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0:42:51

양도헌

성명 양도헌(梁道憲)
생몰 1882년 ~ 1929년 10월 30일
출생지 함경북도 종성군 종관진
사망지 중국 지린성 연길현 장암동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양도헌은 1882년생이며 함경북도 종성군 종관진 출신이다. 그는 1918년경 중국 지린성 연길현 진일사 화령평 능동으로 이줗라여 진명학교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노력했다. 1919년 8월 중국 지린성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 동부지방총회(東部地方總會)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그해 12월 허영장(許令將) 등과 함께 중국 국자가 부근 걸만동에서 조권식(曺權植)·최광호(崔光浩)와 더불어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국민회 총본부로 송금했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들에게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그는 1920년 1월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 단원들의 조선은행 회령지점 현금 탈취사건을 수사하던 일본영사관과 중국 경찰대로부터 자택을 수색당하고 가족들은 구타당했다.

1920년 2월, 양도헌은 동부지방총회 경호구장(警護區長) 겸 서기 엄주철(嚴柱喆)에게 권총을 지급하여 부하들에게 분배케 하였으며, 동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군총 30정을 구입하여 대한국민회 총본부에 공급했으며, 대한국민회 회장 구춘선 등과 함께 한인대표로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지나관상신보각계제군(支那官商新報各界諸君)에 경고(警告)함>이란 글을 중국인에게 발표했다. 그해 6월엔 장암동지회(獐巖洞支會) 경호원 이병순(李秉順)과 남동빈(南東彬)에게 명하여 나자구(羅子溝) 방면에서 운반해 온 다수의 무기를 인수하였고, 8월에는 부하 20여 명을 무장시키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했다.

1920년 10월 일제가 간도 참변을 단행하자, 그는 일본군 토벌대를 피해 장암동 부근에 잠복했다. 그러나 10월 30일 일본군이 장암동의 한인들을 학살할 때 대한국민회 간부 최설·이동빈(李東彬) 등과 함께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양도헌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