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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벌주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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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긍정적 평가
2.1. 응보적 정의 실현2.2.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보상2.3. 공권력에 대한 신뢰 제고2.4. 물리적인 재범 방지
3. 부정적 평가
3.1. 대중들의 인식에 비해 미약한 범죄예방효과3.2. 추가적인 범죄를 야기3.3. 국가의 책임 회피3.4. 높은 악용 가능성3.5. 체벌 정당화3.6. 높은 비용
3.6.1. 피해자 구제보다 범죄자 처벌에 자원 집중
3.7. 전반적 형량 강화 문제
3.7.1. 극도의 엄벌에 대한 낭만화3.7.2. 장기적인 세금 낭비
3.8. 동태복수법의 한계3.9. 인권에 대한 경시3.10. 이중잣대식 엄벌주의
3.10.1. 법적 안정성 침해

1. 개요

엄벌주의에 관한 찬반 양 측의 의견을 서술한 문서.

2. 긍정적 평가

2.1. 응보적 정의 실현

엄벌주의 옹호론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응보주의라고도 불리는 응보적 정의관념이란 처벌의 목적은 처벌 그 자체에만 있다는 것이다. 응보주의자는 공리주의자와 달리 범죄예방이나 교화가 아닌, 처벌을 통한 징악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의 바빌로니아나 히브리 법전에서부터 근대의 칸트에까지 이르는 유서 깊은 정의관이다.[1][2]

이에 의하면 정의란 형평을 유지하는 저울과도 같아서 모두가 타인을 존중할 때 도덕적 형평이 유지되지만, 범죄가 발생할 경우 평형이 깨지고 도덕적 불균형이 야기된다. 따라서 이 경우 범죄자를 처벌함으로써 그 균형을 회복하여야 한다. 따라서 응보주의는 용서와 같은 범행자에 대한 자비도 정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응부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주장된다. 첫째, 처벌은 범행과 똑같이 엄격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같은 형태의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표제어로 대표된다. 현대에는 살인자에 대한 사형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범행과 같은 형태일 필요는 없지만 범행의 종류에 알맞은 적합한 방식으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응보주의가 반드시 엄벌주의는 아니고, 반대로 엄벌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응보주의인 것은 아니다. 범죄자의 격리나 재범방지와 같은 사회적 목적이나 피해자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야만 응보주의라고 부를 수 있고, 또 죄질 이상으로 강한 처벌만을 주장하는 엄벌주의는 응보주의의 동해보복 사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벌주의가 범죄자에 대해 엄벌을 부과한다는 점에서는 응보적 정의관념에 부합하는 형벌관념이다.

2.2.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보상

형법이 피해자의 복수를 대행하기 위한 도구인 것은 아니라지만 현대 사회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하여 합법적으로 물리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은 형사소송을 통한 처벌밖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국가는 처벌에 있어 피해자를 고려한다.

복수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피해를 당했을 경우, 그만큼 갚아주려고 하는 특성'을 가진 인간들이 다른 인간들에 비해서 생존에 유리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그 특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복수심을 느끼거나 해소하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사회의 질서를 어그러뜨리지 않는 선이라면 긍정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는 성욕과도 같아서 무작정 억제한다고 복수를 포기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성욕을 마음껏 분출하며 성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처럼, 복수심도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해소되어야 한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범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다. 국가가 범죄인에 대해 형벌을 내리고 가해자가 형벌에 처하는 모습을 보며 피해자는 인간 본연의 복수심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범죄인에 대한 교화를 인식한 나머지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너무나도 약한 수준에 머무를 경우 피해자는 복수심을 해소할 수 없게 된다.

엄벌주의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범죄자의 생명권 및 자유권은 인권이고, 범죄 피해자가 범죄자의 엄벌을 요구하려는 심리는 단순한 복수심이다.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근거로 복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들 수는 없다. 형벌은 사회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범죄자에게 복수를 할 권리는 피해자의 행복추구권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단지 그게 헌법 등에 명시적으로 나와있지 않다고 해서 무시받을 이유는 없다.

일각에서는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피해자의 인권이 회복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행복과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기본적으론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을 저울질한다는 관점이 아닌, 가해자의 행복과 피해자의 행복을 비교한다는 관점으로 생각해볼 경우, 가해자에 대한 엄벌로서 피해자를 만족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정당하다.

2.3. 공권력에 대한 신뢰 제고

범죄자에게 엄벌을 내리는 것을 보는 사회구성원들은 공권력이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고, 이에 정의가 지켜진다는 느낌을 받아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강해진다.

뿐만 아니라 국민은 악인이 처벌받는 것을 보며 정서적인 보상도 얻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죽음으로 갚는 것 정의구현이라고 여긴다. 인간에게는 '정의에 대한 감각' 내지 '공정성 감각'이 내재되어 있어 규칙을 어긴 자에 대한 응징을 본능적인 차원에서 요구한다. 인간은 자신과 관련이 없어도 규칙을 어긴 사람을 보면 분노를 하는 공감능력도 갖고 있으며, 그 분노와 공정성 감각으로 인해 범죄자에 대한 엄벌을 보면 감정적인 보상을 받는다.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과 유전자가 이를 통쾌하게 여기고, 범죄자들에 대한 엄벌을 일종의 도파민처럼 간주하게 해주는 것이다.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주는 신상필벌,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와 사회의 기본적인 원리이다. 이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 대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잘 살고, 선량한 사람들은 못 산다"며 강한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게 극단화되면 너도나도 죄를 지으면서 사회 자체의 악화로 이어져 국가 등 조직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2.4. 물리적인 재범 방지

