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1:34:49

양심냉장고

1. 개요2. 탄생3. 제목의 유래4. 초창기5. 중반기6. 그 후7.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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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방영 기간: 1996년 11월 3일 ~ 1998년 12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코너 이경규가 간다의 주된 상품이자 동명의 코너 제목으로 일밤을 위기에서 건져낸 구원 투수이자 몰래카메라의 공익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한 전설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김국진 독주 체제를 저지하고 이경규가 대상을 받을 수 있던 계기가 된 프로그램이다.

이 코너에서 이경규와 같이 진행한 사람들은 민용태[1], 민병철[2],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3], 강지원[4] 등이 있다.

2. 탄생

당시 일밤은 위기상황이었다. 지상파 3사 채널로만 비교하던 시청률에서 일요일 프라임 타임 때 시청률이 2%(...)밖에 안 나오는 등 애국가 시청률급의 폭망기였으며 시청률이 40%대의 KBS2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슈퍼 선데이'의 꼭지 '금촌댁네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5]

이에 대항하기 위해 일밤 제작진은 머리를 싸매고 회의를 했으나 3달 가까이 되도록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고, 여느 때처럼 별 소득없이 끝난 회의를 마치고 늦은 새벽 4시 집으로 돌아가던 연출자 김영희는 그날 따라 유난히 신호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평소같으면 서지 않던 새벽 4시 신호등 걸린 횡단보도를 지나다 깜빡거리는 녹색 신호가 보이자 '평소 같았으면 그냥 뛰어 건넜겠지만 정말, 별 이유없이 그냥 기다렸다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를 떠올려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 이거다라고 유레카를 외치고 법규 준수에 대한 포맷을 결정했다.

이 코너의 대성공으로 몰래카메라 종영 후 영화 복수혈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일밤도 약발이 떨어지면서 당시 2%라고 놀림받던 이경규는 MBC 대표 MC로 입지를 확실하게 굳히게 된다. 거기다 이 방송 덕에 도로 위의 양심으로 거듭나면서 방송 외에 교양 강연들을 하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이경규의 비호감 이미지를 한번에 싹 씻어내는데 성공, 이후 대단한 도전의 연타석 히트로 제2의 전성기 겸 대한민국 대표 MC 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

3. 제목의 유래

이때 제목이 왜 ' 냉장고'인가 하는 의견도 분분했는데, 그때 이미 냉장고가 없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냉장고가 부담스러워 기증하거나 팔아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양심냉장고를 받은 사람들을 찾아가는 특집에서는 냉장고를 처리한 여러 사례가 발견되었다.

한창 정보화 시대가 거론되던 분위기였음을 고려해 '양심컴퓨터' 같은 게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도 있는데, 지금이야 정보산업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가 거의 생필품화되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말하자면 486도 현역이었고 펜티엄 1, 혹은 MMX 급에 다이얼업 모뎀으로 PC통신을 하던 때였다. 참고로 양심냉장고가 종영된 직후인 1999년에 국민PC가 출시됐다. 그 이후에 컴퓨터 보급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냉장고야 생필품이니 다 가지고 있더라도, 만약 당첨자가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필수품도 아닌 컴퓨터를 주는 건 모양새도 이상하고 줘 봤자 마찬가지로 팔아넘길 물품이다.

PD 이경규가 간다에서 밝히기로는 처음에 김영희는 텔레비전 박스를 들고 왔는데, 큰 걸 줘야 그림이 산다는 지론으로 냉장고 박스로 바꾸게 했고, 우리의 양심을 보관해야 한다.는 의미도 넣어 선정했다고 한다.

4. 초창기

교통 단속이 없고 신호에 무관심할만한 야심한 시간대를 골라 임의의 도로에 잠복하다 안전선 지키기/안전 속도 주행 등 운전면허 교육이나 실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기본적인 교통 안전 규칙을 지키는 차량에 대해 상품으로 냉장고 한 대를 주는 기획이었다.

