키, 사우디는 전쟁이 거의 다 끝나가는 1945년이 되어서야 선전포고하긴 했다. [31] 위 그래프에는 일부 망명정부는 포함되지 았았다. (베트민, 알바니아 민주정부 등) [32] 중국 공산당과 군벌들도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소속되어 참전했다. [33] 중화민국이 연합군에 공식적으로 가입한 것은 진주만 공습 다음 날인 1941년 12월 10일(충칭 시각 기준)이다. [34] 엄밀히 따지면 영국도 영연방군의 일원이었다. [35] 말레이시아 식민지와 싱가포르 자치령도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했으나, 1941년 시점에 일본군에 의해 점령되어 제외된다. [36] 태평양 전선 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유럽 지역에도 호주인들이 보내졌고 미군과 함께 일본 제국군과도 전투를 벌였으며 일본 제국군 역시 호주 북부를 97차례나 폭격했다. [37] 이 당시에는 영국의 자치령이었다. [38]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영국에 의해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39] 군사적인 참전과 총을 포함한 군사적 지원뿐 아니라 차, 설탕, 원료까지도 지원했다. [40] 다양한 전선에서 활약하였고 전쟁이 끝났을 당시 캐나다 공군의 규모는 세계 3위였고, 지상군은 물론 수많은 자원봉사단도 유럽으로 보냈다. [41] Union of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신. [42] 현재의 짐바브웨에 해당하는 영국의 보호령 [43] 그러나 영문위키를 참조하면 상징적인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44] 북아프리카나 동아프리카, 미얀마, 유럽 등에도 병력이 보내졌다고 한다. [45] 이슈브( 유대인 자치정부)의 민방위군 트란스요르단( 아랍인 자치정부)의 아랍 군단이 참전했다. [46] 약 10만의 의용군이 나왔으며, 탄자니아와 함께 동아프리카 전선의 사실상 주역을 맡았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 [47] 당시에는 탕카니카와 잔지바르라는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48] 케냐와 마찬가지로 약 10만의 의용군이 지원했으며, 동아프리카 전선의 주역이었다. 에티오피아와 마다가스카르 해방 이후로는 주로 버마 전선에 참전했다. [49] 약 4만 5천의 의용군을 보냈으며, 영국과 영연방에 대한 물자와 자원 지원 또한 맡았다. [50] 북-남 아메리카와 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지리적 요충지라는 이유 때문에 미군 기지가 들어왔으며, 많은 자메이카와 카리브 해 영국 속령 출신 청년들이 영국 본토 항공전과 유럽 전선에서 싸웠다. 또한 지브롤터 몰타에서 피신한 난민들 중 많은 수를 수용한 곳도 자메이카였다. [51] 1940년에는 이탈리아에게 폭격을 당하기도 함. [52]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도 일본군에게 점령당함. [53]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2월 24일이며 이 때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54] 이집트는 그 당시 형식상으론 독립국이였으나 여전히 영국군이 주둔했고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상태였다. [55] 1941년 3월 25일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2일만에 쿠테타로 엎어졌다. [56] 소련이 연합국에 가담한 시점 기준이다.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이 1939년 5월 11일, 소련의 폴란드 공격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은 1939년 9월 17일이다. [57]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참전개시일 1939년 5월 11일 [58] 공식적인 선전포고는 1945년 8월로, 일본에 선전포고 [59] 할힌골 전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만주국에 대한 기습 공격' [60] 일본은 선전포고문을 주미 일본 대사관에 암호로 타전했다. 하지만 그 해독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고 그에 따라 진주만 공습까지 본국으로 전송되지 않아 기습 공격이 되버렸다. 진주만 공습이 기습 공격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종전 후,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계속 발목이 잡혔다. [61] 연합국에 식량을 지원했다. [62] 연합국에 식량과 원료를 지원했다. [63] 남미국가 중에는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지상군도 파병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64] 병력을 파견하진 않고 연합군에게 주석을 지원했다. [65] 주로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으며 독일의 잠수함에 의해 자국의 상선이 작살났음에도 군대는 파견하지 않았다. [66] 이전에도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꾸준히 