엄벌주의의 정책이 출소 후 재범률을 낮춘다거나 다른 범죄 꿈나무들의 범죄율을 낮춘다는 통계학적 근거는 없을지언정, 적어도 특정한 흉악범이나 악질 범죄자 개인을 영구히 격리시킴에 따라 단일 범죄자의 재범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있다. 재범은 기본적으로 출소 이후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인데, 출소 자체를 못 시키게끔 반영구적으로 가둬버리거나 사형을 시키는 경우엔 애초에 재범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굳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이 아니더라도, 죄수를 오래 감금시켜서 늙게 만들고,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하게 만든 후에 출소시키는 것도 재범 방지에 효과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죄수가 질병으로 제 몸 갖추기도 버거운 상황이나 출소하기 전 옥사에 이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재범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비판하는 측에서는 비용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다. 확실히 범죄자를 오랜 기간 격리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한다. 또한 그렇다고 사형을 시키자니, 오판 가능성을 위한 다수의 재판 및 집행까지의 기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사형에 드는 비용이 더 많다. 그러나 흉악범죄자의 재범율을 0%로 확정시킬 수만 있다면 그 손해도 감수할 수 있다. 그 범죄자를 장기간 구금 혹은 사형시킴으로써 불특정 누군가의 생명 하나를 구할 수 있기 때문.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큰 비용이 아니다. 이에 대한 타협책으로 굴라그와 같은 수용 및 강제노동 시설을 추가하여 급여 없는 징벌적 노동을 통해 격리 비용을 낮추자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3. 부정적 평가

3.1. 대중들의 인식에 비해 미약한 범죄예방효과


먼저 짚고 가야 할 점은 공정한 형벌 집행과 가혹한 형량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형량이 극도로 가혹하다 한들, 형벌이 상위 계급은 피해가고 하위 계급에게만 적용된다면 가혹하지만 공정하지는 않은 형벌 집행이다. 반대로 형량이 낮아도 재산, 학력, 사위적 지위에 상관 없이 공평하게 적용된다면 관대하지만 공정한 형벌 집행이다. 독재국가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시이며, 북유럽식 복지국가는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가 극심한 대중은 이러한 점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범죄자들이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특권 계층에 범죄가 만연하다. 형량을 높여서 범죄자가 형벌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가혹한 형벌과 공정한 형벌 집행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형량을 높여도 어차피 그 형량이 특권 계층에게는 적용될 일이 없기에 오히려 법의 형평성 문제만 늘어난다.[3]

그렇다고 하위 계층에게는 범죄 예방 효과가 있으냐면 그 또한 아니다. 엄벌주의에서 표방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중형은 그 인상과 달리 범죄예방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미셸 푸코가 쓴 '감시와 처벌'의 서론부에서도 묘사되는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의 처형을 떠올려보자. 절대왕정의 권위에 흠집을 냈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강도의 고문을 받고, 그뒤로도 사람을 몇번이고 죽이는 수준의 끔찍한 고통을 준 끝에 다미앵은 처형당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은 고작 몇십년도 못버티고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5세의 손자와 손자며느리는 단두대에서 목이 날라갔다. 물론 왕정 시기에 왕에게 도전한 다미앵은 극단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자. 근대 이후 인권 사상과 법 체계의 발전 등으로 고문이나 신체를 손상하는 형벌이 점점 줄어들고, 남발되던 사형이 줄어들기 전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혹형과 엄벌은 확고부동한 대세였다. 그러나 현대 일정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에서 엄벌주의를 시행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동양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죄수의 얼굴에 문신을 새겨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리는 자자형이나 때려 죽이는 장살형, 사지를 찢어버리는 거열형, 산 채로 회를 뜨는 능지형, 삶아죽이는 팽형 등이 자주 행해졌고, 재판과정에서의 고문도 드물지 않았다. 서양은 또 어떤가? 절도죄에 손가락을 자르거나, 매주, 매일 범죄자를 감옥에서 꺼내 광장 한복판에서 모가지를 자르거나, 목매달아 죽이는 교수형이 오락프로그램처럼 행해지던 것이 유럽 사회였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범죄를 효율적으로 줄였는가? 극형들은 죄 지은 자들의 고통만을 끝도 없이 가중시켰을 뿐, 그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전근대 사회에서 범죄율의 하락은 형벌의 강도가 아니라 공정한 재판, 전쟁의 빈도와 같은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변수에 의해 좌지우지 됐다. 오히려 극형은 대중들의 오락거리로 소비되어 진짜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만들었을 뿐이다. 비합리적인 재판체계, 극형주의,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 종교 및 정치적 필요성이 한 데 뭉쳐 광기의 끝인 마녀사냥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법학자들과 정치가들, 통찰력 있는 지식인들이 비판과 회의를 반복하여 합리적인 재판체계와 범죄예방과 범죄율 하락을 목적으로 탄생시킨 것이 현대 법체계인 것이다. 엄벌주의는 이러한 역사와 발전을 무시한 채 과거 인민재판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야만적인 퇴행에 불과하다.

실제 형사정책 연구들을 살펴보면 범죄율을 줄이는데 가장 기여하는 것은 양형이 아닌 검거율이다. 양형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범죄 방지 효과가 미미하다. 즉, 같은 돈이면 교도소를 더 지어서 형량을 늘리는 것보다 수사관을 더 뽑아서 범죄를 저지르고 잡혀갈 확률을 높이는 것이 것이 범죄 예방에 기여한다는 것. 이와 같은 법경제학의 예시가 있는데, 잡히면 사형이지만 잡힐 확률이 0.1%인 범죄와, 잡히면 징역 10년이지만 잡힐 확률이 70%인 범죄가 있다면 당신은 어느 범죄를 선택하겠는가? 십중팔구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증명되었다. 이는 사람들이 이익보다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4]하기 때문이다.[5]

또한 범죄예방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범죄자들이 합리적인 인간임이 전제되어야 하나, 출소 이후를 계산하는 일부 금융범죄를 제외하면, 위반자들은 대개 처벌에 대해서 모르거나, 남의 일이라고 여기거나, 또는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어쨌건 자신만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근자감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범죄를 저지를 땐 안 걸리고 완전범죄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저지르지, 형이 가볍다고 저지르는 게 아니다.[6] 더 심각한 경우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뇌 수준인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최근 코로나19 자가격리 위반사례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처벌 수위를 벌금 3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상향하고 1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추가했지만 그럼에도 자가격리 위반사례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물론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도 처벌 수위를 강하게 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도 엄벌을 쏟아내도 자가격리 위반자는 계속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는 최고 사형, 필리핀은 현장 사살을 선포했으나 방역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홍콩에서 시행중인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전자밴드 부착인데, 감시와 검거율 상승이란 측면에서 경찰 인력의 확충과 유사하다.