첫 방송 이전만 해도 PD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고, 첫 촬영 때 예상처럼 밤중에 인적이 뜸한 도로에 대부분의 차들이 적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갔다(참고로 이 당시 교통사고 사망자는 1년에 1만2천 명, 그러니까 하루 사상자도 아니고 사망자만 40명에 육박했다.) 그러다 촬영 중 김영희가 잠시 다른데 간 사이 이경규와 민용태가 자기네들끼리 클로징 멘트를 치고 판을 접으려고까지 했다.

겨우 두 사람과 제작진을 진정시키고 조금 더 기다리던 이때 새벽도 다 지나갈 새벽 4시 13분 쯤 파란색 대우 티코 한 대가 남들은 다 지나가던 횡단보도 앞에 일단 정지해 정지 신호와 정지선을 지켰고[6], 이에 제작진은 감격에 겨워 그 차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 차에서 창문을 내린 사람은 장애인 부부였다. 이때 김영희는 말을 제대로 못 하기에 순간적으로 음주운전자인 줄 알고 망했다고 생각했다고.(출처 무릎팍 도사) 이때 이경규는 장애인 부부에게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라고 대한민국 방송 프로그램 역사에 영원히 길이 남을 질문을 날렸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남편이 남긴 말은 "내...가...늘...지켜요.". #1 #2 MBC 해피타임 요약본 무릎팍도사에서의 회고 장면 해당 방영분은 7차 교육과정의 초등학교 6학년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초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 남아있다.[7]

이 첫 방송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직후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 법규에 대한 무관심을 깨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시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바로 다음주 일밤 정규방송 시간에 前주 1회 방송을 그대로 재방영했다. 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8] 이후 양심냉장고는 큰 호응을 얻었고, 이 코너는 현재까지 공익 예능의 전설로 회자된다. 이 방송을 시작으로 시청자들이 '연예오락 프로에서도 얼마든지 사회공익적 내용을 다룰 수 있다.', '재미와 감동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를 연출한 김영희는 ' 칭찬합시다', ' 느낌표'등의 공익 예능 붐을 일으켰고 MBC도 몇 년간 김영희 표 공익 예능에 주력했다. 이 공익 예능의 흐름은 무한도전의 일부 에피소드로 이어지게 되었다.

프로그램 전반에서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차량들의 번호판이나 운전자를 모자이크 처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 예로 정지선을 지키지 않은 신도리코 차량의 상표가 그대로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냉장고 수상자의 얼굴은 당연히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았다. 차량 번호판의 경우는 불명이다.

5. 중반기

일부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악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양심냉장고의 냉장고 증정 기준은 편도 4차선 같은 도로는 한대라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나머지 3대가 지켰더라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몇몇 시청자들은 제작진이 다음 촬영장소를 고지하면 미리 팀을 짜서 다같이 법을 지켜 다같이 냉장고를 받을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4대가 가로로 나란히 달려 교통정체를 유발한 것은 물론이고 자기 팀이 아닌 자동차가 앞으로 지나가려 하면 차에서 내려 뒤로 가라고 협박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4대가 모두 정지선을 잘 지키는 거 냉장고를 타내려 했다.

물론 제작진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들에게 냉장고를 주기는커녕 그들의 만행을 편집없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기까지 했다. 또한 그 팀에게 냉장고를 주는 척 다가가서는 " 선생님 아까부터 계속 여기 도셨죠?"라며 그들의 만행을 모두 폭로하기도 했다.

무려 14차선의 영동대로에서 시도를 한 적도 있는데 이건 정말 어렵다. 엉뚱하게도 FedEx 택배 차량을 냉장고를 노리고 왔다갔다하는 차로 오해하여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가 나중에 정정 방송을 내보낸 적도 있다. 종료 시간에 가까운 오후 6시 정도가 되자 퇴근한 직장인들이 사전 모의 후 팀플레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우스운 상황도 나왔다.