저항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67] 전쟁 초기에는 자국 영토를 개방, 이후에도 '고무'와 같은 중요한 자원들을 제공했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68] 미하이 1세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온 안토네스쿠 체포령을 내리고 추축국에 선전포고했다. [69] 제2차 대전 발발 초기에 추축국에 속해 있었지만 독일군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등 독일군에게 사실상 피지배국, 독일군 점령지 수준의 취급을 받았고 전쟁 말기 전세가 추축국에게 불리해지자 나치독일과의 국교, 동맹관계를 끓고 소련 등 연합국과 동맹을 맺고 독일군을 공격했다. [70] 그 외에 일부 파라과이인은 브라질 공군에 합류해 합류해 추축국과 싸웠다. [71]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다. [72]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세력과 추축국 세력의 가운데에 끼인 묘한 위치에 있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여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 내내 친독적인 자세를 계속 유지했지만, 이는 표면상일뿐 실제로는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에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소련의 압박으로 형식적 선전포고를 했다. [73] 당시 프랑스의 위임 통치령 지배 하에 있었으나 지배국이었던 프랑스가 나치군의 침공을 받아 점령당한 이후엔 나치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러나 결국 영국과 자유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점령됐고 프랑스는 시리아의 독립을 약속해 이듬해인 1946년 프랑스의 식민지 위임 통치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74] 사실 줄서기라기보단 1939년, 1941년 각각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며 추축국과 선을 그은 데다가 이전부터 연합국에 석유를 지원했다. 동부 지역에는 미 공군의 기지까지 건설하는 것을 허용했다. [75] 남미의 대표적인 친독 국가였으나 전쟁 내내 독일을 도와준 적은 일절 없고 '연합군 군수사령부'의 자격으로 선전포고를 했다. 즉, 연합군의 군량은 상당부분 아르헨티나산이었던 것이다. 다만 참전 사유가 줄타기로 오해받는 이유는 전쟁이 끝난 후 나치 독일 전쟁범죄자들을 아르헨티나가 도피시켜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유럽에 파견되어 활동했었다. [76] 정부가 군을 파견하진 않았으나 750여명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영국, 캐나다, 남아프리카 공군으로서 싸웠다. [77] 당시 아르헨티나는 친위대를 피해서 도망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헝가리 출신 신문기자인 신문기자 비로 라슬로(Bíró László)이다. 라슬로는 볼펜을 발명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78] 친독 성향을 보였으나 1943년 이후로 추축국과의 관계를 끊었고 이후 일본에게만 선전포고를 했다. [79] 이후 '몽강연합자치정부'로 개칭. [80] 사실 추축국에 들어가긴 애매한데(초창기에는 완벽히 추축국편이었으나 후에 연합국편이됨) 핀란드 정부의 공식 입장상으로는 '어쩌다보니 소련과 같이 전투를 벌이게 되어서 서로 협력했을 뿐 추축국은 아니다'였고 실제로 핀란드 정부는 독일의 공식적인 군사 동맹 요구 같은 것을 다 무시했다. 그러나 핀란드의 투르쿠에서 건조된 U보트 잠수함들은 후에 연합국 상선들을 침몰시켰다. 전후 각 국 정상들끼리 회담을 가질 때 핀란드 당국은 그런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고 전쟁의 대상을 소련으로 한정지었다. 미국, 영국 역시 핀란드를 추축국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아마 추축국의 패전이 뚜렷해지자 라플란드 전쟁 당시 독일군에 맞서 전투를 버인 것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이탈리아 역시 비슷하게 추축국의 패전이 뚜렷해지자 진영을 바꿔 연합군에 합류하였으나, 핀란드와 달리 추축국으로 간주되어 전범국가 취급을 받았다. 이는 핀란드의 경우 소련의 침략에 저항하는 수세적인 입장이었던지라 사실상 선택지가 없었던 반면,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발칸, 아프리카에서 지속적으로 전쟁을 확대시키며 패권주의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핀란드는 소련에게 전 국토가 점령당하기 전에 눈치껏 자의적으로 편을 바꾸었던 반면, 이탈리아는 연합군이 본토에 상륙하여 강제적으로 편을 바꾼 케이스였기도 하고. [81] 메이저 추축국 중 1943년 연합국에게 가장 먼저 항복하였으며 1946년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개편하였다. [82] 이탈리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진영을 변경한 사례가 있다. [83] 비시 프랑스는 일체의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지만 영국과 자유 프랑스, 미국을 포함한 상당수의 연합국이 비시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고, 사실상 독일군과 함께 연합국과 교전하고 있었다. [84] 이탈리아의 보호국. [85] 이미 독립했지만 사실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의 심한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다. 