엄벌을 해도 해결이 안되는 유형의 사회 문제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마약인데 엄벌주의를 추구하던 미국조차도 마약 관련해서는 엄벌주의에 대해 효과가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나타날 정도로 효과는커녕 부작용이 속출했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불법적인 마약 거래, 마약의 소지 및 판매로 인한 처벌을 강화하며 엄벌주의를 추구하던 미국에서 아무리 마약 중독자들을 구속해서 장기간 징역을 때려서 마약 중독자들을 감옥에 집어넣어도 마약 재범률이 계속 증가하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인정, 마약 법정(Drug court)이라는 특별 법원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은 처벌하되[7],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면 엄벌에 의한 처벌보다 교화 및 치료에 목적[8]을 두기 시작했다. #

그래서 높은 검거율과 공정한 형벌 집행은 범죄 예방에 많은 도움을 주나, 가혹한 형벌은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3.2. 추가적인 범죄를 야기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추가적인 중범죄를 저지를 요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강간에 무조건적인 사형을 구형한다고 한다면, 범죄자들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강간살인을 저지를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실제로 성폭력 이후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를 살인하는 경우도 꽤 있다. 수원 토막 살인 사건이나 통영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이 바로 그 예시. 범죄자 입장에선 사형을 당할 바에야 범행을 저지르고 난 뒤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를 살해해서 조금이라도 검거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9] 권력형 범죄인 경우 죄를 덮기 위해 엄청난 부정부패와 직권남용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는 이를 흔히 "덮는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관계자들이 집단적으로 은폐수단을 강구하게 되고 그 은폐를 은폐하기 위해 위법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중국사 쪽에서는 엄벌주의를 채택했던 진나라가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사형에 처하는 가혹한 법이 결국 잇따른 반란의 원인이 되었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같으면 나라라도 뒤집어버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세간에 퍼진 "잃을 것 없는 놈이 무섭다"라는 것이 딱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3.3. 국가의 책임 회피

엄벌주의는 한 나라의 범죄 억제 및 교도 정책이 실패했을 때 그러한 정책 실패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엄벌주의를 지탱하는 커다란 2개의 근간은 ①위정자들의 정책 실패 호도(糊塗)②대중의 심리적 분풀이인데, ①번을 위한 목적으로 ②번이 주요한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치안이 나쁜 나라는 치안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위정자들이 무능력하거나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자신들의 무능력, 무책임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시스템이 아닌 범죄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문제를 논의할 기회 자체를 엄벌주의로 묻어 버리는 것이다.

대부분의 범죄는 개인적인 특성에 기인하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병폐 때문에 발생한다. 특정 개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생태체계주의나 사회체계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 낸 범죄로 보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둘 것을 중시하는데, 이는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이 드는 복잡한 해결책을 필요로 한다. 처벌에만 초점을 둘 경우 이런 구조적인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결국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하나 이는 복잡하고 다양한 이권관계가 걸린 경우가 많아 위정자들이 선호하지 않으며, 위정자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범죄자에 대한 엄벌을 선언하는 것은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도 쉬우며 범죄자에 모든 비난이 몰리므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라가 혼란스런 소말리아와 대한민국을 비교할 수 있다. 소말리아에서 각종 범죄에 대해 형량을 대폭 높이고 철저히 단속한다고 한들 치안이 대한민국 수준이 될 수는 없다. 즉, 소말리아의 치안은 정치적/사회적 시스템의 붕괴에서 기반하는 것으로, 엄벌주의를 논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생계조차 확보해주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잘못된 통치체계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기 때문에 책임회피를 위해 범죄자에게 잘못을 돌린다.

대표적으로 "생계형 범죄"가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최소한의 존엄조차도 지킬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기는 어렵다. #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위한 범죄에 노출된 경우,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어서도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런 범죄율의 상승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민층에 대한 복지 확충, 공교육의 확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에 대한 직업교육 및 갱생의 기회 제공, 차별적인 제도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는 복잡한 논의를 거쳐야 하고 다양한 이권들을 조정해야 하는 반면, 범죄자에 대한 엄벌은 단순명확하며 국민들도 좋아하며 논란의 여지도 없다. 그저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을 뿐이다.

유사한 사례로 이지메나 학교폭력, 집단괴롭힘 문화를 들 수 있다. 유독 학내 괴롭힘이 심한데, 학내 괴롭힘은 엄밀히 말하면 학교 교육 시스템의 실패를 의미한다. 따라서 학내 괴롭힘을 문제로 삼으면 학교 교육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만 한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학생에 대한 통제권의 조정, 가해학생의 격리나 갱생의 가능성 등 논쟁의 여지가 큰 커다란 과제가 산적한 문제이다. 이 때문에 쉬쉬하면서 가해자 중 주동자 한 명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기거나 피해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가해자나 피해자는 사라지겠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 깨진 유리창 이론: 뉴욕시의 치안을 개선한 것은 중범죄자에 대한 엄벌이 아니라 경범죄자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었다. 살인자에 대한 엄벌보다 낙서와 쓰레기 투척을 막는 것이 더 효과가 컸다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해당 실험에서는 엄벌과 치안 사이에는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없었다.[10]
  • 아동 학대: 아동 학대에 대해서 처벌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동 학대는 끊이지 않는다.
  • 민식이법: 스쿨존 속도위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처벌 수위를 높였지만 아직까지도 유의미한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스쿨존에 대한 환경개선, 특히 불법주차 근절이 없다면 엄벌은 공염불일 뿐이다.
  • 중국 식품범죄자 사형: 중국 정부는 불량식품에 대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식품범죄자에 대해서 최고 사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식품범죄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일단 중국의 땅이 너무 넓고, 사람도 많은데다 식품범죄로 얻을 수 있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 미국 마약과의 전쟁: 해당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저소득층 및 유색인종에 대한 질 좋은 공교육 및 치안서비스의 제공 없이 정치인들이 엄벌주의 형법정책을 도입한 결과, 마약문제는 해결되기는 커녕, 인종차별 및 마약갱단의 성장으로 나타났다.