결국 다음 주에 같은 장소에서 한번 더 하기로 했는데 비난을 의식했는지 성공하더라도 양심 냉장고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불우 이웃들에게 준다는 취지로 바꿨으며 다수의 아저씨들이 연합해 신호는 지켰으나 결국 실패한 뒤로 촬영 사전 고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당사자가 아닌 불우이웃에게 기부하는 것으로 포맷이 바뀐 이유는 이경규가 팀을 짜서 나온 직장인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 냉장고를 타서 고아원과 복지관에 기부를 할 목적'이라고 밝혔기에 이에 호응하는 취지로 제작진이 지급 대상을 바꾼 것이다.

당시 전국의 주요 광역시들을 순회하며 정지선 지키기 촬영을 했으며 어째서인지 주요 광역시 중 유일하게 대구광역시에서만은 촬영하지 않았다.

어떤 화에서 분당내곡간도시고속화도로에서 안전 속도를 지킨 운전자에게 양심 냉장고를 주는 내용으로 진행했을 때[9] 당시 방송 지원을 하던 경찰[10]이 정지 신호를 보냈는데 그 차가 단속인줄 알고 과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결국 냉장고를 주지 못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반면 제주도에 가서 촬영한 어떤 화에서는 당첨자인 트럭 운전사가 이경규를 보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에에에?? 아니 어떻게..."하고 놀라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양심냉장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듯 했지만 이경규가 거기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을테니...

그 외에도 교통 법규 뿐만 아니라 다른 주제로 양심 냉장고 당첨자를 선정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넘어진 공용 철제 쓰레기통 근처에서 잠복하다 그걸 세우는 사람이 나타나면 냉장고를 선물하는 등. 당첨자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정말로 쓰레기통을 세운 사람이 나타났다. 상앙?

1998년경 방영 당시 영등포역에서 어르신 짐 들어 드리기 편에서는 제작진이 철수하기 5분 전에 휴가 나와 마산시의 집으로 가던 대한민국 해병대 상병(병 781기) 권태길이 짐을 들어줘 복귀하자마자 다시 포상 휴가를 받았다. 당시 영상[11] 이 해병은 도와준 중년 부인에게 냉장고를 양보했으나 부인 신문선이 사양하자, 이경규의 권유로 부대에 기증했다고 한다. 해병대 갤러리 카더라에 의하면 무려 1달 포상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깟 냉장고보단 군인에겐 이게 진짜 보상 이것이 당시 해병대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신병 교육시에 교육용 비디오로 자주 틀어준다.
어르신 짐 들어 드리기 에피소드에서 한 여대생이 당첨되었을 때 그 여대생은 많이 당황해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로 상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말해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

이외에도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되어 국민적 홍보 차원으로 청소년 유해매체 및 주류, 담배 팔지 않기 등의 캠페인도 시도했으며 이 가게에는 양심냉장고와 함께 '양심가게'라는 하트 모양의 간판도 같이 증정하면서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편의점에서 청소년들의 민증 검사를 전혀 하지 않아 청소년들이 술을 구매하는 것이 수월했다.

여담이지만 미국까지 가서 미국의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청소년에게 주류 및 담배를 팔지 않는지 직접 실험을 했는데 당연히 팔지 않았고 신분증 검사도 철저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당시 한창 주목을 받던 남성 가수를 특별 게스트로 초대해 실험을 한 바 있다.

6. 그 후

그 뒤 매번 같은 패턴의 반복으로 점점 인기가 떨어졌고, 설치된 카메라가 발각되어 똑같은 자동차가 정지선에 멈추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등 프로그램 원래의 목적까지 빛이 바래지면서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도 이 방송 이후로 전국적으로 교통법규를 준수하자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지금도 교통법규와 관련한 신문 기사 등에서 양심냉장고 이야기가 가끔 등장한다. MBC에서도 전국적인 임팩트를 주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한 모양인지, 그 이후로도 '양심○○ 시리즈'를 필두로 한 '공익 버라이어티'에 꾸준히 투자하게 되었으며 MBC의 거의 모든 공익 버라이어티에는 당시 책임 PD 김영희가 관여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유명해진 시민으로는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운전자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임꺽정과[12] 학교 안 가고 오락실 가는 초등학생 등이 있다.