참전하고 얼마 안 가서 영국군에 의해 점령당했고 영국은 1947년까지 이라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86] 가장 늦게 항복한 추축국이다. (1945년 9월 2일) 태국은 일본 제국의 강압에 의해 원하지 않게 동맹을 맺고 전쟁에 끌려갔다. 영국과 프랑스,네덜란드 등 다른 서방 연합국들은 당연히 태국을 전범국으로 처벌할것을 주장했으나 태평양 전쟁의 연합군 핵심은 미국이었던지라 전범국 처벌을 주장해도 딱히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미국이 태국을 용서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태국을 위한 변명의 소지가 있다. 애초에 서양 열강들이 주변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태국을 포위 압박하는 상황에서 줄타기 외교로 겨우 생존했으면서도 이미 일부 지역을 할양해 프랑스에게 빼앗긴 상황이며 태국 입장에선 일본도 그런 열강들 중의 하나고, 가담하지 않았으면 일본에 점령당했을 것이다. 애초에 프랑스에게 일부 지방을 빼앗겨서 그걸 회복하려고도 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종전 후에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식민지배를 유지하려고 식민지 독립 전쟁에서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무력진압하거나 영국이 말레이시아와 미얀마, 브루나이등 식민지였던 동남아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자치령 등의 각종 편법을 내세우며 계속 식민통치를 지속하려는 꼼수를 쓰려다가 결국 마지못해 독립을 인정하고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이들 나라들에 대한 영국의 내정간섭이 적지 않았던걸 생각하면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는 충분히 일본 때문에 추축국에 가담한 걸 빌미로 점령하거나 이권을 침탈 했을 수가 있고 미국이 태국에 대한 처벌을 막은게 백번 의로운 행동이다. [87] 일본 제국의 괴뢰국 중 하나로 일본과 동맹을 맺고 연합국에 선전포고한다는 조건으로 독립을 약속받았다. [88] 찬드라 보세를 정부수반으로 하며 안다만제도의 포트블레어를 영토로 지배했던 괴뢰국이다. [89] 청색 사단(División Azul, 정식 명칭은 에스파냐 의용사단/División española de voluntarios)이라 불리는 이 사단은 1943년에는 연합군의 압력에 귀국시키긴 했으나 수천명 가량은 베를린 전투까지 독일에 남았다. 사단의 구성원 중 몇몇 인원은 스스로 혹은 친지가 내전 때 공화국에 연관된 사람들이었고 이 사단은 항상 선봉에 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고기방패 역할까지 하는 등 의용군을 골수까지 빨아서 활용하자는 독일군에 의해 엄청 강하게 운용된다. [90] Escuadrilla Azul. JG27 산하로 편성되었으며,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Bf109를 탑승했던 베테랑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91] 단 덴마크는 군대만 주둔시키고 정부 자체를 무너뜨리진 않았다. [92] 덴마크는 공식적으로는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덴마크를 연합국으로 분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93] 이는 분명한 자의적 해석이다. 제네바 협약에 직접적으로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상대가 인도적 조항들을 명시적으로 위반하지 않을 경우 협약 조인국은 협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 게다가 포로를 동원한 강제노역까지는 그렇다 쳐도 무차별 학살만큼은 (적어도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이미 전쟁범죄라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박혀 있었다. [94] 이는 뒷날, 되니츠가 전범재판을 받는 원인중 하나가 된다. [95] 정확한 수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서방 학계에서도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수치이며 일부는 더 많은 수치를 주장하기도 한다. [96] 그리고 대중적 측면으로는 미국 헐리웃 위주의 전쟁영화 등 [97] 당시 스탈린과 갈등을 빚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조차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98] 지금도 러시아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란 말보다는 대조국전쟁이라는 명칭을 쓴다. [99] 1972년 전까지 영연방 각국 사이에는 자유 무역과 자유 이주가 보장되었다. [100] 다만, 복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었는데 과도한 복지 때문에 오히려 영국이 경제적 침체기에 들어갔다는 주장이 있다. 