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08:12

하비에르 사네티

자네티에서 넘어옴
하비에르 사네티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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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주장
주세페 베르고미
(1992~1999)
하비에르 사네티
(1999~2014)
안드레아 라노키아
(2014~2015)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로베르토 아얄라
(2003~2007)
하비에르 사네티
(2007~2008)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200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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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사네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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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사네티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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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DEF MID ST
2018 [ruby(쳉가, ruby=발테르)] [ruby(사네티, ruby=하비에르)] [ruby(마테우스, ruby=로타어)] ㅤㅤㅤㅤ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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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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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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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리오넬 메시 191회 2005.8.17 2024.11.20
2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147회 2003.7.16 2018.6.30
3 하비에르 사네티 145회 1994.11.16 2011.7.16
앙헬 디 마리아 2008.9.6 2024.7.15
5 니콜라스 오타멘디 123회 2009.5.20 2024.11.20
6 로베르토 아얄라 115회 1994.11.16 2007.7.15
7 디에고 시메오네 106회 1988.7.14 2002.6.7
8 세르히오 아구에로 101회 2006.9.3 20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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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부회장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S.p.A. VP
파일:Javier Zanetti Inter.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하비에르 사네티
Javier Zanetti
본명 하비에르 아델마르 사네티[1]
Javier Adelmar Zanetti
출생 1973년 8월 10일 ([age(1973-08-10)]세)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 수비수[2], 미드필더[3] / 은퇴)
축구 경영인
등번호 아르헨티나 대표팀 - 4번, 8번[4]
인테르나치오날레 - 4번[5]
소속 선수 CA 타예레스 (1991~1992)
CA 반필드 (1992~1995)
인테르나치오날레 (1995~2014)
경영 인테르나치오날레 (2014~ / 부회장)
국가대표 145경기[6] 5골 ( 아르헨티나 / 1994~2011)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인품6. 은퇴 이후7. 사네티에 대한 말, 말, 말8. 기타9.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 출신 경영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풀백, 중앙 미드필더.[7] 인테르의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인테르에서만 19년을 뛰었던 레전드로 1999년부터 2014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 인테르의 주장직을 맡았다. 그가 인테르에서 달았던 등번호 4번은 현재 인테르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는 선수 시절 1,114경기에 출전하여 축구 역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공식 경기에 출전한 필드 플레이어이다.[8] #

2.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하비에르 사네티/선수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필립 람, 잔루카 잠브로타,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와 더불어 수비수 멀티 포지션의 대명사.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고령에도 피지컬이 좋고, 스피드가 매우 빨라서 상대 공격수와의 몸싸움이나 속도 싸움에서 거의 밀리지 않는다. 그 수준은 리오넬 메시 카카, 아르연 로번같은 크랙들조차 쉽게 돌파하지 못할 정도. 전성기 카카의 치달을 주력으로 쫓아가서 태클해 내기도 했다. #

공격력도 준수한 편인데, 레프트백으로 나오는 경우에는 주로 수비적인 플레이를 하지만, 라이트백으로 나오는 경우에는 역대 사이드백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힐 만한 단독 드리블 능력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상대 좌측 수비진에 틈이 보인다 싶으면 슬금슬금 드리블을 하면서 올라가는데, 기술적으로 화려하진 않았지만 강철 같은 몸을 활용해서 공을 지키고 수비들을 튕겨내며 전진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 그 덕에 나온 별명이 트랙터 라이트백으로서는 단연코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라고 할 만했다. 남미 역대 최고가 못된 건 때문에... 90년대 밀라노 더비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