의도는 나름대로 좋았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인한 준법고취 효과는 안타깝게도 몇년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애초에 '누군가 감시하기 때문에 준법을 한다.'거나 '눈에 띄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준법을 한다'는 것은 감시자와 포상자가 사라졌을 때 효과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13]

이런 현상은 신고 포상금 제도 하에서의 전문 신고꾼( 파파라치)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데, 화장실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고 예산이 포상금으로 풀리면 위반사항을 매의 눈으로 찾아다니며 포상금을 타먹다가도 포상금으로 받을 예산이 전부 소진되어 신고의 의미(돈벌이를 노리는 전문 신고꾼 입장에서)가 사라지면 그 투철한 신고 정신은 어디다 팔아 먹었는지 웬만한 위반사항이 뚜렷이 보여도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김영희는 "우리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방송인이기 때문에,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으로 족하다. 그 다음은 사회에서 나서야 할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동차에 대한 법규를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는 미국의 경우, 한밤 중 인적이 뜸한 도로라고 해도 적신호를 무시했다가는 어디선가 다가온 경찰에 의해 수백 달러의 벌금 폭탄을 먹게 된다. 적신호는 물론 보통 대한민국에서는 가볍게 무시당하는 '일단정지' 표지 역시 지키지 않고 지나가다 걸리면 수백 달러가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한밤중이라고 해서 법규를 무시하는 차를 오히려 찾기 어렵다. 미국인들에게는 이게 어릴 때부터 몸에 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에 오래 산 교포에게는 양심 냉장고라는 것이 매우 생뚱맞은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의 법규준수율과 준법의식이 얼마나 미비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이야기.

그래도 정지선 지키기 하나는 운전자의 기본적인 소양으로 자리매김해 이 방송 이후로 상당히 개선되어, 교통법은 지키는 쪽이 멍청이에서 안지키면 잘못된것이라는 마인드가 기본 베이스로 바뀌어 방송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교통법 준수율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예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다. 막나가는 장년층에서조차 이 프로그램을 기억하며 지키지 못했을때 지적하거나 반성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인해 경제에 비해 다소 많이 모자랐던 시민의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하나 안타깝게도 인식만 바뀌었을 뿐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아 지금도 교통법은 그다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7. 그 외

최초로 양심냉장고를 수상한 장애인 운전자인 이종익은 개인 사업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비하적 시선으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렸고 이후 한국 뇌성마비복지회 직업재활센터에서 일하면서 장애인복지/고용 홍보 모델 등을 하며 살다 2015년 2월 10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종익에게는 딸은 없고 아들만 둘이라는 인터뷰가 있다. #

한번은 '정작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경규는 법규를 잘 지킬까'를 알아보기 위해 출근하는 이경규의 차량을 몰래 뒤쫓은 것을 방송한 적이 있다. 일명 '이경규 특집'. 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의 콜라보 제작진이 지켜본 결과, 그 날 이경규는 차선과 정지 신호는 완벽히 지켰으나 좌우회전 시에 깜박이를 켜지 않는 애매한 양심을 보여주었다. 훗날 이경규 曰 "이 프로 때문에 하루아침에 졸지에 내가 '이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의 아이콘이 됐다.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남 눈치보고 행동하게 되었다. 이 프로가 내 인생을 피곤하게 했다!"고 밝혔다. 근데 본인도 사람인지라 한두번은 위반을 한 적이 있으며 참고로 위반 때문에 경찰에게 걸렸을 때 뒷좌석에 숨기까지 했다고.

그 뒤 양심냉장고 출연 당시 광고를 찍을 때 이경규는 '양심'이란 단어가 들어가 관계자들에게 '양심'이란 말을 빼라고 했고, '난 도로 위 양심'이라며 양심을 팔고 싶지 않아 광고를 안 찍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에서 했다.