자세한 것은 복지병참조. [101]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르샤바와는 다르게 수도 파리가 나치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초토화시키는 것을 시민들이 저항하면서 막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도 구실을 할 수 있었다. [102] 정확히는 유럽석탄철강 공동체 [103] 그래도 전범 재판 관련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장할 수 있어서 나치독일과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본 전범이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일본에 요구했고 일본은 어쩔 수 없이 보내버렸으며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를 재판에서 무작정 기관총 총살형시켰다. [104] 하지만, 그들이 퍼뜨린 나치주의 사상의 잔재가 남아있어서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당시에 미국으로 간 독일의 포로가 수용소에서 나치즘을 퍼뜨린 것도 한 몫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미국 시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닌지라 그들을 모두 정신병자 취급하고 있다. [105] 하지만, 인종차별은 나치즘이 퍼지기 전에도 미국에 자리잡던 문제로 미국 내의 인종 갈등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106] 중국 공산주의 세력의 항일운동은 보잘 것 없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주로 국민당 계열의 군대가 일본군과 박터지게 싸우는 동안 뒤에서 세력이나 키웠다는 비아냥도 듣는다. 그리고 사실이다. [107] 다만, 아직까지도 그 당시의 공산주의 사상이 남아있는 세대와 정치가들 및 정치체계가 아직 남아있어서 중국은 아직까지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렵다라는 의견도 많다. 거기다 중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수 민족들이 점점 인본주의와 서양에서 밀려오는 사상 때문에 독립하고 싶다는 민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다가 결국에는 소수 민족의 저항의식을 불러일으켰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부 지역의 위구르 티베트.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108]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 중화민국의 상임이사국 자리를 서기 1971년에 빼앗은 중화인민공화국.서기 1971년 이전에는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었다. [109] 브란덴부르크 1/3, 포메른 반이상, 슐레지엔 거의 대부분, 동프로이센 전부, 일부나마 남아있던 포젠 서프로이센 전부 등 [110] 다만 집시 학살이나 과거 식민지에 대한 사과가 미진하다는 비판이 있으며, 이를 의식한 듯 2016년에는 나마비아의 헤레로족 학살 등을 사과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꽤 남아있어 여전히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그 이유는 냉전 때문에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과는 애초에 관계 회복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후에 독일을 감시하던 국가들이 대부분 자본주의 진영이였으니... [111] 대표적으로 동유럽의 공산화가 있다. [112] "Mein Volk". 아래 프랭클린 D. 루즈벨트의 "Our people"과 비교해 보면 두 지도자가 국민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의 국민들이라는 표현은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나 쓸 법한 표현이다. [113] das Kapitulation. 결국 히틀러는 전황이 불리해지자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책임지는 대신 비겁하게 저세상으로 도피해 버렸던 관계로, 죽을 때까지 저 단어를 알지 못했던 건 맞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 군인으로 항복을 이미 경험했지만. [114] 킬 군항의 반란이 11월 3일에 일어났고, 그로부터 8일 뒤 독일 제국이 항복한다. [115] 원문은 einzusetzen인데, 이 단어의 뉘앙스는 '바치다'나 '희생하다'보다는 '투입하다', '사용하다'에 가깝다. 인명을 철저히 도구로 인식하는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광기가 느껴지는 부분. [116] 여기서도 'Gebot'를 사용했는데, 이는 종교의 계율이나 기본적인 인간의 도덕률처럼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만 하는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명령"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 "Das war ein Befehl!"