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20 21:58:53

윌리 사뇰

윌리 사뇰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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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illy Sagnol.jpg
<colbgcolor=#ff0000> 이름 윌리 사뇰
Willy Sagnol
본명 윌리암 "윌리" 사뇰
William "Willy" Sagnol
출생 1977년 3월 18일 ([age(1977-03-18)]세)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레지옹 생테티엔
국적 [[프랑스|]]
신체 182cm
직업 축구선수 ( 라이트백 / 은퇴)
축구감독
소속 <colbgcolor=#ff0000> 선수 AS 생테티엔 (1990~1995 / 유스)
AS 생테티엔 (1995~1997)
AS 모나코 FC (1997~2000)
FC 바이에른 뮌헨 (2000~2009)
감독 프랑스 U-21 대표팀 (2013~2014)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14~2016)
FC 바이에른 뮌헨 (2017 / 코치)
FC 바이에른 뮌헨 (2017 / 감독대행)
조지아 대표팀 (2021~ )
국가대표 파일: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8경기 ( 프랑스 / 2000~2008)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랑스 시절2.2. 바이에른 뮌헨2.3.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출전 기록5.2. 대회 기록
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21년부터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라이트백이다.

주 활동시기(90년대 후반~2000년대)가 프랑스의 역대 최전성기인 탓에 '철의 포백'에 밀려 프랑스 국가대표로는 후보내지 로테이션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10년간 몸담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그 철의 포백에서 레프트백을 담당하던 또다른 프랑스와 바이에른의 레전드 비셴테 리사라수와 함께 주전 풀백으로 뮌헨의 분데스리가 5회 우승과 00-01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2000년대 바이에른의 우측 수비를 책임진 레전드다. 엄청난 정확도를 자랑하던 크로스가 일품이었던 선수로 필립 람이 그의 뒤를 잇게 된다.

2. 선수 경력

2.1. 프랑스 시절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태어나 생테티엔 유스팀에 들어가 성장한 윌리 사뇰은 1995년 1군 스쿼드에 들어가 20세도 되지 않은 나이로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이 당시는 풀백이 아닌 미드필더로 출장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이따금 봤지만 주로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장했고, 19세의 나이로 주장 완장을 차보기도 하는 등 큰 신임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사뇰은 1997년 AS 모나코로 이적한다.

모나코에서 라이트백으로 포지션을 바꾼 사뇰은 팀의 핵심 멤버로서 활약하며 99-00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모나코는 이후 10년이 넘도록 우승하지 못했다. 이 활약과 더불어 2000년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었고, 선배인 비셴테 리사라수의 설득으로 사뇰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다.

2.2. 바이에른 뮌헨

파일:external/e1.365dm.com/WillySagnol_1267474.jpg

2000년 여름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사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으로 뛰게 된다. 2001년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의 주전 멤버였다. 하지만 2007년에 당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2007-08 시즌 리그 9경기 출전에 그쳤고, 점점 부상이 악화되자 사뇰은 2008-09 시즌 도중인 2009년 2월 1일 31세라는 축구 선수치고 정말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은퇴 원인은 아킬레스건 부상의 차도가 보이지 않아 치료 기간이 늘어졌던 까닭이다.[1]

그는 은퇴할 때 많은 바이언 팬들의 눈물을 자아냈고, 뮌헨의 레전드 중 1명으로 남았는데 그가 뮌헨에 남긴 유산 중 하나가 2010년대 바이언 팬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그 유산이란 바로 필립 람이다. 사뇰은 리자라쥐와 함께 당시 유망주였던 필립 람의 성장을 도와주었는데, 이후 필립 람이 어떤 선수로 컸는지 생각하면...

재밌게도 이후 필립 람 또한 키미히의 멘토가 되며 바이언은 리자라쥐 - 사뇰 - 람 - 키미히라는 말도 안되는 풀백 계보를 갖게 되었다.[2]

2.3. 국가대표 경력

사뇰은 2000년 프랑스 국가대표팀에 처음 선발된다. 이후 2001 컨페드컵과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로 참가하나 사뇰의 주 포지션인 라이트백 자리는 프랑스 철의 포백 중 한 명인 릴리앙 튀랑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경기에 뛸 수는 없었다.

이후 유로 2004를 끝으로 마르셀 드사이가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튀랑이 센터백으로 이동하면서 드디어 주전을 차지하는가 싶었지만[3][4], 첼시에서 라이트백으로 맹활약하고 있던 윌리엄 갈라스에게 밀렸다.[5]

그래도 A매치 58경기에 출장하였고,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갈라스가 센터백으로 이동하면서 라이트백의 주전 자리를 차지하여 전경기에 모두 출장해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맹활약을 보여주여 프랑스 국가대표의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비록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으나 연장전 지네딘 지단의 회심의 헤딩 슈팅을 잔루이지 부폰이 막아낸 월드컵 역사에 남을 세이브 장면에서 지단에게 올린 정확한 크로스는 사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이후 유로 2008에도 출전하였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의 만회골을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분전했다.[6] 하지만 프랑스는 조별리그에서 꼴찌로 탈락하게 되었고 이후 사뇰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경력

2013년부터 모국 프랑스의 21세 이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년간 지휘하였고, 2014년 5월 23일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감독으로 3년 계약으로 부임하였다. 첫 시즌인 2014-15 시즌에는 리그 6위를 기록해 유로파 티켓을 따냈고 FA컵인 쿠프 드 프랑스에선 32강, 리그컵인 쿠프 드 라 리그에선 16강에 머물렀다. 2015-16 시즌은 리그 11위와 유로파리그에선 조별본선 최하위를 기록하며 저조한 성적을 거뒀고 쿠프 드 프랑스에선 4강을, 쿠프 드 라 리그에서는 16강에 머물렀다.