3.4. 높은 악용 가능성

권력을 지닌 측에서 반대 세력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입막음하는데 엄벌주의적인 법률을 악용할 여지가 강하다.

죄를 지으면 엄벌일지라도 정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확실하다면 문제되지 않으나, 법을 만드는 자, 처벌하는 자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사회에 엄벌주의 기조가 강해지면 단순한 형량 강화에 시선이 몰려 자세한 법 조항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쉽고, 이 기회를 노려 권력층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독소조항을 삽입할 위험은 높아진다. 법률에 대한 전문가가 다수인 권력층에 비해 일반 국민은 세부적인 법 조항에 대한 이해 능력이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독소조항은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소수의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들 다수의 엄벌주의 목소리에 그 위험성이 묻히기도 쉽다. 이는 작게는 권력층의 부정부패나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에서 출발하여 심해지면 독재를 위해 반대 세력을 사법살인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테러집단 및 반국가단체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에 대한 사찰 및 감청이 이뤄진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매카시즘과 같이 반체제적 연설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처벌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주주의 국가라도 악용의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다.

정적을 제거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권력자 측에게 자신과 대립하는 자들을 제거하는데 극형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명분도 챙기면서 효과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이 가장 즐겨쓰는 수단이 사형 등 사법살인이다. 당장 한국만 해도 1950~80년대에 독재 정권들이 정당한 비판조차 빨갱이로 몰아서 탄압하여 자기들에 대해 찍소리 내지 못하게끔 만든 과거가 있었고, 대표적인 것이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을 사면서까지 유신 독재 체제 유지를 위해 반대 세력을 탄압할 목적으로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그 외에도 북한 이란, 에리트레아, 브루나이, 중국 등의 독재국가들은 대개 엄벌주의를 내세우는데, 이들은 엄벌주의를 이용해 반정부적인 의건을 봉쇄한다. 특히 엄벌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식 인권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는 북한은 인권이라는 초보적인 개념조차 통하지 않는 막장 국가인데, 석연찮은 사연으로 3년형을 받은 죄인이 상소했다는 이유만으로 검사가 20년형으로 늘려 구형한다든지, 뇌물을 잘 주지 않는다든지 한다는 이유만으로 앙심을 품고 물자공급소장을 누명씌워서 7년 동안 수용소에 갇히게 만든다든지 하는 데가 북한이다. 출처

사형을 제외한 무기징역 등의 수단을 활용하면 안 되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기 무척 힘들다. 이미 권력을 잡은 자에 대항해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렇기에 국회의원에게 불체포 특권이 보장되는 것이며, 또한 수사과정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우에도 엄격한 요건 하에 심사를 하는 것이다. 무고는 사법제도에 내재하는 위험이며, 형의 세기가 강할수록 무고를 할 이득은 커지는 법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형사소송법상 엄격하고 복잡한 절차가 요구되며, 그 핵심은 불구속 상태에서의 방어권이다.

무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마찬가지로 무고범에 대해 엄벌을 내리면 되지 않겠냐는 반론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여론과 정치에 영향받지 않는, 객관적이고 철저한 형사소송체계 없는 무고엄벌주의는 재앙일 뿐이다. 범죄자는 반성과 합의로 형을 줄이겠다는 전략 대신[11] 상대방을 무고범으로 몰아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총력전을 펼칠 여유가 없는 피해자는 중범죄일수록 무고범으로 몰릴까봐 신고를 꺼려 암수범죄가 증가할 것이다. 결국 중범죄자일수록 신고를 당할 확률이 감소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화해와 합의, 반성과 용서가 자리할 수 있는 곳에 증거조작, 증거인멸, 증인매수 등 사혈을 건 법정싸움이 자리할 것이고 어마어마한 사법적 자원이 낭비될 것이다.

먼 미래에 AI를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반론도 있으나, AI가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내린 판결의 결과물이기에 편향도 학습해버리므로 반론이 되기에는 어렵다. 또한 AI가 정할 윤리 규칙을 누구 기준으로, 무엇에 근거하여 내릴지도 인간이 결정하므로 논의가 원점에 돌아간다는 한계도 있따.

3.5. 체벌 정당화

엄벌주의가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악용이 가능하다.

아동 학대, 내리갈굼, 동물 학대, 똥군기 등 부조리한 체벌을 시행해도 엄벌주의가 기능하는 사회에서는 가볍게 넘어가기 좋다. 엄벌주의가 과도한 처벌을 바탕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과도한 처벌을 막기 어려워진다.

3.6. 높은 비용

엄벌주의는 사소한 범죄에도 높은 형량을 부과하하고 중범죄에는 종신형 등 중한 형량을 부과하여 범죄자를 오랫동안 교도소에 수감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해야 할 범죄자들이 늘어나 교도소 시설이 만성적인 포화상태를 겪게 되며, 이를 확대 및 유지하기 위한 교도 비용이 늘어난다. 당연히 범죄자를 물리적으로 격리할 교정시설을 더 많이 신설해야 하고,[12] 교도관을 비롯한 교정 공무원 역시 증원해야 한다. 그야말로 교도소가 돈먹는 하마가 되어버리는 셈.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생산활동을 해야 할 인구가 교도소에서 물자를 소비만 하게 된다. 교도소에서 노역을 시키면 된다고 하지만 교도소에서 하는 노역이 결코 효율적이지도, 생산성이 높지도 않은 만큼 수감자를 먹이고 재우며 교정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이 수감자가 노역으로 만드는 부가가치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간다.[13] 추가적으로 교도소와 민간이 결탁하는 것을 감시하는 비용도 필요하고, 작업과정에서 수형자들이 외부와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큰 비용이 들어간다.