에서처럼 일반적으로 군 지휘를 명령할 때 쓰는 단어는 아니다. [117] 좀 더 직설적으로는 "뒤져라!"는 느낌. 번역문에서는 중2병 같은 뉘앙스로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이거 공식 연설문이다. 물론 사실상의 선전포고 상황이니까 외국을 비난하고 자국민의 단결을 촉구하고자 강한 단어를 쓸 수는 있지만, 기껏해야 '악랄한 놈들을 물리치자' 정도지 어지간하면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심지어 자국민을 상대로는 더더욱. 바로 앞의 '명령'에 대한 뉘앙스나 바로 뒷 문장과 더불어서, 정권의 의도에 조금이라도 반하면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나치 정권의 광기가 제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118] 프로이센 시절로부터 이어져오는 군국주의 기풍의 정점. [119] 그러니까 독일인들이 얌전히 국가가 시키는 대로 침략전쟁을 잘 수행하면, 어떤 곤경에 처하더라도 독일인의 의지와 (철강으로 상징되는) 독일의 기술력으로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 물론 현실에서는 독일인의 의지만큼이나 독일의 침략을 받는 국가의 국민들도 강한 의지를 갖고 저항했고, 독일의 기술력은 바로 그 독일이 내쫓은 고급 인재들을 받아들인 미국에 의해 압도당했다. [120] 영화라 약간 수정이 가해졌으나 90%은 일치하다. [121] 독소전쟁 개전 직후 스탈린이 11일 간 잠수(..)를 타면서, 개전 직후 급박한 사태를 알리는 연설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대신하였다.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 1941년 7월 3일 라디오 방송에서 국난에 맞선 인민의 단결을 촉구하는 연설과 함께 공무로 다시 복귀한다. [122] 일본 제국 [123] 일명 Fourteen Part Message라 불리는 일본의 선전 포고문에는 전쟁을 선포한다는 의미와 관련이 있는 표현(Declare, War against, State of War 등)이 하나도 없었다. [124] 비유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영상에서는 루스벨트는 미국 전함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문장 뒤 모든 문구를 생략하고 바로 본인이 통수권자로 행동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영상에서는 저 부분을 낭독한다. 영상 참고. 3분 25초부터 4분 43초까지. [125] 미국의 헌법상 전쟁 개시 권한은 의회에 있으므로 대통령은 의회에 전쟁 개시를 요청하는 절차를 거친다. [126] 원문은 米英支蘇, 중국을 '支那'( 지나, 중국을 가리키는 명칭, 현재는 멸칭으로 사용)로 썼음. [127] 이래놓고서 8월 10일 연합국에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통보하는 전문 원문에는 미·영·화(華)·소라고 표기하는 비굴함을 보였다. 화(華)는 당연히 중화민국의 약칭. [128] "대체로 보아서"라는 의미이다. [129] 이 단락은 많은 일본 제국주의 추종자들과 일본 넷 우익들이 "우리의 전쟁은 대동아를 위한 결단이었다."라고 착각하며 과거의 일본을 일방적 피해자로 생각하게 하는 치명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여러모로 동아시아 현대사의 첫단추를 잘못 낀 원흉의 표현 중 하나이다. [130] 원문에 나온 赤子는 갓난 아기란 뜻으로 군주가 자기 백성을 어린 아기에 비유한 단어다. 국어 사전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국어에서 적자라는 음은 대개 嫡子를 말하기 때문에 어린 백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래 의미에 더 가깝다. [131] 그런데 이 연설을 한 후 1년후 국공내전 그리스 내전이 일어났고, 5년후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132]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역설사의 게임 Hearts of Iron IV 티져 영상에서 해당 연설을 읆는 윈스턴 처칠의 육성이 나온다. [133] 그는 자유프랑스군 소속 정찰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134] 1944년 7월 20일 있었던 히틀러 암살미수사건을 말한다. [135] 운 좋게 살아남아서 아르덴 대공세를 지휘하기도 했다. [136] 업데이트 이후로는 냉전기 때의 전차로 확대되고 있다. 게임 시작 시점의 배경은 1957년이지만 맵의 이름은 1, 2차 대전에서 이름을 따온 게 많다. [137] 배드 컴퍼니 2는 싱글 플레이 챕터 1 한정. [138] 나머지 배틀필드 시리즈들은 현대전, 1차 대전, 베트남 전쟁, 미래전이 무대다. [139] 최대 6인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하는 턴제 전략게임이다. 게임플레이는 재기드 얼라이언스 폴아웃과 비슷하다. 추축군 진영과 연합군 진영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스팀에서도 판매 중. [140] 모던 워페어 시리즈, 블랙 옵스 시리즈, 고스트 시리즈, 어드밴스드 워페어 시리즈 , 인피니트 워페어 시리즈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