2016년 10월 19일에는 MBC 에브리원 '이경규가 간다'에서 양심 냉장고(양심을 찾아서-정지선 지키기)가 부활했다. 20년 전 새벽에 정지선을 지켜 많은 감동을 준 장애인 부부를 만난 도로에서 진행했으며, 새벽에 정지선을 제대로 지킨 차량을 발견했지만 뒤늦게 쫓는 바람에 차를 놓쳤다. 그러다가 며칠 후 다시 찾은 도로 위에서 정지선을 지킨 차량에게 냉장고를 선물했으며 그 사람김종명씨은 20년 전 양심 냉장고를 본 이후로 정지선을 잘 지키게 되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주인공에게 전달된 냉장고는 LG전자 LG DIOS 더블매직스페이스였다.

포가튼 사가엔 이를 패러디한 '양심갑옷' 이벤트가 있는데, 레딕의 산채의 어떤 방에서 상자를 안 열고 기다리면 얻을 수 있다. 다만, 이걸 얻고 상자를 하나라도 연 뒤 나가려 하면 패스맨이 다시 포풍처럼 등장해, 양심갑옷은 물론이요, 모든 아이템을 가져가고 레벨도 초기화시켜버린다. 사실 상자를 열어서 얻는 아이템들은 별로 좋은 것도, 비싼 것도 아니라 손도 대지 말고 양심갑옷을 얻는 게 훨씬 더 좋다. 성능이 여러모로 좋기 때문이다.[14]

이 코너는 앞서 케이블 TV 현대방송에서 방영한 '좋은 세상 만들기'[15]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1] 양심냉장고 초창기 이경규의 파트너 겸 보조 MC. 예능 성격이 그렇다보니 이 사람이 다들 교통안전이나 윤리에 관련된 전공 교수로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실제 민용태의 전공은 스페인어로 돈키호테 완역판의 번역을 맡기도 한 한국 스페인어 학계의 스타급 교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나와 방송 당시는 고려대학교 교수였다. 스페인 한림원의 종신위원이다. [2] 영어 강사이자 민병철어학원의 창업자이다. 1980년대 MBC에서 아침 TV 영어회화 강좌를 진행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뛰던 박찬호를 만나기 위해 보조 MC로 나오다 민용태가 하차한 뒤에 본격적으로 보조 MC로 출연했다. SBS 아나운서 이혜승의 시아버지다. [3] 이경규가 간다 출연 당시엔 MBC 전속이었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SBS로 이적했다. [4] 일밤 출연 당시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 같은 시기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의 홍보를 위해 출연하였다. 이 사람의 아내가 바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을 발의한 김영란이다. 제18대 대선 후보로 출마하여 박근혜, 문재인에 이어 3위로 낙선했다. [5] 이때 이경규의 증언에 의하면 자기가 방송사 복도를 지나갈때 PD들이 "어이 이프로!" 라고 놀렸는데 처음에는 왜 자기한테 '프로' 라고 하는지 몰랐다고... [6] 사실 보도에 약간 걸친 상태라서 정확하진 않았으나 당시는 정지선 준수보다는 야간의 정지 신호 준수에 맞춰졌다. [7] 2015 개정 교육과정 기준 [8] 다만 이는 다음 아이템으로 기획된 '학교 주변의 진입금지 표지판 지키기'의 주인공을 찾지 못한데 따른 대체 방송의 성격도 있다. # [9] 해당 문서에 설명되어 있듯, 분당내곡로는 내곡동-분당 방면으로 내리막길이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야간에 과속을 일삼는 차량들이 자주 보이는 구간으로 악명 높다. [10] 당시 차량을 정차시키는 일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 때문에 방송에서 냉장고의 주인공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중간중간 경찰의 모습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11] 당시 해병대원들에게는 코트가 개인 피복으로 지급되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코트가 부족한 경우 근무복 위에 야전상의를 입고 나가기도 했다. [12] 아저씨와 할아버지 버전이 있다. [13] 지금도 출퇴근시간에 사거리로 나가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물기가 당연하게 반복되며,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치여 숨지는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14] 스탯 자체는 평범한 플레이트 메일 수준이지만, 돈주고 살 수 없고 무엇보다도 모든 직업이 장착할 수 있다. 플레이트 메일을 장착할 수 없는 직업(특히 근접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싸울아비)에게 상당히 메리트 있는 아이템이다. [15] SBS의 동명 프로그램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