이상적인 엄벌주의 사회를 구현하려면 사회 전체가 이렇게 폭증하는 교정 비용을 세금을 통해 부담하겠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하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합의가 이뤄진 국가는 지구상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벌주의를 노래하는 사람들도 정작 교도소를 늘리고 그 유지비를 자신의 세금 부담을 늘려 부담하는 것에는 강하게 반대하고, 거주지 주변에 교도소가 들어서는 것에는 목소리를 높여 반대한다. 사회는 엄벌주의를 목청껏 외치고 국가 역시 엄벌주의를 내세우나 정작 그 엄벌주의로 늘어난 범죄자를 관리할 비용은 부담하지 않길 원한다. 결국 실제로 이뤄지는 것은 엄벌주의의 탈을 쓴 엉뚱한 제도 만들기이다. 겉으로는 범죄자들에게 높은 형량을 부과하지만 실제로는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는 구멍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위에 적시한 것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비용이고 숨은 사회적 비용도 있다. 유일한 소득원인 가장이 감옥에 오랜 기간 수감될 경우, 남은 가족들은 합법적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진다.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지원도 없는데 범죄자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해줄 리 만무하다. 결국 남은 가족 구성원들은 금전을 대가로 범죄의 희생양이 되거나 범죄에 참여하여 생계를 해결하는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예컨대 딸은 포주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받게 되고, 아들은 범죄조직에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한 범죄피해와 치안불안정의 비용은 다시 고스란히 사회가 떠안아야 된다. 즉, 수용자가 감당할 수 있었던 사회적 비용을 사회가 몇 배는 크게 떠안게 된다. 이게 엄벌주의의 숨은 비용이다.

대표적인 엄벌주의 사회의 허점이 사법거래와 조기 가석방이다. 유죄를 조기에 인정하는 댓가로 형량을 감면받는 사법거래를 통해 범죄자는 받아야 할 처벌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형량만을 받을 수 있고, 형량의 10~15%만 복역하고 조기에 가석방하여 선고받은 형량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10년 형량을 선고받고 60%를 채워도 가석방 가능성이 낮은 국가와, 30년 형량을 선고해도 10%만 복역하면 가석방을 쉽게 내주는 국가를 비교하면 후자가 범죄자의 실제 복역기간이 훨씬 짧으며, 피해자와 범죄자의 사회적인 격리라는 징역형의 의의를 훨씬 크게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민들은 선고된 형량을 보고 환영하지만, 실상은 더욱 약한 처벌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엄벌주의의 효과를 무력화한다. 사법거래와 조기 가석방의 폐해는 선진국 가운데 엄벌주의 성향이 강하면서도 사회적인 비용 부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떤 주에서는 감옥이 미어터진다는 이유로 일정 금액 이하의 절도는 범죄가 아니라는 법을 통과시켜, 오히려 범죄가 들끓게 되는 문제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에 교도소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내면 호텔처럼 살 수 있는 감옥같은게 등장해,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에게 ‘안락한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엄벌주의'가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용자 처우를 희생하면서 과수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지만, 인권문제 뿐 아니라 부작용이 많은 방식이다. 후술하겠지만, 감시자 증원 없는 수용자의 증원은 감옥 내부의 자치를 발생시킨다. 즉, 교도원들의 통제 대신 수용자 중 리더격인 사람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이는 평온한 교도행정을 방해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리더격인 수용자가 타 수용자들과 차별되는 대우[14]를 받게 되는 것을 용인하는 셈이 된다. 또한 수용소 내에서 범죄조직이 확장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에 다시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수형자들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갱단에 가입하며, 이 상태에서 출소하거나, 사회에서 활동중인 범죄조직과 연결되거나, 조직적인 탈옥을 해버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염병 위험 등 위생 비용 상승 문제도 있다.[15]

엄벌주의가 강세인 곳은 죄수들에 들어갈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사형에 긍정적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형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깐깐한 법적 검증을 필요로 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2000년대까지 사형을 실제로 집행하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선, 사형을 폐지하면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매년 1억 달러를 절감한다는 것이 사형 폐지론자들의 논지였을 정도다. 여기에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정신적 유무형의 피해까지 계산하면 과연 사형이 경제적인 형벌인가에 대해 쉽게 긍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차라리 그 돈을 국민들의 교육과 복지, 범죄 예방 및 교화에 투자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다. 또한 엄벌주의를 적용한다고 해서 모든 범죄자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도 아닌데다가, 사형 자체도 사법살인 등에 악용하기 좋은 제도[16]이며, 사법기관의 실수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등 치명적인 단점들이 많은 제도다( 사형/존폐 논란 참조). 그래서 현대에는 형량을 강화하는 국가들조차도 사형은 오히려 신중하게 실시하거나 폐지하는 추세에 있다.

3.6.1. 피해자 구제보다 범죄자 처벌에 자원 집중

엄벌화에 따른 교도 비용 상승은 다른 정책에 쓸 비용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범죄자의 처벌에 대해 모든 자원이 쏠리기에 정작 피해자의 구제는 뒷전이 되기도 한다. 물론 가해자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피해자 측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엄벌주의는 피해자 측의 의사보다는 대중의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해 주장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발생한 피해에 대한 처벌보다 미래를 위해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는 피해자들도 많다. 제3자인 대중은 금방 흥미를 잃을 것이고 피해자 측은 피해를 안은 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친고죄, 반의사불벌죄 등이 존재하는 것이고 법원에서도 피해자와의 합의를 중요한 양형인자로 보는 것이다.