FC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물러난 뒤 약 1년간 소식이 없다가, 자신이 선수 생활을 했던 FC 바이에른 뮌헨에 수석코치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떴다.

그리고 카를로 안첼로티가 17-18 시즌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감독대행이 되었다. 감독 대행으로서는 7라운드 헤르타 베를린 전 한 경기를 치렀으며, 이 후 바이언의 트레블을 이끈 유프 하인케스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고 하인케스 감독이 원하는 새로운 코치진으로 물갈이되면서 팀을 떠났다.

2021년 2월 15일,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새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다시 감독으로써의 발을 내딛었다. 감독으로 복귀하자마자 첫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자국도 아닌 외국의 국가대표팀을 맡는 특이한 이력을 쓰게 되었고,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유럽)/B조부터 사뇰 신임 감독이 데뷔전을 가지게 된다.

4. 플레이 스타일

3백에서의 윙백과 4백에서의 풀백을 동시에 잘 소화 가능한 선수. 대인 방어 능력도 매우 뛰어났고, 공이 오기 전에 예측하여 차단하는 능력도 좋았다. 수비력에서 부족함이 없었으나, 특히 무서운 점은 공격력. 드리블 능력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사뇰의 가장 큰 장점은 킥 능력이다. 사실 킥 능력이라는 게 왜 풀백에게 좋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윌리 사뇰의 스페셜을 보고오길 바란다.

낮고 빠르게 택배 크로스가 엔드라인 근처가 아닌 하프라인 조금 넘어서 혹은 하프라인과 엔드라인 중간쯤에서 날라온다. 어느정도 공간만 날리면 일단 시도하고 보는데 일단, 수비수들 입장에서 두려운건 붕뜨거나 느리게 날라오는게 아니라 낮고 빠르게 날라와 대처하기가 힘들어 상대편 공격진에서 누군가 헤딩으로 끊어먹거나 갑자기 냅다 넣어버릴까 염려하게 만들었던게 제일 문제이다. 사실 수비수들이 시야는 어쨌든 공을 향해 있고 시선 뒤쪽으로 날라올 지도 모르는 컷팅 헤더에 두려워 밖으로 내보내기 일수. 세트플레이 상황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당시 풀백 중에 제일 뛰어난 점이였고, 이는 같은 오른쪽 측면에서 활동하는 윙어 데이비드 베컴과 비교할 정도였다. 크로스의 질이 매우 높았고 코너킥이나 장거리 세트피스에서 키커로 나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5. 기록

5.1. 출전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5/96 AS 생테티엔 프랑스 디비전 1 10 0 0 0 - -
1996/97 AS 생테티엔 프랑스 디비전 2 36 1 0 0 - -
1997/98 AS 모나코 프랑스 디비전 1 25 0 0 0 8 0
1998/99 AS 모나코 프랑스 디비전 1 20 0 0 0 4 0
1999/00 AS 모나코 프랑스 디비전 1 26 0 0 0 6 0
2000/01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7 0 1 0 14 0
2001/02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8 1 1 0 12 0
2002/03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3 2 5 1 4 0
2003/04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1 1 3 0 6 0
2004/05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2 1 4 0 7 0
2005/06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31 1 5 0 7 0
2006/07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23 1 3 0 9 0
2007/08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9 0 3 0 5 0
2008/09 FC 바이에른 뮌헨 독일 분데스리가 0 0 0 0 0 0

5.2. 대회 기록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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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에른 뮌헨은 이 시즌에 사뇰의 대체자로 마시모 오도를 임대로 영입하여 기용하였다. [2] 2019-20 시즌부터는 키미히가 미드필더로 기용되며 결국 이 계보는 변화를 맞이했는데, 재밌게도 키미히 대신 라이트백으로 뛰게 된 건 다름 아닌 리자라쥐와 사뇰의 프랑스 국가대표 후배 뱅자맹 파바르이다. [3] 튀랑조차 중앙 수비를 보고 싶어했지만 드사이의 은퇴 전까지 움직이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사뇰의 국가대표 행적이 미비한 것은 튀랑을 비롯한 당시 프랑스 포백이 너무 견고했던 탓이 크다 하겠다. [4] 비슷한 경우로 동시대 AS 로마에서 카푸와 더불어 최고의 측면 수비진을 형성했던 뱅상 캉델라가 있다. 이쪽도 월드 클래스 풀백으로 평가받던 선수로 프랑스의 월드컵과 유로 2000의 우승 멤버였으며, 심지어 양쪽 풀백을 모두 뛸 수 있었지만, 견고한 철의 포백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40경기 출장에 그쳤다. [5] 당시 갈라스는 무리뉴의 첼시에서 가장 중요한 수비수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첼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6] 유로 2008 당시 프랑스의 득점은 겨우 1득점이였다. 그 1득점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사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