사네티의 멀티 플레이에 설명하자면 람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9] 그는 2000년대 중후반 소속팀 인테르가 오른쪽에 마이콘을 영입한 후 수비수로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실제 그 당시에 이미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으므로 주전에서 밀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양새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레프트백, 라이트윙, 중앙 미드필더[10]로 포지션을 바꾸어 출전했고 마이콘이 특유의 공격력을 마음껏 펼치려 오버래핑하면 사네티가 뒤를 받쳐 주는 형태로 플레이하면서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다. 이외에도 크리스티안 키부가 플레이에 기복이 심하고 부상도 자주 입었기 때문에 레프트백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말년에는 마이콘이 이적하면서 다시 본포지션인 라이트백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꾸준함이다. 사네티의 플레이는 보지않고 나이만 본 사람들은 " 세리에 A는 노장들만 뛰니까 젊은 다른 선수들이 아니라 사네티 같은 늙은이가 나온다"라고 폄하가기도 하지만, 사네티를 논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몇 년이 지나도 똑같다였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코파 아메리카 토너먼트의 팀: 2004, 2007
  • FIFA 100: 2004
  •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11]: 2008
  • 프레미오 인테르나치오날레 자친토 파케티: 2012
  • 골든풋: 2011
  • 팔로네 디아르젠토: 2002
  • 인테르 올해의 선수: 1995-96
  • 인테르 명예의 전당: 2018
  • 이탈리아 축구 명예의 전당: 2018
  • 글로브 사커 어워즈 플레이어 커리어 여워드: 2016
  • AFA 아르헨티나 올타임 XI: 2015
  • IFFHS 올타임 아르헨티나 드림팀: 2021

5. 인품

이 사람을 설명할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바른 인성, 군자의 마음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성인, 주장으로서 모범을 보이면서 멘탈이 좋은 축구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모두가 사네티를 떠올릴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인테르를 싫어하는 라이벌 팀의 축구 팬들도 하비에르 사네티는 좋아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인테르를 혐오하는 파벨 네드베드조차 인테르는 사네티 빼고 다 싫다는 말을 남겼다.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어가기보다는 친절하고 세심하게 팀원들을 돌보는 타입이라서, 말디니나 토티에 비해 존재감이 옅어 보이지만 1999년 주장 완장을 찬 이후, 단 한번의 반발도 없이 인테르 선수라면 누구나 사네티를 잘 따르는 것에서 그 위대한 리더십이 드러난다. 이해가 안 된다면 밑의 업적들을 보도록 하자.
  • 주말마다 팀원들을 직접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 자리까지 준비.
  • 선수 생활 대부분을 수비수로 뛰었음에도 레드 카드를 안 받은 시즌이 두 자릿수가 훌쩍 넘어감.
  • 병결을 제외하고 훈련 불참 횟수 0회.
  • 인테르 라이벌 팬들이 뽑은 최고의 인기 선수 1위.
  • 매년 연봉의 30~40%를 기부. 아예 재단을 만들어서 기부하고 있다. 재단에 대해서는 후술.
  • 디에고 마라도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에게 주장 완장을 주자 분노한 팬들이 마스체라노의 차를 박살냄. 그러자 사네티가 마스체라노에게 새 차를 사줌. 그리고 A매치 끝날 때마다 마스체라노에게 문자를 보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에이전트가 구단에 더 높은 주급을 요구하자, 에이전트를 직접 해고.
  • 팀에 새로 이적해 온 선수가 있으면 출신국적을 불문하고 직접 발 벗고 뛰면서 팀 적응을 도와줌.[12]
  • 발로텔리 에투 페널티킥을 차겠다고 떼를 쓰자 하프라인 뒤부터 뛰어와서 발로텔리의 손을 잡고 페널티 박스 밖으로 끌어냈었다. 그라운드 악동으로 유명했던 발로텔리는 사네티한테 불평하기는커녕 순순히 따라나왔다.

페르난도 가고 등 뜻이 맞는 선수들과 합심하여 자선 경기를 자주 여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수익은 모두 기부한다. 애처가로도 유명하여서 19살때 만난 부인과 금슬좋게 잘 살고 있다.

주제 무리뉴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마치고 곧바로 레알로 떠날 때 속이 넓기로 소문난 모라티 구단주도 너무 아쉬웠는지 불평을 했는데, 사네티는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 라고 아쉬워 하면서도 무리뉴의 결정을 존중해주자라며 감독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디스라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13] 어쨌든 즐라탄의 말에 따르면 인테르 내에서는 용병 파벌이 있다고 한다. 워낙 인테르가 다국적 선수들의 집단이긴 하지만 세력이 큰 두 집단이 있는데 아르헨과 브라질이라고 한다. 실제로 선수들 수도 얘네들이 제일 많고. 이들 때문에 다른 용병들이 불편해 한다. 그렇지만 어느 클럽이나 같은 국적 출신의 선수들이 모이면 파벌은 형성될 수 있으며 20년 가까이 되는 인테르 생활 동안 선수들과의 관계에서 미미한 마찰조차 언론에 누설되지 않은 사네티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어보인다. 그렇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사네티도 라파엘 베니테스한테는 비판을 하였다. 사실 베니테스는 선수들과 교류하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어찌나 심하면 소통 사망꾼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 자기 팀의 선수들은 잘 케어해주고 베니테스와는 차원이 다른 성과를 거둔 무리뉴와 비교하면 베니테스는 성과도 없고 오히려 구단과 다투면서 팀 케미를 망쳤다. 비판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