모든 가해자들이 현물자산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사회에서 임금을 받아야 피해자에게 구제를 해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엄벌주의는 속된 말로 속은 시원하지만 남는 것은 쥐뿔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3.7. 전반적 형량 강화 문제

일반적으로 엄벌주의 이야기는 사회적으로 분노를 일으킬 만한 흉악범죄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사회적 분노'라는 것은 매우 모호하고 유동적인 여론이므로, '대중이 원하는 사건에 대해서만 엄벌주의를 취하고 그렇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는 온정주의를 취하는'식의 정책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엄벌주의의 채용은 전체 사법제도의 엄벌화로 이어진다.

예컨대 대중이 분노하는 흉악 범죄의 경우, 대표적으로 김근식 연쇄 성폭행 사건처럼 복수의 피해자를 만든 강력범죄, 세월호 참사 때의 이준석 선장이 한 복수의 사망자를 만든 과실치사범죄, 신당역 살인 사건,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 같은 복합적인 범죄가 겹친 범죄, 강력범죄 전과자가 저지르는 강력범죄 등이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범죄에서 저런 범죄는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실의 범죄는 어느 한쪽이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로 딱 나뉘기보다는 둘 다 어느 정도 참작할 사유가 있고 인과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이는 성범죄, 살인죄 등 강력범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는 사항이다.[17]. 그런데 형량을 앞에 나오는 흉악한 범죄를 기준으로 높이면, 비교적 경범죄인 경우도 형량이 오르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되면 예전에는 정상참작을 해줄 만한 범죄도 더 이상 판사 재량으로 봐줄 수가 없다. 위의 살인죄 관련으로 예로 들자면,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형량이 오른다면,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이는 범죄에 대해서도 무거운 형량이 내려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뜻이다. 형량은 최대치와 최소치가 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판사가 그런 건 알아서 판결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판사는 국회가 만들어놓은 법에 따라 판결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법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판사 개인에게 사법적 권력을 줘서 재판 당사자의 운명을 맡기게 되기 때문이다.

3.7.1. 극도의 엄벌에 대한 낭만화

엄벌, 극형, 혹형을 주장하는 사람은 처벌을 엄하게 규정해 놓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듯이 말한다. 마치 법조문에 형벌을 엄하게 규정해 놓으면 그 법률이 실체를 얻어 범죄자를 잡고 다닐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법률은 일단 범죄 혐의로 기소 되었을 때 상황을 판단하는 규정에 불과하다.

즉, 형벌이 시행되려면 수사 기관에서 사람이 혐의가 있다고 보아 기소를 하고, 그것을 가지고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기소 내용이 사실인지 검증하며, 최종적으로 사실이라고 판단될 때 비로소 벌이 내려지는 것이다. 형벌을 엄하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약범은 걸리는 대로 사형시킨다고 해도 수사 기관이 마약범을 검출하지 못하고, 재판에 넘겨진다 하더라도 법관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고 사실심에서 판단한다면 엄한 법률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형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18]. 즉, 사람을 교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덜 써야 하는 수단이며, 가장 조심해서 써야 하는 수단인 셈인데, 이를 남발한다면 그 만큼 법의 무게도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3.7.2. 장기적인 세금 낭비

범죄자들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기에 그만큼 걷는 세금이 줄어들며, 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도 세금이 상당히 많이 든다. 범죄자들에게 드는 세금은 투자 대비 돌아오는 비용이 거의 없기에 새는 세금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대중들의 감정을 만족시키자고 늘린다면 당연히 줄줄 새나갈 세금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피해자들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에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쪽은 범죄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19]

3.8. 동태복수법의 한계

눈에는 눈이라는 식을 고집한다면 모든 세상 사람들의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
An eye for an eye only ends up making the whole world blind.

- 마하트마 간디
엄벌주의자들이 응보적 정의 실현을 위한 형평의 선으로 흔히 지목하는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이다. 동태복수법의 원칙은 인류 초창기부터 등장한 원칙이지만, 이는 직관적일 뿐,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A는 B의 앞에서 자녀 b를 강간한 후 살해했다. B는 복수를 원한다. 동태복수법에 따라 강간당하고 죽을 사람은 누구인가? A인가 아니면 A의 자녀 a인가? 아니면 자녀a를 강간한 후 A를 죽여야 하는가?
어떠한 두 사람도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자녀a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이 동일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20]이 있을 것이고 본인(A)을 강간하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21]이 있을 것이다. 더 심하게는 둘 다(A와 a) 강간하고 죽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22]도 있을 것이다. 응보적 정의 구현을 위한 동일한 대가를 선정하는 것 자체가 자의적이란 것이다. [23]
대장장이가 망꾼에게 중요한 신체부위인 한쪽 눈을 다치게 했다면 대장장이 일 하는데 필수적이지 않은 눈을 똑같이 다치게 하는게 응보적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인가?
어떠한 두 사람도 동일한 신체를 가지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동일한 처지에 놓이지도 않는다. 위와 같은 경우, 망꾼은 생업에 엄청난 지장이 생기지만, 대장장이는 별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다치게 하는게 동일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대장장이에게 필수적인 팔을 대신 다치게 해야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체부위에 가치를 부여하는 논리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때그때의 감정적인 기준으로 합당한 응보가 결정된다.

때문에 동태복수법은 완벽한 공정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결코 공정을 기할 수 없다는 모순이 생긴다.

