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9 02:44:10

움집

1. 개요2. 특징3. 청동기 시대의 움집4. 양식

1. 개요

움집 / 竪穴住居 / Pit House

움집은 선사시대에 등장한 주택의 형태로, 수혈주거(竪穴住居)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한 주택당 4~6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으며, 농경·정착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유적에서 많이 발굴된다. 삼국시대까지도 목조주택과 함께 보편적인 살림집의 역할을 하였으며, 고려시대에도 수혈주거는 흔히 볼 수 있는 주거형태였다. #[1] 조선시대에 자식이 부모의 묫자리 근처에서 시묘살이를 하며 살던 여막(廬幕)이라는 주거 공간도 바로 움집에 해당했다.

벽체의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려는 요구를 만족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땅을 파서 자연적인 토벽을 만들어 지붕만 덮는 움집을 만드는 것이었고, 따라서 반지하의 형태를 띄고 있다.

2. 특징

막집과 외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매우 유사하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움집은 바닥을 파 주변 지면보다 집 바닥이 낮지만 막집은 그냥 평지에 그대로 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막집은 구석기시대, 즉 농사가 발전하지 않은 시대이기 때문에 사냥과 채집을 위해 자주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짓는 시간이 짧은 막집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농경사회가 시작되며 막집은 차츰 사라져갔다.

움집 자체도 초가집에 밀려 점차 사라져갔지만, 의외로 구한말까지 빈민들의 주거지로 존재했다.

3. 청동기 시대의 움집

움집은 주로 신석기 시대에 지어졌지만, 청동기 시대에는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움집이 만들어졌다.[2] 신석기 시대의 움집은 4개의 기둥을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원형 집이었던 반면 청동기 시대의 움집은 기둥과 상동이 구조 가운데 자리잡으면서 더 크게 지을 수 있었으며 모양도 각진 형태로 바뀌었다. 보다는 사각형이 훨씬 공간을 나누기가 좋다. 당장 현대의 집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구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4. 양식

선사 시대의 원시 주거를 전부 움집이라고 표현하며 현대인이 보기엔 매우 원시적인 건축이라 전부 그게 그거 아닌가 싶겠지만, 유적을 통해 선사 시대를 연구하는 고고학에서는 움집터의 구조를 통해서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근래 학설에서 고조선으로 비정되는 십이대영자 문화의 파생 문화로 보이는, 즉 중기 고조선의 유적으로 비정되는 심양 일대의 정가와자 문화에서는 직사각형 구조의 집터와, 기둥을 양쪽 짧은 벽 가운데에 하나씩 박은 형태가 발굴된다. 또 화덕은 긴 벽에 붙은 가운데 가장자리에 판 모양 돌로 사각형으로 둘러서 만들었다. 문은 화덕의 반대편 긴 벽 가운데에 뚫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 바닥자리는 불로 지져서 단단하게 다졌다.

한편 청동기 시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조선과는 구분되는 모종의 문화인 미송리 유형 유적은 원형의 집터를 보이며, 기둥자리는 둘이며 화덕은 가운데에 작은 돌들을 빙 둘러치는 것으로 설치했다.


[1] 고려도경에 따르면 심지어 수도인 개경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2] 예를 들면 반움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