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5:50

장진규

성명 장진규(張振奎)
생몰 1875년 8월 9일 ~ 1928년 1월 21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진규는 1875년 8월 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창수동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발발한 뒤 권재형으로부터 참여 권유를 받고 곧바로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해 오후 4시경 창수 경찰주재소에 이르렀다. 그는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괴했으며, 객사 및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 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했다. 또한 권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 의류, 식기까지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영덕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8년 1월 2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장진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