다른 큰 문제점은 복수의 순환고리에 걸리는 것이다.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힘의 논리에 따라 약한 한쪽이 없어져야만 사건이 해결된다. 서로가 끝없이 투쟁하다 전부 다 죽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을 넘게 처벌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상황도 있다. 도둑질을 하다 걸렸을 때 그 물건의 가격만큼 배상하면, 도둑질 한 다음 걸릴 때까지 공짜로 쓰다가 걸리면 그제서야 제값 주고 쓰는 셈이 된다. 사실상 처음부터 제값 주고 구매하는 게 멍청한 짓이 될 뿐이다. 무임승차 요금을 본래 가격의 30배나 받는 이유다. 주로 돈과 관련된 범죄의 경우는 동태복수법 그 이상이 합리적인 법칙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태복수법이 생겨나게 된 이유도, 당한 것 이상을 받아내려 하는 복수심을 억제하려는 장치였다. 즉 손톱에는 목숨, 이에는 가족 전체의 목숨, 눈에는 마을 전체 학살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당시부터도 동태복수법은 어디까지나 같은 신분(특히 귀족)의 사람에 한정된 이야기였지, 낮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훨씬 약한 처벌/보상으로도 충분하여 처벌의 형평성은 당시부터도 없었다. 이처럼 사람의 보복심리는 피해를 입은 수준보다 훨씬 큰 보복(처벌)을 원하기에 동태복수법으로도 보복심리를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고, 피해자의 피해 구제에 대한 만능열쇠가 될 수도 없다. 인류의 초창기부터 생겨난 원칙임에도 인류가 사회를 발전시키자 동태복수법이 도태된 이유는, 보복심리 만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데도 실행상의 모순과 어려움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3.9. 인권에 대한 경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 인권 선언 제6조

한국은 헌법 제10조에서 인간은 존엄하고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갖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를 자연법주의(천부인권사상)에 따라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인권을 확인하는 규정이라고 보든, 법실증주의에 따라 헌법이 인권을 규정했다고 보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선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법제도를 쌓아올리고 있는 국가이다. 만약 엄벌주의를 긴 징역 대신 가혹한 징벌, 즉 인권의 박탈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범죄자에게는 인권이 없다" 라는 구호는 매혹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지만, 무척이나 위험한 구호이다. 한 사회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자'를 나누게 된다는 것은 비인륜적인 범죄를 국가적 차원에서 저지르게 될 위험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개인의 인권을 뺏는 것은 집단의 힘을 개인에게 향하게 하는 것이어서 속시원할 수는 있지만, 그 칼날이 나를 향하게 됐을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녀사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개인은 누구일까? 언론의 마녀사냥에서 멈추지 않고 국가 형벌권까지 동원되는 마녀사냥에서 개인은 어떤 수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권력자나 정치인이 "범죄자는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며 인권을 침해하기 시작하면, 현대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한다. 이는 범죄자의 범위를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넓히며 반대자를 숙청하는 빌미로 쓰이거나, 인권을 부정하여 결국 비인륜적인 범죄로 발전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례로 나치는 범죄자와 유대인, 장애인은 2등급 시민이라는 선언을 시작으로 종국에는 유대인을 말살시키는 광기에까지 이르게 됐고, 이에 반대하는 자는 독일인이더라도 절멸시키려 들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인권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적대분자들과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순분자'들에게까지 자유와 권리를 주는 초계급적인 인권이 아니다' 라고 하는 우리식 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은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보편적 인권의 역사는 무척이나 짧다. 노예라는 재산도 인간일 수 있다고 인정된지 200년이 되지 않았다. 인류는 오랜 투쟁과 실패, 독재와 학살 위에서 보편적 인권이라는 개념, 안전장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자의적으로 뺏자는 주장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자는 말과 같다.

이처럼 인권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존재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힘을 가진 주체를 통제하기 위해 발견 혹은 개발된 개념이다. 인권은 소중하다고 선언한다고 안전장치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권이 소중하다고 믿을 때, 더 나아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효력을 발한다. 가혹한 처벌을 의미하는 쪽의 엄벌주의는 그런 믿음을 와해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범죄자 말고 피해자 인권이나 보호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얼핏 맞는 말 같지만 인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피해자의 인권대로 보호할 문제이지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피해자의 인권 보호가 해결되지 않는다. 범죄자를 고문하고 저잣거리에 효수한다고 피해자의 인권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오히려 앞서 봤듯 피해자 보호는 뒷전이고 대중의 말초적 분노해소에만 집중하는 결과가 될 확률이 높으며, 범죄자의 인권이 침해당하면 피해자의 인권까지 침해당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밝혀졌다. 피해자의 인권은 범죄피해자 보호법, 형사소송 절차의 개정과 같은 제도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다만 피해자의 인권과 가해자의 인권이 충돌하는 지점은 존재하기에 무엇을 우선해야 할지는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3.10. 이중잣대식 엄벌주의

학문적 엄벌주의자들이 최소한 일관성은 있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는 달리, 대중이 외치는 엄벌주의는 자신과는 관계 없는 영역의 범죄에만 엄격하다. 뇌물 수수처럼 자기의 사회적 지위로는 저지를 수 없는 범죄에는 사형을 외쳐대지만, 무단횡단이나 신호 위반, 과속 같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닫고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꺼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도 한없이 관대하다. 요컨대 운수업자는 상인의 탈세는 엄하게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과적 운송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반대로 상인은 과적 운송을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외쳐대지만 탈세에는 침묵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대중들이 범죄자에 대한 보복 범죄, 사적제재에 우호적인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타인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은 적지만, 본인이 공격을 받을 경우에 이를 반격하려는 사람은 많다. 따라서 선제공격을 가한 상대방을 정당방위를 빙자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살해하는 행위[24], 범죄자의 신상을 털거나 모욕하여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행위 등 범죄자에 대한 범죄 행위먼저 범죄를 저지른 대상에 대한 반격으로서의 범죄 행위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이 또한 '나는 절대로 선제공격은 안 하는 성격의 사람이지만, 선제공격을 당할 경우 거리낌없이 반격할 성격의 사람이다'라는 대중들의 자기평가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선제공격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든, 이에 반격하여 상대방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든 모두 어디까지나 범죄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거스르지 않게끔 주장한 결과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대중이 말하는 엄벌주의란 '내가 저지를 수 있는 범죄는 관대하게 넘어가라. 그리고 내가 저지를 일이 없는 범죄는 강력하게 처벌해서 내 분풀이 대상이 되어라'는 주장이다. 논리적인 엄벌주의자라면 드라콘[25][26]의 법을 주장하지, 특정 범죄에만 엄격하고 다른 범죄에는 한없이 관대해지지 않는다.

