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18 23:17:15

안인대

성명 안인대(安仁大)
이명 안인택(安仁澤)
생몰 1898년 ~ ?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시 채관면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인대는 1898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시 채관면 출신이다. 그녀는 평안남도 강서군 성태면 현곡리에 있는 사립학교 교원으로 재직했으며, 1920년 2월 성태면 반육리에서 최봉주(崔奉周), 조형신(曹亨信) 등의 권유로 최영반(崔靈磐)과 함께 국민향촌회(國民鄕村會) 여자부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남자부 조직인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과 연계하여 동지를 규합했으며, 입회 후에는 각 회원으로부터 3원씩의 입회비(入會費)를 모금했다. 또한 군자금 모집, 항일문서 배포, 항일사상 선전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그녀는 4월 중순경에 성태면 반대리에 있는 북장로파 계통의 예수교회당 부속 반석학교(磐石學校) 여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한애국부인청년단을 조직하고 단장(團長) 및 서기(書記)를 맡아 활동했다.

안인대는 대한애국부인청년단의 단장으로서 원들로부터 모은 현금 10원과 12월부터 1921년 3월 10일경까지 평양(平壤) 등지의 부자들로부터 모집한 군자금을 고유순(高有順)과 김예진(金禮鎭)을 통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했다. 그러던 1921년 3월 10일 강서군 성태면 현곡리에 있는 백운옥의 자택에 숨겨두었던 항일문서 등이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강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3월 30일에 동지 8명과 함께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안인대는 1921년 9월 21일에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2년 6월 17일 평양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안인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