그리고 2023년 역대급 이중 통수를 치고 마음대로 팀을 떠난 로멜루 루카쿠한테도 배신자라며 비난을 날렸다. 그 멘탈이 안 좋기로 유명한 아드리아누도 어떻게든 갱생시키려 노력했고 그의 실패를 본인의 탓으로 돌릴 정도의 대인배인 사네티가 디스할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6. 은퇴 이후

은퇴 후 곧바로 인테르 보드진에 합류하여, 인테르의 부회장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전설적인 풀백이자 구단주였던 자친토 파케티의 3번 이후 두 번째로 인테르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국내 보도가 잘못되어 부회장 선임 직후 지정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곧바로 지정된 것은 아니고 1년 뒤에 정식으로 영구결번이 지정되었다. 그 사이 1년간 아무도 4번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14]

부회장이 된 이후에는 무난히 클럽을 잘 이끌고 있다. 토히르 회장은 이탈리아에 연고가 전혀 없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15] 인테르의 일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부회장인 사네티가 클럽의 일상 업무들을 총괄해서 맡고 있는 상태. 중국으로부터의 인수 이후에도 토히르가 국내 업무 및 부친상 이후 업무 승계 과정을 거치느라 인테르에 거의 손을 못 대고 있고, 쑤닝 측 역시 장진둥 구단주가 쑤닝 본사의 경영으로 바쁘기 때문에 대신 파견한 92년생의 아들 스티븐 장이 이탈리아 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 회장직의 사실상 공백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프런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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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장직에 지원했다. 그런데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에게 나댄다고 저격을 했다. 물론 사네티가 마라도나에 비해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은 한참 아래이나 인격적으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위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라도나가 역으로 까였다.

7. 사네티에 대한 말, 말, 말

"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오랜 기간 동안 없다고 안타까워하지 말라. 그대들에겐 그 어느 우승컵보다도 위대하고 빛나는 주장이 있지 않은가."
프란츠 베켄바워[16]
"인테르에 도착했을 때, 의사소통이 어려웠으나 사네티가 날 도와주고, 조언을 해주며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가 내가 따라 가고 싶은 롤 모델이다."
나가토모 유토

8. 기타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17] 언제는 지각한 동료들로부터 지각 벌금을 걷은 적이 있는데,[18] 그 돈을 멕시코의 저항세력인 사파티스타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들과 친선경기까지 할 뻔했으나 성사되진 못했다고.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전해서 사파티스타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우리는 세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라 믿습니다.[19] 또한 각자의 문화적 차이와 관습이 존중될 때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자기 뿌리를 지켜내고 이상을 위해 싸우는 당신들의 투쟁을 우리가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기부 재단도 갖고 있는데 자신의 별명을 딴 PUPI 재단이다. 본래는 2001년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 이후 빈곤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으나 현재는 국가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매번 빠짐 없이 하고 아르헨티나에 돌아갈 때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축구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20][21]

인테르에서 전 세계의 축구 유망주 중 형편이 어려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학업과 축구를 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인테르 캠퍼스를 모라티 회장 시절부터 운영 중인데, 사네티가 부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많은 관심을 보이는 분야 중 하나가 이 인테르 캠퍼스라고 한다.

세계적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도 친분이 깊다고 한다.[22] 둘이서 행사를 열기도 했다.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대진 추첨자로 등장해 인테르의 레전드답게 유벤투스 FC FC 바이에른 뮌헨과, AS 로마 레알 마드리드 CF와 붙여 버렸다. 덤으로 아스날 FC의 상대로 FC 바르셀로나를 뽑으며 레바뮌을 혼자 다 뽑는 후덜덜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팀들은 전부 광탈했다.[23]웹툰 작가 와싯이 이를 보고 그린 작품이 몇 개 있다.
사신 사네티
신계 브로커 사네티

또한 밀라노에서 식당도 운영한다.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함께 운영한다. #

