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20 23:22:06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

파일: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1.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1636호

1. 개요

榮州 浮石寺 石造釋迦如來坐像. 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의 사찰인 부석사(浮石寺)의 자인당에 안치되어 있는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석가여래좌상 1점. 현재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에 소재 중이며, 총 2점의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동불상, 서불상)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대한민국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파일: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3.jpg
중앙에 있는 불상이 본 항목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이고, 좌우에 배치된 불상은 보물 제220호로 지정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동불상, 서불상)이다.

높이 87㎝, 무릎 너비 75㎝, 대좌 111×127×128㎝.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 위치한 부석사 자인당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으로, 2점의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과 함께 삼존불 형상을 하고 있는 신라시대 석조 불상이다. 양 옆에 위치한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두 구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본 석조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의 도상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제작 연대는 9세기 통일신라 시대로 확인되었다.

원래는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약 1.5km 지점 약사곡에 위치한 동방사지(東方寺址)에 조성되었던 불상인데 조선시대에 그 절이 폐사되자 당시 그 사찰에 봉안되어 있던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2점과 쌍탑을 먼저 부석사로 옮겨왔고, 이후 대한민국이 들어선 1958년 11월에 본 불상이 폐사지에서 추가로 발견되자 드디어 세 불상을 수 백여년 만에 같은 자리에 모셔놓은 것이다. 원래는 보물 제220호와 같은 사지에 유존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삼불(삼신불)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당 사찰이 폐사될 당시 현재로썬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떠한 이유로 인해 이 중앙불은 그냥 파묻혀버렸고 부석사 승려들이 양옆 협시불만 겨우 추렸던 것을 현대 들어 겨우 찾은 것이다.

나발로 된 머리에는 육계가 솟아 있고, 얼굴은 둥근 편으로, 아래로 뜬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수인은 왼손을 복부에 놓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려뜨리고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불신에는 통견으로 대의를 걸치고, 대의 안에 대각선으로 입은 내의가 있고 치마를 묶은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내의의 옷단은 꽃무늬 장식이 있다. 옷 주름은 신체와 자세에 따라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앉은 무릎 사이에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부채꼴 옷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파일: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2.jpg

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 기단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앙련으로 표현된 상대는 연꽃잎에 장식을 더해 화려함을 더하고, 팔각의 중대에는 여래, 보살, 천인 등 다양한 인물상을 추가로 조각해놓았다. 이러한 대좌의 장식 등을 고려해 볼 때 본 불상은 예천 청룡사 석불여래좌상(醴泉靑龍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24호),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洪川物傑里石造如來坐像, 보물 제541호) 등과 같이 9세기 경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한 신라의 석불로 확인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으로, 신라시대 영주 지역의 석조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2010년 2월 24일 대한민국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636호

부석사 자인당에는 거의 같은 규모의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2구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며, 1구는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불의 도상특징을 보여준다.

이 불상은 1958년 11월 부석사 동쪽의 약사곡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인당에 이미 보물로 지정된 두 구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동그란 얼굴, 항마촉지인의 수인과 꽃문양이 조각된 승각기,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옷주름의 표현, 높은 삼단대좌에 부조된 향로와 7사자, 합장 한 보살상 등에서 통일신라 9세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특히 대좌 뒷면에 조각된 지장보살상은 특이한 예로 주목되며, 높고 화려한 대좌는 양감이 강조된 불상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거의 훼손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삼단대좌와 불상은 다소 장식화 경향을 보이는 통일신라 9세기의 전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