더욱 더 강하게 말하자면, 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적지 않은 대중들의 선동에 이중잣대식 엄벌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떼법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3.10.1. 법적 안정성 침해

이렇게 본인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범죄를 저지르면 무조건 강경한 처벌만을 외치는 것은 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비례의 원칙을 시원하게 씹어먹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비례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사유와 범위를 엄격하게 따져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도로 제한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이고 이것은 형량 결정에도 예외가 아니다. 살인과 절도는 둘 다 범죄지만 그 처벌의 강도는 살인이 훨씬 높다. 범죄에도 엄연히 경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수많은 시간동안 살아오면서 무엇이 더 악독하고 심각한 행위인지 정리된, 일종의 사회적 약속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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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철학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97809&cid=41908&categoryId=41951 [2] 칸트의 경우 꽤나 사형제에 진심이어서 살인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사형을 시켜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국가가 해체될 경우 가장 먼저 할 일은 감옥에 남은 살인자를 처형시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했다. [3] 대표적으로 북한, 러시아 같은 독재 국가에는 민주 국가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가혹한 형벌들이 많다. 하지만 지도계층은 조금도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자신들에게는 그런 형벌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1회의 기대값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링크한 예시에서 지금 가진 1만원을 지키기 위해 도박을 포기하는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설 참고. [5] 이는 경제적 손익과 관련된 재산범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6] 물론 경범죄거나 아예 형을 가볍게 만들만한 권력이 있는 경우에는 형이 가볍다고 저지르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경범죄의 경우는 엄벌주의자들은 보통 이런 케이스보다는 중범죄를 더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기에 겹치는 부분이 없고, 권력으로 형을 낮추는 경우는 엄벌주의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타파가 불가능하다. [7] 마약 판매상은 마약 법정에서 아예 받아주질 않는다. 약물 법정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마약 중독자들이다. [8] 징역을 살고 나와도 마약을 한다면 징역을 다시 때려서 또 가둬봤자 출소하면 또다시 마약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엄벌을 통한 겁주기로는 마약 중독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9] 반대로 뒤집자면 저런 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검거율과 신고율을 높이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즉 범행 도중에 들킬 위험이 높다면, 혹은 범죄가 들킬 위험이 높다면 범죄를 주저하기 때문에 범죄 건수가 줄어든다는 뜻. [10] 정작 깨진 유리창 이론은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공권력 강화를 조장하여 법의 통제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11] 어차피 엄벌에 처해질 것이므로 [12] 이 과정에서 님비현상까지 겹친다. 자신의 도시에 교도소가 들어오길 원하는 시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범죄자에게 밥을 안 주면 되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부당하다. 1)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가족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실상의 연좌제에 해당한다. 2) 가족도 없는 빈민층의 경우 1개월의 징역형이 사실상 사형에 해당하게 된다. 반면 부유층의 경우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처벌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이다.(비록 소설이기는 하나 작가 본인이 소련 굴라크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다) 등장인물들이 갇힌 굴라크에서 밥을 안 주는 건 아니지만, 주인공인 슈호프는 어딜 봐도 제대로 된 밥이라고 할 수 없는 음식을 먹고 혹한 속에서 죽어라 강제노동을 해야 하지만, 같은 반에 속한 체자리라는 죄수는 사회에 연줄이 있어서 외부에서 사식을 수시로 반입하고 이를 뇌물로 활용해 실내에서 서류 작업이라는 명목으로 편하게 생활한다. [14] 다른 수용자에 비해 높은 계급을 획득하므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타 수용자에게 떠넘길 우려가 매우 높다. 또한 감옥 내의 이권이나 자원을 가로챌 수 있고, 자신이 내키는대로 타 수용자에게 임의적으로 가혹행위를 시도할 수도 있다. [15] 그렇다고 위생 비용의 지불을 포기하는 것은 '범죄자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와 동일한 발상이다. 그 비용은 가족들에게 전가되며, 빈곤층은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고 부유층은 옥중 치료를 받고 살아남을 것이다. [16]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악용하기도 쉽고, 말 안 듣는다고 악용하기도 쉽다. 민간인이 무고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기도 쉽다. [17] 살인죄는 사람을 죽인 거니 명백히 피해가 있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생각외로 정상 참작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예로 들자면 김부남 사건마냥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인다던지,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처럼 아동 학대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인다던지가 바로 그 예다. [18] 이를 형법의 보충성 원칙이라고도 한다 [19] 엄벌을 한다고 해서 피해자들에게 현실적 보상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20] 자녀가 눈 앞에서 강간살해 당한 것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 [21] 강간과 살인을 당하는 고통에 초점을 둔 사람. [22] 진정한 복수는 감정뿐 아니라 신체적 고통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23] 만약 자녀b의 배우자 b'까지 있다면 더욱 복잡해진다. A의 배우자 A'도 강간해야 하는가? [24] 현행법과 판례에 의해 허용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충동적인 공격을 가하거나, 복수심에 경도되어 자기방어 이상의 대응을 한 경우에도 여론은 범죄자에 대한 범죄라는 것만으로도 가해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보인다. [25] 고대 아테네의 정치인 드라콘이 만든 법. 형벌이 지극히 엄격해 살인죄부터 시작해서 '절도죄', 심지어 ' 게으름을 피운다는 이유와 같은' 사소한 죄까지 사형을 부과할 정도. 이러다보니 중한 범죄에는 더 강도가 높은 처벌을 부과하고 싶어도 사형보다 높은 건 없기 때문에 그냥 모조리 사형으로 통일했다.(...) 이 때문에 아테네 시민들이 '드라콘은 피로 법을 적었다'고 외칠 정도였다. [26] 이 드라콘 법전의 부작용 중 하나가 여기에서 지적한 '추가 범죄의 야기'에 딱 들어가는데, 이 무렵의 아테네 시민들은 '어차피 사소한 범죄로도 사형인데 이왕이면 쎄게 저지르자'라는 마인드로 강도높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