본인 인생의 최대 패배는 아드리아누를 구원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자서전에 썼다. 아드리아누가 역대급 탕아로 몰락했던 계기는 바로 아드리아누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이라고 판단했다.[24]
난 아드리아누의 방에서 그가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울부짖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런 소리가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절규였다. 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 날 이후, 모라티 구단주와 나는 아드리아누를 마치 친동생처럼 돌봤다. 그런 와중에도 아드리아누는 계속 축구를 하면서 골을 넣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세레머니를 했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은 후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우리는 아드리아누를 우울증에서 끌어내지 못했다. 그건 어쩌면 내 커리어에 있어 최대의 패배일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인테르에서 같이 뛰었던 이탈리아 출신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노 자네티와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성의 철자는 둘 다 Zanetti로 동일하지만[25] 그것 외에 공통점은 없는 편. 비슷한 케이스로 AS 로마에서 같이 뛰었고 성의 철자도 같지만 혈연 관계가 아닌 로렌초 펠레그리니 루카 펠레그리니가 있다.[26]

6살 터울의 형 세르히오 사네티 역시 축구선수였다가 은퇴해 인테르 유소년 팀 코치를 하기도 했다. 참고로 하비에르 사네티는 오랜 동안 주장을 하고 늦은 나이에 은퇴해 맏이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은 집에서 막내다.

특유의 머리스타일은 어머니의 작품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머리를 빗겨주실 때 물을 살짝 묻혀서 만든 머리스타일인데, 그걸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 의하면 어릴 적부터 유달리 다른 아이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CA 인디펜디엔테 유소년 팀에 있었으나, 16세 때 축구선수가 되기엔 너무 야리야리하다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있다. 그 이후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축구를 했다.

목소리가 맑고 깔끔하다. 인테르 응원가 Pazza Inter를 다른 선수들과 부를 때 파트도 제일 많고[27] 이탈리아 원로가수 미나의 명곡 Parole Parole의 피처링을 하는 등 가창력도 상당하다. 성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의 인품과 명성을 알 수 있는 사례인데, 유벤투스와 인테르 간의 깊은 감정의 골로 인해 인테르를 엄청나게 싫어하는 파벨 네드베드조차 사네티는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파일:51974_79716_509.png

2017년에 박지성이 밀라노 보코니 대학교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 코스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당시에 인터캠퍼스[28]에 참가하면서 사네티와 만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박지성이 안고 있는 아이는 박지성의 딸인 박연우 양. #

2022/23 시즌 독주하는 SSC 나폴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테르에 대한 비난이 지나치다고 말하며 문제 앞에서는 범인을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9. 같이 보기

1 로아 · 2 아얄라 · 3 샤모트 · 4 피네다 · 5 알메이다 · 6 센시니 · 7 로페스 · 8 시메오네 ⓒ · 9 바티스투타
10 오르테가 · 11 베론 · 12 부르고스 · 13 파스 · 14 비바스 · 15 아스트라다 · 16 베르티 · 17 카바예로
18 발보 · 19 크레스포 · 20 가야르도 · 21 델가도 · 22 사네티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다니엘 파사레야


