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27 17:42:00

진주비가가한

을실이남에서 넘어옴
설연타 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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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珠毗伽可汗
Yinčü bilgä qaγan
(? ~ 645년)

설연타의 제2대 가한. 이름은 을실이남(乙失夷男) 또는 설이남(薛夷男). 야질가한의 손자.

서돌궐 통섭호가한의 세력이 쇠약해지자 부락의 7만여 가구를 인솔해 힐리가한에게 복속했다가 힐리 가한의 정치가 어지러워지면서 회흘, 발야고 등과 함께 독립해 가한이 되었으며, 당나라에서 힐리 가한을 도모하기 위해 사자를 파견해 가한으로 삼고 전투용 북, 깃발 등을 하사하자 크게 기뻐해 사자를 파견하고 당나라에 공물을 바쳤다.

대사막의 울독군산 아래에 아기를 세우고 동으로 말갈, 서쪽으로 서돌궐, 남쪽으로 사막 지대, 북쪽으로는 구륜수에 이르렀으며, 회흘, 발야고, 아질, 동라, 복골, 습의 여러 부가 복속했다. 629년 8월 8일에 사신을 파견해 당나라에 공물을 바치고 보도, 보편 등을 하사받으면서 거느린 사람 중에 큰 죄를 지으면 목을 베고 적은 죄를 지으면 채찍질을 하라고 하자 기뻐했다.

힐리 가한이 망해서 북방이 비게 되자 진주비가 가한이 그 부락을 인솔해 도위건산의 북쪽, 독라수의 남쪽에 왕정을 세워 훈련된 군사가 20만이었고 두 명의 아들을 각각 가한으로 세워 남부, 북부를 주관하게 했는데, 당나라는 설연타가 강해질 것을 우려해 두 사람 모두 소 가한으로 삼아 겉으로는 우대하는 척 하면서 둘로 세력을 나누게 했다.

639년에 고창이 서역으로부터의 조공을 막고 끊자 당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되어 대적하라고 하자 3월에 진주비가 가한이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고창을 공격하기로 했으며, 641년에 당나라에서 봉선 의식을 거행하려고 하자 아사나사마를 습격하려고 군사를 보냈지만 당나라에서 군사를 파견하자 12월 12일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돌궐과 화친하게 해달라고 했고 설연타의 군사는 당나라의 군사에게 패했다.

642년 9월 10일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혼인을 요청하면서 말 3천, 초피 3만 8천, 마뇌경 등을 바쳤고 643년에도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폐물, 말 5만 필, 소, 낙타 1만, 양 10만을 바쳤다. 당나라에서는 결혼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속이면서 영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진주비가 가한은 영주로 가면서 여러 부에서 징발해 거둬들여 왕복 1만 리를 갔지만 물, 풀이 없어서 소모되어 죽은 것이 반이 넘고 기한을 어기게 되자 영주에 가지 못했다.

645년에 당태종 고구려 원정을 했고 진주비가 가한은 그 와중인 9월 7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