[1] 스페인어 발음으론 /xaˈβjeɾ saˈneti/. 아르헨티나 등 스페인어권 국가들은 외래어 또는 차용어 이름도 스페인어로 발음하기 때문에 'Zanetti'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성씨이지만 스페인어 표기법을 적용해 '자네티'가 아닌 '사네티'가 된다. [2] 풀백 [3] 중앙 미드필더 [4]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는 22번을 달았으며, 이후로 4번과 8번을 돌아가며 달았다. [5]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클럽의 둘뿐인 영구결번 대상자이다. [6]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전 공동 3위 [7] 이외에 측면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던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8] 필드 플레이어 중 사네티보다 많은 출장을 기록한 선수는 1,155+경기를 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1,152+경기를 뛴 엔도 야스히토, 1,148경기를 뛴 사비 에르난데스, 1,141+경기를 뛴 호베르투 카를루스를 제외하면 없다. 여담으로 사네티는 전체 출장 기록에서는 13위인데, 사네티와 호날두, 사비, 카를루스 그리고 토미 허친슨(64년부터 94년까지 뛴 스코틀랜드의 선수)을 제외하면 10위권은 모조리 골키퍼들이다. 역대 1위는 피터 쉴튼의 1,390 경기. [9] 람은 주전 입지가 밀리지 않았음에도 감독 펩 과르디올라가 가능성을 믿고 바로 포지션을 옮겼다. [10] 정확히는 4-3-1-2 포메이션에서 3의 오른쪽 미드필더. 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다니 알베스를 마이콘과 공존시키려고 시도했던 방법과 비슷하다. 그 때 당시에도 마이콘은 라이트백을 맡았고, 다니 알베스는 사네티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다. 하지만 사네티와 다르게 알베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했으며 결국 당시 브라질 감독이었던 둥가는 이 둘을 공존시키지 못하고 월드컵 8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11]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 [12] 09-10 시즌 새 얼굴들을 대거 영입한 인테르가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리뉴의 카리스마와 함께 사네티의 역할도 컸다. 디에고 밀리토는 사네티의 세심함 덕에 적응이 쉬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또한 나가토모 유토도 인테르 이적 초기에 사네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 했으며, 아드리아누가 각종 깽판과 우울증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시절엔 직접 막스웰과 함께 "아드리아누가 팀에 남아줬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해주기도 하였다. [13] 외향적이고 거침없기로 유명하지만 언론 플레이를 즐기는 독설가이기도 하다. AC 밀란을 제외하고는 이적 후에는 꼭 한 마디씩 이전 팀에 대한 디스를 해 주곤 했다. [14] 이후 4번을 좋아하는 들이 팀에 왔지만 모두 사네티의 영구결번으로 다른 번호들을 달아야 했다. 이 중 한 명은 패기 좋게 사네티에게 4번을 달 수 있냐 물어봤지만 사네티의 무응답으로 14번을 달게 되었다. 그리고 그 1명은 인테르에서 똥만 주구장창 싼다. [15] 본인이 갖고 있는 회사도 있고, 미국에도 경영에 참여하는 스포츠 클럽들이 있어서 거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16] 사실 베켄바워는 챔스 결승 직전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할 것이라는 뜻으로 비꼬는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주장은 만 36세의 나이에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며 인테르의 45년 만의 챔스 우승과 함께 2009-10 시즌 트레블의 주역이 되었다. 당시 챔스 결승 상대는 다름 아닌 베켄바워가 현역 시절 뛰었던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17] 사실 남미, 특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와 같이 백인이 주류인 사회를 이루는 나라들 자체가 서방 기준에서도 상당히 좌파적이다. [18] 참고로 옛날에 라울 곤살레스 니콜라 아넬카가 지각했을때, 아넬카의 물품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건 아넬카가 잘못하긴 했지만, 라울이 아넬카를 왕따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괜히 라울이 라커룸의 제왕이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다. 아드리아누 마리오 발로텔리 같은 멘탈들이라도 사네티는 저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19] 2010년대 이후 서구 극우세력이 반세계화를 부르짖기 전까지 반세계화는 좌파들의 구호였다. [20] 여기에 후배을 끌어들인 적도 있었다. [21] 여기에 알레산드로 플로렌치, 리오넬 메시 등이 유니폼을 기부하기도 했다. [22] 안드레아 보첼리는 어렸을 때부터 인테르의 팬이었다고 한다. 2018년 인테르 훈련장에 와서 깜짝 라이브 공연을 해주기도 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알레산드로 바스토니와 휴가를 보낸 적도 있다. [23] 그나마 유벤투스는 거의 이기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잘했지만 후반 막판 통한의 동점골 끝에 연장전에서 침몰했다. 반면 로마와 아스날은 뭘 해보지도 못하고 합산 0-4, 1-5로 완전히 쳐발렸다. [24] 이전부터 불성실한 태도 및 방탕한 생활이 문제이긴 했으나 그때 당시엔 축구계를 호령할정도로 잘했기에 다 묻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러한 태도 문제가 더 심화되며 몸을 혹사시킬 정도로 방탕하게 지냈기에 재능을 갖춘 몸도 멘탈과 같이 무너져버렸다. [25] 자네티가 이탈리아어에서 쓰는 이름이다. [26] 이 쪽은 국적까지 이탈리아로 같다. [27] 2가지 버전이 있다. 2002년 버전에서는 사네티의 첫 파트 이후 파비오 칸나바로가 이어 부르며 알바로 레코바도 등장한다. 2008년 버전에서는 다음 파트를 마르코 마테라치가 부르며 사네티의 베프 에스테반 캄비아소를 비롯한 트레블 멤버들 모습도 보인다. [28] 인테르가 백혈병, 소아림프종으로 투병중인 전세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사회공헌단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